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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한 지 2주 정도. 그 간 움직이고 노력했던 일단의 성과이자 새로운 시작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 결코 두려워 말고 움직여야 한다.
이제까지는 장난일 뿐이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단 한 시도, 쉬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재건은 이룰 수 없고 내 스스로도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기술이 너무 부족하다. 더 많은 기술을, 더 많은 이론을, 더 많은 열정과 더 많은 조직력을 필요로 한다.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주 약간, 육체적으로는 피로하지만, 그래도 정말 최선을 다해서.
단 일푼의 변명도 없이 그렇게 가련다.
#1 안 될 때는 한 번 쉬고 좀 돌아가기도 하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인터넷으로 고스톱을 치는 일이 어머니의 작은 일상의 부분이 되어버렸다. 고스톱 포카 훌라 등 카드로 하는 놀이, 특히 사이버 머니고 나발이고 간에 돈 놓고 하는 모든 종류의 놀이에 통 관심이 없는 나 조차도 옆에서 한 두번 본 게 아니다 보니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답시고 어느 정도는 패를 보고 이건 뭐고 저건 뭐겠군 하는 얄팍한 짐작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가 시작한 이 인터넷 고스톱은 어느 새 아버지까지도 여파를 미쳐서 항상 내가 바깥에서 공부를 하건 술을 마셨건 간에 뭔가를 하고 저녁에 들어오면 거의 매일 같이 켜져 있는 컴퓨터에 고스톱 화면이 쫙 펼쳐져 있기 마련이다.
오늘은 보니까 판이 안 풀리는 날이다. 세 명이서 고스톱 치고 있으려니 어머니는 무슨 수를 써도 잃기만 한다. 패가 안 나온다고 아버지와 함께 신경이 날카로워지신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기서 날라가는 돈이 진짜 돈이었다면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오싹해진다. 얼마 전 타짜를 보고 나니까 괜스럽게 공포심이 더 하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 때는 하시면 하시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었는데 오늘은 뭔가 그만 하시게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타짜를 본 지가 언젠데 왜 오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말이냐 -
"도박에서는 원래 이렇게 안 될 때는 한 번 쉬어가야 된다던데요."
"맞는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그만 하시는 게 어떨까요."
"아들, 근데 그게 어렵다. 되고 안 되고는 다 때가 있는데 지금도 때를 놓쳤으니까 이러고 있지. 봐봐, 갑자기 지금 또 잘 되기 시작했다."
그 말대로 갑자기 패가 또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쓰리고 피박 광박 다 먹이면서 한 큐에 54만원의 사이버 머니가 굴러들어온다. 그렇게 몇 판 따자 아버지가 씨익 웃으면서 말씀하신다.
"도박 만이 아니라 인생사가 다 그렇다. 원래 뭐가 안 된다 싶고 어렵다 싶으면 한 번 쉬고 좀 돌아가야 돼. 물론 지금 우리야 게임이고 운이 또 돌아와서 지금 또 땄지만 인생은 그런 식으론 안 돌아간다."
#2 넌 나를 배신해서 죽는 게 아니라 너 자신을 배신해서 죽는 거야
나는 참 무협지를 좋아한다. 정말이지, 이건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지 솔찮게 무협지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이 무협지라는 게 말 그대로의 팝콘 문학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세상에 있는 뭐라도 배울 게 한 가지 쯤 있다는 데 남들 다 쓸데 없다 해도 나는 무협지에서 가끔은 인생의 도리도 생각해 보게 되곤 하는 것이다.
천뢰무한, 이라는 무협지를 보다가 주인공을 배신한 인물의 대화는 그렇게 인상이 깊었다. 무슨 글이건 간에 읽고 생각을 다시 해 볼 수 있는 거리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가 죽는 이유? 당신을 배신했기 때문이 아니오?"
"아니, 틀렸소. 당신이 나를 배신한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소."
"그럼 무슨 이유요?"
"당신은 자기 자신을 배신했소. 그게 중요한 것이오."
"내 자신?"
"당신이 처음 강호로 나올 때의 마음을 생각해 보시오."
처음 강호에 출도할 때 강호 정기를 세우는 대협객이 되고자 했던 마음은 어디론가 떠나고 살다 보니 돈과 여자에만 탐닉하고 사는 꼴이야 말로 스스로를 배신한 것 아니던가, 라는 주인공의 질타에 정말이지 순순히 납득하고 죽는 배신자도 배신자 지만 - 아무리 그래도 저런 게 칼맞아 죽을 이유라니 - 어쨌든 지금의 나로서는 마음 속에 담고 갈 만한 그런 한 토막 글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다 이루었다.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오는 뉴스 메일 따위도 꼬박 꼬박 읽어주는 편인데 웬 가을도서 추천이 날라왔다. 그냥 대부분의 책이 그다지 눈에 안 들어 오다가 갑자기 <최후의 유혹> 이라는 소설책이 눈에 띄었다.
"유신 말기, 대학 교정은 전경과 사복 형사들로 그득했다. 스무 살 초입 우리의 낮은 죽음처럼 음산했다. 저녁이 오면 막걸리집과 자취방은 담배 연기와 빈 술병으로 그들먹했다. 철학을 얘기하고, 시절을 얘기하고, 농촌과 공장을 얘기했다. 그리고 각자의 결심을 얘기했다."
아마도 서평 시작이 요걸로 시작해서 그럴 게다. 지금은 물론 유신 말기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이 비스무리하게 20대 초반의 시간을 보냈기에 그 서평 시작이 눈에 띄었을 게다. 알고 보니까 예수의 일생에 대한 일종의 전기 소설 같다.
그리고 마지막 유혹.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라”는 로마 병사의 말. 아직도 늦지 않은 서른세 살 나이. 굳이 십자가의 ‘쓴잔’을 마실 것 없이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살아 고종명하는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유혹을 이겨냈기에 “다 이루었다”는 말로 생을 마칠 수 있었다. 그 한마디에 그의 서른세 해 전 생애가 압축돼 있다. 치열하게 살았기에 할 수 있는 말.
예수는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논해지는 자신의 희생에 대한 일종의 카타르시스 때문에 그렇게 다 이루었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것은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갔느냐의 문제라고 말하는 듯 해서, 갑자기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아들로서 인민과 의를 위해서 살아갔던 젊은이의 인생을 말이다. 물론 책 한 두권 가지고 뭘 논할 수 있겠냐만은, 그래도 읽어보고 생각해 보고 약간은 그대로 추종해 보는 것도 괜찮은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뭘 어떻게 살겠다고 대단한 자부심과 대단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어찌 되었건 정말이지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항상 다짐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한 권쯤 쓸만한 소설책을 증정해도 나쁘지는 않지 않을까.
#4 쓸데없이 센치해 질 필요도 없다
별의 별 생각을 다 하다 보니까 벌써 제대한 지도 20일 쯤 된 것 같은데, 역시 고민만 해봤자 나아질 일은 단 한 푼도 없다. 주변의 소리들에 다 신경쓰다가는 제 명에 살지도 못할 일이다. 일단은 결정내린 그대로, 정말이지 뭐든지 빡씨게 살아보는 게 능사가 아닐까. 적어도 일단 눈 앞에 닥친 일들 부터 시작해 볼 일이다.
자, 일단 뭐든지 잘 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격려나 한 방 때려야 겠다. 이스, 넌 지금 잘 하고 있어. 괜한 자기 최면이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정말로 잘 하고 있고 새로이 다시 시작하는 모든 일 다 잘 할 수 있다고. 정말로. 자기가 하겠다고 다짐한 것들에 의심 따위 품지 말라고!
어제 방을 잡았다. 그곳이 이제 서울에서 내가 생활을 꾸려야 할 내 집이다. 물론 그 방에서 할 것이라고는 사실상 짐짝 놔두는 것과 잠자는 것 밖에는 없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밖에 못할 방이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가장 싼 방이다. 정말로. 현실적으로 내게 그 이상의 방은 필요하지도 않다.
역시나 이것도 저것도 상황은 어렵다. 단지 제대를 했기 때문에 무서운 것 만은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상의 무서움이 정말 피부로 와닿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 무서운 세상에서 몸부림 치는 수 밖에 없다. 자기의 존재적 가치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럴 수 밖에 없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고 했지만 의식이 존재를 배신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내가 학생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의식이 존재를 배신함으로 인하여 자본의 욕망을 담지하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대학 시절이 끝나서 사회로 나갔을 때에도 적어도 자본이 욕망하는 대로 강요하는 생각들을 내 생각인양 하면서 그대로 적응을 잘 하고 사는 것이 똑똑한 인간의 길이라며 강변하는 인간이 된다면 도대체 얼마나 비참한 일일까.
정말 무엇이던 열심히 하면서 살아야 한다.
며칠 전 북한 핵이 터지고 나서 계속해서 일간지 1면은 북핵 문제가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북핵을 득이라고 말할 만한 지점은 내가 생각할 때 단 한 가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민족주의 운동을 하고 있는 동지들의 생각에는 어떤 지 모르겠지만 좌파진영에는 결코 유익하지 않다. 북핵의 문제는 적어도 세 가지의 직격탄을 좌파 운동에 때려버리고 말았다.
하나는 원칙적으로 핵을 반대해야 하는 것이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입장이 모호해진 좌파 운동의 대중적 입장에 대한 난감함이다. 북핵의 문제가 미국의 외교적 압박에 의해서 펼쳐진 정치적 문제의 연장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다. 이것도 저것도 비판하려니 전선이 흐려지는 게 당연하다. 대자보건 성명서건 무엇을 내놓던 북한의 핵이 동아시아 핵과 전쟁 정세에 해악을 끼치는 동시에 미국의 핵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가 원칙임이 당연하다.
하지만 제대로 읽어보지 않는다면 이러한 성명서는 북한의 옹호론자로 오인받을 가능성이 농후하여 대중들의 분노를 사기 쉽다.(부산대학교 도서관에서 다함께의 대자보를 보는 학생들의 말이 이렇다) 분명히 원칙을 말했지만 설명이 너무 많이 필요한 현실이 문제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명들을 제대로 읽었다 치자. 차라리 북한이 핵을 쏘았기 때문에 핵 보유를 통한 힘의 논리에서 북한이 열세를 벗어났다고 말하는 우파적인 동지들이 입장이 더 명확하고 실제로 대중들도 차라리 그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깔려 있다. 좌파 진영의 물리적 파괴력이나 실력이 저하되어 버린 지금 "원칙의 제기" 가 "양비론" 으로 둔갑되어버릴 가능성과 더불어서 또다시 나이브한 세력으로 밖에는 읽히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점이 참으로 빌어먹을 현실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생각 외로 운동진영 사이에서 이 일에 대해서 통일된 시각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반전 반핵의 원칙이 이 북핵 정세 앞에서 운동진영이 통일적으로 제기되지 않아 보이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앞에서 이야기했지만 차라리 잘됐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오히려 전쟁위협을 경감시켰다고 말하는 민노당의 활동가 모 씨의 발언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국의 핵우산이나 핵전쟁 위협에 대해서 반대하는 반전반핵의 동아시아에서의 투쟁의 일단 목표는 남한도 북한도 일본도 중국도 핵을 보유할 가능성이 농후해짐에 따라서 가중되는 위협적 정세의 저지이다. 어느 쪽이 되었건 핵을 한 국가라도 더 보유하고 실험까지 감으로 인해서 그만큼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의 핵무장을 가속화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게 되어버린 것이다.
세 번째 직격탄은 북핵으로 인해서 한미 동맹의 강화를 외치는 목소리와 대북 정책의 강경화를 외치는 세력에게 기를 살려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현재적 투쟁 과제의 쟁취 여부 조차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좌파 운동 만이 아니라 전체 운동진영의 고민이 가속될 부분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이다.
한미 동맹의 강화를 외치는 목소리의 대표격인 한나라당이 지금 국회에서 기고만장하게 날뛰고 있는 데다가 - 북핵 비상 대책을 위해 국회 소집이 되었는데 한나라당 때문에 몇 시간이나 연기되어버린 꼴이라니 이 지배계급들은 어찌 이리 노골적이고 또한 저능한가. - 이것이 전체 운동 진영에서 강고하게 투쟁해야 하는 한미FTA 문제에 있어서도 영향을 줄 것이 다분하고 더군다나 남한의 군사화 추진을 가속화 시킬 가능성이 자명함에 따라서 정세는 점점 더 엄혹해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생각 나는 대로 적었는데 여하튼 단 한 가지도 좌파 진영에게 그리고 최종적으로 남한 인민에게 유리한 일이라곤 없는 이 북핵 정세라는 것이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골치 아픈 일이다.
:::추신:::
제대로 생각을 해 보기 전에 북핵 때문에 얼마 전에 제대했는데 또 군대로 끌려가야 하나, 라는 어이없는 본능적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군대를 제대한 보통 남성들은 아마도 평소에 이 비슷한 문제가 터지면 그런 두려움을 늘 느끼고 살지 않았겠냐, 라는 생각이 들자 생각만 해도 오싹해 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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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화관제
-서홍관
모른다고 하라.
네가 눈뜨고 본 일을
끝내 모른다고 하라.
등화관제의 어둠속이어서
한 길 앞도 분간 못한 채
먼지만 꿈속같이 일어
불 끄라는 고함소리에
이불 속에 엎드려 고개만 처박다가
입과 코가 막히고
눈과 귀가 가리워져서
누이가 도적에게 끌려간 것도 모르고
애비가 매맞고 피흘리는 것도 모르고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신음소리 비명소리와
멀리서 다그치는
붉은 빛 구조신호를
어둠을 찢는 듯한 호루라기 소리에 기가 질려
아아 우리는 끝내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하라.
영리하지 못한 나는 매일 처럼 주변과 사소한 불화를 일으키고 아버지는 내게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하라 매일처럼 말씀하신다. 가난하게 살아오지 못한 내가 진실을 말할 자격도 들을 자격도 없다 하며 거짓된 세상을 등화관제 속에 보지 않는 것이 영리한 길이라고 매일처럼 그렇게, 우려와 걱정과 내 아들이 빨갱이가 되는 꼴을 못 보겠다는 분노를 섞어서, 그렇게.
운동에 대해서 고민했던 청년이라면 거의 누구나 다 겪는 일이지만 그 보편적인 것이라도 내 문제가 되면 안타깝고, 그래서 아프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중요한 거니까.
어쨌든 한미FTA는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초유의 화제고 협상은 3차 정도까지 진행을 시켰다. 여기저기서 반대론이 넘쳐나지만 군대에서 매일 보던 중앙일보는 노무현 정부가 집권 후 유일하게 최초로 합리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면서 반대론자들을 침소봉대의 정신병자들로 몰아붙였다. 조선이나 동아는 안 봐서 모르겠지만 대충 비슷했을 것 같고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외교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경제학적인 마인드나 능력은 애시당초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정보가 차단된 현실 속에서 한 칠레 FTA 정도의 과거 사안들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단순한 생각 이외에는 해 내지 못했다.
제대를 해서 자료를 접하고 결국 책을 사서 읽었다. 우석훈 이라는 경제학자가 쓴 녹색평론의 책이었다.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신자유주의를 가장 싫어하는 녹색평론의 책에 당연히 신뢰감을 가지고 산 이 책을 지금 아주 즐겁게 읽고 있다. 여하튼 확실한 것은 이 한미 FTA는 이제까지의 어떤 국제협약과는 차원이 틀리다. 이 정도 사안이면 정말이지 목숨걸고 반대할 사안이라는 것을 굉장히 뒤늦게 인식하게 된다. 자칭으로 좌파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나는 군대를 빌미삼아서 정말로 둔한 정세인식과 더불어서 생각없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학생운동 생각을 한다. 과거 나의 학생운동은 대중 상대의 운동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읽으라고 내놓은 대자보에 성명서를 써서 내놓는 건 올바른 방식도 예의도 아니었다. 그리고 논리구조는 있으되 근거도 빈약했고 내놓은 근거는 대중의 시각이라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사실대로 말해서 옛날 "철도 파업 완전히 정당하다!" 에서 그들의 정당함을 말하는 논거는 면밀하지 않았다. 공공부문 민영화로 인한 교통 요금 및 각종 서비스의 약화에 대한 위험성을 부각시키는 선전은 집약적으로 될 수 있었지만 역시나 대다수의 학생 및 시민 분들에게 신뢰성을 가지게 할 만큼의 논거를 갖다대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거기다가 플러스 해서 나와서 함께 싸우자거나 동의를 구하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호소를 하고 부탁을 해야 하는데 저런 식의 대자보를 적어낸 것은 자살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적어도 이 책은 그러한 우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언어를 가지고 우리의 말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언어가 굳이 번역이 필요하고, 번역을 해야만 소통 가능하다면 번역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친구를 만날 때 상대방의 방식에 맞춰주지 않고서 내 말을 들으라고 말할 수 없다. 논리와 근거가 명확하고 예의를 갖추어서 소통을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 다시금 해 볼 만 하다. 안타깝게도 지금 세상에 마치 볼셰비키를 연상케 하는 성명서식 대자보는 사람들의 실소를 자아내기 딱 좋은 일이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이 당연한 원칙이 운동판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사람은 일단 없고 시간은 아마도 있겠지만 완벽하게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도 힘들고 무엇보다도 매번 글을 단위 내에서 생산해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명서 형식은 베껴쓰기도 편하고 예의를 갖출 필요도 설득을 열심히 할 필요도 없는 가장 편한 선전 문구 방식이다.
그런 방식 때문 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하튼 내가 돌아갈 건대의 학생운동 상황은 계속해서 나빠져 온 건 사실이다. 내가 없는 동안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결코 내가 있던 시절보다 낫지는 않은 듯 하고 내가 있던 시절에도 과거보다는 분명히 안 좋은 상태인 것은 확실했다. 완전히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매일 가는 부산대학교의 학생운동가들은 무언가를 하고 있긴 한데 열심히 한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선전물이 한달이 되도록 바뀌지 않고 찢어지고 부서지고 있음에도 그들의 모습은 웬만해서는 보이지 않는다. 총학생회라는 게 하나의 사안에 집중하기 어려운 단위 역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그들은 사람 없는 가운데에서 학생회 운영만으로도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선전물을 지속 생산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바로 그래서 현 시점에서 들어오는 사람도 없고 선배도 점점 없어져 가는 학생운동이라는 게 어렵다. 학생회 운영을 하고 있는 이상 학생운동에 성실하기는 사실대로 말하자면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건대, 그러한 구조적인 문제 이외에도 확실히, 지금의 학생운동가들은 전반적으로 게으른 사람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학생운동은 매우 심각하게 성실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빌어먹을 자본의 세상에 대적할 운동은 못한다. 적들을 상대하다가 적들을 닮아간다고 하지만 여하튼 신자유주의 시대의 지배계급들은 정치적으로는 무능하지만 물리적으로는 굉장히 유능하기 짝없는 인간들이고 그들의 질서에 편입해서 살고 있는 대다수 - 어쩌면 우리 자신들 마저도 - 도 끊임없이 유능해질 것을 강요받고 부지런할 것을 강요받고 있는 만큼 저들의 무장은 강력하고 그것을 깨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적할 수 있는 실력이 필요하며 그런 와중에서 학생운동가들은 신자유주의 질서에 더 노골적으로 던져진 것이나 매한가지이다.
실력을 기르잡시고 앉아서 공부만 하자는 게 아니다. 당면한 투쟁을 외면하지 않고 집회에 나가고 최대한 들이받고 싸우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선전을 자기 스스로 생산해야 하고, 자기 스스로 활동을 만들고, 자기 개인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공부해야 한다. 이론도 필요하고, 기능도 필요하다. 운동권이 공부 안 한다는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서 운동권도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라는 논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할 수 있는 만큼은 수업도 잘 들어줄 필요가 있다. 자기 개인에게도 필요한 일일 수 있지만 수업을 잘 듣고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만나야 운동가들이 불성실한 인간이고 자기 앞가림도 못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돌아가서 해야 할 운동은 무엇보다도 불성실하고 무기력한 분위기를 일신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미 FTA가 문제시 된 건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학교에 선전 대자보 하나 없었던 기억이 여전하다. 그 때는 말년 병장 기분에 아무 생각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더 문제다.
가장 두려운 것은, 한미FTA의 폭주를 저지해야 할 활동가들, 그 중에서도 활동에 대한 전망과 지식과 경험이 일천한 이들이 자기 본의 아니게 활동가를 빙자한 백수생활로써 폭주를 시작하는 것이다. 솔직히 그러기 쉬운 일 아닌가.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 역시도 그랬던 적이 없지 않다. 집회만 나가고 있지 하는 게 없었고 하는 게 없으니 힘들었다. 그래서 아직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나로서는 절대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생활이 그런 생활이다.
지금 남아 있는 학생운동가들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은 운동에 대한 전망을 찾지 못한 채 실의에 빠진 사람도 많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무기력해진 사람도 많으며 아직도 성명서 대자보와 전투 플랑만을 날리며 예의를 갖추지 못하는 일들이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는 상상이지만 과거 실의에 빠졌던 내 모습이나 간간이 보여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전혀 망상만은 아닌 듯 하다. 바로 그래서 이제까지 있었을 무기력, 무능력, 무전망의 3무 운동의 폭주를 멈추라고 말해야 하며, 멈추도록 해야 한다. 한미FTA만 폭주를 멈출 일이 아니다.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고 따져대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돌아간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무슨 말이 많냐고 물어대는 사람이 있다면 그 때 해보고 나서 사죄를 하던지 아니면 도로 따져대던지 다시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한 비판이라 할 지라도, 스스로와 누군지 모를 타인에게 이런 경고를 보내야 한다.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 운동가를 자임하면서 제대로 살려면 더욱 더. 적어도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는 학생들보다는 부지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게으른 운동의 폭주는 멈춰야만 한다. 이왕이면 책 제목처럼 한미FTA도. 그리고 덧붙여서 더 바라자면 빌어먹을 신자유주의 천국이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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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과 나는 15년 친구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이던 시절 5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을 때는 그렇게 친하지 않았다. 녀석과 나는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2를 하면서 친해졌다. 학교가 끝나면 줄창 오락실로 향했고 주말에도 만나서 놀았다. 주말에 우리가 하는 일은 주로 목욕탕에 같이 가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도 같은 학교가 되었고 고등학교 때는 갈라졌지만 내가 대학을 서울로 가기 전까지는 아마도 거의 매주마다 일요일은 녀석과 내가 목욕탕을 가는 날이었던 것이다.
군대를 간 이후 백일휴가 때 이외에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제대하고 난 이후에 연락을 했다. 역시나 우리는 목욕을 함께 했고 맥주를 한 잔 하러 갔다.
매일 마다 새벽 3시에 일하러 가고 오후에는 집에서 운영하는 가게 일을 하는 녀석은 맥주라도 한 잔 들어가기 전에는 여전히 밝은 모습이었다. 일하다가 휴가를 냈을 때 바닷가에 놀러가서 수영 강사를 하던 아가씨들이 꼬였었다는 둥, 초등교육 시절부터 역시나 알고 지내던 친구 한 놈이 요즘은 완전 개판이 됐다는 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역시 맥주가 들어가니까 달라졌다.
역시 우리의 이야기는 취업이었다. 녀석과 녀석 주변도 역시 일자리가 없었다. 눈높이를 낮춘다는 개념도 성립되지 않았다. 2년제를 취업자리 때문에 일부러 졸업하지 않고 있는 녀석에게서 처음으로 고단함이 풍겨나왔다. 도대체 왜 요즘 세상은 할 일도 만들어주지 않는 건지를 의문하는 녀석의 의문은 정당했다. 잘 사는 사람들은 가면 갈 수록 잘 살게 되는데 왜 내 주변은 가면 갈수록 못 살게 되는지를 말하는 녀석의 분노는 정당했다.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이 안 되는데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냐면서 쓰게 웃는 녀석의 웃음이 씁쓸했다. 녀석이 말했다.
"차라리 요즘엔 공산주의가 땡길 때도 있다. 공동분배 하는 거. 적어도 이렇게 생존이 보장이 안 되지는 않을 거 아니냐. 물론 문제야 있겠지만......"
:::붙임:::
학생운동이건 사회운동이건 근처에도 가 본 적 없이 26년을 자본주의 천하에서 살아온 청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이유는 전적으로 이 사회를 사람이 못 살 곳으로 만들어 놓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책임이다. 공산주의라면 인간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배워 온 젊은이가 갑자기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좌파가 되지는 않았을 터이다. 역사는 점점 더 진보해왔지만, 세상은 요 10년 간 정말 끈질기게 나빠져왔다.
:::붙임 2:::
지각이 있고 정신이 박힌 청년이라면 신자유주의 천하가 얼마나 엉망진창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청년들에게 희망이 될 깃발 하나를 세우는 게 무엇보다도 절실한 문제다. 더럽게 잘 살아서 미래의 엘리트로써 평생을 살아갈 젊은이들이 아닌, 신자유주의 세상에 살아가는 자체를 힘겨워하는 청년들이 지켜보고 모여들 깃발 하나를.
하는 게 없다. 하는 거라고는 부산대학교 도서관에서 일과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밥먹고 컴퓨터 좀 하다가 자는 것? 영화나 좀 보는 것? 그렇게 산 지 일주일이 다 됐다.
편하기는 정말 편한 거다. 하지만 편해서 고통스럽다. 자기 한 몸만 신경쓰고 산다는 것은 이토록 자유스러운 것이다.
KTX 여성노동자들은 몸에 쇠사슬을 묶고 걸었고, FTA의 위협은 여전하고, 4.19 시절에 자신이 살았다면 일어난다면 거리로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젊은이들의 설문조사 결과는 예상했어도 짜증나고.
제대해서 무언가 새로 이것저것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과연 도서관에서 영어책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게 자기 개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제대한지 일주일 밖에 안 돼서 무언가 잡힌 게 없다고 해도, 곧 명절이라서 더 그렇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난 지금 이 순간 제대로 사는 게 맞는 걸까.
그런데 하루는 더럽게 빨리 지나가고, 벌써 또 하루가 가버렸다. 제대로 산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지금, 그저 도서관에 앉아서 더럽게 편한 책상물림 신세만 하면서도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는 이 비루한 몸뚱이를 안고 말이다.
그다지 기분이 좋진 않은데, 그게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열심히 산다면. 머리 속에서 열심히 한다거나 빡씨다거나 하는 쓸데없는 관념 조차 없어질 만큼 산다면. 이런 생각은 안 하게 될까. 학생운동에 복귀하기 위해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내 삶에 충실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좀 더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잡아서 실천으로 살아야 한다. 하루는 너무 빨리 가니까.
그래서 급한 거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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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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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엄쉬엄해라, 그러다 지칠라...! 기운내고 용찬형 만나서 술 한잔씩 얻어먹고 그래. 힘내!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