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공고 뒷편에 정체모를 건물이 하나 있었다.
주변을 산책하다 몇 달 전 발견했는데,
으리으리한 건물, 화려한 처마와 단청,
딱 봐도 뭔가 종교시설 같았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려니까, 그 날 무슨 행사 중이었는지
어떤 사람이 나와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멀리서 둘러보기만 했다.
오늘, 주변을 산책하다 그 근처를 다시 지나게 됐는데,
건물 주변을 서성거리니까 한 분이 나와서 안에를 둘러보겠느냐고 묻는다.
잡혀가는 거 아냐라는 생각에 약간 겁이 났지만,
호기심이 더 커서 둘러보겠다고 했다.
안에 미륵부처를 모셔놨다고 소개하면서,
다른 절들과 달리 천지신명이 깃들어 있는 곳이라 그랬다.
다른 절에는 천지신명이 없어서, 경박해졌다고.
요즘 종교는 복을 달라고 비는데, 그게 아니라 스스로 복을 지어야 한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댓가가 필요하다,
공덕을 쌓는 데에는 물질적인 것 만이 아니라 노력으로도 가능하다,
조상에게 공덕을 쌓는다는 뜻으로 건물을 가꾸고, 음식도 준비하고 그런다,
등등의 이야기.
깊이 이야기 나눈 게 아니라, 단편적인 소개들이어서 이것만 가지고 뭐라 평가하긴 어려운데,
어디에 가져다 붙여도 통용될만한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자력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이계(異界)의 존재를 계속 언급한다.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여기 오게 된 건 공덕을 많이 쌓아서이다,
쉽게 오기 어려운 곳이다,
천지신명이 계신 곳이기 때문에 마음이 혼탁하거나 신기가 있으면 안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등등의 이야기도 나왔다.
차 한잔 마시고 갈거냐고 묻는데,
차까지 마시면 정말 빠져나가기 어려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양했다. ㅋ
돌아와서 찾아보니, 대순진리회에서 갈라져나온 대진성주회 계열이다.
아주 한적하고 으슥한 곳에 건물이 으리으리하고, 조경도 반듯반듯한데,
간판도 하나 없고, 불특정다수와의 접촉을 그다지 반기지 않을 분위기.
천연색, 차안의 것이 아닌 색 - 느낌이 썩 좋지 않다. 뜬금없고, 섬찟하기도 하다.
큰 귀신과 무당이 사는 느낌이랄까.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는 무리라는 게 단번에 느껴진다.
어쩌다 보니 길거리에서 포교를 당한 게 아니라,
제 발로 본진을 찾아간 셈인데.....ㅋ
http://daejinsj.org/sogae.html?id=dojang2
덧,
어떤 대순진리회 사이트를 훑어보니,
이거 완전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도배되어 있다.
( http://www.dsjr.org/kor/dskys/dskys07-02.php )
상제의 큰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근대화가 필요했고, 그래서 일본이 들어와야 했고,
그래서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게 했고,
국내에서는 진보회를 탄압해 일진회로 흡수시켰고, 일진회가 일본을 끌어들였고, 등등.
민중 봉기가 무산되도록 상제가 악천후를 만들었대나......
참... 지랄도 쌍쌍이다.
대순진리회가 증산교(강증산) 계열에서 갈라진걸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증산교 계열은 다 이런 식의 역사인식인가?
민족종교라고들 해서 반대일 줄 알았더니.. 음..
덧2,
지금은 기억에서 거의 희미해졌는데,
몇 해전, 갑오농민전쟁 당시 동학조직이 그리 단일하지 않았고,
갑오농민전쟁의 패배 이후 지속적으로 활동한 동학 조직들이 여럿 있었다는 글을 읽었다.
제주 이재수의 난에도 그 조직들의 영향이 있었다고 그랬는데, 조직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다.
(찾아보니, 영학당, 남학. 영학당은 1888년, 1889년에도 봉기를 일으키려다 실패.)
남학이 제주까지 세력이 있었고 이재수의 난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어느정도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고증이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창조가 있는 게 아니라,
맥이 이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에 탄식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