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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공원

모란공원에 다녀왔다.

 

세 번째 가는 열사의 묘.

들어가는 길에 이전에 없었던 묘가 다시 생긴 것을 알았다.

 

너무나도 빠르게 잊혀진 허세욱 열사는 모란공원에 묻혀있었다.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전태일 열사의 묘역 앞에서 소주를 깠다.

누군가가 묘역은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리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고 있자니 법대의 후배들이 도착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내려가던 길이었다.

열사들의 묘를 돌아보며 내려가던 길.

다시 허세욱 열사의 묘 앞에 섰다.

 

민석이가 새내기 후배들에게 허세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녀석은 이야기를 끝맺지 못하고 등을 돌렸다.

그리고 서럽게 울었다.

대신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서 나도 다시 울컥했다.

 

 

 

녀석의 눈물은 아직 그 눈물을 본 새내기들에게 이해받지 못했다.

그 눈물이 이해받을 날이 오기를 바란다.

 

 

 

 

열사들과 동지들 앞에 내 삶은 부끄럽지 않은가.

그러나 모란공원에 온 것은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온 것이다.

 

 

 

 

선배들의 서러웠던 죽음과, 서러운 세상을 넘어서

반드시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마음에 비수를 꽂고, 그 아픔을 잊지 말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

 

이 글을 읽을 여러분들과 함께 그 길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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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 9월 2일 사회운동포럼에 참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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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6

강릉에서, 밤바다를 보았다.

 

가슴을 씻어내는 듯한 파도가 기뻤다.

 

자기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었던 휴가가 끝이 났다.

 

 

 

모든 일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타인과의 관계나, 여러 가지 조건들에 핑계를 돌리지 말자.

 

아직 20대는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20대 속에서, 혁명이라는 두 단어가 심장에 박힌 그 날 부터, 내 삶에서 혁명과 운동이 떠났던 적은 없었다.

 

그 어떤 공간에서도, 수없이 부족하고 수없이 열악하고 수없이 외로웠을 지언정 노동자 민중이 내 가슴에서 사라진 적은 없었다.

 

수없이 부족하고 수없이 나약했을 망정, 끝없이 스스로 변혁되어왔고, 조금씩 조금씩 더 진보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다시금 반성하고, 혁명은 영원하다.

 

다시 제대로 살아보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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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1945년의 8월 15일은 일본 제국주의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전면적으로 패배하였던 날이며, 따라서 해당 시기 한반도에서의 철수를 강요당할 수 밖에 없었던 날이다. 바로 이 시점을 한반도의 민중들은 해방이라고 불렀으며, 억압의 직접적 기제였던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을 토대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들을 시작할 수"는" 있었다.


따라서 이 날을 광복절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여러 과정들을 거쳐서 속칭 “민주주의 공화국” 인 남한이 건국되었다. 이 과정에서의 역사적 비극들은 문제가 있으나, 새롭게 건설된 나라는 여하튼 말 뿐이긴 하지만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나라였다.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민중들이 자기 스스로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광복이란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과 더불어서 민주주의를 전면화 하는 새로운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진 것을 동시에 의미하기도 한다. 한데 2007년의 광복절, 8월 15일은 이러한 광복의 의미가 충만했던 날이 되었는가?


바로 오늘인 8월 15일, 이랜드 홈에버의 노동자들은 회사 측의 불성실한 협상과 정권의 탄압 등의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인간답게 살기 위한 투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 절박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랜드 면목점에 모인 홈에버의 여성 노동자들은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폭우와 용역들의 폭력, 경찰력의 폭력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투쟁을 전개해 나아갔다.


면목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입구는 덩치 큰 용역깡패들에 의해서 길이 가로막혀 있었고, 직원도 아닌 이들이 도대체 왜 이 입구를 막고 있느냐고 질문하는 여러 시민들에게 용역들은 “너 이리 와봐” "이 새끼 죽고 싶냐“ 등의 언사와 함께 물리적인 폭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용역들의 폭력적인 행위 그 자체도 이미 상식적으로 폭력에 관련한 여러 법률에 관해서는 분명히 위반이다.


한데 파업 중인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집회를 벌일 때 이러한 집회가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과 무관하며 따라서 처벌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적인 것이다. 즉 이랜드 자본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으로 매도하지만 이러한 파업은 지극히 합법적으로 상식적인 것이며, 따라서 오히려 자신들의 돈을 이용해서 용역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비상식적인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민중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아니라 돈을 이용해서 온갖 위법, 각종 노동 착취와 부당 노동행위 등의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노동법 위반에도 불구하고 경찰력에게 단 하나의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오히려 보호받고 있는 이랜드 자본과 박성수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 나라, 이 대한민국. 이 나라가 과연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호칭 할 수 있는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각종 폭력을 조장하고 각종 경제위기를 노동자 민중에 대한 책임 전가를 통해서 민중들의 주인됨을 박탈하는 대한민국은 이미 광복의 의미를 상실한 국가이다.


이랜드 그룹의 박성수는 이미 주식 배당금으로 부인과 함께 183억의 돈을 벌어들였다. 동시에 교회에는 130억의 십일조를 내면서 노동자들은 79만원으로 부려먹는다. 노동자들의 노동력이 저임금으로 장시간 착취를 받을 수록, 그리고 노동력이 점점 유연해짐으로써 사측의 비용이 절감된다는 것은 주식 가치의 상승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식 가치의 상승이라는 일견 화려해 보이는 금융화의 과정 뒤에는 노동자들에게 점점 전가되는 희생과 삶의 위기, 그리고 극단적인 폭력이 도사리고 있다.


2007년 8월 15일 8시 경, 갑작스레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전경들과, 그리고 용역들과 대치했다. 방패로 밀어붙이는 그들에게 “우리 어머니 같은 사람들이 깔려죽는다” 라고 절규하며 나는,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외쳤다. 비에 젖고 땀에 젖어 온 몸이 엉망이 되었을 때, 잠시 극단적인 폭력적 상황이 중단되었을 때, 이미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연행된 이후의 상황에서, 눈물을 훔치는 아주머니를 볼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이제껏 함께 해 왔던 내 얼굴을 안다고 했고, 학생들이 무슨 고생이냐고 눈시울을 붉혔다. 나 역시 순간 감상적이 되었는지, 잠시 노동자들의 그간의 고생과 서러움이 내 가슴에 그대로 전달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얼굴 모를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전혀 서럽지 않았는데,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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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에 대해서 쓴 어떤 평론을 퍼오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2280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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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를 후경으로 삼은 멜로드라마'라고 단정하는 것은 이번 영화제작진은 물론 이미 시간과 돈을 들여서 영화관을 찾은 500만 관객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 말에서 유인택의 수준이 심형래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5월은 혁명의 달이다. 1980년의 광주가 있고, 1968년의 프랑스가 있다. 이 글이 담겨있을 책의 표지에는 9라는 숫자가 분명히 써있지만 당신이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가 개봉했다는 사실과 이것이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까지 알고 있다면 내가 왜 5월의 얘기를 꺼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한 휴가>는, 김지미가 씨네21에서 지적한 것처럼, 신애(이요원 扮)의 목소리로 바로 그 1980년 5월의 광주를 기억하라는 부탁을 하고 있다. 그 때는 1980년이고, 지금은 2007년이다. 나를 포함하여 꽤 많은 관객의 주민등록번호가 8로 시작한다. 이 물음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아직 광주를 기억하고 있느냐는 질문으로. 이 질문에 나는 다시 되묻는다. 당신은 왜 지금 그곳에서 묻고 계십니까.
 
영화는 전형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생리대 광고에 나오는 여대생들 마냥 세상 좋다고 웃어대는 군상. (고백하자면, 나는 들이대는 연애질을 보기가 거북했다. 결코 내가 애인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폭력적인 연애가 싫어서 그랬다.)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공수놈들. 희생이 따르고 영웅은 조력자를 만나 카카로트처럼 각성해서 재난을 극복할 뻔 한다. 도청에 남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할 때 극장 안에 웃음이 터져 나올만큼 관객의 감정선도 잡아내지 못한다. 감독의 연기지도 수준 역시 평균을 넘지 못한다.
 
이 영화는 광주를 기억하라고 채근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는 감히 광주를 바로보지 못한다. 영화는 광주를 눈앞에 들이밀지만, 이것은 과연 그 해 5월의 광주인가?
 

영화평을 청탁받을 때, 쿨하고 위트있는 문체로 써달라는 부탁이 덤으로 붙었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를 다루기로 결정한 순간 그 부탁은 결코 들어줄 수 없는 것이다. 우스운 일은 정작 이 영화가 나를 대신해서 부탁을 들어줬다는 거다. 우습지만 웃을 수 없는 일이다. 마치 도청에서 고향을 찾는 인봉(박철민扮)과 용대(박원상扮)를 보면서도 웃지 못하듯이.


나는 깨달았다. 영화평을 쓰면서도 막상 이 영화에 대해서 별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노력을 기울여도 무위에 그친다는 것, 이 무상함은 5월 광주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시도할 때마다 자주 맞닥뜨린다는 것, 그때마다 깨닫는 사실은 오히려 어떤 사태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경우 - 예를 들어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도 들을 수 있었던 전라도 새끼들은 전부 빨갱이라는 자신만만한 확신 - 가 기실 아무런 정보를 갖지 못한 경우라는 것, 이런 의미에서는 이 사회에 광주는 계속해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이런 의미에서 광주는 영웅설화를 넘어서 8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슬래셔무비의 전형을 따른다. 피해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살인마가 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분명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믿지 않는다. 결정적인 증거, 즉 살인마가 눈앞에 도래하는 순간 피해자는 비로소 그 존재를 믿는다. 물론 이미 때는 너무 늦었지만.
 
영화를 신파라 한다. 맞는 말이다. 영화의 총성이 울릴 때마다 관객의 흐느끼는 소리가 극장을 채운다. 건전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슬픔과 분노를 참을 수 없다. 문제는 이 슬픔과 분노가 무엇을 향하냐다. 전장군과 그날의 그를 있게 한 박통은 영화의 첫 부분에 보이는 서너 줄의 자막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는 없고 사태만이 있다. 영화는 그토록 광주를 붙잡아서 관객에게 보이려하지만, 그렇기에 광주는 눈앞에서 사라진다. 살아남으려는 시민과 살인이 천성인 듯한 공수놈의 대립에서 구체적인 역사는 사라진다. 모두가 고통 받고, 선악은 너무나 분명하다. 영화의 추상적이면서도 분명한 대립구도 속에서 가해자는 저 너머로 사라지고 그저 피해자만 눈앞에서 신음한다. 영화제작진은 지식인을 배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한 그 해 5월의 광주를 그리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과물은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의 평범한 학살이야기일 뿐이다.
 
전장군에게 총애를 받았던 흥수(안성기扮)는 박정희 밑에서 대령까지 달은 인간이다. 감독은 실화에 근거를 뒀다고 변명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항상 중요한 것은 왜 그것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이다. 왜 그 쇼트가 그 순간에 그렇게 배열됐나. 왜 그 등장인물은 그런 행동을 취해야만 했는가. 도대체 왜 흥수인가. 왜 신애인가. 왜 민우(김상경扮)인가. 왜 진우(이준기扮)인가. 때로는 사실이 진실을 덮을 수도 있다.
 
나는 광주가 이 사회에 재현되면 아무도 나서지 않으리라는 주장에 반대한다. 그 때 그 곳에서 광주시청에 남는 쪽을 선택한 사람들이 남달리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기는 민주투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 그러나 그 평범한 사람들을 투사로 만드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는 것, 이러한 맥락보다 그 사람들의 면면에 주목하며 영웅화하는 행위는 같은 논리로 모든 책임을 가해자 몇몇의 특수한 행위에 국한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 말을 뒤집으면 자신이 어떤 사회적 맥락에 놓였는지 감지하지 못하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발버둥만 칠뿐이라는 말이 되기도 하겠다. 광주 시민들은 공수부대가 왔을 때 희생당한 영웅이 되었지만, 그 해 5월이 되기 전부터 영웅이었다면 광주에 공수부대가 왔을까 하는 우문이기도 하겠다.
 
항상 때늦은 후회만 해야 한다면 우리는 굳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영화의 의미가 감독이 지겹게 말하는 그 해 광주에 대해서 이 시대에 사는 한국인이 널리 알고, 그리하여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에 그친다면 광주에 대해서 누구나 떠들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셈이고, 이것이 확장되면 가해자는 사라지고 피해자만 남는 전형적인 오류만 범할 뿐이다. 이것은 정말 개 같은 짓이다. 요는 이 사회에서의 광주의 재현 앞에서 우리 역시 때늦은 후회를 언제까지 계속해야만 하느냐 여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인질 23명 중 2명이 죽었다. 21명의 소식은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남북정상회담에 밀려났다. 마치 그 자신이 이명박의 숨겨진 재산과 박근혜의 숨겨진 자식을 밀어냈듯이. 소말리아와 나이지리아에서 납치된 한국인들이 잊혀가듯이. 언론의 절대권력. 잊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 내가 일하는 곳에서 걸음으로 10분 거리에 뉴코아 강남점이 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뉴코아의 우유가 썩을까 걱정하면서 파업하는 년들 자식까지 평생 굶어죽도록 취직시키지 못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인간이 널렸다. 이것들의 자식은 강남점에서 다시 10분 거리에 있는 잔디가 깔린 학교에서 운동하며 자란다.

 

"죄의식의 소비." 130억 원의 제작비. 배급사는 CJ엔터테이먼트. 이 악다구니 속에서. "다시 '5월'과 '광주'가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유인택의 말이다. 부활한 5월의 광주는 그저 좀비인가. 답은 유인택이 하고 있다. " <꽃잎>... 결과는 관객으로부터 외면받았고 투자자는 큰 손실을 입었으며, 특히 광주는 실망했다." 이 영화를 통해 단언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 이제 광주마저 상품으로 내놓아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자본의 자신감. 분명 이 영화는 여전히 봐야만하는 영화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이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옷을 사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자본의 자신감을 다시 한 번 굳게 지지한다면, 이 영화는 모욕받아야만 한다.
 
내 어머니는 광주가 고향이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손을 꽉 잡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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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싸지 않아야 할 단상

세상에는 값싼 말 가지고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다만 표현은 값쌀 수 밖에 없다.

제 아무리 멋있는 대사를 읊조리던 간에 말이다.

 

다만 말에 내 진정이 얼마나 녹아 있는가.

내 진정이 얼마나 상대에게 전해질 수 있는 조건인가.

 

섣불리 함부로 값싸게 말하지 않아야 한다.

함부로 간이라도 빼 줄 수 있다고 감언이설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세상 일은 어떤 면에선 다 똑같다.

가벼움과 함께 진지함이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성과 실천이 함께 해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에겐 함께 살아가는 것, 삶을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그리고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하자고.

그로써 우리의 삶이 더 확장되고, 더 힘있고, 서로에게 평안함이 되기를 바란다.

 

함께 살아갈 우리에게 건투를 빌자.  

 

- 어느 새 내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버린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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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광주를 &quot;기념&quot;하는 영화, 화려한 휴가

광주는 기념되어야 할 것인가, 기억되어야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누군가가 물을 지도 모르겠다. 기념이 의미하는 것과 기억이 의미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쩌면 그다지 중요한 질문이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전적인 의미를 일단 찾아보자.

 

기념 : 어떤 뜻 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함.

기억 :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글 시작부터 말하건대 화려한 휴가가 광주를 재연해 냈다는 것은 솔직하게 말해서 "완전한" 거짓말에 다름 아니다. 일단 들불야학과 윤상원으로 표상되는 광주의 마지막 혁명 전사들을 왜곡 했고, 이로써 수습위원회와 투쟁위원회의 완전한 단절 과정을 없애버렸다. 화려한 휴가에서 보여주는 것은 광주 시민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당했는지에 대한 시각효과 뿐이다. 이요원이 분한 신애라는 간호사의 선문방송의 마지막 대사는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마세요" 이다. 잊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서 멈춘다면 기념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완전히 부합하는 대사이다.

 

 

하지만 영화 어디에서도 광주를 다시 떠올릴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감독은 그것을 본인의 몫으로 돌리는 것으로 마무리 함으로써 그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것들을 한계짓고 있는 듯 하다. 마지막 사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요원 홀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을 의미한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에서 멈춘다. 화려한 휴가는 광주라는 거대한 역사적 진실을 가지고 사람들의 신파를 자극하고, 광주를 잊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에서 이 영화의 의미를 마무리짓는다.

 

그래, 거기까지다.

 

하지만 80년 오월 광주가 거기에서 끝난 것이었을까?

 

실제로 80년 이후 매년 오월 마다 금남로청은 전쟁터로 돌변한다. 80년 오월 광주에 있었던 참극 이후, 광주는 죽음과도 같은 도시, 당시 새로 부임한 전남대 총장이 말했듯이 "우리의 역할은 살아남는 것 뿐" 이라는 것과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 당시 철저하게 버려졌던 광주의 진실은 전국적으로 펼쳐지는 학생운동의 대중화, 민중운동의 활성화로 살아나고, 광주 내부에서도 치열한 격전이 매년마다 벌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때 전남대의 오월대, 조선대의 녹두대라는 "광주 시민군의 후예"를 자칭하는 이들이 학생운동의 "전설" 로 등장하는 것이다. 변혁운동사에서 이들 만큼 투쟁을 주도하다가, 자신의 대중들을 마지막까지 사수하면서 지켜낼 수 있었던 체계적인 전투역량을 가진 자위대는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들 하지 않는가?


오월 광주의 비극성은 광주의 실례와, 이후 치열하게 전개되는 학생운동에서 증명되듯이 그것을 단지 기념시키는 역할로 마무리지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억되면서 언제나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 싸움으로 이끄는 역할을 했다. 비극성의 진실한 가치는 관객을 배우로 만들고, 구경꾼을 행위자로 변모시키는 데 있다 하지 않는가? 이것이 80년대 대중운동의 시작으로서의 광주의 역사적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대중들에게 단지 "기념" 으로 끝나지 않은 "기억" 으로서의 오월 광주의 의미이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라는 거창한 대중영화의 내용과, 지금의 정세가 맞물렸을 때, 이는 참으로 묘한 효과를 드러내는 것이다.

 

90년대 중반, 광주 사태는 "광주 민주화 운동" 으로 다시 재규정된다. (지배계급 바로 그들에 의해서!) 그리고 광주에 대한 보상을 말하는 가운데에서, 광주에 있었던 민중들의 목소리는 다시금 탈각되는 과정을 겪는다. 마치 그것으로 광주가 끝난 것인 양, 그렇게 말해지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수습위원회와 투쟁위원회에 얽힌 역사적 진실을 다시 들춰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에 "수습" 이라고 적힌 옷(?)을 걸친 목사나 지식인들이 "협상" 을 말하며 계엄군 철수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실제 역사 속에서 등장하는 2가지 세력,.  ‘시민수습대책위원회’와   ‘민주시민투쟁위원회’ 중 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해산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계엄군들의 협박에 굴종하고, 투쟁을 정리하려 노력했던 이들이다. 그리고 전남도청에서 마지막에 "조용히" 사라지는 이들이다.

 

하지만 노동 야학이었던 들불야학의 활동가들과 하층에 있던 노동자 계급들 바로 그들은 마지막까지 시민군으로서 도청을 사수하며 죽음을 맞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들은 죽음을 스스로 "선택" 했던 것이었을까?

 

그저 광주 시민들을 자위함으로써 지켜내기 위한, 그리고 감정적으로 들고 일어선 시민군들이었다면 그들은 죽음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이 광주의 투쟁 과정은 물론 계엄군들의 비상식적인 살인행위와 진압으로 일관되어 있지만 그것에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그 투쟁 과정에서 민중들이 실천했던 과정들을  한 번 제대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광주의 투쟁 과정에서 "투사회보" 가 발간된 것(이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저 유명한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라는 이요원의 방송 과정 역시도 역사적 사실이다. 이러한 투쟁을 조직하고 주도했던 분파가 바로 "민주시민투쟁위원회" 였고 그 핵심에 들불야학과 윤상원이라는 전사가 있었다. 이들이 시민군으로 남아 마지막까지 싸웠을 때 자신들은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 그들은 오히려 "저승에서 만납시다" 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긴 채 최후의 전투를 준비했던 이들이다.

 

윤상원은 "이대로 투쟁을 멈춘다면 우리는 역사 앞에 죄인이 됩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라고 마지막 발언을 한다. 그들은 광주라는 거대한 비극성을 신파로 격하시키지 않고 오히려 민중과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으로서, 진실을 남겨두기 위함으로써 그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다. 태백산맥에서 등장하는 "역사투쟁" 이라는 언어를 이럴 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투쟁에 기꺼이 동참했던 빈민과 노동자들, 최후의 시민군들은 또한 무엇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었던가.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수사를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닌 그 내용에 있다. 적어도 그 당시 광주는 시민들의 토론과 논쟁의 장이었으며, 누구 하나 상호 간의 억압이 아닌 우애로 맺어진 공동체의 역할을 했다. 한국 같이 지식인 엘리트주의가 심화되고, "실질적인 신분의 차이" 가 극심한 공간에서 투쟁으로 며칠이나마 존재했던 광주의 그 코뮨은 가난하고 못 가진 채 피억압자로 살아가던 그들에게는 목숨보다도 더 소중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하다면 광주의 이 투쟁을 단지 "계엄군들의 총칼에 의한 시민들의 비참한 죽음" 에 대한 "신파극" 으로 격하시키는 것은 전혀 역사에 진지한 자세가 아니다. 광주의 이 투쟁은 "역사 투쟁" 이었으며 살 만한 이들이나 살아남아 "시민의 민주주의와 목숨" 을 지켜내는 투쟁이 아니라 "민중의 민주주의" 를 건설하고, 지켜내고자 했던 투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전혀 오지 않은 "민중의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운동의 시작으로서 "오월 광주" 가 존재하는 것이다.

 

한데 90년대 중반 "광주 민주화 운동" 이 되면서 지금의 노무현이나 열린우리당 따위의 "386을 중심으로 한 개혁운동" 이라는 치들이 전면에 부상한다.(앞에서 말한 "수습위원회"의 부류들이라고 보아야 마땅한 이들) 이들은 자신들이 "광주의 후계자" 라는 식으로 광주의 혁명을 "그들의 성과" 로 치장하면서 겉으로 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고자 하는 허구적 수사를 내세우고, 역사 바로 세우기 따위의 기만을 행한다. 하지만 그들의 정치의 실제 내용으로서는 민중의 민주주의 따위는 어디론가 사라진 채 오직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을 말살하고 더욱 관료화된 체계를 완성하며 노동자 민중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한미 FTA와 비정규직 개악안을 통과시킨다.

 

죽어간 광주의 전사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적어도 이런 기만이 넘치는 거짓 민주주의 정치와, 죽어가는 노동자 민중의 삶이 아니었을 진대, 이들은 "광주의 비극은 이미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남김으로써 마땅히 기념되어야 할 것" 으로 정리해 버린 채 아직 끝나지 않은 광주로 시작한 "민중의 민주주의" 에 대한 투쟁을 "불법" 으로 간주하는 전형적인 "지배계급" 으로서의 압제자의 모습만을 드러낼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 세력이라 통칭되는 이들의 "기만" 에 민중들이 반응한다는 것일 것이다. 민중들에게 있어서 그들은 80년대에 운동에 참여했던 "진보적 엘리트들" 이며, 나쁜 의미로 말한다면 "빨갱이" 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확히 말해서 윤상원과 들불야학으로 표상되는 민주시민투쟁위원회가 아니라 오히려 전남도청에서 마지막에 조용히 사라진 "수습위원회" 와 같은 부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이 바라는 세상은 엘리트 시민의 상식이 모독받지 않는 사회였으며, 실질적인 가난과 불평등에 삶을 괴로움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던 민중들이 평등하고 자유로워지는 사회가 아니었다.

 

한데 영화 화려한 휴가는 이러한 민중들의 평등과 자유를 위한 투쟁과 수습위원회의 타협과 굴종을 그리지 않으며 윤상원의 비극을 묻어버린다. 묻혀져서는 안 될 것을 묻어버린 채 화려한 휴가 답게 진실로 화려하게 "광주의 신파를 잊지 말자" 라고 외치면서 영화를 정리해 버린다. 이 영화가 실로 기대받는 대중영화라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영화를 본 이들은 "광주로 시작되었던 민중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계속되고 있기에, 광주는 여전히 "기억" 되어야 한다" 라는 말을 머리에 남기지 못한 채 "남한의 역사에서 저런 비극도 있었구나" 라는 스쳐가는 하나의 생각으로 마무리할 뿐이다.

 

학살자의 후계자 "한나라당" 과 도청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의 기억을 민중에게서 삭제시키는 "열린우리당" 따위의 부류들이 의회정치 내부에서 권력투쟁을 벌이다가도 매년 5.18이 되면 광주로 와서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는 오월 광주를 "기념일" 로 격하시켜 버리면서 "자기네들이 광주의 정신을 진실로 "기념" 하는 후계자다" 라고 떠들고 있는 현실 속에서, 대중들이 오월 광주가 제기했던 "인민의 민주주의" 에 대한 기억을 잊어가는 현실 속에서, 아마도 이 화려한 휴가의 역할은 비참했던 광주의 역사를 "팔아넘겨서" 저 지배계급들의 "광주 기념 이데올로기"에 그대로 복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민중이 진실로 해방된 세계는 여전히도 건설되지 않았는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87년 체제와 신자유주의 독재의 관철로 점점 암울해져 가는 지금의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볼 때, 광주를 그저 신파극으로 "기념" 하는 이 화려한 휴가는 다이하드 따위의 폭력적인 오락영화보다도 훨씬 심란하고, 마음이 무거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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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30

이 시간에 피시방에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새롭기 그지 없지만, 여하튼 피시방에 와 있다. 그리고 양 옆에서 각자 즐거이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랜드 파업에 연대하고 있는 동지들은 지금쯤 찬바람(사실 더운 바람이겠지만)에 노숙을 결의하고, 실천하고 있겠지. 물론 투쟁 하나, 실천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태도가 그다지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좀 부끄럽긴 하다는 이야기이다.

 

논다. 논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놀이라는 것은 그것으로 즐거움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 그 자체로 정신이 정화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일명 카타르시스라는 것이 그것 아니던가? 그리고 카타르시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무아다. 자기 자신을 잊는 것이다. 그 자신을 잊고 대상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치에 몰입하면서 자신의 욕망의 형태를 정화시켜나가는 것을 카타르시스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 질문에 부딪힌다. 나는 도대체 무엇으로 그 카타르시스, 진짜 즐거움을 찾고 있는가?

 

양 옆에 있는 사람들은 게임으로 카타르시스를 찾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렇다, 이것은 게임에 몰두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아닌 진이라는 메카닉이 되고 짐이 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서 탈각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탈각한 결과 그 열정이 그대로 투사되고, 그 효과로 그 자신에게 남아 있는 욕망의 찌꺼기들을 카타르시스 시켜내는 결과를 낳는 것일까? 과거 5~6년 전 게임을 열심히 해 본 적이 있었지만, 아마도 그렇게까지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 나에게 논다는 것이 무엇일까? 술을 마시건, 노래를 부르건, 무엇을 하건 간에 논다는 것은 사실 나 자신에게 비생산적인 행위로 간주되어 왔다. 그 비생산적인 행위라는 것은 스스로를 변화발전 시키는 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오지 않은 미래와 이데아를 설정하는 식의 관념을 실천한다는 것은 궤변이겠지만, 적어도 어떠한 지향점은 가지고 그 자신의 변혁과 세계의 변혁을 고민할 터이다. 속칭 지금의 나에게 논다는 어떠한 행위들 자체는 혁명가로서의 나 자신을 만드는 것이 아닌 것이기에 나에게 그다지 커다란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것일게다.

 

반면, 작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나 역시도 하나의 대중일 터이고, 지금 옆에 앉아서 게임을 즐기는 이들 역시 한 명의 대중일 터이다. 하다면 이 대중들의 작은 취향 하나 마저 나는 맞추지 못하고 있는 꼴이 된다. 이게 대중활동가의 자세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럴까?

 

이래저래 복잡하기 짝없는 인증절차에 신경질이 난 나머지 게임을 해 보려다가도 때려쳤지만, 그래도 그런 건 참고 했어야 할까?

 

여하튼 난 지금 이렇게 재미없는 글이나 적고 있는 것이고, 딱히 몰입하고 있는 형세는 아니어 보인다.

 

조만간 접고 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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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 떠남

떠남
 

“그리고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를 지나가다가 보니, 시몬과 시몬의 형제 안드레아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부들이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내 뒤를 따르시오. 당신들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소" 하고 말했다. 그러자 즉시 그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그를 따랐다.”


성서에서 예수가 첫 제자를 구하는 장면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장면이 예수의 신비능력을 드러내는 장면이라고도 하지만 예수와 두 사람이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라고 적혀있진 않다. 말하자면 이 장면은 마치 영화처럼 앞의 여러 장면이 생략되어 있다.


세례요한이 체포되고 예수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시몬(베드로)과 안드레아 형제는 예수가 고심 끝에 고른 첫 동지들이다. 갈릴리의 수많은 청년들 가운데 유력한 메시아 감으로 지목되던 예수에게서 선택된 두 사람은 얼마나 기쁘고 벅찼을까. 그러나 막상 예수와 함께 떠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 식구들 먹고사는 일이 막막해지는데다 밝은 미래가 보장되기는커녕 십중팔구 헤롯 안티파스의 졸개나 로마군에 잡혀 죽임을 당하기 십상인 캄캄한 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했던 날 예수가 다가오자 “그물을 버려두고” 떠난다.


온갖 영상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초인적인 영웅담에 익숙한 우리에게 그들의 선택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 장면을 소파에 기대앉아 맥주를 홀짝거리며 구경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지금 그런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우리 가운데 몇이나 떠날 수 있을까? 우리가 비루한 일상을 박차고 이상과 삶을 일치시키는 초인적인 영웅담을 즐기는 이유는 실은 우리가 그 비루한 일상의 노예로 살기 때문이다. 인문주의니 예술이니 영성이니 온갖 고급한 정신의 액세서리들을 주렁주렁 달고 사는 우리가 가진 삶의 철학이란 실은 두어 가지다. ‘어차피 자본주의 사회인데’ ‘맞는 이야기지만 현실적이지 않아서’


그래서 우리는 살아있는 시체와 같고 세상은 거대한 공동묘지와 같다. 떠남이란 단지 공간이나 시간의 이동이 아니다. 떠남이 그런 거라면 머리 길게 묶고 일 년에 절반은 인도나 히말라야에 머물며 떠남에 관한 책들(싸구려 명상서적들)을 써서 통장잔고를 늘이는 사람이야말로, 욕망과 집착으로 범벅이 된 삶에서 도리 없이 쌓여진 스트레스를 이따금 사람의 흔적이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서 날려버리고 다시 주식과 부동산 시세와 아이 시험 성적 따위를 뼈대로 하는 욕망과 집착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사람이야말로 떠남의 본질에 접근한 사람일 것이다.


그건 떠남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가장 추악한 형태의 집착일 뿐이다. 떠남은 크고 무거운 게 아니다. 한없이 사소해진 우리 삶만큼이나 작은 떠남의 선택들이 우리 일상에 깔려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때론 하루에도 몇 번씩 떠남에 대해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의 우리는 우리가 고수하는 예의 삶의 두어 가지 철학에 의지하여 떠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로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가짜 떠남, 떠나지 않기 위한 떠남, 떠남 장사꾼들은 고상하게 취급되는 반면 진짜 떠나는 사람들은 아주 쉽게 비웃음과 경멸의 대상이 된다. 살아있는 시체들은 떠나는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어리석은, 비현실적인, 인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런 곤란과 모멸의 아수라장을 뚫고 떠날 때 우리는 비로소 얼굴에 빛을 내며 고백하게 된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까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몰라.’ 우리는 떠남에서 작은 열반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시체들로 가득한 거대한 공동묘지는 떠나는 사람들에 의해서 조금씩 달라진다. 떠남은 나를 잃는 게 아니다. 떠남은 우리의 정신과 영혼의 더께들, 우리를 살아있는 시체로 만드는 온갖 부질없는 집착과 욕망, 기득권, 물질적 소유 따위들에서 본디 나를 살려내는 일이다. 떠남은 실은 돌아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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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간만에 김규항 씨의 글이 심금을 울렸다.

 

나도, 떠나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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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3

강원도에 갔다.

 

그곳에 동지가 있었고 나는 한 번은 꼭 내가 만나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철문을 열고 들어서서 약간 기다려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삶을 대변하는 옷을 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그 삶은 나도 이미 한 번 경험했던 삶의 형태이다.

 

그 삶의 형태들은 어딜 가나 비슷하다.

 

아무 생각없이 많이 웃었고 이야기를 했다.

 

헤어질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다가왔다.

 

철문을 열고 나와서, 버스를 기다렸다.

 

뒤를 돌아보았다.

 

철문 뒤에 서서 내가 가는 모습을 웃으며 보는 녀석이 있었다.

 

별 것 아닌 모습이었고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울컥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그를 만나러 온 일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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