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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절 - 메이데이의 유래와 의의

국제노동절 - 메이데이의 유래와 의의


매년 5월 1일 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국제노동절" (메이데이) 이다.
세계 노동절의 유래는 1886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노동운동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는 주로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의 개선이었지만,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가 일반적인 노동시간이었고 14시간, 16시간, 심지어 18시간 등 초장시간 노동도 드물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은 자본과 정부에 맞선 노동자 투쟁의 핵심적 요구였다.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투쟁은 1820-30년대 미국에서 10시간 노동제를 위한 투쟁으로 시작되어, 1837년에는 연방정부 노동자에 대해 10시간 노동제가 법제화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성과가 쟁취되자, 노동자들 사이에서 8시간 노동제에 대한 요구가 활성화되었다. 1856년 호주의 건설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 8시간여가, 8시간 휴식"이란 슬로건으로 승리를 쟁취하면서,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한 운동은 확산되었다.


5월 1일 미국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위해 총파업에 돌입했다. 공장의 기계소리, 망치소리가 멈추고, 공장굴뚝에서 솟아오르던 연기도 보이지 않고 상가도 문을 닫았으며 차량들은 운행을 멈추었다. 그 날은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으면 세계가 멈춘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날이었으며 노동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멈추고 바꿀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1884년 미국의 노동조합연맹 (Federation of Organized Trade and Labour Unions, 이후 American Federation of Labor[AFL]로 개명) 은 4차 총회에서 1886년 5월1일부로 미국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8시간 노동제가 정착되도록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1886년 5월1일, 미국의 노동자들은 정부와 자본이 8시간 노동제를 인정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총파업을 조직하였다. 전국적으로 35만 명의 노동자들이 직접 총파업에 참여하였고, 수십 만 명은 행진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경찰은 파업 농성중인 어린 소녀를 포함한 6명의 노동자를 발포 살해했다. 이 사건에 대한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적으로 경찰의 만행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였고, 다음날부터 전국적으로 시위와 행진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5월4일 무정부주의 조직인 국제노동자협회(IWPA: International Working People"s Association) 시카고 지부의 무정부주의자들이 경찰의 만행에 항의하는 집회를 헤이마켓 광장에서 조직했고, 여기에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참여하였다. 저녁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마지막 연사의 연설이 끝날 즈음에는 집회에는 200여 명만이 남아 있었다.


이 때 대기 중이던 180명의 무장경찰이 집회대오를 향해 접근하면서 노동자들의 해산을 강요하였다. 그 순간 경찰 대오 안에서 폭탄이 폭발하였고 경찰 7명이 즉사했다. 이에 흥분한 경찰이 비무장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를 시작했고, 오늘날까지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노동자들의 숫자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 당시 구속 또는 사형된 노동운동가들이 모두 무죄였던 것이 증명됨으로서 그들에 대한 유죄판결은 조작된 허위였던 것이 판명되었다.


1889년 국제 노동운동 및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파리에서 열린 제2 인터내셔널 창립총회에서 매년 5월 1일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고 시카고에서 희생된 동료들을 추모하기 위한 전 세계적인 노동자 항의집회를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이것이 국제노동절의 유래로 남아있다.


우리나라도 일제치하인 1923년 조선노동총연맹 주도로 첫 노동절 기념행사를 연 이래 5월1일을 노동절로 삼아 기념하고 일제와 싸우며 당면과제를 위해 투쟁해왔고, 해방직후인 1946년엔 동대문운동장에서 20만 노동자가 참여한 가운데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주최로 기념식을 개최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조직폭력배들을 동원해 전평 을 깬 뒤 한국노총의 전신인 대한노총을 창립하고는 57년부터는 노동절을 대한노총 창립일인 3월10일로 변경하였다. 날짜를 빼앗긴 노동절은 5.16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그 이름까지 "근로자의 날"로 바꿔버려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1963년 4월 17일 공포, 법률 제1326호) 날짜와 이름을 모두 빼앗긴 노동절이 되고 말았다.


독재정권이 이름과 날짜를 빼앗은 이유는 ▲노동자의 단결을 과시하는 날, ▲노동자들의 당면 과제 해결을 위해 투쟁하고 결의를 다지는 날, 그리고 ▲노동자 국제연대의 날이라는 노동운동 정신을 빼앗고, "정권의 하수인 어용노총 생일날"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일만하는 근로자"로 살 것을 다짐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989년 100주년 세계노동절을 맞아 경찰의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연세대 에 모여 전야제를 연 후 강력한 집회 시위를 벌이며 40여 년 만에 진정한 노동절을 부활시켰으며, 마침내 "문민정부"를 내세웠던 김영삼 정권은 5 월 1 일을 "근로자의 날" 로 공식 선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뒤로 지금까지 10 년간, 김영삼-김대중-노태우, 그리고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아직까지 "노동절" 이라는 이름은 돌려주지 않고 "근로자의 날" 이라는 명칭을 고수하고 있는것에서 자본의 하수인인 정권이 진정으로 의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수 있다.


2005 년 5월 1 일은 제 115 주년 째를 맞이하는 메이데이다. 메이데이의 기원에서부터 그랬듯이, 5월 1일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저항의 날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체제의 온갖 불합리와 불의 ― 가난, 기아, 환경 파괴, 제국주의적 침략 - 등을 뜻하기 때문이며, 이는 기업의 사유화나 비정규직 증가 등을 통해 고용불안과 노동조건의 열악성을 강화하는 등, 노동자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가장 강력하며 근본적인 무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문제는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다. 우리 사회의 차별과 양극화의 중심에 비정규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수많은 노동자·민중을 죽음으로 내몬 신자유주의 정책을 밀어붙여 왔으며, 정규직 노동자들을 노동귀족으로 비하하며 노동계급간의 갈등의 골을 깊게하는 한편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폭력 탄압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특히 4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예정으로 되어있는 ‘비정규직보호법안’ 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겨냥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확대할 것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영원히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강제함으로서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반면 모든 노동자 민중의 삶의 질을 저하시킬 것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정규직 보호법안에 대한 올바른 지적과 권고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 과 노동부는 4월 국회 회기내에 기만적인 비정규직보호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기어코 국회에서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둘러싼 쟁점이 끝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통과되지 않는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나아지거나 안심할 수 있는 것 도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 노동자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 나아가서 전체 민중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따라서 연대에 기초한 강력한 투쟁만이 돌파구가 진정한 해법이 될 수 있다. 메이데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과 연대의 정신을 다지는 것이며, 이것을 기회삼아 이후의 싸움에 있어서도 더욱 강력한 투쟁을 조직하고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115 주년 메이데이 행사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고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 투쟁에 함께하자.


참고자료 : 비정규직 보호법안 5대 쟁점 (클릭)


참고자료 : 비정규직 10문 10답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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