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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매화는 봄을 불러오지 않는다

 매화는 봄을 불러오지 않는다

-박지연 씨*를 추모하며


                                                      - 박일환-

 

더 이상 믿지 않기로 했다

매화가 피면 봄이 멀지 않다는 사실

만고불변의 진리라 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 이제부터

기대와 소망 따위 품지 않기로 했다


남쪽에서 매화가 한창 북상 중이던

3월의 끄트머리를 밟고

네가 가버린 그날 그 순간부터

꽃 피는 봄날이라는 말, 함부로

읊조리지 않기로 했다


어떤 눈보라가 쳤던 건지

어떤 비바람이 불어왔던 건지

살아생전 대답도 듣지 못한 채 너는 가버렸고

속절없이 꽃이 핀들

눈길은 너를 더듬어 하늘로만 향하는데

드디어 봄이야,

고운 네 목소리로 들려주지 않는 한

봄이 어찌 봄이겠는가

꽃이 어찌 꽃이겠는가


네가 없는 지상에선

한 줌 햇살마저 차마 부끄러워


꽃이 무더기로 피었다 지더라도

봄바람이 대책 없이 살랑대더라도

꽃 같은 것 예뻐하지 않기로 했다

봄 같은 것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여고 3학년 때부터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투병하던 중 2010년 3월 31일에 만 스물셋의 나이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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