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5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 부터 생각난다.

혼자 타는 기구이고, 누워서 타는 건데,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고, 위에 손잡이를 잡고 매달려서 레일을 죽 내려간다.

아찔아찔 레일을 내려가면서 신이 났다.

그러다 아래에 아는 사람 얼굴과 마주친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인사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손잡이를 놓고 뛰어내린다. 땅에 발을 딛으니, 어지러워서 빙글빙글, 자세를 못잡다가, 바로 서서 멋쩍게 인사한다. 꿈 속에 등장한 이는 거의 친분이 없는, 대학 같이 졸업한 사람인데, 여자친구와 같이 걷고 있었다.

 

레일이 있는 곳은 뭔가 유원지? 그런 곳인데.. 상황으로 보면 학교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한 쪽에 격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고, 경찰들이 넓게 포위하고서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다. 이걸 본 건 아닌데, 그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아까 만난 사람과 기타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여러 사람이 함께 걷는다. 계단을 올라가면 두짝 유리 여닫이 문이 있다. 그 문 너머 공간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거다. 우리가 계단을 올라가니, 문을 지키고 섰던 전경? 아무튼 두사람이 위협한다. 그 중 한 명-어제 돈바꾸러 간 우체국 경비였다 -0- -이 자루가 긴 도끼를 들고 유리문을 내리친다. 유리가 깨지면 위험할 것 같다. 사람들이 뒤로 한발짝 물러서는데, 난 맨 앞에 태평하게 서있다. 유리문이 통째로 내쪽으로 넘어지고 난 가볍게 받아낸다. 여유있게 능글거리면서, 가방을 놓고와서 가방 가지러 간다고, 길 터달라고 말한다. 아까 놀이기구에 놓고 왔다고. 경찰?이 안된다며 막아서고, 내가 계속 우기니까, 그럼 자기가 가져다 주겠다며 가지러 간다. 이제 지키고 섰던 사람은 한 명 남았고, 바깥이 어수선한 탓에 우리에게 집중을 못한다. 그 사이 난 밖으로 밀치고 나가면서 사람들에게 빨리 따라 붙으라고 소리지른다. 모두 우루루 나갔고 같이 뛴다.

 

그런데, 들으니 다른 곳에서 싸우던 시위대들과 경찰이 싸움을 중단했다고 한다. 경찰이 시위대의 신변을 보장했고 포위된 곳에서 안전하게 밖으로 내보내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버스에 한가득 사람들이 타고 지나간다. 다들 기뻐하고 있고, 그 버스 안에 아는 사람 얼굴이 둘 보이는데 지나갈 때 환하게 웃으면서 만세를 한다. j군이 앞에 먼저 보였고, 그 뒤에 y양도 보였다.

 

문제는 남아 있는 우리 일행. 곳곳에 전경들이 깔려 있다. 신변보장을 약속했다지만, 따로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까지 그렇게 해줄지 모르겠다. 태연한 척 경찰들을 무시하며 막 걸어나간다. 그런데, 그렇게 이동하면서 가방이 떠올랐다. 아, 내 가방 아까 걔가 들고 갈텐데, 어쩌지?

 

대충 여기까지-

 

이렇게 꿈이 디테일하게 기억난 것도 정말 오랜만.

전반적으로 재밌었다. 그리고 너무 현실적이다 -0-

2012/04/25 10:10 2012/04/25 10:10

화차

영화를 보기전에 소설을 읽었다.

 

음.. 재미있게 읽었다.

차근차근 접근해가는 게, 그리 비현실적이지 않았다.

 

//

 

소설 전반에 대해서보다,

'신용'에 대해 좀 이런저런 생각들이 있었는데,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주의는 애초에 생산과 소비에 시차가 있기 때문에 미래의 팽창을 담보로 부채는 필연적이라고 설명한다.(자본주의를 끝장내기 위한 투표, http://blog.jinbo.net/neoscrum/524)

저 역자 블로그 말미에 달려있듯이, 부채의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하느냐는, 계급 역관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실물영역에서 이윤율 저하 때문에, 금융부문으로 자본이 집중되는 것으로 설명하곤 한다. 미래를 담보로 부채는 계속 늘어가는데, 실물영역이 뒷받침되지 못하니, 그만큼 거품은 가속화되는 것. 그 과정에서 '강탈에 의한 축적'. 일본은 버블이 꺼지면서, 한국보다 10년일찍 그 과정을 겪은거고, 소설은 그 시기가 배경이다. 팽창한 부채를, 개개인-그러니까 노동자계급에게 책임을 넘기는 게, 또 하나의 핵심. 

 

그러니까, 화차에서 다른 이의 신분을 뺏었던 그 사람의 동기를, 행복해지고 싶었다,라는 일반적인 욕망, 혹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외로운 투쟁으로 접근하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지 않나. 더욱 역사적, 경제적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드는건데,

그냥 소실이니까, 싶기도 하고..;;;;

 

 

 

화차
화차
미야베 미유키
시아출판사, 2006
2012/04/05 15:44 2012/04/05 15:44

2012/04/04

예전에 살던 집 근처 아파트 같은 곳이다.

 

아파트 단지에 풀밭이 많다.

근데, 여기저기 사자가 돌아다닌다.

얘네들은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훈련을 받았나.. 싶으면서도

뭔가 불안하다.

새끼사자 한마리가 나를 향해서 달려온다.

그 정도는 별로 위협적이지 않다. 하지만 괜히 자극했다 다른 사자들이 달려오는 게 무섭다.

그래서 피하는데, 음, 결국 큰 사자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막 달려온다.

막 도망가는데, 금새 따라 잡혀서, 사자 큰 얼굴이 바로 눈앞에. -끝

2012/04/04 07:38 2012/04/04 07:38

다윈의 대답2 : 왜 인간은 농부가 되었는가

'다윈의 대답' 시리즈를 읽어보고 있다.

죽 읽어보니 엄밀한 증명이 실려 있지는 않다. 특히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의 가설을 소개하는 것이다. 여타 내용을 잘 모르니, 이 책만 읽기로는 가설이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데, 얼핏드는 의문이 목축농과 경작농의 갈등은 수렵/채집과 농업의 갈등과 유비되는 건가? 경작농과 목축농의 갈등을 소개한 이유를 잘 모르겠네.

페르시아만 바닷물이 그렇게 빨리 상승했을까?)

 

아무튼, 가장 최근의 빙하기가 1만년이라는, 머리속에서 어느정도 짐작이 되는 꽤나 가까운 시간안에 있었다는 것도 몰랐었고, 인류의 두 종이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살았다는 것도 몰랐었고, 신화 속 존재들이 기억의 전승일 수 있다는 것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런 이야기들이 호기심을 막 자극한다.

 

그리고 홍적세 살육 부분을 읽으면서, 아, 웃을 일은 아닐텐데, 뭔가 너무 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음..;;

 

책 내용을 전체적으로 요약했고, 소제목은 내 맘대로 내가 알아볼 수 있게 붙인 것. 더 나누고 싶었지만, 귀찮아서..

 


중동에서 농업이 시작되고, 다양한 석기들이 제작되며 최초의 도시가 출현한 일련의 '신석기 혁명'에 대한 생각은 고고학적 기록의 해석에 근거한다. 하지만, '왜 1만 년 전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신석기시대에 농사를 짓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었는데, 그렇다면 농업의 기원에 대한 진짜 문제는 왜 농업을 도입한 시기가 지역에 따라 다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왜 시작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설로, 신석기혁명 이전에 이미 농사가 정착되어 있었다고 제안한다.

 

농사는 원예농, 경작농, 목축농으로 나눌 수 있는데, 특히 경작농과 목축농 사이의 갈등은 구약성서에서도 볼 수 있다.

목축농은 야생식물들을 그대로 두기를 바라지만 경작농은 그것들을 제거해야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경작농이 비옥한 지역을 선택하기 때문에 목축농은 주변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목축농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지역을 이동해야하는 반면 경작농은 막대한 노력을 들인 땅을 버리고 떠날 수 없기 떄문에 한 장소에 머물고 싶어 한다. 

성서는 목축농을 더욱 호의적으로 그리며 경작농 카인을 살인자로 묘사한다. 출애굽기에 묘사된 이집트의 경작농은 노예의 상황이며, 예수가 탄생했을 떄에도 곁에 목동들이 있었다.

 

원시농부, 홍적세 살육

 

인류와 호미니드 친척들은 경쟁 식물을 제거하는 작물 보호(개미들이 아카시아나무에서 다른 곤충을 쫓아내고, 물고기가 산호초 위의 해조 조각에서 다른 동물들을 쫓아낸다), 사냥감 통제(북미 사우스다코다주의 배들랜즈 원주민들이 고기와 가죽을 얻기 위해 들소를 절벽으로 몰아간 흔적이 있다. 이러한 '몰이'가 울타리 설치로 발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등을 했다는 관점에서 '농사'를 지어왔다.

 

이러한 원시농업은 기원전 4만년 경(후기 구석기)에 출현했다. 후기 구석기시대의 원시농부들은 풀타임 농부는 아니었다. 최근까지 남서 아프리카의 호텐토트족들은 수년간 염소를 키우다가도 마음 내키는 대로 염소들을 버리고 사냥을 나서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취미로 농사를 짓는 동물은 오직 사냥만 하는 동물보다 더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사냥꾼이 될 수 있다. 

작은 규모라도 농사를 지은 인류는 어떤 동물의 수가 상당히 감소한 후에도 계속 그들을 사냥하여 멸종시키기가 쉽다. 하지만 풀타임 사냥꾼은 피식자가 줄어들수록 스스로도 멸종의 위기에 처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인간은 약 4만년 전 보트를 제작할 수 있게 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호주로 이주했고, 적어도 약 3만년 전에 이르러서는 태평양 제도에 정착했으며, 약 1만 3천 년 전에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가는데 이것은 항해가 아니라 해수면이 지금보다 200m 까지 낮았던 빙하기에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에 형성된 육교, 베링기아를 걸어서 당도한 것이다.

인간이 각 대륙으로 처음 들어가자마자 그 지역의 동물군들이 멸종하기 시작했는데 그 피해는 몸집이 클수록 더 심했다.

 

호주에서는 4만년 전 이래 자이언트캥거루, 자이언트뿔거북, 디프로토돈이라고 불리는 코뿔소 크기의 원뱃 친척-호주 아이들을 겁주기 위해 만들어진 '버닙 호주 도깨비' 신화의 주인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을 잡아먹었던 유대류 '사자' 등등 대형 동물 13개 속이 사라졌다.

북미 대륙에서는 약 1만 3천년 전에 인간이 도착한 후 몇 백년 만에 대형 포유류 45속 중 33속 이상이 사라졌다. 여기에는 낙타, 자이언트비버, 페카리, 매머드와 마스토돈을 포함한 코끼리 종류들, 자이언트 땅늘보, 빵 배달 화물차 크기의 아르마딜로인 글립토돈, 그리고 이들을 잡아먹었던 검치호 다이어 울프, 자이언트 러닝 베어 등이 포함된다. 

그로부터 2천 년이 지나 인간이 남하를 계속하면서 남미의 대형 동물들에게는 더 큰 재앙이 닥쳤다. 58개 속 중에서 46개 속이 수백 년 내에 멸종되었다. 짧은 몸체를 가진 큰 낙타처럼 생긴 마크라우체니아 속을 포함한 유제류 동물 두개 목 그리고 하마 크기의 기니피그 처럼 생긴 톡소돈 등이 여기 포함된다.

살육의 규모는 전 세계적이었다. 기원경 마다가스카르에 사람들이 도착하자 자이언트거북이, 하마, 여우원숭이, 에피오르니스가 사라졌다.(에피오르니스는 신드바드의 이야기에 나오는 로크 신화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멸종의 원인이 기후라면 작은 동물들이 더 타격을 받았을 텐데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다. 더군다나 대량 멸종을 설명할 만한 기후 변화의 증거도 거의 없다.

파트타임 농부들은 훨씬 파괴적인 포식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농사가 홍적세 대량 살육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은 최소한 5천년 혹은 1만 년 동안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심리학자 스탠구치가 1970년대 말에 '옛 지혜의 수호자'에서 주장하듯이 네안데르탈인들은 낭만적인 달 숭배자들인 데 반해 크로마뇽인들은 더 현실적으로 실용적이었으며 이들간의 갈등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전통과 아폴론 전통의 갈등, 혹은 서양문화 전반의 낭만파와 고전파이 갈등이 구석기시대에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클리브 갬블은 실제 크로마뇽인이 더 현실적이며 스스로의 사냥 전략을 개선해나갈 만큼 실용주의적이었다고 주장한다.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간의 충돌은 농사 대 사냥이라는 전혀 새로운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농부는 사냥꾼의 먹이 기반을 침식시킴으로써 사냥꾼을 절멸시킨다.

 

농업혁명과 악순환

 

고생물학자들은 화석화가 극히 드문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만약 어떤 동물의 화석이 발견된다면 과거의 한 시점에 그 종이 흔했으며 이것은 다시 더 오랜 과거부터 그 동물이 존재해왔다는 것을 뜻한다. 구석기 시대에 사람들은 식물과 동물을 통제하여 생태적 성공을 거두고 또한 다른 동물들의 생태를 아주 크게 바꾸어놓았지만 고고학적 기록에 나타날 정도로 대규모로 이러한 작업을 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석기 혁명은 농업의 시작이 아니라 한 장소에서 오랫동안 행해지는 농업의 규모 확대였다.

 

사람들이 취미로라도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인구가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수준으로 증가하게 된다. 농사의 장점은 식량이 늘어나도록 환경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이고, 식량 공급을 늘리면 인구가 늘어난다. 농사를 많이 지을수록 인구가 증가하는데 이렇게 늘어난 여분의 입은 농사에 의해서만 먹여 살릴 수 있기 때문에 농부는 더 많은 농사일에 매달려야 한다.

 

사냥은 그것에 들이는 노력이 많아질수록 노력 대비 수확의 비율은 급격히 감소한다. 육식동물이 게으른 것은 이 때문이다. 농사는 삶의 규칙을 바꾸는데, 농부는 더 열심히 일할수록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게으름은 절대 선호되지 않는다. 농부는 농사가 즐겁거나 그 일이 수렵과 채집보다 쉬워서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찌 보면 자기 성공의 희생자일 뿐이다.

 

고고학적 기록이 보여주는 명백한 농사의 첫 신호는 약 1만년 전 중동에서 시작되는데, 이 때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시기이다. 가장 최근의 빙하기 동안 알라스카와 시베리아 사이의 육교인 베링기아는 폴란드만큼 컸고,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사이에 있는 천해가 없었으며, 페르시아 만도 마른땅이었다.

 

당시 페르시아 만 지역에 있던 땅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함께 흘러들어와서 아라비아 해로 들어가는 아주 비옥한 장소였음이 분명하다. 이곳의 후기 구석기인들은 과일 나무와 식물들, 냇물의 물고기와 조개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통제하고 재배하면서 낙원에 있는 것처럼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빙하기가 끝나갈수록 해수면이 상승함에 따라 바닷물이 육지로 흘러들어오는데, 이러한 변화는 수십 년의 짧은 기간  동안에 일어났다. 사람들은 과거 고지대였던 곳으로 이동해야 했고, 인구는 그동안의 풍족한 환경과 취미 농사 덕분에 이미 많아진 상태였다. 그들은 이제 훨씬 좁은 공간에 밀집된 많은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농사를 지어야만 했다.

 

미국 미주리대학교의 주리스 자린스는 페르시아 만의 범람과 그 이후 사건들이 바로 창세기에 묘사되어 있는 에덴동산의 이야기라고 제안했다. 8천 년 전 페르시아 만 지역의 대부분은 마른땅이었다. 창세기가 기원전 1500년경에 씌어졌고 거기에 기록된 사건들은 그보다 약 4500년 전에 일어났으므로 기억이 충분히 전승될 수 있는 기간이다.(호주 원주민들도 8천 년 전에 있었던 홍수를 기억하고 있는데, 현대 잠수부들은 원주민들이 묘사하는 것과 똑같은 장소를 실제 바다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신석기인들이 경작농의 삶을 시작한 것은 그들 스스로가 원하거나 곡물의 장점을 꺠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낙원에서 쫓겨났을 때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초기 경작시대에는 그전의 수렵인들에게서는 보이지 않던 질병과 상처의 고고학적 증거들이 남아 있다.(테이야 몰리슨은 초기 농경인들에게서 발과 무릎에 관절염이 생기고 허리에 변형이 오는 독특한 형태의 질병을 찾아내었다.)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할 때 신은 그들을 저주했다 : "네가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에덴의 종말 - 왜 인간은 농부가 되었는가?
에덴의 종말 - 왜 인간은 농부가 되었는가?
콜린 텃지
이음, 2011
2012/04/02 20:15 2012/04/02 20:15

라틴아메리카 신화와 전설

제목만 보고 빌려왔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비슷한 감정들을 겪으며 산다.

 

잉카, 마야, 아즈텍..

시대도 잘 모르고..

지역도 잘 모른다.

그냥 이야기만 읽었다.

 

인신공양 제물로 자식을 바친 어미의 슬픔..

언약을 했지만, 전쟁에 나가 죽게된 이를 기다리는 슬픔..

벌레가 되어서, 곁에 있겠다는 언약을 지켜내는 이들..

등등등

 

음..

소개된 신화와 전설들이 굵직한 줄거리만 담겨있어서,

상상력을 막 자극하진 않았다.

이런 고담의 재미는 깨알 같은 묘사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

너무 듬성듬성이다.

현대어로 다 해석해 놓은 대화들.

옮겨 놓은 이의 상상 만큼 밖에 볼 수 없다.

 

예를들면, 쌍둥이 형제가 지하세계 시발바 신들을 물리친 이야기는,

그 과정에서 어떤 말들과 내기가 오갔는지만 풀어써도 책 한권 나올 것 같은데,

그냥 많은 시발바 신의 요구를 쌍둥이 형제가 무사히 수행했다는 식의 한 페이지 정도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라틴아메리카 신화와 전설 - 고대 문명의 수수께끼에서 신화적 상상력까지
라틴아메리카 신화와 전설 - 고대 문명의 수수께끼에서 신화적 상상력까지
박종욱
바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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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폴부 라는 책이 있나보다.

전마야문명 키체족이 남긴 역사서라고 한다.

 

//

 

연관도서

아즈텍과 마야 신화 / 범우사

마야인의 성서 : 포폴부 / 문학과 지성사

 

 

아즈텍과 마야 신화 - The Legendary Past
아즈텍과 마야 신화 - The Legendary Past

범우사, 1998

 

마야인의 성서 - 포폴 부
마야인의 성서 - 포폴 부

문학과지성사, 1999
2012/03/15 14:16 2012/03/15 14:16

레미제라블

완역본을 읽어보고 싶어서,

어떤 번역이 괜찮나 찾아보고 있었다.

범우사, 금성, 펭귄 등이 나온다.

동서 번역본은 일본어 중역이라는 이야기가..

 

 

http://dvdprime.donga.com/bbs/view.asp?major=ME&minor=E1&master_id=149&bbsfword_id=&master_sel=&fword_sel=&SortMethod=&SearchCondition=&SearchConditionTxt=&bbslist_id=2038222&page=3

 

금성과 펭귄을 비교해 놓았다.

음.. 글에선, 금성의 번역이 더 유려하다고 말하는데,

난 아무리 봐도 펭귄사의 번역이 훨씬 눈에 잘 들어온다.

금성 번역본에 번역투가 더 많이 쓰인 것 같은데.. 아닌가..

나의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인가 ㅠ

아무튼 도서관에 펭귄사 거이 있으면 빌려와야지.

2012/03/13 14:48 2012/03/13 14:48

지나간다2012/03/08

운동을 하고 상으로 간식을 먹는다-

살찔려고 이렇게 열심히 먹어보는 것도 처음,

여기 전기냄비 같은 거 갖다 놓고 밤마다 뭘 구워먹어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근데 살 찌우려면,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할 것 같다.

당췌 근육이라곤 하나도 없어서...

 

뭐라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속이 뒤집어진다.

이거 어째야할지 모르겠다.

세상살이에 마음 끓일 일 없을 수 없는데,

어찌 이러누.

 

속세엔 쉴새없이 오만 일들이 벌어진다.

요즘, 거의 완전히 떨어져 지내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거의 모르고 산다.

누군가에게는 온 삶을 좌지우지 하는 사건들이 조금만 떨어져도 별 거 아니라는 사실이,

위로가 되기도, 더 의기소침하게 하기도.

내 발딛고 있는 곳도 결국 속세일 터,

오만 이해가 실뭉치로 얽혀 웃고 울고.

2012/03/08 19:11 2012/03/08 19:11

지나간다유언 - 산도르 마라이

어떤 우화 같은 느낌.

 

누구나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일생의 책무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기꺼이 응하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조건 없는 사랑?

 

라요스는, 떨어져 있을 땐, 누구나 사기꾼인 걸 알지만,

옆에 있을 땐, 금새 감언이설에 넘어가게 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러니까, 사랑-같은.

 

온존재를 걸고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도둑이나 앞날의 계획, 처낭과 지상의 그 어떤 율법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용감하지 않으면,

안전할 지언정 의미가 없다.

"위험이 지나간 다음, 나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으며 그 위험이 내 삶의 단 하나 진실한 의미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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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7 11:39 2012/03/07 11:39

단순한 열정 _ 아니 에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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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4 꿈

전반적으로 설치면서 잠을 자,

내용이 흐릿하다.

 

거의 끝 장면인데,

땅 바닥에 사람이 쓰러져 있고, 기운이 다 빠졌다.

그 사람에게 뭔가 힘? 생명?을 전달하기 위해, 마음이 절박하다.

그 사람에게서 좀 떨어진 곳까지 땅이 녹색이다.

간절한 마음으로 땅을 간다. 간다기 보다는 파헤친다.

조금씩 조금씩, 땅에서 풀이 나 녹색으로 변하는데, 너무 느리다.

그 사람이 있는 곳까지 다다르려면.. 너무 느리다.

죽을만큼, 노력하겠다고, 죽을만큼... 가슴이 미어지며, 미친듯이 땅을 파헤친다.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까지 어느정도 닿았고, 그 사람이 고통스러운 듯이 꿈틀거린다.

 

여기쯤에서 한 번 깼는데..

음.. 깨서 얼핏 떠올려보니, 오히려 쓰러져 있던 게 내 모습 같았다.

하지만 난 너무 절박하게 매달려 있었는데..

 

그리고, 어떤 넓은 대합실이 있는 큰 건물 안을 오가는 꿈도 꿨는데..

자세한 장면은 기억이 안난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느낌이었다.

2012/02/14 15:57 2012/02/14 1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