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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6월항쟁에 대한 나의 기억(1)

한 몇 년 전만해도 6월항쟁 기념행사, 혹은 이한열 열사 추모행사는 늘 참석했던 것 같은데

근래들어서는 굳이 일부러 가서 참여하는 일은 없어진 것 같다.

올해가 87년 20주기인데...

지금 나에게는 6월항쟁보다 7,8,9 노동자 투쟁 관련 고민들이 더 커서인지 웬지... 와 닿지가 않는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6월항쟁은 관주도의 행사가 되어 버린 느낌도

영향이 없다 할 수 없겠지.

2000년, 광주항쟁 20주기 때 5.18이 기념일이 되고 정부 주도의 행사가 되어버리던 날

나는 광주에 있었다. 그래도 그 때까지는 5.18이 되면 광주에 내려가 행사참여도 하고

망월동 묘역도 참배하는 일정은 당연한 나의 삶의 일부였는데...

그날 본 광주의 신묘역과 기념행사는 너무 기가 막혔다.

완전히 유원지가 되어버런 신묘역, 광주의 그날의 기억들은 그저 사진 몇장으로

기념 코스가 되어 버렸고, 기념행사는 내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 같은 축제의 분위기 였다.

그날 같이 갔던 선, 후배들과 나는 이제 5.18 주간에 광주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 모양을 보는 것이 너무 아팠다. 

어제 저녁에 KBS 스페셜에서 87년 2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했다.

6.10도 기념일이 되고 또 관 주도의 행사를 한다. 5.18이 그랬듯, 6

.10도 이렇게 내 기억 속에만 간직해야 하는가...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고 학생운동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와 광주는 엄청난 충격이었고,

이 시대에 대학생이었던 내가 이 땅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게 해주는 큰 사건이었다.

그렇게 학생운동을 하던 나에게 87년의 기억은 뭐랄까 공포와 흥분... 그런 느낌이 교차하는 사건이다.

87년은 다 알고 있듯이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이 공개되면서 시작되었다.

나에겐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엄청난 공포였다.

한 해 전 86년 나는 남영동에 있는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수배중인 어떤 선배의 부탁으로 그 집에 갔던 적이 있다. 골목을 들어서는데

골목어귀에 포니 승용차가 한대 서있었다. (그 당시에 대부분의 승용차는 검은색 포니였다. )

운전석엔 어떤 남자가 신문을 보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전봇대 옆에서 또 다른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동물적인 본능이랄까 나는 이들이 경찰이라는 걸 느꼈다. 걸음이 빨라졌다.

조금 앞쪽에 또 다른 남자가 서있었다. 뒤따라오는 발자욱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다.

뛰었다. 다다다닥... 찻길에 다다랐을 때 남자들은 내 뒷덜미와 허리춤을 잡아챘다.

왜 그러냐고 했지만 저항할 힘이 모자랐다.

승용차에 태워지고 수갑이 채워졌다. 고개를 숙이라며 뒤통수를 눌렀다.

그리곤 그 위에 양복 윗도리를 덮었다.

정말 경찰일까? 아니면 납치범? 온갖 생각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사람들의 얼굴도 스쳐갔다.

얼마나 갔을까... 철문소리같은게 들렸다. 차가 멈췄다.

내 눈을 가리고는 나에게 내리라고 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구두발자욱 소리만 들리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려가는지 올라가는지...

다시 약간을 걸어 또 문 소리가 났다. 웅성거리는 소리...

눈을 덮었던 건 누군가 벗겼다. 갑작스런 빛에 잘 보이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대여섯명의 남자들은 다짜고짜 온갖 욕설을 하며 나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내 가방을 뒤지던 한 남자가 소리쳤다.

"이 X 완전 빨갱이 아냐?" "야, 이거 완전 골수야 골수!" 그러더니 다시 이어지는 구둣발과 손찌검.

나는 아픈 줄 몰랐다. 머리속에서는 계속 어떤 일이 꼬였을까...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또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하나... 누구를 갖다 대야 하지?

"좋은 말 할 때 이야기해. 000 이 어딨어?"  "제가 어떻게 알아요?"

"어쭈? 이게? 그럼 그집엔 왜갔어?"

"학교에서 어제 우연히 만났어요, 뭐 좀 갖다달라고 하기에 간거예요"

"지금 어딨어?" "몰라요" "어디서 만나기로 했을 거 아냐?"

"아니예요, 학교에 가면 알아서 연락한다고 했어요" 

"이거 안되겠네... 너 잠바 벗어!" "왜요?" "벗으라면 벗어"

남자들이 내 팔을 잡고 일으키더니 잠바를 벗겼다. 그리곤 내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웠다.

무슨 소린가 들려 돌아보니 이미 욕조에 물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아... 선배들한테 말로만 듣던 일들이 드뎌 내게 닥친거구나. 어떡하지? 어떻게 하지?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들은 다짜고짜 나를 물속에 쳐박았다.

욕조 바닥에 흙과 녹 조각들이 보였다. 그 와중에도 더럽다는 생각을 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참을수 있는 만큼 참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고개를 마구 흔들면서 발버둥을 쳤다. 욕조 밖으로 머리를 꺼냈다.

컥! 케엑! 쿨럭쿨럭...켁!!

"어딨어? 빨리 얘기해" "몰라요, 진짜 몰..." 다시 물속으로 쳐박혔다.

그러길 몇차례, 나는 정말 여기서 이렇게 죽는구나... 이렇게 죽을 수 있는 거였구나...

팜에서 읽고, 이야기로만 듣던 그런 일이 결국 나에게 일어나는 거였구나.

무서웠다. 엄마, 아빠의 얼굴과 몇몇 친구들의 얼굴들이 스쳐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슴에 물이 가득차 몸이 퉁퉁 부어가는 것 같았다.

"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엉엉 울었다. 공포에 싸여 나는 아이처럼 펑펑 울고 말았다.

"다 말할께요. 다, 살려주세요"

"진작 그럴 것이지, 000 어딨어?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

근데 정말 난 그가 어딨는지 몰랐다. 약속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안다고 해야했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고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했다.

"학교앞 00 주점에서 8시에 만나기로 했어요." "어? 시간 다됐잖아? 데리고 나와"

그리곤 한 남자가 뛰어 나갔고 다른 남자는 내 수갑을 풀어주며 옷을 입으라고 하곤 수건을 주었다.

하두 발버둥을 쳐서인지 온몸이 젖어있었다. 

잠바만 걸치고 젖은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닦으며 그 남자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여기는 도대체 어딜까? 서대문경찰서? 마포경찰서? 내가 아는 동네면 도망갈 수 있을까?

다시 이리로 들어온다면 정말 죽을 거 같았다.

나가서 거짓말이었던게 탄로나면 나는 이사람들 손에 죽을 거야.

이번엔 수갑을 앞으로 채웠다. 승용차에 타고 신촌 뒷골목까지 갔다.

서대문 경찰서나 마포경찰서는 아닌거 같다. 이렇게 멀지는 않을테니까.

운전자와 뒷자석에 나만 남겨두고 세 남자가 술집을 향해 갔다.

조용히 눈치를 살피며 양손을 잡아빼니 손이 수갑에서 빠진다. 한 손을 반쯤 빼고 앞자리를 살핀다.

문이 열리진 않을거 같았다. 발로 세게 걷어차면 열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이 돌아와 문을 열때 밀고 뛰어나갈까? 그런 건 영화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그랬다가 실패하면? 아... 상상하기도 싫다. 이렇든 저렇든 결국 난 이들 손에 죽을 거 같았다.

 

휴우~~ 안되겠다... 힘들어서 더 못쓰겠다. 눈물이 난다.

기억해내는 게  너무 힘들다.

그리고 지금은 밤이라 깊게 생각하면 잠을 못잘거 같다.

근데... 언젠가는 한 번 털어내 버리고 싶은 이야기인데...

어젯밤 KBS 스페셜을 보고 잠을 또 못잤다. 그냥 눈물이 흘렀다.

어떻게 해야 가벼워질까? 털어내고 싶은데.

일단은 그만 써야 겠다. 쓰던 원고나 마저쓰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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