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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이데올로기, 그래서 좌파는?

1. 이명박 퇴진은 가능성이 있다

 

87년을 안 살아 봐서 그 당시 어땠는지 알 길은 없지만, 적어도 이명박에 대한 대중적 불만이 단지 폭발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대중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도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조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대중들은 스스로를 지도하면서 투쟁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대중의 창발성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듯이 말이다.

 

2. 그러나 이데올로기 지형은 매우 위험하다.

 

혹자는 또다시 좌파들이 너무 욕심이 많다고 할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이데올로기 지형으로는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 광우병의 잠복기간이 몇 년인가? 40년이던가? 누군가 말했듯이 말라리아로 300만 죽는데 광우병으로 180명 죽는 거, 잠복기간도 드럽게 긴데 어차피 고시가 된 마당에 이거 가지고 오래 싸울 수는 없다.

 

문제는 쟁점이 훨씬 넓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퇴진을 요구한다고 했을 때, 그 이명박 퇴진의 목표는 참여연대건 노빠들이건 좌파들이건 다 똑같다. 모두가 이명박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노빠들의 경우에는 한 번 자기네가 당했던 거 이명박이라고 못 당할 거 있나 이런 심사도 있을 게다.

 

이 마당에 참여연대를 위시해서 야 3당(민주당, 자유선진당, 민노당) 한테 좋은 일 시켜주는 식의 이명박 탄핵이 될 가능성이 적지않아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도 그리 튼튼한 조직이 아닌지라 대중들을 휘어잡고 갈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이들에게 대안적인 위치를 양보하게 될 가능성은 언제나 그렇듯이 매우 큰 것이다.

 

이미 다함께 사태를 비롯해서, 사회운동 진영 역시도 그다지 튼튼하지 않음과 동시에 대중 이데올로기와 부합하고 있지 않음이 이미 증거되었다.(뭐 너무나 당연한 소리지만) 학생들 경우에는 20대가 이제 나서겠다 뭐 이러면서 대중들의 호응이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뭐 이건 어느 정도 예외적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집회 내부에서 참여연대 부류의 비폭력 주의자(기회주의자)와 프락치로 의심되는 예비군들과 사회운동 진영이 대립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러나 현재로서 사회운동 진영이 상대적으로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여전히도, 조직과 이념으로서 그들의 투쟁을 가두려고 하는 세력으로서, "운동권" 이라는 도식이 가지는 부정적인 효과가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 가운데에서 집회는 점점 아나키적으로 변해가고, 이 가운데에서 대중들은 헌법 이데올로기에 근거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인하지만 이념과 조직에 대해서 재고하고 이로써 대중투쟁을 강고하게 만들어 갈 근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것은 오랫만에 열린 투쟁의 공간을 즉자적인 공간에 머물게 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투쟁의 성격이 더 높이 고양될 가능성은 점점 좁아진다. 더군다나 여기서 한 발짝 잘못 내딛는 것이 사회운동의 복권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는 남한 운동에서, 91년 계급투쟁 패배 이후, 소련의 해체 이후에 계속해서 나타났던 탈이념 현상의 연장선이 될 수 있다.

 

생존과 안전을 걸고 대중들이 모였지만 이들에게는 아직 FTA와 광우병의 연관성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의료민영화나, 교육문제 등이 새로운 이슈로서 속속 등장하면서 마침내 이명박 퇴진까지 왔지만 여전히 핵심 구호는 "고시철회 협상무효" 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 새로운 요구를 조직하는 것,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수없는 토론과 교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핵심 요구안을 추출하고, 그리고 지금 고시가 된 마당에 현실적으로 언제 흩어지게 될 지 모를 투쟁의 흐름 속에서 조직된 대오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대오들 가운데에서 대중이 뭉칠 수 있도록, 자생적인 구심을 형성할 수 있도록 조직해 내는 것이 절실한 요구안이자 그 안에서 새로운 요구를 추출해야 한다. 공공부문 민영화로 표상되는 사회 공공성의 문제나 다른 그 어떤 것이라도 더욱 급진화 시켜낼 수 있는 코어,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조직화가 필수적이다. 또한 새로운 요구를 조직하는 가운데에서 이것들 하나 하나가 어떠한 연관성을 맺고 있는 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집요하게 파헤쳐 나가야 한다. 이후 토론 속에서 FTA와 광우병의 연관성 정도는 정확하게 밝혀지고 대중들의 투쟁 속에 자리할 수 있어야 더욱 더 급진화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저 "광우병 사태" 로 끝날 따름일 뿐인 것. 이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3. 혁명의 시간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다.

 

혁명의 시간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찾아오고,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대중들을 떠난다. 대중들의 자발적인 투쟁의 시간 속에서 소비에트를 외쳤던 레닌의 4월 테제가 1년이 되지 않는 동안 임박한 파국에서 다시금 바뀔 수 밖에 없었듯이, 혁명의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예측할 수 없다.

 

지금의 시간이 바로 대중들에게 있어서 봉기와 반역의 시간이라면, 그것이 언제 떠날 지도 우리는 생각해야만 한다. 이 혁명의 시간을 조금 더 길게 붙잡고 혁명의 공간을 조금 더 넓게 열기 위해서 운동가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지금부터라도 기본에 충실하게 이데올로기적 반역을 조직하는 것이다. 이명박이 개새끼라서 만이 아니라 바로 신자유주의를, FTA를, 비정규직 철폐의 정당성을 그리고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조직하기 위한 학습과 토론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속칭 운동권들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다.

 

비정규직 철폐가 뜬금없다면 식량주권과 광우병으로 강연회를, 토론회를 조직하고 거기에 대중들을 끌어들이는 것. 그리고 이 상황 하에서 혁명의 시간이 떠나기 전에, 대중 이데올로기의 최대한의 급진화를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운동가가 지금에 있어서 할 최대의 일이다.

 

투쟁의 자리에서 이미 지도할 수 없는 대중을 아쉬워하거나, 아니면 마음에 안 드는 노래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를 부르는 대중 속에서 그저 한 명의 참가자로서 있는 것 이상으로 해야 할 일이 바로, 대중들과 소통하고 사회운동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바로 그러한 것들인 것이다.

 

레닌은 혁명의 시간이 떠나가기 전에 그 혁명의 시간들을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대중들을 가두려 했지만 그것이 혁명적인 성과를 남겼는지는 달리 평가해 볼 일이 되었다. 봉기도 물론 중요하지만, 구성(예를 들어 법적 체제)의 역할이 있다는 점에서 레닌의 그러한 시도를 결코 무의미하게 바라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대중운동 속에서 배워야 할 것은 구성으로 가두려고 시도하는 자체가 아니라 봉기를, 대중운동을 지성으로서 보조하는 것,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는 임무를 다하고 대중 이데올로기의 반역을 온존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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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인간은 승산이 있을 때만 저항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승산없는 저항은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것도 아니다. 저항이 목적이고 이 저항을 통해 스스로를 인간적으로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면 그 저항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그리고 종국엔 그러한 저항을 거쳐야만 진정한 승산까지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아무 저항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애당초 승산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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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우연히 오래 전 동지가 국가보안법으로 끌려갔던 그 시절 다른 동지가 만든 플래시를 보았다.

 

잊고 살았던 그 때의 삶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 때는 운동을 한다는 게 힘이 나면서도 한없이 서러웠던 것 같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되도 않는 법을 내세워 우릴 잡아가고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두들겨 패서 남의 다리를 망가뜨리고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노동자들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나가는 집회마다 악다구니에 받쳐서 피튀기는 몸싸움을 하고 욕을 해 댈 수 밖에 없는지. 장애인들은 왜 휠체어가 뒤집혀야 하고, 철거민들은 제 집이 깡패 손에 부서지는 걸 제 눈으로 봐야 하는지.

 

그저 지식욕이 있을 뿐이었던 그냥 지식인이 되고 싶었던 20대 초반의 청년은 그 시간 동안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 심장의 분노가 혁명이라는 것을 속에 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심장의 분노를 되살려내야 한다.

 

더 많이 결의하고 더 많이 괴로워해야 한다.

 

힘겹고 처절해야 한다.

 

그 분노를 되살리지 못한다면, 어느 샌가 나는 운동을 먹고 살기 위해서만 하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순간 운동은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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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1

언젠가 나는 말했었다.

 

"널 많이 실망시킬지도 몰라. 난 알고 보면 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만 머물러있지는 않을 거야. 난 계속 싸울 거니까. 그것만은 믿어줘. 지켜봐 줘."

 

자기 변명이었을지도 모를 이 말.

 

그러나 이미 그 말이 자기 변명에 불과할 지라도, 항상 때는 늦더라도 위의 말은 지켜져야 할 당위이다. 언제까지나 그렇게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더더욱 운동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운동이 자기 자신을 조직하는 것부터 시작하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것이 제 아무리 쉽지 않다 하더라도. 이미 그 말을 들었던 사람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는 약속이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수없이 나는 약속을 어겨왔지만, 저 약속만이라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운동을 한다는 것이 쉬울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쉬운 것이 어디있던가. 자기 일 되면 다 어렵게 마련.

 

물론 늘 기분좋게 살 수는 없지만, 다소 쓰린 마음이더라도 거기에 패배해서 무기력하게 멈춰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지금도 계속 일보씩 전진하고 있다.

 

삶으로 운동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운동가가 되어서, 더 나은 인간이 되어서 한 걸음씩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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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참 어이가 없어서

사실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 이후로는 총선이라는 이벤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현장이나 지역운동의 강화에 진보정당이 실제로 기여할 수 있는 소지들이 상당 부분 퇴색되어버리고(지역구 위원회를 없애겠다는 둥) 정책 정당화 하겠다면서 과거 민주노동당이 설치던 그 시점부터 현재의 진보정당 운동에 대해서는 열심히 하던 안 하던 과는 별개로 기대를 접었기 때문이다. 한데 이번에 간만에 수틀리는 소식을 듣고 글을 또 쓰게 된다.

 

진보신당, 이름이 좋은 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최초 창당 때 당명토론하다가 채택됐던 노동당 이라는 당명보다도 실은 후퇴한 이름이다. 거기다가 이번에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심상정과 통합민주당의 후보(누구더라?)의 선거연합이라는 상황까지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싶은 것이다. 심상정의 당선, 물론 중요한 일일 것이다. 진보신당은 의원수 확보도 그렇고 최소한 심상정이라는 스타 의원은 당선시키는것이 당의 사활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보신당이 급작스러운 창당과 함께 맞은 총선으로 급하게 서두를 수 밖에 없는 조건이라고 십분 이해한다고 할 지라도 통합민주당과의 연대는 원칙을 폐기한 심각한 파격이다. 쟤네가 어떤 세력인데 라는 명분론? 그래 명분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만큼 진보신당의 정치적 투명성도 제고될 수 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이 북한 문제에 올인하다가 결국 정권의 하위 파트너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듯이 진보신당은 야권에서 또 하위파트너나 하는 신세가 되려고 저런 결정을 내린 건가?

 

혹자는 말할 것이다. 거대담론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진보의 정책적인 뭔가라도 얻어내기 위해서 불가피한 현실정치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그러나 적어도 그렇게 하지 말기 위해서 진보정당을 하는 것 아니었던가?

 

현실정치 원칙 따위가 세상에 어딨나? 정치 스킬과 정치는 분명히 다르다. 정치 스킬이 정치를 압도하는 순간 노선도 이념도 다 사라진다. 그 순간 실용만 남는다. (실용주의. 이메가바이트 대통령 당선 때의 아주 강력한 프로파간다 역할을 했다.) 그리고 실용 만 남는 것도 아니다. 인민주의가 남는다. 심상정이라는 대표자 한 명을 내 걸고 이미지 정치를 하는 정치가적 인민주의. (그러기에 심상정이라는 인물의 이미지가 어떤 지는 따로 평가할 만한 것 같다)

 

정당정치라는 것은 근대 정치의 틀거리 안에 있다. 근대 정치의 핵심이 이념이었고 그 이념에 기반해서 정책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걸 토대로 의회 안에서 싸우라 시키고 합법의 틀거리에 다 가두는 것이 바로 근대 정치고 의회정치다. 그리고 진보신당은 최소한 정당 정치를 하겠다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정당 정치는 적어도 정치의 스킬이 정치를 압도하지는 않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선택은,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니다.

 

신당파들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리고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그 딴 식으로 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문제는 현재 진보신당이 그런 정도의 네임밸류를 갖고 있는 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그네들이 남한 사회에서 적어도 주사파가 아닌 운동 세력들을 싸잡아서 보이게 할 수 있는 정도는 될 거라는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비정규직 후보 한 명 때문에라도 진보신당, 총선때 찍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진보신당이 연대연합이 불가능한 신자유주의자들과 후보단일화를 위해 총선연대를 한다? 심상정 단일화라는, 심상정 구하기 하나를 올인하기 위해서?

 

진보신당은 물론 토론 과제와 운동 세력들과도 연대 구축을 하면서 사회운동에 기여하는 당운동을 하겠다고 한 적이 당연히 없다. 그러나 적어도 저런 말도 안되는 총선 연합은 해악까지 끼칠 수 있다. 기가 찬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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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5

몇 주 전부터 사회진보연대에 출근하면서 배운 것은 이론적인 측면 만이 아니라 운동이라는 삶을 좀 더 현실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일게다.

 

그리고 스스로 정신을 놓고 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공공노조에 들어가고 싶다.

 

일단 사무실이 가깝다는 지극히 생리적인 이유를 제외하고 나서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조직화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은 이후 운동에도 큰 재산일 것이다.

 

어쨌든 사회운동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이상 최선을 다해야 할 일이다.

 

 

학교를 갈 일이 확실히 줄어든 건 사실이다.

 

얼굴도 못 본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자리를 잡지 않는 이상 후배들을 만나는 것은 적잖이 민망한 일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당위적 다짐은 적어도 그리움과 후회, 부끄러움 그리고 슬픔 같은 걸 넘어서 움직이게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쓰러지지 않고 당당하게 한 걸음, 한 걸음씩 다시 걸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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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3

개념이 없다.

 

철저하지 못하고 나약해져 있다.

 

이 문제는 순전히, 완전하게 내 탓이다.

 

이런 방식으로라면 내 운동은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힘이 나지 않는 이유를 찾기 전에 무조건 힘을 내야 할 때다.

 

그러지 못한다면 결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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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7

1. 칼 포퍼

 

칼 포퍼의 책을 읽어보라는 말을 들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이라는 책 제목 밖에는 전혀 읽지 않았고, 그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마르크스주의를 공격하기 위해 전 생애를 다 바쳤다는 기억도 안 나는 책의 한 두 글자 뿐.

 

내가 타인의 말을 어떻게 듣고 있는 지를 되돌아 볼 수 있을 거라는군.

 

칼 포퍼의 책이 어떤 내용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내가 타인과의 소통의 문제라던가 관계를 설정함에 있어서 일단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

 

읽기도 어려운 [자본] 에 관련된 텍스트, 마르크스주의에 관련된 텍스트들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도 지금의 나한테 더 필요한 책들은 바로 그런 관계에 관련한 책들일 지도 모른다.

 

설득의 심리를 체득하는 것.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법. 그런 것들. 그런 자기 개발서가 지금 나한테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2. 기다리는 마음

 

나에게 제일 부족한 것은 여유로움과 기다리는 마음이다.

 

여유로움과 기다리는 마음은 게으름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삶에서 그 두 가지만 충분했더라도, 나는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직화는 더 잘 됐을 지도 모르고, 더 나은 판단을 해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전제조건으로는 믿음과 확신이 깔려 있다.

 

네 멋대로 해라 라는 드라마에서 믿음에 대한 정말 확고하고도 자명한 정리를 들은 적이 있다.

 

"믿음이 뭔 지 알아? 내가 속는 줄 알면서도 믿어버리는 것 그게 진짜 믿음이다!"

 

난 그렇게 믿을 줄도 알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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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3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에 나가고 밤에 들어오는 일상.

 

무언가 배우고, 내 정념과는 무관하게도 일정이 움직이고, 나는 그것을 깨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동안에도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

 

지금의 나에게는 어쩌면 최적일 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서 나에게 두 가지 달라진 점이 생겼다.

 

마음 자세가 바뀌었고 더 이성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사실 인간의 근본이 바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달라진 것이 아니냐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힘겨워 하지 말자고.

 

어차피 쉽게 생각한 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그것을 깨닫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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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6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다. 그저 홀로만 남아 있었다.

 

움직이기도 싫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틀 째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내일부터는 아침부터 부저런하게 움직여야 할 터인데......

 

하루가 허무하게 그저 흘러간다.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왜 이렇게 온 몸에 힘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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