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괴산군 옛집기행(2)

  • 등록일
    2005/02/25 07:54
  • 수정일
    2005/02/25 07:54

칠성을 뒤로 하고 쌍곡 계곡을 거쳐

화양동으로 해서 청천으로 나아갔다.

 

원래는 중간에 화양계곡에서

만동묘며 암서재며 여하튼 우암 송시열 관련 유적을 볼까도 했는데

내가 워낙 송시열을 좋아하지 않다보니

입장료 핑계 시간 핑계대며 그냥 지나쳤다.

 

그리곤 곧바로 청전으로 갔다.

 


청천은 매우 작은 면소재지다.

 

소재지를 통과하는데 차로 2분도 채 안걸리는

그야말로 지천에 널려있는 그 작디작은 마을이다.

속리산 화양계곡 초입에 위치해 있어서

그럭저럭 먹고 사는데는 무리없어 보이지만

살기 힘든 사람들의 속내야 나같은 떠돌이가 알 수 없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이 곳에서도

참 힘들겠구나 하는 전국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균적인 삶이

언듯 보인 것은

청천 시장에서 벌어지는 이 공사를 보면서다.

 

이젠 전국 어느 시장을 가도 다 이 모양으로 바뀔 모양이다.

아마 재래시장이 망해가는 것을 막기위한 마지막 몸부림처럼

다들 시장마다 이런 시설물로 다 바꾸는 모양이다.


청천에도 옛날집이 있다.

 

여기서 잠깐 퀴즈.....??

 

위 사진에서 문화재 이름은 ?????

헤헤헤 충북 양로원이다.

 

그럭저럭 때려 맞춰도 갈색 이정표면 문화재 아니겠나 싶다.

이 이정표를 보고 골목으로 쭉 따라 들어가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건물이 나온다

양로원 건물이냐구 ?? 글쎄...그것이.....헤헤헤

 

 

이 골목 정면으로 보이는 기와지붕위로 태극기가 휘날리는 건물이 중요민속자료이다.

 

 

 

이 건물은 조선말 충청가사를 지낸 송시현의 별당이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인 1944년 충북양로원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문화재 이름이 충북양로원이 되었단다.

지금도 이 건물은 옆의 새로 지은 충북양로원 건물의 마당에 위치해 있다.

 

난 가끔 이런 것을 보면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대개의 문화재 특히

가옥의 경우는 현 소유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동방오현 중 한 명이라는 일두 정여창 고택도

문화재 명은 정경호 가옥이란다.

이유는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소유자 이름이 정경호씨라서 그런단다.

이 얼마나 웃긴 말이냐

누구 말대로 가옥 소유주가 청주시면 문화재 명도 청주시가 되는 거란다.

중요민속자료 청주시....우하하하...웃기지 않나 ?

 

송시현이라는 사람이 지었으면 차라리 송시현 가옥이라고 하지

충북양로원이라고 하니 누가 한옥집인 줄 알고 찾아 오겠는가 ?

참 한심한 공무원 편의주의다.

 

여하튼 각설하고

이 건물은 사랑채 안채가 옆으로 병렬식으로 지어진 것 같다.

지은지 100여년 정도 되었고

최근까지 사람이 살아서 그런지 관리는 매우 잘된 편이다.

건물은 민도리집에 ㄷ자형 집인데

골추녀를 쓰지 않고 서까래를 그냥 겹친 방식으로 지었는데

충청도에서는 거의 보지 못한

오히려 강원도 강릉이나 고성 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의 집이다.

솔직히 골추녀를 쓰지 않은 곳은 그곳 이외에

거의 본적이 없기도 하다.



 

 

이집은 사랑채와 안채가 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어서

한옥이 가지는 중첩의 이미지 즉, 아늑하고 정돈된 느낌보다

왠지 개별적이고 횡한 느낌이 더 많이 드는 곳이다.

뭐랄까 .......좀 사람의 정취가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 ?

 



 


 

그래도 좋았던 것은

안채 마당에 늘어진 이 장독대였다.

아마도 양로원에 거주하시는 어르신네들을 위해 사용되는

장독일 것 같은데 이렇게 쳐다보니 나름대로 정겹기는 했다.

 

이 건물들은 건물 개개별로는 잘 지어진 건물이다.

 

 

특히 위 사진처럼

추녀 서까래의 곡선이

최근 청원군이나 괴산군에서 본 것 중에서는 제일이지 않나 싶게

운취가 있었다.

 

서둘러서 충북양로원을 구경하고

(?? 거봐...도대채 문화재명이 양로원이니 글을 써도 뭔가 이상하지 않나....에구구)

청주로 오려다가 우연찮게 하나 더 보았다.

급하게 사진만 찍고 제대로 보진 않았는데

그건 우암송시열의 묘소와 신도비 그리고 최근에 새로 지은 듯한 한옥집이었다.

 

 

저 길로 올라가면 묘소가 나온단다.

뭐 송시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는

굳이올라갈 이유를 못찾아 이렇게 묘소 입구에서 사진한장 찍는 것으로 끝냈다.

 

 

송시열 신도비가 있는 건물이다.

기록에 의하면

송시열의 신도비는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때면

눈물인가 핏물인가 뭐 여하튼 그런 것을 흘린단다.

아마도 송시열의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신도비에 남아 있어서 그런 거란다.

난 웃기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가 무슨......?....헤헤헤

 

난 솔직히 송시열은 성리학자로서나 조선의 정치가로서나

전혀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단지 처세에 능하고 편협하고 자기당파의 이익이외에 거들떠도 보지 않은

그야말로 한국사 최고의 불한당이라 생각한다.

 

오직 송나라 주희만을 유일무이한 스승으로 받든 철저한 사대주의자고

주자와 다르게 성리학 사상을 전개했다하여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죽이고...

 

특히 윤휴가 죽으면서

나와 사상이 다르면 관리로 쓰지 않으면 될 일이지 죽이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에도

눈하나 깜짝안하고 죽인 그가

관리도 아니면서 병자호란중에 싸우다가 포로로 잡힌 사람보고

관리이면서도 자신은 남한산성 임금 품안에서 목숨을 부지하며 싸워보지도 않은 사람이

포로로 잡혔던 윤선거를 비겁자겸 군자가 아닌 졸장부라 욕하던 사람이

무슨 죽어서까지 국가를 걱정했겠는가

아마도

죽어서까지 자신의 영광을 위해

거짓 눈물을 흘리는 듯하여 더 짜증이 났다.

 

여하튼 괴산군 청전면은 그야말로 송시열의 고장이다.

송시열관련 유적지가 있고

묘소가 있고

신도비가 있고........

 

그런 송시열을 뒤로하며

담배를 입에물고 추운 옷깃을 여미며 부리나케 청주로 향했다.

어두워지기전에 돌아올 요량으로.........헤헤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