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난 변했다.
많이 달라졌다.
자율적인 다중과 변혁을 무매개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을 경계하게 되었고, 역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도식적으로 가르면, 난 구좌파스러워지고 있나보다. 뭐, 80년대 분위기.. 이런 표현도 했던가?
내가 변한 부분은, 그렇게 80년대의 운동과 신세대 운동을 가르는 것이 중요하지 않거나, 실제로 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세상은, 대중은 끊임없이 변하는데 활동하는 사람들은 옛날 방식(여기에는 구리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는 지적에도 동의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내가 변한 건, 애초에 자율주의적 경향에 흠취했던 이유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적을 떠올리며, 동학농민군을 떠올리며 역사 앞에서의 인간을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가졌던 그 마음이 역사를 보다 구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에 따라 현실의 과제를 다르게 설정하도록 이끌고 있다. 그래서 그 때나 지금이나, 난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 때도 그랬다. 사실 난 그리 자유로운 인간도 못되고, 매우 목적의식적인 인간일 뿐이다. 이곳이 로도스여야 한다는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 목적의식적인 난,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것이 애초에 목적의식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의식의 영역에 남아있는 내 모습을 모두 즉자적으로 해방된 인간으로 바꿔놓았다.(융식으로 말하면 제2인격이 제1인격을 그렇게 고쳐놓는다) 의식 영역에 있는 내 이미지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을만큼, 난 목적의식적이다. 그 땐 그게 길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게 필요했고, 그래서 했다. 오히려 지금 보여지는 모습들은, 나에게 편한 모습이다. 내가 별로 노력할 필요 없는 모습. 그런데, 지금은 이게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하고 있다. 모르겠다. 본래 내 기질이 어떤지. 지금도, 필요한 것에 맞춰 이게 본래 내 모습이었다고 내 의식속에서 재구조화시켜놓았는지도 모른다. 변함없는 건, 목적도 기원도 없는 과정이라는 인식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이건 본래 모습이어야 한다.(그 때도 제1인격은 그것을 본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론 씁쓸하기도 한데, 난 그런 인간이다.
/이렇게 나를 둘로 나눠 바라보자면, 결국 변하지 않는 건 두번째 인격인데, 내 삶의 굵직한 선을 긋는 것은 두번째 인격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