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너머



슬픈 장난감

                            --- 白 石

1.
숨을 쉬면은
가슴속에 울리는 소리가 있어
늦가을 바람보다 더 적막한 그 소리

어떻게 되든 될 대로 돼버려라 하는 것 같은
요즈음의 내 마음
남 몰래 두렵구나

누군가
힘껏 야단이라도 쳐 주었으면
내 마음 나도 몰라 이 무슨 마음일까

새로운 내일 반드시 오리라고 굳게 믿으며
장담하던 나의 말
거짓은 없었는데

2.
빠사삭 빠삭
양초의 노란 불빛 타들어 가듯
까만 밤 깊어 가는 섣달 그믐날이여

대문 앞에서 공 치는 소리 난다
웃음소리도 즐거웠던 지난 해 설날 돌아온 듯이

왠지 모르게
금년에는 좋은 일 많이 있을 듯
설날 새 아침 맑고 바람 한 점 없구나

정월 초나흘 어김없이 올해도
그 사람한테
일 년에 한 번 있는 엽서 또 받겠구나

사람들 모두
똑같은 방향으로 가고들 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만 있는 나는

지나가 버린 한 해의 피곤함이 터진 것일까
설날이라 하는데
끄덕끄덕 졸립다

3.
머리끝까지 이불을 둘러 쓰고
발을 오므리고
혀를 날름해 본다 보는 이도 없는데

기다려 보고 또 기다려 보아도
온다던 사람 오지 않던 날이여
책상만 옮겨졌네

웃으려 해도 웃을 수가 없구나
그렇게 오래 찾아 헤멘 나이프
내 손에 쥐고 있어


4.
말 걸어봐도 아무 대답 없기에
가만히 보니
숨죽여 울고 있네 옆 침대 누운 환자

밤 늦은 시각 어느 병실에서의 웅성거림은
사람 죽었으리라
나도 몰래 긴장해

병실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사람들마다
기운찬 걸음걸이 멍하니 바라보네

새롭게 만든 샐러드의 빛깔에
기분 좋아져
젓가락 다시 한번 들어는 보았지만

고향 땅 떠나 세어 보니 다섯 해
병까지 얻어
그리운 뻐꾹 소리 꿈 속에 듣는구나

5.
어느 날 문득 아픔일랑 잊고서
소 우는 소리 음메 흉내내 본다
집사람이 없을 때

불쌍하여라 늙은 나의 아버지
오늘도 내내 신문 읽다 지쳐서
개미와 놀고 계셔

병 낫지 않고 오늘도 아니 죽고
날이 갈수록 마음자락 험해진
더운 칠팔월이여

가을 가까워
빠알간 전구 다마 따스한 온기
손에 닿는 감촉이 어머니만 같아라

- 이시카와 타쿠보쿠 시선,민음사 세계시인선

 

본명이 백기형이었던 민족시인 白石이 그의 이름을 딴 것은

바로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한자이름인 石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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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4 04:11 2006/05/14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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