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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김치를 보며 순환을 생각하다

오늘 도단언니네 집에 내일 진행할 프로그램 때문에 CDP를 빌리러 들렀더니 어머님께서 어제 김장했다고 한가득 담아서 손에 쥐여주셨다. 어머님들의 손은 진짜 크다는 진실을 세삼 알게 해주신 고마운 어머님.

우리집 냉장고는 알다시피 한칸 짜리 쬐그만 넘!

그래서 작은 그릇에 나누고 나눠서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야 전부 들어갈 수 있다.

부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나눠 담았더니 이만큼이나 되었다.

 

그리고 밥을 지어서 두부를 살짝 데쳐서 김치와 먹는데~~

오호 그대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이번주 일요일은 아는 선배언니네가 김장을 한다고  해서 도와주겠다는 핑계삼아 가서 겉절이에 막걸리나 한잔 하려고 한다. 흐흐..

내가 상근했던 단체에서 김장도 하고 술도 담그던 일이 떠오른다.

하필이면 우리가 김장하던날 너무너무 추워서 배추를 절이고 씻는 일이 엄청난 노동이 되었던 기억과 배짱이처럼 민요 한곡 불러주고 술만 마시던 석범이형도 기억나고..열심히 무우를 채치던 내 손놀림도 생각난다.

재밌었는데...

우리가 그런 무모한 짓들을 했던 것은 물론 사무실에서 점심을 해먹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관혼상제, 절기마다 장을 담그고 김치를 담그면서 이웃과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갔던 과정을 도시안에서도 해보고 싶었던 욕심이었다.

그렇지만....역...쉬....쉽지가 않았다.

일단 마당이 없고, 무엇보다 우리들이 집에서 그다지 가사노동을 많이 해본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서툴렀다. 애꿎게 집에 쉬던 각자의 어머님을 들들 볶았다.

예를 들면 소금간을 할 때 이집저집 어머님께 전화를 다하다 우리는 결국 우리의 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결정을 하게 된 하일라이트 하나만 소개하면..이것!!!!

"엄마, 소금을 얼마나 넣어야 되나요? 양푼이로 몇개요?"

"...음....간간하게..."

"그러니까 그 양이 얼마냐구요?"

"배추의 양에 맞춰서 적당하게.."

헉...그러니까 그 간간하게, 적당히가 도대체 얼마인지 지 알 수가 있어야지..흐흐...

 

어릴때 뒷뜰의 걸어놓은 솥에 절기마다 멸치젖을 달이고, 메주콩을 쒀서 메주를 만들고, 아래목에 띄워서 메주가루로 만들고, 그걸로 고추장을 만들고....

그리고 겨울이 오면 독을 묻어놓고 김장을 하고...

그것뿐만 아니라 여름이 지나 볕이 좋은 가을에는 문에 화선지를 바르는 일, 여름이면 장마 대비하고 뒷뜰의 그솥에 가득히 미꾸라지 추어탕을 끓여 마당에 동네사람들과 모여 같이 잔치하듯 먹고 마시고...

진짜 1년 내내 행사들이 이어지는데 그 준비들이 다 연결되어서 겨울을 이기고 다시 봄을 맞게 되고 또 1년을 준비하고 보내고...자연스러운 순환이 이어졌었구나 가끔 옛일을 기억하면서 무릎을 치게 된다.

 

오늘 도단언니의 어머님이 주신 김치를 마주하고 또 생각에 잠긴다.

일단은 너무 맛있는 김치에 눈물 흘리며..(소주한잔 딱 있으면 좋겠더군.)

옥탑에 홀로 사는 자취녀에게 김치는 너무 큰 재산이라 감사함을 다시 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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