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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한문관련 이야기들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2/10
    위로2 - 어리석음이...(2)
    풀소리
  2. 2008/11/16
    진정한 용기는(2)
    풀소리
  3. 2008/10/15
    남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1(6)
    풀소리

위로2 - 어리석음이...

남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2 - 어리석음이 앎의 최고 형태입니다. 1. 논어는 총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공야장은 제5편이다. 논어의 핵심은 주로 앞 10편이라고 하니 공야장도 핵심 중 하나이다. 공야장 20장엔 이런 말이 있다. 子曰 甯武子邦有道則知하고 邦無道則愚하니 其知는 可及也어니와 其愚는 不可及也니라 영무자는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지혜로웠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다. 그 지혜로움은 따를 수 있지만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 나는 이 대목을 공부할 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나의 공부가 간신히 진도를 따라가는 정도였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겠다. 어쨌거나 신영복 선생은 자신의 책 [강의]에서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소제목을 '어리석음이 앎의 최고 형태입니다.' 라고 붙였다. 뜻을 새기고 다시 읽으니 신영복 선생의 소제목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영무자는 춘추시대 위나라 대부였다. 위나라 문공시절엔 정치가 잘 이루어졌었다.(도가 있음) 이 때 세상(딴 나라) 사람들은 영무자 대부가 있는지조차 잘 몰랐다. 그러나 문공이 죽고 그 아들 성공(成公)이 임금이 되어서는 정치를 잘 못해(도가 없음) 진나라에 의해 성공이 임금 자리에서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성공은 포로가 되기도 하고, 망명을 하기도 했다. 그때 항상 옆에 있었던 사람이 영무자였다. 영무자의 천신만고 노력 끝에 성공은 다시 위나라 임금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공자가 이 일을 가지고 위와 같이 말한 것이다. 3. 평화롭고 정치가 훌륭한 시기엔 누구나 재능만 꽃피우면 된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거나 희망이 안 보이는 시절엔 대부분 재능있는 이들은 뜻을 굽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재능을 쓴다. 반면 그 재능을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또는 희망을 위해서 오로지 쏟는 이들도 드믈지만 있다. 영무자처럼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이들을 어리석다고 여기기도 한다. 좋고 나쁨을 떠나 이러한 어리석음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게 단파 라디오 하나만 있었으면 나도 변절하지 않았을 거" 라는 세칭 조선의 천재 이광수의 초라한 변명을 보라. 이른바 전국적인 천재의 두뇌로도 따를 수 없는 것이 공자가 말한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지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더욱이 희망을 만들어 나갈 핵심 조직인 민주노총이 희망을 만들어 나가기 보단 자기혁신을 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깎아가며, 견디면서 희망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조그만 위로의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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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용기는

[고전명구 35] 진정한 용기는 기세를 부려 억지소리를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허물 고치기에 인색하지 않고 의리를 들으면 즉시 따르는 데 있는 것이다 眞勇 不在於逞氣强說 而在於改過不吝 聞義卽服也 진용 부재어령기강설 이재어개과불린 문의즉복야 - 이황(李滉), 서답기명언논사단칠정(書答奇明彦論四端七情)/ 《퇴계집(退溪集)》 <해설> 위 글은 사단(四端)·칠정(七情)과 이(理)·기(氣)의 문제에 대해 변론한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편지에 퇴계(退溪) 이황(1501~1570)이 답한 글에 있는 구절입니다. 고봉이 자신의 논의를 굽히지 않자 퇴계는 주자(朱子)의 용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주자는 조금이라도 자기 의견에 잘못이 있거나 자기 말에 의심스러운 곳이 있음을 깨달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남의 말을 받아들여 즉시 고쳤으니, 비록 말년에 도(道)가 높아지고 덕(德)이 성대해진 뒤에도 변함없었습니다.” 하물며 성현의 도를 배우는 길에 갓 들어섰을 때에는 어떠했겠느냐고 고봉에게 반문하며, 퇴계는 20여 년 아래의 젊은 후배에게 위와 같이 타일렀던 것입니다. 옮긴이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 옛날 매우 뛰어났던 분들도 자기의 의견이 잘못됐음을 알고 바로 고치는 것이 용기고,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언제든지 자신의 의견이 잘못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열린 마음'을 갖는다는 것 또한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위의 글은 내가 다니고 있는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주기적으로 보내주는 메일에서 인용한 것이다.) --------- <사족> : 나는 한문을 공부하지만, 유학을 실천윤리 이상으로 신봉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첫째, 유학이 '관념론'이기 때문이다. 성선설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람마다 지극히 선한 본성이 있다'라는 것인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성인'만 알 뿐이다. 사람마다 마음 속에 진리를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음에도 그 사람은 진리가 아니다. 사람들은 단지 그 지극히 선한 본성이 드러나도록 노력해야 하는 존재다. (반면 맑스는 '진리(지극한 선)는 실천이다'라고 설파했다. 순간순간 스스로 올바르다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 자체가 진리라고 하였으니, 나이가 어리든 많든, 학식이 있든 적든, 자리가 높든 낮든 관계없이 평등한 관계가 설정될 수 있다.(더 나아가면 안 되겠지???)) 둘째, 지나친 윤리관 때문이다. 이 부분만으로도 긴 포스팅 하나를 할 수 있으므로 근거는 다음에 얘기하자. 다만 지나친 윤리관을 개인이 갖는 것은 취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통치자는 그래야 한다'든지, 나아가 '사람은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순간 세상은 로비에스삐에로나 스탈린 시대와 같은 가혹한 독재체제가 되든지, 아니면 소모적인 당파싸움으로 번진 송나라나 조선처럼 가식적인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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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1

1. 배운 건 써먹어야쥐~ ㅋ 연수원에서 배운 것을 종종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예전부터였다. 어찌됐든 카테고리 하나를 나눴다. 이제부터 한문이야기를 써보자. 2. 첫 번 째로는 그래도 남은 이들을 위하여 쓰기로 했다. 子貢問曰 鄕人皆好之면 何如잇고 子曰 未可也니라 鄕人皆惡之면 何如잇고 子曰 未可也니라 不如鄕人之善者好之요 其不善者惡之니라 (논어 제13편 자로 제24장) 자장이 물었다. "고을 사람이 그를 모두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可하지 않다." "고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미워하면 어떻습니까?"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可하지 않다. 고을 사람 중에 善한 자가 좋아하고 善하지 않은 자가 미워하는 사람만 못하다." 여기에 대하여 주자께서 주석을 달았다. 선한 자도 좋아하고, 악한 자도 싫어하지 않는다면 구차하게 시류에 영합해서 사는 것이고, 악한 자도 미워하고 선한 자도 미워한다면 좋아할 만한 구석이 없는 것이라고... ㅋ 3. 위로는 되셨는지 모르겠다. 특히 오늘도 열심히 싸우고 계실 연부에게 우선해서 이 위로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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