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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울림 3호] 해외작 소개 - Another planet

Another Planet 

(Ferenc Moldovanyi / 헝가리, 핀란드, 벨기에 / 2008 / 96분)

영화   멕시코, 에콰도르, 콩고,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한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동노동과 아동성매매의 문제 등 오늘날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아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우리 행성 이면의 끔찍한 현실을 아이의 눈으로 본 일곱 개의 이야기를 통해 다루고 있다. 영화는 충격적 이미지들을 통해 지구 곳곳에서 자행되는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류 존재와 발전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에 조명을 비추고 있다.


- 연주

 

알고보면 더 잘보이는 영화 , 'ANOTHER PLANET'

 

영화 ANOTHER PLANET  영화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세 대륙의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세계노동기구(ILO)의 추산에 의하면 전 세계 5세 이상 14세 이하의 어린이 중 2억명 이상이 가난 때문에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 아시아와 태평양 연안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어린이들이 노동에 동원되는 지역이다. 또한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는 경제활동에 동원되는 어린이의 비율이 2004년 기준으로 약 26%에 달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처럼, 세계 각지에서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물건을 팔거나 구두를 닦는 일, 쓰레기를 뒤지는 일, 공장일, 품팔이, 성매매 등에 종사하고 있으며, 각종 분쟁 지역에서 소년병으로 동원되기도 한다. 노예의 형태로 고용되어 있거나, 빚의 대가로 담보가 되어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이 어린이들이 하는 일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노동강도도 세며, 일을 하면서 신체적, 정신적, 성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다. 게다가 가족들은 이들의 노동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중남미 일부 지역의 경우, 어린이들이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가구수입의 1/3에 달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어린이들이 노동에 내몰리는 근본적인 원인은 빈곤이다. 이 아이들의 생활환경은 매우 열악하며, 어른들에 의해 노동을 착취당하면서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 속 어린이들처럼 침묵과 무관심, 냉담함의 벽에 둘러싸인 아이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운명으로 여기고 체념하며 살아가고 있다.

  전 세계는 이 어린이들이 사는 곳을 ‘다른 행성’으로 치부하며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묵인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을 바라보자. 이 아이들은 분명 우리와 같은 행성에 살고 있다.


- 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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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울림 3호] 국내작 소개 - 작은 새의 날개 짓

작은 새의 날개 짓  (김수미/2008/다큐/14분)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자립을 한다. 자립은 부모로부터 독립함과 동시에 ‘나’라는 사람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감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 자립은 장애인들에게는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닌 듯 싶다. 자전적 다큐인 '작은 새의 날개 짓'을 통해 감독은 자립을 해야만 하는 이유와, 현재 중증 장애인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에 대해 담담하게 보여준다.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 앵글속의 그들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둘씩 알아간다. 그리고 감동받는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날아가려 하는, 그들의 작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한 날개 짓에...

-연아

 


 

 

감독인터뷰 (김수미 감독)

 

영화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는 자립은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많은 비장애인들이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거나 혼자 살면서 자립을 합니다. 하지만 유독 장애인에게만 자립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장애인들도 몸이 좀 불편하다 뿐이지, 생각은 비장애인들과 다를 것이 없거든요. 비장애인들의 자립이 당연하듯이 저희의 자립 또한 그런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처음에 자립을 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 이라든지 주변의 시선은 어땠나요?

어떻게 저렇게 몸이 불편한 세 사람만 같이 살 수 있나 하며 많이들 의아해 하곤 했어요. 부모님도 처음에 많이 놀라셨어요. 30년동안 함께 살던 애가 혼자 살겠다며 멀리 떠나니 서운해 하시면서도 걱정을 많이 하셨죠. 하지만 일단 제 결정을 존중해 주셨고, 힘들면 언제나 돌아오라며 격려해주셨어요.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하루에 수십 번씩 집에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여기서 포기해 버리면 앞으로는 아무것도 혼자 힘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계속 참고 견뎠어요.

함께 사는 친구들하고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민들레 야학에서 함께 만났어요. 원래 야학에 있던 친구 한 명과 저보다 2달뒤에 한 친구가 왔는데 시설에서 10년 살다가 나온 애였어요. 이렇게 2명의 친구 그리고 저까지 해서 3명이 함께 살게 됐어요. 특히 시설에 오랫동안 있었던 친구가 자립생활하면서 많이 행복해 해요. 시설에서는 장애인들이 개, 돼지 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나와서 자립을 해서 살면서 사람이 되는 기분을 느껴서 너무 행복하다고 이야기해요.

친구들이 영화 찍는다고 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처음에는 싫다고 하더니, 점점 연기들도 잘하고 많이 도와줘서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영화에서 보면 활동보조 시간(나라에서 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시간을 할당해 주어서 그 도움을 받게 하는 것)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보통 어느 정도 받게 되죠?

한 달에 50시간 받는 분도 있는데, 하루에 1시간 반 밖에 안 되는 시간이에요. 이 짧은 시간동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쌀 씻고 밥을 해놓는 정도에요. 만약 비장애인들의 손발을 묶어놓고, 하루에 1시간 반만 활동보조인이 와서 도와준다고 생각해보세요. 화장실도 못 갈 것이고, 아무것도 못 먹는 것은 물론이고, 만약 기저귀를 차고 있는 분이라면 일을 본 다음에도 하루 종일 활동보조인이 올 때까지 기저귀도 못가는 상황이 생기는 거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제도가 충분히 정착이 안 된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그럼 이런 활동보조시간은 어떻게 책정되는 건가요?

2007년도에 시범시간이 끝나고 5월쯤 보건소 직원들이 와서 설문조사를 했어요. 설문지도 굉장히 애매하게 구성되어 있었어요. 눈으로 직접 보면 아무것도 혼자서는 하기 힘든 중증장애인이라는 것을 뻔히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에 나온 제 친구는 0시간 나왔어요.저는 20시간 나왔고요. 0시간 나온 장애인들이 인천에 몇 명 있었는데 모두가 중증장애인이에요. 아무것도 혼자서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0시간 나왔는지 저희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가요. 저희들끼리 0시간 나온 친구들에게 “너희는 비장애인이냐?”며 우스갯소리도 하곤 해요.

활동보조 시간의 부족 말고도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많은 점이 불편할 것 같아요. 조금 얘기해 주실 수 있을 까요?

사실 장애인들은 하루 종일 방안에 갇혀있어요. 학교에서 잘 받아주지도 않아서 공부도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 안으로 들어가기가 더욱 힘들어졌어요. 공부를 제대로 못한 사람이 어떻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많은 장애인들이 일을 하지 못하고 한달에 50만원도 안 되는 돈(소급비)을 받아요. 한 달에 50만원 가지고 살수는 없죠. 주거의 경우만 생각하더라도 장애인용 편의시설을 갖춘 집에 살아야 하는데, 그 주거비 월세만 하더라도 40~50만원이에요. 결국 방값만 내고 굶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죠. 그래서 여러 중증장애인들끼리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아요. 저 또한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어요.

요즘 복지부 앞에서 지역사회주거대책에 대해 투쟁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문제 때문에 투쟁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나라에서 인천에 새로운 시설을 하나 지으려고 해요. 그것 때문에 투쟁을 하고 있어요. 시설을 짓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어가요. 나라에서 시설 쪽으로만 지원할 게 아니라 차라리 그 돈으로 아파트를 매입해서 각 아파트 한 채당 2~3명씩 장애인들이 살 수 있는 주거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저희한테 훨씬 좋은 대안이에요. 그리고 시설을 만들면 나라에서 돈을 계속 그 시설에 지원해 주는데, 그 매달 나가는 지원비를 아파트 안에 사는 장애인들한테 주면, 우리들도 얼마든지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 갈 수 있어요. 갇혀 있는 게 아니라.
왜 그렇게 시설에만 공을 들이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해 내는데 정부에 그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왜 이런 생각을 못하는지...... “장애인들은 사회 안에서 살지마라.” 이런 뜻인 건지...... 왜 많은 돈을 들여서 오히려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촬영 중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은데 소개 좀 해주세요.

너무 많은데, 아쉬웠던 점을 하나 말하고 싶어요. 원래 영화뒤쪽에 사진을 스냅으로 연결시키려고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야학의 모습, 특히 야학 친구들을 인터뷰하는 모습들을 담고 싶었는데 카메라를 가지고 갈 때마다 비가 오거나 행사가 생겨서 도저히 찍을 수가 없었어요. 영화제 출품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할 수 없이 사진으로 대충해버렸지 뭐에요.

이번 영화가 첫 작품이잖아요. 앞으로 감독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됩니다. 혹시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요?

아직 진행 중인건 없지만, 이쪽에 관심이 많아요. 영화를 만드는 일이 신기한 것도 많고 무척 재미있어요. 앞으로도 영화를 조금씩 해볼 생각이에요. 사실 감독님이라는 호칭도 굉장히 어색해요.

감독님이 관중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장애인들이 자립생활하기위해 부딪칠 일들이 너무 많은데, 그 분들이 포기하지 않게 조금만 더 옆에서 살펴주시고 힘이 될 수 있게 같이 가 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나라 제도도 빨리 제대로 정착이 되어야 하구요. 오히려 지금 정권이 들어서면서 장애인인권이 후퇴되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죠.

인권영화제 거리상영에 대한 지지의 메시지

인권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신데, 저도 꼭 참석 할테니 많은 분들 모이셔서 우리나라에서도 인권 없는 사회가 되지 않게 많이 힘써주시기 바래요. 아자!



인터뷰: 연아, 성진, 호야 /영상 촬영 및 편집: 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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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울림 3호] 인권영화제에 보내는 지지메시지

인권영화제도 거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

 

올해 인권영화제를 청계광장에서 한다는 말을 들으며 걱정보다는 설레임이 앞섭니다. 작년 인권영화제에서 만났던 영화 ‘파벨라 라이징’이 저에게 선사했던 신선한 감동은, 거리의 공기를 타고 전해졌기에 더 오래 남아있거든요. 아무렴, 영화는 거리에서 봐야 제 맛이죠! 저는 광장이 살아있고 거리가 춤추는 나라가 부러웠습니다. 인권영화제 거리 상영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게 하고 광장의 문화를 만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어쩌면 MB 정권에서 인권영화제가 거리를 선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틈새의 자유에 만족하지 않고 거리 상영을 선택하는 인권영화제도 거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인권이 존엄의 문제에서 생존의 문제로 절박해지는 요즘입니다. 존엄을 위해서 영화를 봐왔던 제가 살면서 만났던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은 생존을 다루는 인권영화제의 영화들이었습니다. 더 많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올해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영화들로 거리의 밤하늘을 수놓아주길 바랍니다.



-멀뚜기(인권영화제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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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울림 2호] 자원활동가 편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 할 수 있도록

 

안녕하세요?
저는 13회 인권영화제 자원 활동가 영은 입니다. 제가 ‘인권’ ‘영화제’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지만, 사실 ‘인권’ 에 대해서도 ‘영화제’ 에 대해서도 잘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조금씩 배워가는 재미가 더 쏠쏠합니다. 한 달 좀 넘게 사랑방에 드나들면서 제가 알게 된 것은 인권은 감각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학교 다니면서 대입 논술을 쓰면서도 저는 별 의미 없이 인권, 자유권, 포기할 수 없는 권리라는 단어를 써왔고 , 더 좋은 답안지를 쓰기 위해 관련 서적도 찾아보고 했으니 인권에 대해서 머리로는 꽤 많은 지식을 쌓아온 셈입니다. 하지만 영화감독에게 보낼 인터뷰 질문지를 만들려고 출품작들을 모니터 하면서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장면들을 보고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고 때로는 동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둔감했던 점 때문에 죄책감도 느꼈습니다.
영화제를 계속 준비하다보면 더 많은 영화를 보게 될 테고, 다른 활동가 분들에게도 많이 배우면서 좀 더 이 감각을 키워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영화제의 밤 청계광장에 모여 영화를 보는 많은 관객들도 인권의 감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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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울림 2호] 그 순간, 그 곳에서 당신은 왜 그 표현을 주저했었나요?

그 순간, 그 곳에서
당신은 왜 그 표현을 주저했었나요?

 


편집자의 말/

‘아, 내가 왜 그 때, 그 표현을 하지 못했을까?’
‘무엇이 그 상황에서 내 표현을 스스로 검열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어때요? 당신은 어떤 순간에 하고 싶었던 말이나 행동을 포함한 자신의 의사표현을 주저하면서 얼버무렸거나 옴짝달싹하지도 못하고 얼어있었던 경험들이 있으신가요? 위계, 선정성의 기준, 청소년보호 논리, 영예, 저작권, 불온하다는 지적, 안보논리, 그 외 어떤 이데올로기나 논리들.... 이런 것들이 어떤 순간에 우리의 표현을 가로막거나 우리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들곤 하죠. 울림에서는 ‘표현의 자유’라는 맥락에서 활동가들과 독자들의 이런 경험을 나누고 존엄을 지닌 우리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어떤 가치와 용기가 필요한지, 그것을 위해 우리가 어떤 실천들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울림 독자 여러분들의 글을 기다립니다. (보내실 곳 : hrfilmfestival@empal.com)

 

  세상은 계속 나아질 거라는 희망과는 반대로 점점 믿을 수 없는 혹은 믿고 싶지 않은 뉴스들이 난무하는 요새 그나마 즐겁게 뉴스를 볼 수 있는 건 가끔 인터넷 뉴스에 달리는 사건의 본질을 꿰뚫는 재치 있는 댓글 덕분일 것이다. 다양한 기사에 달린 셀 수 없이 많은 댓글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단지 재미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주장에 의한 공감과 새로운 시각에 대한 깨달음까지 이끌어낸다. 또한 댓글의 존재는 언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정보에 대해 즉각 쉽고 자유롭게 반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인 매개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한 연예인의 성상납 스캔들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그 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포털 사이트 첫 페이지에 기사가 노출되어 있을 때에나 약간의 호기심으로 클릭하곤 했다. 양측의 상반된 입장이 보도되고 점점 사건이 구체화되어 성상납에 관련된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기사가 나왔을 즈음이었다. 여느 날처럼 기사 밑의 댓글을 살피려 스크롤을 내렸을 때 그곳엔 댓글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대신 포털 사이트 회사의 안내문만 적혀있었다. 댓글을 통해 리스트와 관련된 출처가 불분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떠돌아 댓글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문득 앞날에 생길지도 모르는 부작용 때문에 정당하게 댓글을 달 많은 네티즌들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포털사이트의 일방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내문은 사실 네티즌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가정하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표현을 막기 위해 사전검열과도 같은, 그러나 더 쉽고 확실한 댓글 원천봉쇄라는 방법을 택한 포털사이트의 통보였던 것이다. 비교적 최근 다른 연예인과 관련해 비슷한 사례가 몇 번 있었을 땐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런 나의 지적에 어떤 이들은 위에 언급된 예는 특별한 경우였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정한 이유에 의해 인터넷 공간에 주어졌던 자유가 제약될 수 있다면 그 특정한 이유의 정당성과 그에 의한 자유의 제약정도의 척도는 누가 정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포털사이트들이 언제나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할 우리의 권리, 즉 “표현의 자유“를 자신들의 잣대로 막고 제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이제 의심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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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울림 2호] 해외작 소개 - Slaves(An Animated Documentary)

 Slaves (an animated documentaty)

(David Aronowitsch/2008/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애니/15분)

 

 

영화 Slaves_An Animated Documentary 中

  영화 Slaves_An Animated Documentary는 수단 정부의 지원을 받는 민병대에게 납치되어 노예생활을 강요당하다 극적으로 탈출하여 자유의 몸이 된 두 아이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된 짧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다. 인터뷰는 남부수단에서 일어난 20년에 걸친 내전이 끝나기 가까운 2003년에 이루어졌다. 인터뷰 소리는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녹음되었으며 감독은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대화가 시작되기 전 녹음장비 주변의 산란한 잡음들을 그대로 삽입하였다. 3차원 스타일으로 간소화한 컴퓨터 애니메이션은 방식은 아이들이 털어놓은 비극적 경험에 대한 상상의 가능성을 더욱 크게 만들기도 한다. 독특한 영상 기법은 이 영화의 또다른 감상포인트이다.

 알고보면 더 잘보이는 영화

 

  영화 속 두 아이가 태어난 수단은 1956년 영국에 독립하기 전까지 식민지였다. 식민지 시절에 영국이 북부 이슬람계와 남부 기독교·토착신앙 부족을 하나로 통합하여 통치한 것이 분쟁의 씨앗이 됐다. 독립 이후 인구의 70%이상을 차지하는 이슬람계가 줄곧 정권을 잡았다. 결국 1955년 1차 수단 내전이 발생하였으며, 1972년 남쪽 흑인계에게 자치권을 인정하면서 일단락됐지만 분쟁의 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1980년대 기상 변화로 인한 가뭄으로 북부 이슬람계과 남부 비이슬람계의 갈등이 악화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북부 이슬람계의 편만 들자 남부 토착민들은 독립을 주장하며 수단인민해방군(SPLA)을 창설하여 저항한다. 이렇게 1983년 제2차 수단 내전이 발생된다. 1992년 이집트의 정부군 지원, 1998년 우간다의 반군 지원으로 수단 사태는 갈수록 복잡해졌다. 남부 수단은 20세기 후반 가장 길고 잔혹한 전쟁으로 약 190만명이 죽고 400만명 이상이 도피해야 했다. 한편 이러한 상황에서 노예 산업이 성행했다. 고대시대에나 있을 법한 노예제가 성행하는 이유는 바로 돈. 노예 1인당 순이익은 약 1만 달러나 되기 때문이다.

  내전과 노예산업. 이 두 가지가 두 아이를 노예로 만들었다. 학교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리던 두 아이는 스웨덴에 살고 있다고 한다. 더 이상 이들은 노예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이 내전으로 죽지 않았다면 노예로 살고 있거나 노예로 살게 될 것이다. 내전과 노예산업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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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울림 2호] 국내작 소개 - 기타(其他/Guitar) 이야기

 

기타(其他/Guitar) 이야기 (김성균/2009/다큐/46분)

 

  국내 기타 브랜드 콜트(Cort)의 생산직 노동자들은 20여년 동안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과 각종 산업재해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회사를 지켜왔다. 하지만 회사는 더 싼 노동력을 찾기 위해 해외로 공장 이전을 하면서 생산직 노동자들을 모두 정리해고 하고 국내 공장을 폐쇄하였다. 이후 노동자들은 철탑농성으로, 본사 점거농성으로, 노숙농성으로 이어지는 길고 힘겨운 투쟁을 2년 넘게 지속하고 있다. 영화 “기타(其他/Guitar) 이야기”는 이러한 콜트 콜텍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작년 12월 9일부터 14일까지 열린<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위한 콘서트>에 참여한 홍대 인디 뮤지션들이 콜트 콜텍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게 되고 노동자들과 의사소통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감독 인터뷰 

 

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콜트․콜텍이 뭔지 몰랐어요. 클럽 ‘빵’의 이야기를 찍으러 갔다가 친분이 있던 송경동 시인의 권유에 찍게 됐죠. ‘너 콜트 콜텍 얘기 좀 찍어라’ 해서(웃음). 이 분은 노동자들을 위한 뮤지션들의 공연을 문화연대에 제안하신 분이기도 하세요.

 

기타 연주자들에게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인가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예술가도 생산직 노동자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노동자 또는 노동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저도 그분들에게 많이 배웠는데, 노동이라는 의미가 워낙 다양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자신은 노동자라고 생각하는데 사장인 경우도 있고, 연영석씨처럼 자신을 문화노동자로 확고히 하는 분들도 있는 반면, 또 어떤 분들 중에는 문화노동자라는 의미 말고, 자기 처우나 돈을 버는 부분에 대해서 너무 강조를 하면 역으로 안 좋은 것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고요. 사실 자기만족적인 면도 상당 부분 있는 것 같고요. 사실 그 질문이 감독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목소리가 있어서 인디스페이스(매삼화) 상영본에서는 질문하는 장면을 뺐어요.

 

빠진 장면 중 재밌는 장면이 많은듯합니다. 어쩔 수 없이 빼신 장면들이 있나요?


  빠져서 아쉬운 장면들보다는 빼려고 했다가 다시 넣은 게 다행이다 하는 장면이 있어요. 예를 들어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이 절단됐던 타바코 쥬스 권영욱씨 인터뷰가 있죠. 상영회 때 권영욱씨가 보러 와줘서 고마웠어요. 그 친구는 공연도 안했는데, 우연히 다른 사람 인터뷰하러 갔다가 손가락 잘린 것을 노래한 것을 듣고 인터뷰 해 봐야겠다 해서 제안했는데, 민감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인터뷰해줘서 고마웠어요. 뺀 장면 중에선 아쉬운 것이 안동성씨라고, 극장상영본에서는 나온 분이 계신데, 기타를 치시다가 콜트 콜텍 대졸신입사원으로 1년 정도 일을 하신 분이에요. 그 분 얘기를 담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기타를 매개로 생산자와 그 사용자(뮤지션)의 연대가 영화에서 보여지는데,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연대의 가능성, 또는 연대의 방향성, 그리고 이러한 연대에서 더 필요한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공연이라는 것도 좋은 연대인 것 같아요. 음, 사실 촬영 때 연영석씨를 비롯해서 뮤지션들을 기타 공장에 데려가 보려고 했는데, 여건상 힘들어서 못했는데 그런 것도 좀 아쉽고요. 또 이런 생각도 해봤는데, 기타 한 대를 만들어서 직접 뮤지션들에게 치게 하는 것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보면 뮤지션들의 이야기 비중이 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만큼이나 높은데요. 특별한 의도나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시작은, 영화 속에도 나오는 ‘무지개99’라는 밴드의 공연을 촬영하고 있었어요. ‘무지개99’가 "제 기타 콜트에요"하니까, 관객석에서 공장에서 일하실 때 엄청 혼나셨다고 하시면서 “그 기타 버리세요!”하셨던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어요. 마침 콜트 노동자 분들 인터뷰할 때 그 분을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거기서 이야기가 갈라진 거예요.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그 쪽으로 깊지가 못하니까 낚시로 채워 넣은 것도 있어요. 그리고 그 뮤지션들이 재미있게 이야기 하는 부분을 살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재미있게 떠들고 있지만 그 밑에는 이렇게 힘든 일이 있었다는, 서로 상충되는데서 오는 효과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걸 표현하는 것에 있어선 고민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손을 봐야할 부분이에요. 아직 멀었어요.

 

투쟁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고 촬영하고 계신데, 영화에는 의외로 투쟁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데요. 의도하신 건가요?


  투쟁하는 거 너무 많이 찍었잖아요(웃음). 너무 그림이 뻔해질 것 같아서요. 그런 것도 있지만, 투쟁이 모르는 사람들한테 자극이 되려면 번개같이 잠깐 지나가고 빠지는 게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확실히 영화에선 그 부분을 잘 살리진 못한 건 맞아요. 하지만 그 부분을 (강렬하게) 살릴지 말지는 앞으로 좀 더 생각해봐야할 것 같아요. 마치 파란 화면에 말만 나오는 데릭 자만의 '블루'라는 영화가 황당하지만, 저도 그런 식의 충격을 뻔뻔하게 이용해보려는 거죠(웃음).

 

촬영 중 있었던 에피소드 같은 건 없나요?
 

  많죠(웃음). 음, 마이크 얘기 하면 되려나? 빵 시설이 좋지 못하잖아요. 소희씨 때였나? 마이크가 점점 아래로 내려가니까 소희씨도 같이 점점 아래로(웃음). 뭐 그 밖에도 생각해보면 한 두 개겠어요? 뭐 그밖에도, 어떤 분은 인터뷰할 때 정말 한 컷이라도 넣어드리고 싶은데, 분명 그 분이 정말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을 텐데, 너무 정리 안 되게 말씀하셔서(웃음).

 

운동으로서의 영화가 가지는 힘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기타이야기>에 관련지어 홍보효과 자체에는 의심이 없으나 홍보효과 외에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이 있어요. 운동으로서 영화가 이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박종필 감독의 경우처럼(에바다 사건 폭로를 통해 시장 선거 출마를 막은) 영화가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한다고 하는 데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지만, 순기능만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것을 얻어갔으면 좋겠는지요? 감독님께서 기대하는 바, 혹은 염려되시는 지점이 있으신가요?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되기를 바라고요. 뮤지션들이 하는 즐거운 공연과 이야기 뒤에는 그들의 악기를 만들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노동하고 이제는 그런 일자리마저 빼앗긴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배어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해요.


  염려되는 지점이라면 영화를 어디에서 끝내야 할까... 투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영화는 무 자르듯 어느 순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데에 부담은 많이 갖고 있어요.
 

  노동자들의 복직이든, 노동자들만의 새로운 회사를 차리는 것이든(실현 가능성을 떠나서) 현실 적인 대안을 찾아 노동자분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기를 바라고요.

 

작품 완성과 상영 후 바람은...


  힘은 안 되도 최소한의 위안이라도 드렸으면 좋겠어요. 사실 힘도 되어드리면 좋겠어요(웃음).

 

인권영화제 거리상영에 대한 지지의 메시지


  그리고 거리상영은 청계광장을 버스로 싸버릴까 걱정이지만, 우리 한번 잘 개겨봅시다!


인터뷰:성기,수진,화신 /영상 촬영 및 편집: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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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울림 2호] 기획 &quot;인권영화제에 보내는 지지메시지&quot;

 

  인권영화제가 어느덧 13회째를 맞이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 영화제도 상영관을 구하지 못해 야외(청계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라 한다. '청계광장'이 촛불시위와 용산참사를 거치면서 이명박 정권의 반인권적 행태들을 규탄하는 시민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둔해진 인권감수성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해온 인권영화제의 개최가 더욱 의미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십 수 년을 이어 성장해온 영화제가 상영장소조차 구하지 못하는 상황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역주행의 증거이기에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위탁 사업으로 운영되는 몇몇 상영관은 정부 눈치를 살피며 전에 없이 영진위의 '상영등급분류 면제추천'을 받아오지 않으면 대관해줄 수 없다고 하고, 인권영화제 주최 측은 면제추천 또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거부하였다는 것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정이다.


  필자에게는 1996년 제1회 인권영화제가 열린 그 해 가을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 해 10월 4일, 영화법상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가 국가기관에 의한 '검열'로서 금지된 것임을 헌법재판소가 확인해주었고, 영화검열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쓰고 있던 필자는 그 결정이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에 보태진 디딤돌임을 의심치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가위질’은 없어졌으니, 적어도 영화제작자와 감독이 구속되고 영화필름을 탈취당하는 현대판 ‘분서갱유’는 없어졌으니 표현의 자유는 확대된 것이 아닌가. 영진위의 제한상영가 등급부여와 등급분류 보류제도 또한 검열의 효과를 가져 금지된다고 선언된 마당에 적어도 법제도상으로는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되고 있는 게 아닌가.


  불행히도, 아직은,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심화가 경제적 양극화로, 사회적 보수화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전근대적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 권력을 전횡하는 조건에서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비정규노동자와 성적 소수자와 장애인과 청소년과 여성의 인권은 점점 더 불안정해진다. 언론과 창작과 학문의 영역에서조차 한줌의 기득권만을 대변하는 자신들의 코드를 강요하는 권력집단이 존재하는 한, 표현의 자유는 13년 전 그 때와 다를 바가 없다.


  인권영화제가 ‘인권의 홀씨’ 하나를 사회에 날리는 역할을 하기 위해 그 지난했던 투쟁의 역사를 다시 쓰라 말하기가 미안하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반걸음이라도 전진하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면, 이제는 다 같이 인권영화제의 고집스러운 싸움에 동참하자. 지금이야말로 원칙을 고수하려는 의지가 필요한 때이다.

권혜령(헌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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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울림 1호] 해외작 소개 - Journalists

 

  해외작 소개 │ Journalists

 

 

   Journalists (Aleh Dashkevich / 벨라루스 / 2008 / 52분)

Journalists

  벨라루스는 구 소련의 붕괴 이후, 독립한 국가이다. 하지만 그들의 민주주의는 1994년 당선된 친 러시아계 알렉산더 루카센코(Alexander Lukashenko) 대통령의 독재로 인해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다. 루카센코 대통령은 그의 독재에 대항하고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민중과 그 저항의 움직임을 알리려는 저널리스트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한다.
  이 영화는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들이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인 발걸음을 담았다.

 


 

알고보면 더 잘보이는 영화 !

  ( journalists의 배경, 벨라루스를 둘러싼 국제정치 현실)

 

영화 Journalists 中   벨라루스의 언론 및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인권현실은 매우 엄혹합니다.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이나 NGO의 활동가들이 투옥되는가 하면 반정부적 내용을 담은 서적을 읽었다는 혐의로 체포되기도 합니다. 반정부 집회를 폭력적으로 해산시키고 독립적인 언론 매체를 정치적 재정적으로 고사시키고 있습니다. 미국이 붙인 ‘유럽 최후의 독재국가’라는 별명이 틀린 말은 아닌 듯 합니다.
  하지만,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까지 고려한 좀더 넓은 시야로 바라본다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아 보입니다. 벨라루스의 반인권적인 상황에 대해 가장 비판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는 나라는 바로 미국입니다. 유럽연합도 겉으로는 벨라루스의 정치현실을 비난하고 있지만 유럽 차원의 압력을 행사하는데는 소극적입니다. 유럽연합의 많은 회원국들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벨라루스와 거래를 하며 비용을 절감하거나 돈을 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벨라루스가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는 시사에 대해 러시아가 침묵하고 있는 것 또한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 방어(MD)에 대해 러시아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경찰국가를 자임하며 지구적 패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미국에게는 벨라루스가 자리잡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나 중국, 러시아 및 여타의 반미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심에 놓고 볼 때 친러시아 성향의 벨라루스가 거슬리는 존재가 아닐 수 없겠죠. 이런 이유로 미국은 벨라루스의 민주화와 인권 향상을 위한 조치라는 명분을 내세워, 벨라루스 내 민주화 운동단체들을 지원하고 벨라루스의 중요 국영기업인 벨네프테힘의 자금동결을 통한 경제제재를 가하는 등 루카센코 정권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압박이 벨라루스 민중들의 경제적 권리에 어떤 영향들을 미칠지에 대한 일언의 언급도 없이 말이죠. 게다가 미국은 자국의 이해가 걸려있지 않은 국제문제에 대해선 눈길한번 주지 않는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밀어와서 비난을 받기도 했었잖아요. 허울만 그럴듯한 국제현실 정치의 한 단면입니다.
  영화 journalists 中물론, ‘journalists’는 영화 그 자체만으로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갈망하는 벨라루스 저널리스트들의 헌신적인 삶과 열정을 전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국제관계까지 고려해야만 정말로 그들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기여할수 있을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벨라루스의 인권실현과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수많은 양심들과 연대하면서도 인권이나 국익으로 포장된 허울 좋은 주변 국가들의 개입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갖는 것. 어렵고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지만, 강대국의 정략적 이해와 야욕에 대한 단호한 거부가 전제되지 않았을 때 또다르게 치르게 될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대가는 고스란히 벨라루스의 민중들에게 몫으로 남겨질지 모르는 일입니다.                                                                           

 

(성진)

 


 

 

감독인터뷰 : Aleh Dashkevich

 

  인권영화제 울림은 13회 상영예정작 중 하나인 'journalists'의 Aleh Dashkevich 감독을 이메일로 인터뷰하였습니다.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독재자 루카센코 대통령과 그에 저항하는 벨라루스 언론인들을 담은 작품 'journalists'를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리 만나보세요.

 

Q: 당신에 대한 짧은 소개를 부탁한다. 혹시 당신도 영화에 등장하는 저널리스트들처럼 전직 기자나 카메라맨으로 일하다가 루카센코 대통령의 언론탄압 이후로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인가?

 

A: 나는 1990년대 초부터 벨라루스 국영 텔레비전의 스포츠부에서 텔레비전 일을 시작했다. 이후 독립 텔레비전 채널이 나타나면서부터 나는 “MM-4"라는 독립방송국에서 방송편집인으로 일했고 또한 동시에 ”Internews Network"의 몇몇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곳의 독립텔레비전방송국들이 해산 압력을 받으면서, 나는 다큐멘터리영화 일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0여년전 내가 일하던 텔레비전 방송국이 문을 닫았다. 몇 년 뒤에 독립 스튜디오의 장비들이 모두 몰수당했다. 독립텔레비전방송국의 저널리스트들이 영상 장비를 잃고 법정 심문에 호출 당했다. 이런 상황들은 나와 동료들의 작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Q: 이 영화가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영화제를 비롯해서 해외 영화제에서 종종 상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 벨라루스 현지에서도 비밀스럽게든 공개적이든 이 작품을 상영한 적이 있는가? 만약 그랬다면 그 후 정부의 반응은?

 

A: 벨라루스 현지 상영은 여전히 계획 중이다. 보통 그런 상영은 여러 재단 사무실이나 외국 대사관의 반지하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현재 나의 다큐멘터리는 벨라루스 언론인 연합(BAJ Belarusian Association of Journalists)의 웹사이트 뿐만 아니라 몇몇 독립 정기간행물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Q:. 아쉽게도 한국인들은 벨라루스의 상황에 대해 잘 모른다. 한국외교통상부에서 낸 자료집에 따르면 벨라루스 국민들의 대부분이 현 대통령을 지지하고, 대통령 선거에서도 많은 표를 주었다고 나와 있다. 이것이 사실인가?

 

A: 지지도는 100%이상도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비정부기구조차 개표 시스템을 감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관리하려는 접근은 잔인하게 짓밟혔다.

 

Q: 다시 언론탄압 이야기로 돌아가서, 벨라루스의 현재 상황이 궁금하다. 대표적인 사건이 있었다면 그에 대해서, 혹은 영화 속 저널리스트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있는지 말해달라.

 

A: 벨라루스의 언론의 자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립미디어 웹사이트를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거기에는 거의 항상 독립 미디어에 대한 탄압 소식이 담겨 있다. 객관적인 예를 들면, 정부 당국이 전적으로 관리하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는 반대 의견이 없다. 단지 자기희생적인 사람들이 현재 독립 언론에서 일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유 없는 언론에서 일하는 것은 재미도 없을 뿐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자유 원칙은 그들에게 있어 떠날 수 없는 마지막 보루와도 같다.

 

Q: 러시아와의 통합 가능성이 한국 뉴스에 보도되었다. 벨라루스 사람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내가 보기에는 구소련의 붕괴 이후 대부분의 나의 동포들이 독립된 국가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들은 합병에 대한 모든 뉴스를, 그저 벨라루스 대통령이 정권에 대한 지원을 얻기 위해 힘쓰는 가운데 나타난, 러시아의 제국적인 착취의 또 다른 시도라고 생각한다.

 

Q: 국제사회가 루카센코 대통령의 인권 탄압에 대해 경고하는 듯 보인다. 특히 미국이 ‘유럽의 마지막 독재국가’라 칭하고 벨라루스민주화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북한의 경우와 같이 경제제제를 가하는 등 인권탄압을 이슈화해서 반미국가를 압박하려는 것 같다. 혹시 이에 대해 의견이 있는가?

 

A: 모든 나라는 그들 고유의 이익이 있고, 가끔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유지하곤 한다. 그렇지만 나는 미국의 국익을 위한 싸움은 인권이나 언론의 자유와 같은 것에서 중국, 러시아, 이란보다는 높은 수준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중요하다.

 

Q: 남한은 이제 어느 정도 언론의 자유를 성취했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 들어, 새로운 보수적인 대통령 이후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국 PD들이 파면당하고, 친정부적 신문이 방송까지 겸업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률이 만들어질 위기에 있다. 이 때문에 전국의 저널리스트들(방송노조)이 파업을 했는데, 이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가?

 

A: 당신도 이미 알듯이 나는 앞에서 언론 종사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항상 자신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더 큰 권력이 있을수록 덜 자유롭기 때문이다.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는 위험한 착각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

 

Q: 마지막으로, 현재 작업 중인 작품이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A: 인생에 걸쳐 나는 건강과 능력 그리고 전문성이 허락하는 한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다. 자유롭지 못한 나라에는 인권 문제가 없는 나라보다 훨씬 많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주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한국의 독립영화감독들이 우리 앞에 놓인 세계의 또 다른 주제를 찾기를 바란다.                                                                         

                                                                                      (이메일 인터뷰 작성 및 번역 : 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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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울림 1호] 기획 &quot;인권영화제에 보내는 지지메시지&quot;

인권영화제에 보내는 지지 메시지

 

인권의 촛불을 영상으로 환히 비춰주길

 

  인권영화제가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절대 문제는 아니다. 인권영화제가 거리로 나오는 게 전혀 잘못된 것도 아니다. ‘인권’의 타이틀을 내세우고, 영화관에 박혀 저희들끼리만 보고 끝낼 영화제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영화관을 과감하게 박차고 나와, 인권이 억압받는 현실의 거리/거리의 현실에서 모두 함께 보고 감동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感動! 감각의 움직임, 센스로부터 시작되는 운동. 검열로부터의 자유, 자유로운 표현을 위해, 인권영화제가 먼저 도망쳐야 한다. 벽을 넘고 해방의 광장에서, 대중과 더불어 진행되는 것보다 더 멋진 인권영화의 파티를 어찌 상상할 수 있겠나? 추방하는 권력에 대한 증오, 검열하는 권력에 대한 분노는 그 정도로 충분하다. 이제는 활짝 열린 공간에서 대중들과 함께 즐감하고, 보고 놀 일만 남았다. 이렇게 박차고 거리로 뛰쳐나옴으로써, 영화의 무수한 이미지들을 광장의 시공간에 자유롭게 펼쳐놓음으로써, 억압된 인권을 상기하고 구속된 인권을 해방시켜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현실의 안팎을 가리지 않는 능동적 인권영화제의 운동론이다. ‘표현의 자유’를 구호로 제창하는 인권영화제가 아니라, 자유로운 표현의 무대를 몸으로 실행하는 인권영화제를 감동으로 기대한다. 작년에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올해는 바로 그 청계광장에서다. 어느 영화관보다 더 멋진 곳에서 촛불의 인권, 인권의 촛불을 영상으로 환히 비춰주길 열렬히 기대한다. 인권영화제, 닫힌 광장을 표현의 무기로 활짝 열어 제껴라!!

전규찬(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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