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다가족

오랜만에, 부모님과 차를 타고 교외를 다녀왔다.

 

 

얼마전에 친척들과 얼기설기 한 빚이 어느정도 해결되었고,

부모님 보시기에, 내가 어딘가 다니며 번듯한 일을 하고 있다.

엄마는, 숨통이 조금 트이는 것 같다며,

지금까지처럼 살지 않아야겠다고 말씀하셨다.

 

부모님 머리속에는 이제 가족사진이 그려질지도 모르겠다.

 

집에는 번듯한 가족사진 하나 없다.

내가 스무살 넘어서는, 가족 전체가 나온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다.

그래서, 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도 없다. 정말 한 장도 없었다.

 

모든 게 다 삐걱거렸다.

나도, 동생도, 부모님도.

 

 

평안을 가장한 부모님의 웃음들이 괴로웠고 싫었다. 

당신들이 어떤지를 얘기하지는 않고, 나의 의사에 따르겠다며 나에게만 묻는 것도 지겨웠다.

하지만 연민이 발을 맨다.

아침 라디오를 들으면 가족의 건강, 행복을 비는 사연들이 넘쳐난다.

신기루들..

 

 

지금은 가족사진의 윤곽이 그려진다.

빈자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사진에 빈자리가 담기지 않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요즘 남들 사는 것 처럼 살아보이고 있어도, 벗어날 궁리만 잔뜩이니,

 

지금의 균형이 위태롭기만 하다.

나와는 다른 의미에서 부모님도 위태로울 게다.

 

 

다르게 살겠다는 것도 결국 좀 더 자유롭게 소비하겠다는 욕망이다.

거기에서 삶의 보상을 얻으려는 것도 갸냘프고 애닳는다.

2011/05/17 16:14 2011/05/17 16:14

보는거비포 선 라이즈

얘기만 엄청 듣다, 오늘에서야 봤다.

간 DVD방 프로젝터가 그리 좋지 않아서, 화면 군데군데 얼룩도 있고 색도 고르지 못했다.

 

그 감정들이 이해는 되면서, 공감하지는 못했다.

마음이 너무 메말라 있는 듯.

 

보면서, 만추는 비포 선 라이즈 오마쥬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군데군데 겹치는 장면이 많네.

 

짧지만,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장면

멀리 지나가는 사람의 대화를 꾸며내는 장면

만추의 시애틀이 칙칙했다는 것을 빼면 상황들은 비슷하다.

 

이 영화 짧은 테이크가 5분씩은 되는 것 같다. 대단하다. 영화 찍으면서 정분 안나는게 이상할 듯.

 

여행에 대한 로망은,

이렇게 갓 태어난 것처럼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겠어?

서로 계산할 게 없으니까, 그런 만남이 가능한 것 같다. 헤어짐이 전제된 만남이니까. 

 

만추와 비교하면, 난 만추가 더 좋았는데,

하룻밤일지언정 아름다울 수 만은 없으니까.

그리고, 난 외형이 서양사람이면 거기에 몰입을 잘 못하는 것 같다.

2011/05/14 22:25 2011/05/14 22:25

지나간다컨닝

예전에 쓰다 만 글이 있는데, http://blog.jinbo.net/imaginer/23 (꼭 이렇게 마무리를 못하고 팽개치는 게 많다.)

 

답안지 고쳐주는 선생이라는 기사가 올라온 걸 보고(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문득 또 떠올라서,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나면, 답안지를 학생들이 채점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OMR카드에 기록하니, 객관식은 상관없지만 주관식은 따로 점수를 매겨줘야 한다.

채점하다 철자가 조금 부정확하거나, 적은 걸로 봐서 답은 알고 있을 것 같은 것들은 대개 맞았다고 채점했다. 답안지가 너무 비어있으면 답을 한두개 써주기도 했고, 고쳐주기도 했다. 그게 내 자의적인 판단이어서 다른 사람들이 알았다면 문제가 됐을텐데, 정작 난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컨닝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이 없었고, 채점도 빡빡하게 할 필요 뭐 있냐 싶었다. 점수 몇 점이 무슨 큰 소용이라고. 생각보다 점수가 높게 나온 것에 기뻐할 사람들을 생각하며 흐뭇해하기까지.

 

개념을 물말아드신 학교생활이었던 것 같다. 점수로 매겨지는 것들이 고까운 건 그렇다쳐도, 다른 사람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나의 독단들. 음. 그러면서 한편 경쟁들 속에 목매달고.

2011/05/13 09:27 2011/05/13 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