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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 대한 단상

1.

내 출근길은 참으로 길다.

하지만 꼬불거리는 시내를 지나 능곡을 끝으로 도시지역을 벗어나는데

여기서부터는 지루함은 사라지고, 멋진 풍경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수로에는 넘치도록 물이 흐르고

수로 옆으로는 나무들과 키 큰 갈대들이 자란다.

수로를 지나면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이다.

덕양산은 계절의 변화를 늘 극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먼저 이파리를 틔우고 또 가장 먼저 이파리를 떨구는 이름 모를 나무가 대표적인데

색의 미묘한 차이로 문득 다른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덕양산을 지나면 자유로 강변길이다.

넓은 강하고, 그보다는 좁지만 그래도 제법 넓은 강변 공원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2.

행주산성 앞 수로부터 덕양산자락을 지나 강변의 긴 자유로, 그리고 넓은 강 위를 가로지르는 성산대교

이 길다란 길은 시원한 눈맛을 주는 동시에 풍요로운 사색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 길가에는 새들도 많다. 어쩜 새들이 이곳의 진정한 주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철새라는 말이 무색해진 오리와 기러기 떼들이 때때로 날아다니고, 가끔 맹금류인 말똥가리가 상공을 배회하거나 가로등 위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성산대교를 건널 땐 너무나 도도한 품위를 지닌 갈매기나 가마우지의 근접비행을 종종 볼 수 있다.

 

갈매기는 주로 버스와 같은 방향으로 비행하는데, 군살 하나 없는 날렵한 몸매에 어쩜 날개짓도 없이 그렇게 우아하게 비행한단 말인가. '갈매기의 꿈'을 쓴 리처드 바크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을 만하다.

 

멋지기로 말할 것 같으면 가마우지도 빠지지 않는다.

이름 때문에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 분들도 있겠지만, 모르시는 말씀이다.

한번은 아침 출근길에 가마우지가 하류에서 내가 탄 버스 쪽으로 유유히 날아오는 거였다.

붉은 벼슬이 있는 것으로 봐선 수놈이 분명하다. 다행이(?) 길이 막혀 버스는 거의 정지하고 있어 오래도록 볼 수 있었다. 까만 몸매에 붉은 벼슬이 도도라진 가마우지는 마치 버스를 들이받아도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듯 위엄 있게 날아오고 있었다.

 

3.

새들을 볼 때마다

세상 모든 생물들 중에서 기적적일 정도로 가장 놀라운 시도를 한 종이 새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떻게 하늘을 날 생각을 했을까.

중력을 무시하고 하늘을 난다는 건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것 아니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도를 했길래 지금의 새의 모습으로 진화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은 자전거라고 생각한다. 어떤게 나란히 있는 두바퀴로 이동하는 수단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역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진정한 천재다.)

 

위대한 시도를 했고, 여전히 기품 있는 우아한 종족인 새들도 진화과정에서 얻음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의 위대한시도는 치명적인 대가가 필요했으니 그건 머리가 작아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들을 빗대어 '조두'라는 놀림을 스스럼없이 한다.

그렇더라도 그들의 위대한 시도는 박수를 받을 만하지 않겠는가?

 

물론 날 수 있는 게 새들 뿐만은 아니다.

특히 나비류로 말할 것 같으면 너무나 신기해 무신론자인 나조차도 신이 없다는 신념이 흔들릴 정도다.

 

나비류는 날 수 있는 또 다른 곤충인 메뚜기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심지어 변태 과정을 가지고 놀라운 비행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슷해 보이는 잠자리류하고도 다르다. 메뚜기류의 날개는 강력한 뒷발에 의한 도약의 보조수단일 뿐이다. 메뚜기와 잠자리는 날 때부터 날개자리를 몸에 가지고 있다. 마치 아이가 이빨 없이 태어나도 잇몸 속에 이빨 씨가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나비류는 애벌래 시절에는 어디에서도 날개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 않은가.

 

고치를 짓고, 번데기가 되는 것도 신기하다.

드디어 번데기 껍질을 벗고 우아한 나비로 태어나는 건 진화론만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다.

 

4.

그렇담 산오리는 어떤가.

사실 산오리는 조류가 아니지 않은가.

조류로 위장한 인간일 뿐이다.

 

위장 조류일지라도 산오리 또한 조류의 특징을 잘 가지고 있다.

남들 야구장 가는 게 배가 아파 비나 펑펑 와 경기가 취소되라고 고사를 지낼 정도로 늘 유쾌하고 자유로운 발상을 하지만

그 대가가 만만치 않음을 계산에 넣지 못한다.

 

그래도 그 역시 조류의 또 다른 특징인 우아한 위엄을 가지고 있으니

'당신 때문에 야구도 못 봤으니 빨리 와서 술 사'라는 요구에

기꺼이 먼 길을 와 술을 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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