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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긴 것이 있는가?

제대하고 거의 반년, 사실 제대한 기간과 활동 기간은 거의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

 

3월. 대학생으로 돌아오고 나서 대학 사회를 보는 기분은 이래저래 남다르다. 특히 우리가 속한 공간을 보는 기분이 남다르다. 이래저래 씁쓸한 기분으로 새학기를 맞이하고 있다.

 

아직 활동할 시간이 남았지만 벌써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고 있다. 동기들을 마지막으로 내 후배들 중에서 활동을 '결의' 하고 있는 후배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아무도 결의하고 있지 않다. 정말, 아무도. 그리고 결의했다고 하더라도, 경험도 이론도 모든 것이 미약하다. 홀로 남겨두기 전에 단련시킬 수 밖에 없는데, 그 후배는 외로움이라는 숙명을 안고 가야 한다.

 

물론 이 공간에서 운동을 고민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수반한다. 동지를 만들려고 그렇게 노력하는 이유는 그래도 외롭게 운동하지는 않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녀석은 외롭고, 그렇게 외롭게 운동했을 때 놈은 지금 선배들에 비해서 두 배, 세 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그 힘든 과정을 버텨낼 환경을 준다는 것은 선배로서 참으로 미안한 일인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지를 잘 모르겠다. 만나야 할 대중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나는 참 못난 선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떠나갔을 때, 녀석이 외롭게 운동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은데.

 

참, 반년 간 해놓은 게 없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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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의 명언

가끔씩 녀석은 내 심금을 울리는 말을 할 때가 있다.

 

"답답하면 차라리 다행이죠. 허무해지면 끝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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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대학생이 되는 길로

4년 만에 대학생으로 돌아간다. 휴학하고 활동을 결의했지만 이도 저도 제대로 하기 힘든 조건들이 닥쳤던 2003년, 군에 있었던 2004년부터 2006년 가을까지의 시간, 그리고 또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활동을 하고 자신의 삶을 꾸려가려 하는 2007년.  여하튼, 4년 만의 대학생으로의 복귀.

 

일주일이 못 되어 스러져버릴 되도 않는 설레임.

 

언제나 그랬듯이, 대학이라는 곳은 전혀 나를 즐겁게 만들어 주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정말 이건 확실한 것 같다. 아마도, 활동 공간이라고 여겨지는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그 어떤 공간도 나에겐 실망만을 주겠지. 아마도, 정말 확실하게.

 

벌써 대학에선 그렇게 노회한 나이가 되고 말았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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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

피곤하다. 피곤. 피곤.

 

집에 들어가서 자야 하는데 작업은 완료한 게 없고 -_-;

 

에라 모르겠다. 인생이야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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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기다리며??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 시험공부 따위는 단 하나도 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만 줄창 앉고 책이나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집에 갈까 여기서 그냥 잘까를 고민하고 있다. 1,2월의 내 삶이란 타율이던 자율이던 간에 그렇게 성실하지만은 않았고 그 여파는 지금도 이어진다. 그래도 이번 주는 전반적으로 좀 열심히 산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좌파 학생운동을 고민하고 있는 나와 어학원을 다니는 예비 졸업생으로서의 내가 중첩되면서 스스로 살아감에 있어서 생각보다 여러 가지 버거움들이 도출되고 있는데, 이러한 버거움들을 버거움으로 끝내고 있다는 것이 나의 오류이다. 무엇을 하던 즐거워야 하는데 나 스스로 창조적인 즐거움들을 점점 상대화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의 삶을 소모적인 즐거움들을 채워가는 것이 아닐까.

 

요즘 나의 고민은 내가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 혓바닥이 적정선에서 돌아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어떻게 나의 이야기를 전달할 지, 그리고 어떤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을지를 판단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상대적으로 내가 따뜻하고 좋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하나의 무능력이다. 삶의 이야기 속에서 운동의 이야기가 도출될 수 있고 나의 삶을 이야기해 주는 것도 상대방의 삶을 듣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일 텐데 그러한 것이 원활하지 못하기에 내 스스로 그들과 나의 삶의 접합점을 만들지 못한 채 집회 현장에 함께 했던 안 했던 간에 사실 관계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파편적인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스스로에 대한 작은 실망들과 더불어서 학생운동을 넘어서서 가야 할 여러 가지 길들에 대한 작은 두려움 역시도 스스로를 잠식하는 것이다. 문제는 삶이고, 나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내가 하고 싶어하며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지금 이 공간에서 학생운동이라는 하나의 과제를 부여잡고 있는 것이 중요한 일일까? 그러고 보면 비케이는 대단한 놈이 아닐 수 없다. 녀석은 그렇게 게으르기 그지 없지만 내가 없었던 3년 간 건대 학생운동을 지켜왔던 것이다. 녀석도 나와 같은 그런 작은 실망을 수도 없이 겪지 않았을까.

 

자료집도 만들 것도 수없이 많은데 도대체가 영 뭔가를 할 수가 없다. 내가 뭔가 잡고 가는 것들이 늘어날 수록 요즘엔 부담만 늘어나고 있다.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일들이다.

 

이거 원 빨리 설날 돼서 본가에라도 갔다 와야지 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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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모르는가?

나는 알고 있다.

 

무언가 잘 안 된다고 느낄 때 그 우울함에 빠져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의 차이를 말했듯이.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어떤 과제가 던져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답에 대해서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있을 뿐이기에, 너도, 나도, 우리도 모두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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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서 돌아와 본 뉴스를 보면서 나는 괜히 눈물이 났다

오늘 참세상에서 본 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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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를 내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던 70대 할머니가 목을 매 숨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개헌을 부르짖던 11일 일이다.
 

 

11일 오후 4시경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한 주택에서 명 모 씨(78)가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함께 사는 막내아들 정 모 씨(41)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명 씨가 수개월 째 월세와 공과금이 밀리는 등 극심한 생활고에 못 이겨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아들 정 씨는 근근이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막노동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나, 최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수개월 째 월세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명 씨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대상자가 부양의무자로부터 실질적인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의 일부를 대상자의 소득으로 간주해 빈민들을 수급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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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실천단이라고, 명동에서 선전전이랍시고 같이 하지만, 늘 그런 집회를 다녀온 다음에 이런 뉴스들을 볼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속이 부글 부글 끓는다.
 
금요일 기륭전자 500일 문화제를 가서 초라한 대오 속에서 "너희들 이렇게 안 돌아다니게 하려고 우리가 싸우는 거야" 라고 말씀하시던 이름모를 우리의 어머니뻘 되는 기륭전자 노동자분의 말씀이 가슴에 울려서 마음이 아프고, 또 아픈 것이다.
 
일용직 노동자의 인생은, 그 어머니의 인생은, 왜 바닥이어야 하는가. 명동 거리에서 애인 팔짱 끼며 희희낙락 돌아다니고 제 부모 잘 만나서 과외 받아 대학가고 등록금 따위 자기 부모가 내주는 거니까 나랑 상관없다고 떠드는 대학생들 따위보다는 그들이 더 잘 살아야 할 당위가 있지 않을까. 
 
제가 아무리 공부를 했건 사시에 붙었건 뭐건 간에 이 사회에서 사회적 성원으로서 사는 사람이라면, 그 속칭 '성공한 놈' 이 '성공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 들 보다 사회적 의무를 다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그들이 하는 일 자체가 그들이 존경받아야 할 이유도, 더 잘 살아야 할 이유도 될 수 없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사는 가가 존경받아야 할 가치인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성원으로서 의무를 다한다면 최소한의 인간의 품위를 지키면서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최소한.
 
사람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이런 세상이어서는 안 된다. 이미 오래된 이야기지만, 언제나  비슷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아프고 쓰린 일이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일은 제발 영화 속에서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운동을 즐겁게 하자, 즐겁게 하자, 라고들 이야기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이 무겁기 그지 없어서. 가끔씩 추운 현장의 사람들을 만날 때, 이런 뉴스를 이런 동영상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고 아파서. 그래서, 가끔은. 가끔은 견디기 힘들어 질 때가 있다. 나의 실천으로 규정되는 그러나 나의 관념속에 존재하는 나의 존재와 현실 사이의 모순 때문일 것이다. 집회에서 연대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나 자신의 모순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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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는 되지 마라!

과거의 운동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외치는 순간, 그것이 현재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실천이 동반되지 않는 이상 그것으로써 이미 스스로에 대한 합리화가 시작된다.

 

혁명이라는 것이 만일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았더라도, 혁명이라는 것을 전제하지 않는 좌파는 좌파가 아니다. 그리고 혁명이라는 것을 전제할 때 좌파의 운동이라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자본과 대적하고 싸우고 부딪히는 것이다.

 

혁명이라는 것의 고난을 온 몸으로 받아 안는 활동가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그들이 싸우고 있는 곳에서 내가 만일 그 현장에서 그 동지들과 함께 찬바람 속에서 맞서 싸우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감히 그들을 욕되게 하는 언어도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아주 약간이라도, 스스로 좌파로 살았던 기억이 존재하고 있는 한, 내가 해야 할 일은 좌파로 살기 위하여 나 스스로를 조직해야 하는 것이다.

 

자본가와 빼앗기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노예의 근성을 제 온 몸으로 실천하는 이들이 세상에는 차고 넘친다. 적어도 내 입에 풀칠하기 참 더러워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더라도, 그 노예근성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것을 올바르다고 감히 역설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영원할 것 같다고 믿어서도 안 된다. 과연 영원할 것 같나.

 

그렇게 믿는 그들에게 가감없이 던져줄 말이 있다.

지랄하지 마라! 혁명의 그 날에 찌질하게 징징대면서 또다른 노예가 될 생각일랑 때려쳐라! 적어도 사람은 못되고 혁명가는 못되더라도, 노예는 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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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난하던 26살의 12월

실로 오래간만에 블로그를 돌아보는 지금 이 시간, 나는 시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라면이라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감지덕지 해야 할 정도로 나는 지금 이 순간 돈이 없다. 그러나 돈이 있고 없음 자체보다도, 내가 지금 가난하게 느끼는 것은 내 마음이겠다.

 

쓸데없이 센치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노사관계 로드맵의 통과를 알았을 때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내가 집회 현장에서 스쳐가듯 만났던 비정규직 노동자들 모두의 비통한 얼굴보다도, 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나는 그 어떤 의미에서도 제대로 된 후배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나는 어떤 의미에서도 제대로 살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나를 필요로 했던 사람이 있었던 시절, 나는 상처 받기도 주기도 싫어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피하려 했다. 그 사람은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나에게 맞추어야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길을 선택했어도, 그 사람이 상처받은 것은 똑같다.

 

이 학교에서 동지라고 말할 수 있는 몇 명이 있다. 어떻든 지금 이 순간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내 스스로가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예전에 했던 실수를 그대로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일에 치여 살려고 노력했다. 일하지 않는 단 하나의 시간은 내 사적인 공부던, 아니면 이론을 쌓는 과정으로 삼건 여유있어 보이는 그 어떤 작태도 내 삶의 움직임 그 자체를 멈춤으로서 무용해지는 것 같은 모든 것이 싫었다. 하지만 그 다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채, 일단의 강박관념이 남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예전에 그랬듯, 그래서 나는 인간적인 사람이 되지 못했고 그 당시 함께 했던 동지에게 냉정하기 그지없는 인간으로 인식된 것이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에 아주 작은 항거를 하려고 할 때, 내 마음이 가난하다면 그 항거는 가난한 항거로 밖에 자리매김 되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를 내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난하게 느껴지는 내 마음부터 조금 풍족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가난하던 26살의 12월아, 이제는 가난하지 않을 수 있도록 지금의 가난한 마음을 잊을 수 있도록, 그래서 어느 샌가 깨달았을 때 더 이상 내 마음이 가난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조금씩 조금씩 너를 보내려 한다. 너와 이별을 준비하려 한다.

 

 

문제는 추상에서 구체로, 도대체 어떻게, 라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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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엽 선배의 시

파업집회 하지 말고 진탕 술 먹자

-파견법 국회통과를 기념한 축배를 들어라


/오 도 엽



파업을 하면 경제가 어렵다

이제 파업을 하지말자

집회를 하면 교통이 마비된다

이제 집회를 하지말자

비정규직 살리는 법 통과됐으니

이제 모두 비정규직이 되자

모두 비정규직 되는 걸 기념해

술이나 진탕 먹자

단 한사람도 빠지지 말고

온 나라 가득 비정규직 축배가 넘치도록

술병이 날 때까지

다음날 꼼짝 할 수 없도록

파업을 조직할 시간에

술을 먹고 한겨울 거리를 헤매다 감기가 걸리고

집회에서 촛불 바람막이가 된 종이컵에

술 넘치도록 따라 위장병에 걸리도록

반드시 다음날 일터에 가지 못할 지경에 빠지도록


파업을 하면 경제가 어렵다

이제 파업을 하지말자

집회를 하면 교통이 마비된다

이제 집회를 하지말자

진탕 술 퍼먹고

모두 집에서 앓아눕자

지하철 노동자 술병이 나 지하철이 멈추고

병원 노동자도 술병이 나 술병 난 사람 치료도 못하고

버스 택시 노동자도 술병이 나 거리가 한산하게

경제 어렵게 만드는 파업하지 말고

교통 마비시키는 집회하지 말고


비정규직 축배 들다 탈이나

공장에 갈수 없어 공장이 서고

은행에 갈수 없어 은행이 멈추고

도시가스 공급 멈춰 추위에 떨고

발전이 멈춰 암흑에 빠지고

거리엔 쓰레기가 넘치고

교사가 아프니 아이들은 거리를 떠돌고

공무원이 아프니 관공서가 꼼짝 못하게

기쁜 비정규직 세상 진탕 술을 먹자


무늬만 총파업 하지 말고

지치게 하는 집회랑 집어치고

모두가 미치도록 든 축배 진탕 퍼먹고

하루만

단 하루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술병이 나

병이 나

꼼짝없이 앓아누워

세상을 멈추고

단 하루만이라도

노동자 앓아누우니

세상도 앓아눕는다는 걸

끔찍이 경제를 챙기는 자본에게

끔찍이 국민을 생각하는 국회의원에게

보여주자

보여주자

단 하루만

앓아누운 노동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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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본 적도, 이야기 해 본 적도 없는 그러나 정말로 훌륭하다고 느껴지는 동아리 선배. 하지만, 부끄러워서 만나 볼 엄두도 못 나게 되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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