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거in a better world

잔잔한 영상과 소리가 포근했다.

폭력에 대해 질문한다.

누군가 나를 때리면, 나도 같이 때려야 당면한 폭력을 중단시킬 수 있을테다.

하지만 폭력은 폭력을 재생산한다.

 

감독은 그래서 나머지 뺨까지 내주자고 얘기한다.

 

단기적인 국면과 장기적이 국면 사이의 갈등-

 

빅 맨을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장면이 너무 서러웠다.

우리는 왜 이리들 살까.

2011/10/31 12:22 2011/10/31 12:22

지나간다2011/10/27

언제는 마음 잘 날이 있었냐마는..

진보신당을 바라보면서 또 마음이 무겁다.

 

난 며칠 전 진보신당을 탈당했다.

그 전에도 페이퍼당원에 불과해, 내 탈당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다.

당활동에 그닥 관심도 없고, 멀리서 간보면서 지켜만보는- 그래왔다.

 

 

 

 

선거시기만되면 돌변하는 진보정당들을 보면서,

난 저기에 뛰어들 엄두도 안나고, 내 지향이 아니라 생각해왔었다.

 

그런데..

음..

나는 길을 못찾고 있지만,

나와 함께했던 다른 이들이라든지,

혹 또다른 누구라든지,

무언가를 만들어주기만 기다려왔는데-

갈수록 뿌애지는 것 같다.

 

이렇게 운동에서 정치가 실종되어가고 있는데,

뭐라도 뛰어들어서 해야지,

선거정치하기 싫다고, 그거 답 아니라고 중얼거리는 거,

나 혼자 깨끗한척 하는 게 아닌지,

이런 고민이 든다.

그런데, 난 왜 지금 탈당을 했을까? ..음..

앞으로 더 이상 어정쩡하게 발적시기 싫다는 생각인건데,

어떤 걸 택하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들고 싶다.

 

 

어찌됐든 내가 나 혼자 활동하는 게 아니니, 함께 고민하고 해야할텐데..

몇 년 전부터.. 이게 안되어왔고.. 마음만 번잡하다.

 

 

/

홍세화씨의 당대표출마선언문에 진심이 절절히 보여서 감동받았다.

하지만, 정치가 진심만으로 되지 않기에, 구체적인 전망이 보이지 않는 게 걸린다.

 

그런데, 김진숙을 보라.

 

난 지금 너무 쉽게, 무엇도 안된다며 포기하는 게 아닌가?

난 상처 받는 게 두려워서, 실패하는 게 두려워서 계속 뒷걸음치고 있는 게 아닌가?

정말, 무엇이라도 해야하지 않는가?

일단 진심이라도 있다면 되지 않겠는가?

진보신당의 좌측에 길이 마땅하지 않다면, 그걸 계속 유보하는 게 정당하지 않잖은가?

진보신당의 좌측에 길이 마땅하지 않다고, 난 또 지례 포기한 게 아닌가?

.....나에게 비겁이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게 아닌가?

면죄부를 주기 위한 고민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후년에는, 당당하게 뛰어들 수 있을 것인가?

 

오늘 읽은 문구 하나가 내 마음을 채찍질한다.

 

결정이 어려워도 무한정 연장할 수 없다. 가혹한 시간은 우물우물하는 결단부족 자체가 하나의 결단임을 뒤늦게나마 반드시 증명한다. - 박이문

2011/10/27 16:03 2011/10/27 16:03

슬리피 할로우

아무아무아무 생각 없이,

그냥 도서관에서 신간에 꽂혀 있길래 빌려왔다.

사실, 요즘 영미문학을 읽어볼까하는 마음이 있긴 했는데,

그래서 이 책을 빌려온 건 아니다. 거리도 멀고.

 

 

좀 지루하게 읽었다.

당시에는 재밌는 이야기들일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다만 당시 사람들의 관심사나 생각들을 볼 수 있어서 재밌었다는 거?

 

짧은 이야기들이 몇 편 실려 있고, 각 이야기는 좀 차이가 있지만 1800년대 초반? 그 쯤이 배경이다.

아메리칸 선주민을 몰아내고, 유럽에서 이주해온 이들이 터전을 꾸려 어느정도 정착을 이뤘고, 번창만 남겨놓은-

대체로 그런 분위기다.

해적과 해적이 남겨놓은 보물과 그 보물에 깃들어 있는 악의 기운...

이런 이야기가 많은데, 일확천금의 꿈은 어느 시기에나 있구나 싶으면서,

그 시기에는 이런 일확천금이 더 수월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

 

악마, 유령, 신선(?) 등에 대한 이야기와 사람들의 믿음은

1800년대 미국과 조선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의 문명이 우월하다고 믿으며, 다른 세계을 정복하고 착취할 수 있었던 것을 되돌아보면,

근대라는 건 결국 그 세계가 얼마나 합리적인지와 별개로,

합리성을 다른 가치에 대해 우위로 두고 있다는, 그런 믿음인 것 같다.

합리성 이외에도 여러 가치들이 산재하는데, 그것들의 말소가 아니다.

 

산에 가서 술마시고 노는 걸 보다 보니 20년이 지났다더라는 이야기는, 신선과 놀다 도끼 자루가 썩었다는 이야기와 똑 닮았다. 전자는 창작자(작가의 창작이 아닌 전승을 기록한 것일수도 있지만)가 명시되어 있지만, 후자는 창작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게 다른건가? 그게 1800년대 미국과 조선의 차이였을까?

 

번역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구절이 많았다..

관용구일 것 같은데, 그냥 직역을 해놓는다든지(예를들면 바다에서 돼지들, 프라이팬을 탄다는데- 음..)

문맥이 어색하다든지..

오타도 있고..

편집자가 별로 신경안쓰고 출판한 것 같다.

 

 

 

슬리피 할로우
슬리피 할로우
워싱턴 어빙
생각의나무, 2011
2011/10/26 14:47 2011/10/26 1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