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잠재우기 위해서 1천5백여 명에 이르는 시민들을 연행하고, 평소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김제동, 윤도현, 김미화, 김이태, 김동일, 박원순)을 속아 내는가 하면, 뒤지거나(PD수첩, 이인규 등) 까불지 말라고 겁을(미네르바, 정연주, 황지우, 한명숙) 준다. 국가보안법의 칼날을 되살려 지속적으로 진보세력(한국진보연대, 사노련, 범민련 등)을 통제하고, 온라인 오프라인을 망라해 시민들을 감시하며 툭하면 고소고발을 자행한다. 닥치는 대로 사건을 만드는 이명박식 통치 방식에 관해 혹자는 한마디로 “치사하다”고 평가를 하기도 한다.
이명박식 통치는 공공의 안녕을 이유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전통적인 ‘공안통치’의 모습을 띄면서도 잠재적 범죄를 예방ㆍ처벌한다는 명분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치안통치’의 양상도 보인다. 물론 잠재적 범죄는 현 정권에 거스르는 모든 활동이 포함된다.
일상화된 고강도 탄압
이명박 정권 통치는 ‘고강도-맞춤형 탄압’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전의 공안정국에서는 공안기관들이 진보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와 구금을 단행했고, 이를 통해 정권은 국면의 전환을 꾀했다. 이에 대응하는 진보진영도 여기에 맞춰 대규모의 대책기구를 만들었고, 그것은 그 국면이 지나면 해소될 것들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상화된 탄압은 이른바 ‘진보세력’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매우 광범위하게 ‘현 정권에 대한 비판세력’까지 감시ㆍ처벌하고 있다. 2008년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가 연행된 시민들은 약 1천5백 명이었다. 그중에서 1천 명 가량이 약식 기소되어 벌금형을 받았고, 그중 8백 명 가량은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진행 중에 있다. 촛불집회에 단순 참가한 가벼운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집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회사까지 찾아가 근무 여부를 확인했다. ‘촛불자동차연합’ 회원들은 자동차를 갖고 촛불집회에 참가한 이들을 돕는 일을 했다는 이유로 운전면허취소 처분까지 받았다. 이메일과 핸드폰 내역을 뒤지는 등 감시는 일상화되었다. 촛불집회 시민들에 대한 추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2년이 지난 지금도 경찰에 소환되는 일이 있다.
더욱이 이명박 정권에서는 정부 각 부처가 공안기관화 되어 버렸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정보통신위원회의 삭제 명령만이 아니라 문광부의 예술단체나 예술가들에 대한 재정지원 중단과 해임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버티는 이들에 대한 과거 행적 뒤지기, 모욕주기, 징계와 해고, 고소․고발 등의 법적 조처까지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깡그리 동원되었다. 적용 법률도 집시법이나 국가보안법만이 아니라 형법의 각 조항들(일반교통방해,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 통신비밀보호법, 전기통신사업법, 선거법까지 적용했다. 성폭행 범죄조차도 공안을 위한 도구였으므로, 성폭행범에 대한 전자발찌에다 화학적 거세까지 거침없이 이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의 변화는 형사사건의 통계 결과들이 보여준다. 형사 기소사건(기소자: 2007년 109만4천/2008년121만7천/2009년131만7천)이 노무현 정권 때보다 8% 증가하였는데, 형사사건 중 무죄사건도 22.2%로 증가했다. 이는 주로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을 무작위로 체포하여 입건한 것의 결과이다. 법원이 보더라도 무리한 수사와 입건과 기소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또 구속영장 기각율을 보면, 노무현 정권 때 12%대였던 것이 현 정권에 들어와서는 2008년 24.5%, 2009년 25.4%로 배나 뛰었다. 구속영장청구를 남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압수수색도 2004년 53,000인 것에 비해 2008년 100,480 2009년 64,798로 배나 급증했다. 이는 과거 국가보안법 사건 관련자들 정도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진행되었던 압수수색을 촛불시위 단순 참가자들에까지 무리하게 남발했던 결과이다. 사이버 쪽은 너무나 심각하다. 사이버명예훼손은 2008년 380건이던 것이 2009년 1~6월만 1667건에 이르렀다. 통신제한조치는 2008년 135건이었는데 2009년 1~6월만 117건에 이른다.
법질서 정치가 가져오는 경찰국가화
이명박 정부의 통치방식을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법치주의의 강화에서 유래한다. 원래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국가원리와 헌법 원리를 뜻하는 법치주의는 최근 위법행위에 대한 불관용, 질서위반에 대한 엄정단속, 법집행공무원에 대한 공무방해 엄단, 집회시위와 노동쟁의행위에 대한 엄격한 법적용을 주장하고, 구금형과 중형위주의 정책을 강조하는 ‘법질서 정치’의 레토릭으로 사용되고 있다(김한균, 2008).
이것이 법질서 ‘정치’인 까닭은 사회 위기의 원인을 정부의 정치경제정책이나 사회적 조건이 아니라 범죄자로 떠넘기기 때문이다.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빈곤의 문제를 경찰과 형사법원과 교도소를 동원해 덮어버림으로써 사회정책을 형사정책으로 대체한다.”(바우만, 2004). 형사사법을 동원하는 추세가 강화될수록 권력남용은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법질서 정치는 위기상황을 구실삼아 수사기관과 대통령[행정부]의 강력한 권력행사를 정당화 한다. 오늘날 경찰국가는 (경찰청이 담당한다는 의미에서) 제도로서 ‘경찰청’의 활동이 아닌, 실질적 ‘경찰작용’이 강화되고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또한 법치국가와 대립하는 의미의 절대주의적 경찰국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형식적으로는 법률의 규정에 기초하여 국가권력의 활동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법무부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 경찰력의 강화가 이루어진다(김인회, 2009).
이명박 정권 들어 유난히 준법이나 법질서 회복이 강조되고, 심지어는 아동 성폭력 사건과 같은 범죄들을 악용하여 사회적 공포를 조장하는 이유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이에 대한 엄벌책들이 인권적 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도입(전자발찌의 확대 적용, 화학적 거세 도입, 범죄자의 유전자 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되고 있다. 이런 법질서 정치는 보수언론들이 사회여론을 조장하고, 보다 더 강력한 엄벌책을 정권이 주문하는 것에 힘 받아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게 된다. 이제 공안과 치안의 구분은 의미 없어지게 되며, 아동성폭력 범죄자나 집회․시위 입건자는 동일선상에서 취급된다. 즉 사회불안을 야기하는 이들이기 때문에서 배척하고 추방해도 된다는 ‘법질서 정치’의 원리가 적용된다. 이런 법질서 정치는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완성을 추구한다.
공포의 일상화, 감시의 내면화
오는 11월 중순에 서울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정부는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모습을 완성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것 같다. 벌써부터 노숙인들을 거리에서 쓸어내기 위해 불법적 절차들을 동원하여 시설에 격리하고,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돌입했다. 10월 1일부터 한 달 보름동안 발효될 ‘G20 경호법’은 군대마저 동원해낼 수 있다. 공포의 일상화를 통한 표현의 자유 억압, 촘촘하고 치밀한 감시체제를 동원한 자기검열의 시스템을 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G20을 활용할 것이다. 불심검문과 일제단속(수배자 일제검거든, 도시 미화를 위한 노숙인 정리,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추방 등)도 법을 어기면서까지 강화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지배세력이 얻는 것은 저항의 무력화이며, 불안한 대중들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다. 지배세력들은 일상화된 고강도-맞춤형 통치로 공포를 일상화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위축되게 할 것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공안국가의 등장은 사실 이전 정권에서부터 준비되어 왔다. 그럼에도 우리의 체감이 높은 이유는 ‘공안의 수요가 노골적으로 확대된’ 이명박 정부 들어 보다 수월하게 이러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입법을 통해 신자유주의 경찰국가화를 완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인권운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경찰국가화를 완성하려는 입법 활동에 대응하며, 대항 논리와 불복종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널리 알려나가자.
이명박 정권 들어 경찰력의 과도한 행사가 우리 삶 곳곳에 피부로 체감된다. 경찰들이 거리에서 강제로 불심검문을 하고, 양천경찰서에서 피의자에게 고문을 진행한 사건은 우연한 일이 결코 아니다. 더 나아가 경찰의 권한은 강화하고 경찰의 통제력은 약화시키려는 경직법 개정, 검찰이 추진하고 있는 이메일 압수수색, 집회시위 피해에 대한 집단소송제 도입 등 경찰국가를 법률로서 완성하려는 움직임에 균열을 내며 대응을 해야 한다.
이계수, 오병두 님은 민주법학 38호 「친기업적 경찰국가와 민주법학」에서 “친기업적 경찰국가를 뒷받침하고 있는 ‘법치’, ‘법과 질서’의 수사 뒤에 숨은 정치적 의도를 폭로하고 각종 입법과 법집행정책의 배후에 있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드러내며 개별적인 법률 수단들이 내포하는 부정적 영향의 징후들을 밝혀내는 이론적인 작업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항논리를 마련하기 위해 연구자-법률가-인권운동가들이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네트워크도 구성하고 국회에서의 입법 대응 못지않게 시민들의 경찰국가화에 대한 저항도 필요하다. 가령, 경찰의 불법적인 불심검문에 저항하고, 지역사회에서 공안기구 감시운동을 펼치는 운동이 그러한 예에 해당할 수 있겠다.
둘째, 더 많은 대중과 더 많은 ‘자유’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자유’의 의미가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자유’의 의미로만 수렴되고, 자유권 운동이 탈정치와 싸우느라 힘들었던 때를 잊을 수 없다(그러면서 국가보안법도 폐지하지 못했다). 그 때는 ‘자유’의 의미가 가장 유린되던 시절이었다. 다행히 오늘날 우리는 고전적 ‘자유’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상황으로 돌아왔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민의 권리, 시민의 저항권, 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범죄수사와 인권 등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문제로 ‘자유’ 이슈를 확장하자.
집회시위는 경찰에 의해 허가ㆍ관리 되는 것이 아닌 거리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우리의 자유로, 반감시의 권리로서 정보인권운동의 확장으로, 공안기구는 철저한 민중적인 인권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규제를 통해 더 많은 우리의 자유를 만들자.
셋째, 개인의 자유를 넘어서는 사회적 ‘연대’를 확장하자.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노숙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골적인 단속이 가속화되고 있다. 거리 노숙인을 거리에서 청소하듯 시설로 내몰고 심지어 경찰까지 나서서 이주노동자를 단속하고 있다. 이렇듯 노골적인 배제정책이 횡행하는 가운데 노숙인, 이주노동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어떻게 지키고 옹호할지, 인권운동이 그들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와 실천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가 끊임없이 피해자를 앞세워 형벌강화 논리를 앞세우는 정책에서 실재로 배제된 사람은 누구인가를 반문하며,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일시적으로 조성되는 공안정국은 없다. 공포의 일상화, 감시의 내면화로 치닫는 이명박식 법치주의 통치는 고강도-맞춤형으로, 지속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의 근간들을 부정하며 경찰국가를 만들어갈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인권운동은 일상적이고 전문적인 체계의 구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현 정권이 추진하는 법질서 정치로 인해서 빼앗긴 우리의 자유를 되찾는 일, 내면화된 감시와 공포를 털어버리고 표현의 자유를 구현하는 일, 형사적인 엄벌책을 지지하는 시민들에게 이 정책들의 본질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저항을 조직하는 일은 이 시대 민주주의와 인권의 우선적인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탄압 문제를 넘어서서 때로는 크고 넓게, 때로는 멀리 보며 깊게 접근하자.
<참고문헌>
김인회. 2009. “다시 검찰개혁을 생각한다”. 민변시론(2009.11/12, Vol.85).
김한균. 2008. “법질서정치와 형사사법의 왜곡”.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편. <민주법학> 제37호(2008. 9).
오병두. 2010. “정보경찰의 역사와 현재”. <공안기구의 과거와 현재> 연속강연회(2010.2.2).
이계수. 2001.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경찰국가의 강화”, 민주주의법학연구회 2001 심포지움 <신자유주의와 민주법학> (2001. 11. 24).
이계수·오병두. 2008. “친기업적 경찰국가와 민주법학: 비판과 대응”. <민주법학> 38호(2008.12.1).
지그문트 바우만. 2004. 『쓰레기가 되는 삶들 - 모더니티와 그 추방자들』. 새물결. 2008.
* [인권오름] 제213호에 공동기고한 글입니다. http://hr-oreum.net/article.php?id=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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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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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행사를 준비한 한국정보화진흥원의 현준호라고 합니다.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좋은 행사 평을 써 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하지만 몇 가지는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문제로 지적하신 전시 행정이라는 것입니다. 행사 담당자로써는 이것이 전시 행정이었던지는 다시 한 번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 번 행사를 위해 국제적으로 접근성에 유명한 분을 모시고자 올해 2월부터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전시적으로 누구에게 돈으로 맏기지도 않았으며, 이를 위해 제가 드린 시간은 많았습니다. 보여주기를 위해 한 적은 없으며 어떡해 하면 웹 접근성을 국내에 잘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준비한 것입니다. 부족한 부문을 지적해 주시는 것은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좋은 것이지만 전시행정이라는 단어는 좋은 의견이라고 받아 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한국어로 지원하지 않았다는 문제입니다. 이는 발표자에게 협조를 구하여 빨리 원고를 받고 싶었으나, 발표자분들이 조금은 늦게 보내 주셔서 부득이 한글로는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참석하는 한국 분들, 특히 장애인들을 위해 저희가 동시통역, 점자 자료집, 한글 자막 서비스, 수화 통역사 배치 등의 노력을 하였습니다. 이것도 전시 행정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또한 이점을 보완하고자 지금 제가 녹음된 것을 바탕으로 하나씩 문서 작업을 하여 웹 접근성 연구소(www.wah.or.kr) 사이트에 올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기조 연설자인 Judy Brewer님의 자료를 올려 두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wah.or.kr/Board/brd_view.asp?brd_sn=5&brd_idx=602
또한 이번 행사는 행사 게시하고 참석자를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웹 접근성 관련 학계, 장애인단체, 민간기업, 연구기관, 단체 등 모든 350여명의 분들을 직접 연락하여 한 분씩 모신 자리입니다. 접근성과 관련하여 주요 활동을 하시는 분들에게 직접 연락하여 모시는 일들을 하였는데, 이게 전시행정인지요?
두분째 선생님께서는 웹 접근성(Web Accessibility)와 웹 상호운용성(Web Interoperability)에 대한 용어에 대한 혼동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아래의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jhyun.wordpress.com/2009/09/09/%ED%97%9B%EA%B0%88%EB%A6%AC%EB%8A%94-it%EC%9A%A9%EC%96%B4-%EC%A0%95%EB%A6%AC%ED%95%B4-%EB%B3%B4%EC%95%98%EC%8A%B5%EB%8B%88%EB%8B%A4-%EC%A0%84%EC%9E%90%EC%8B%A0%EB%AC%B8-%EA%B8%B0%EC%82%AC2009/
http://jhyun.wordpress.com/2009/10/05/%EB%94%94%EC%A7%80%ED%84%B8%ED%83%80%EC%9E%84%EC%8A%A410%EC%9B%94-5%EC%9D%BC%EC%9E%90-%EC%95%8C%EC%95%84%EB%B4%85%EC%8B%9C%EB%8B%A4-%ED%98%BC%EB%8F%99%ED%95%98%EA%B8%B0-%EC%89%AC%EC%9A%B4/
셋째, 모든 발표자 분들은 저희가 섭외를 하였으며 발표 내용은 접근성 분야를 연구해 온 제가 듣기로는 선생님의 지적처럼 크게 부족하였던 부문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발표를 위해 자료를 만들고, 시간을 내어 한국에 오시면서 접근성을 알려 주시고자 한 분들의 취지를 곡해 하시지는 않았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석일 교수님은 지금까지 접근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던 분이며, 구글의 경우에도 미국 본사의 담당자 분을 초청할려고 하였으나 여러 제약 때문에 발표를 대신해서 맡아 주셨으며 이 번 발표를 위해 본사분들과 계속 많은 연락을 취하시는 등 노력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듣고 한 숨이 절로 나오신 것처럼, 저도 선생님의 글을 듣고는 한 숨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전시 행정은 안했다고 생각합니다.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준호 올림
앙겔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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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행사에 참석했었던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뎡야핑입니다.저는 웹 사업팀에 속해 있지만, 장애인, 고령자 등의 웹접근성 문제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여, 말씀하신대로 정말로 바쁜데도 불구하고 하루의 시간을 빼내어 배우기 위해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적어도 기업들의 발표에서 제가 배운 것은 MS, Adobe, 구글 등이 전통적인 시장에서 배제되었던 접근성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했구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이제 제가 뭘 할 수 있느냐면 글쎄요. 그 기업들 상품 이용하는 거?
장애인 활동가를 많이 초청한 자리인 만큼, 수화 통역자나 접근권 등 설비는 잘 되어 있던 것 같은데, 그것도 비장애인인 저의 느낌이지만요. 하지만 그런 부분이 부족했다고 지적하는 게 아니라 내용에서 배울 게 없었다는 겁니다.
어쩌면 그건 행안부의 행사 담당자분인 삐돌님이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지도 모르지요. 몇몇 발표자들의 정말 불성실한 발표 내용에서 배울 게 없었다고, 그래서 전시행정이 아니냐 라는 후기를 들어도 그런 의도도 아니고 당일 장애인 접근권도 좋았고 이후 행사 자료도 업데이트하고 있다는 건 답이 되질 않네요. 오히려 이후 업데이트 되는 발표문을 보고 이런 반응이 더 나올 수도 있을 거 같네요.
이 덧글도 너무 진보적인가요? 미투데이 언급 인상적입니다.
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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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풀고 의견을 보충하고자 저도 글을 보탭니다.한국의 인터넷 관련 정책이 야기한 현실의 후진성을 생각할 때 발전을 위한 기획은 반성과 개선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행사는 선진국과 유력 기업체의 리포트로 화려하게 채워졌으나 정작 한국의 현실을 중심에 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점을 들어 유감을 표한 것입니다. 제가 언급한 '후진성' '현실'이 어떤 것들을 가리키는지는 실무자이자 연구자인 현준호 님께서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하므로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겠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가나 사회 차원의 부정적인 순환고리를 지적하는 일은 행사 참가자들의 선의와 노고를 깎아내리는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상위 차원의 현상을 거기에 몸담은 개인의 잘못으로 돌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시행정이라는 말은 행정전략이 지니는 사회적 맥락을 지적하는 비평이지 일선 실무자를 모욕하기 위한 욕설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오래 전부터 직접 몸담아 준비한 일을 두고 부족했다고 표현한 것을 견디기는 어려우셨을 줄로 짐작합니다. 심기가 불편하셨다면 좀 더 주의깊게 단어를 고르지 못한 제 불찰이니 사과드립니다.
지적하시길, 제가 웹 접근성과 웹 상호운용성을 혼동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선 상호운용성이 크로스 브라우징이라면, 그 역시 웹 접근성에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웹 접근성을 장애인 지원이 아닌 정보 약자 지원으로 폭넓게 설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까닭은 비-익스플로러 사용자와 비-윈도우 사용자까지 정보 약자로 만드는 실정을 반영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개념 정의는 정치적인 확장이므로 함부로 동의를 구할 부분이 아닙니다만, 조악하게나마 제 의도를 전달할 수는 있으리라 봅니다.
김석일 교수의 발표를 듣고 '한숨이 나온다'고 표현했던 것도 앞선 단락들과 같은 맥락입니다. 발표 내용에 대한 논리적 비판이 아니었는데 그리 읽혔다면 그 역시 제 문장이 부정확한 탓에 의미가 왜곡됐다는 뜻이겠지요. 표준을 정립하려는 김석일 교수의 연구와 그 성과는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현장에서는 '한국에서도 이러한 시도가 지속되고 있구나'라고 오히려 자극을 받았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시인합니다. 기업체 발표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개별 발표자들의 수고에 감사하는 것과, 그 내용-업체의 입장-에 대해 비평하는 것은 목적과 형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본문에서 개별 참가자/실무자가 아니라 그들이 소속된 기관과 업체의 입장에 대해서 의견을 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싶습니다.
장단점을 고루 파악하고 균형있게 글을 쓰지 못해서 가뜩이나 모자란 문장이 모욕으로 전해진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차분하게 심정을 밝히고 사정이 이러했다고 알려주신 덕분에 생각을 알맞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더 민주적인 세상을 위해서 기술을 활용하려는 포부에 있어서 저와 현준호 님은 동지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서 없이 쓴 덧글이지만 제 뜻이 무사히 전달됐기를 바랍니다.
구체적인 지적과 자료 보충에 감사드립니다. 링크하신 글들이 매우 유익했습니다.
삐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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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대기업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국내의 대기업을 비롯한 IT 기업들은 이런 것을 잘 모르고, 노력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이에 외국 기업들의 활동과 정책들을 듣고, 이를 조금이라도 국내의 기업들이 접근성을 올바로 느끼고 실행해 달라는 메세지를 전달할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선진 사례를 받아 우리가 더 멋지게 할 수 있으니깐 말입니다.
주신 의견 잘 받겠습니다. 하지만 실무자의 입장에서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전시행정이라는 것과 발표자분들의 이야기가 대부분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댓글을 달게 되었습니다.
덩야핑님의 말씀 잘 경청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장애인, 노인 등의 접근성 분야에 깊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현준호 올림
정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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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접근성과 상호운용성의 공통점이 말씀하신대로 정보 소외 계층을 위한 개념이고 함께 추구해야 하는 가치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웹 접근성과 상호운용성은 명백하게 개념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으며 상호운용성은 장애인의 문제를 다루지는 않습니다.'장애인의 문제'와 '모든 사람을 위한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매우 방대한 분량의 지침이 필요하고 국제 지침들과도 맥락이 일치하지 않아서 적지 않은 혼란이 예상됩니다.
국내에서는 웹 접근성 지침을 보완하고 모든 이들의 정보접근 편의를 위하여 행정안전부에서 별도로 '전자정부 웹 호환성 준수지침'을 두고 있습니다. 아직 민간분야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웹 접근성 문제가 그렇듯이 정부에서 먼저 이를 실천한 다음에서야 민간부문에 강제할 수 있습니다.
웹 접근성이 상호운용성 문제를 소홀히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고 실제로 적용하는 분야가 다를 뿐입니다. 웹 접근성은 장애인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을 염두해 주셨으면 합니다.
IE의 성능과 ActiveX의 범람이 웹 접근성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웹 접근성 세미나에 참석해서 반성해야 할 만큼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것은 아닙니다. IE의 성능은 웹 접근성과 무관하며 ActiveX를 접근성 없게 만든것은 마이크로소프트보다 개발자들의 책임이 더 큽니다. IE와 ActiveX에 대한 사죄를 먼저 하라는 표현은 마치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사람에게 인류에 대한 모든 전쟁의 책임을 묻는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다른 어느 기업에 못지않게 접근성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있고 이미 충분히 인류에 기여해 왔습니다. 이는 어도비, 구글 모두 마찬가지 입니다.
대부분의 IT 기업들이 상호운용성 문제에 있어서 비판할 구석이 있는것은 사실이지만 웹 접근성 세미나 후기에서 상호운용성에 관련된 비판을 제기하는 것은 웹 접근성과 상호운용성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것 처럼 보이고 문맥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배경지식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 똑같은 것을 느낄수는 없겠지만 아래와 같은 표현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때울 망정, 있는 척하지를 마라, 부실했다, 구색만 맞춘다, 전시행정"
이런 표현들이 가치있는 피드백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발표자라면 이런 피드백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개선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박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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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술적으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개념일지라도 정치적으로는 한데 묶어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개념들을 둘러싼 권력의 방향성을 따질 때 그렇습니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접근성과 상호운용성을 엔지니어의 시각에서 평가하느냐 인권운동가 시각에서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기획 의도를 먼저 살피기보다 제 잣대로 일방적인 평가를 내린 것에 대해서는 현준호 님과 정찬명 님의 지적이 옳습니다. 다만 기업의 책임 소재를 어디서부터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듯 하고 그 이견이 짧은 글로 풀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본문에서 자극적인 문장만 골라 인용하신 의도가 무엇인지는 잘 알겠으나, 제가 세션을 나누어 리뷰한 까닭도 헤아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m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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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가 다이나마이트 급이군요. 재미있는 비유입니다. 유럽연합에서는 다이나마이트를 끼워팔면 불법이라고 판결해주었습니다. 그 공방과 불복종의 10년동안 인터넷이용환경을 좌지우지한 사업자보다 그 손바닥 위에서 플레이할 수 밖에 없었던 개발자들의 책임이 더 크다니. 음, 물론, 책임은 여기저기에 있겠지요. 한국에서 ActiveX를 깔지 않으면 인터넷뱅킹을 할 수 없는 이 현실, 돈 들여 구입하는 윈도우-IE가 아니면 왠만한 공공기관 사이트에서는 클릭조차 잘 안되는 이 현실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을까요? 개발자들?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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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도 웹을 이용하기 불편하지만 장애가 없어도 웹을 이용하기 불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사용자들이 웹에 접근(이용)하는데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를 중심으로 사고해야합니다. 소위 몸과 마음이 멀쩡해도 컴맹이면 전문가들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고 혼자서 쌩고생만 합니다. 서구에서는 이미 장애인이라는 말을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라던가 하는 말로 바꾸어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