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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2 - 어리석음이...

남은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2 - 어리석음이 앎의 최고 형태입니다. 1. 논어는 총 20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공야장은 제5편이다. 논어의 핵심은 주로 앞 10편이라고 하니 공야장도 핵심 중 하나이다. 공야장 20장엔 이런 말이 있다. 子曰 甯武子邦有道則知하고 邦無道則愚하니 其知는 可及也어니와 其愚는 不可及也니라 영무자는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지혜로웠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다. 그 지혜로움은 따를 수 있지만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 나는 이 대목을 공부할 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나의 공부가 간신히 진도를 따라가는 정도였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겠다. 어쨌거나 신영복 선생은 자신의 책 [강의]에서 이 대목을 인용하면서 소제목을 '어리석음이 앎의 최고 형태입니다.' 라고 붙였다. 뜻을 새기고 다시 읽으니 신영복 선생의 소제목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영무자는 춘추시대 위나라 대부였다. 위나라 문공시절엔 정치가 잘 이루어졌었다.(도가 있음) 이 때 세상(딴 나라) 사람들은 영무자 대부가 있는지조차 잘 몰랐다. 그러나 문공이 죽고 그 아들 성공(成公)이 임금이 되어서는 정치를 잘 못해(도가 없음) 진나라에 의해 성공이 임금 자리에서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성공은 포로가 되기도 하고, 망명을 하기도 했다. 그때 항상 옆에 있었던 사람이 영무자였다. 영무자의 천신만고 노력 끝에 성공은 다시 위나라 임금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공자가 이 일을 가지고 위와 같이 말한 것이다. 3. 평화롭고 정치가 훌륭한 시기엔 누구나 재능만 꽃피우면 된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거나 희망이 안 보이는 시절엔 대부분 재능있는 이들은 뜻을 굽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재능을 쓴다. 반면 그 재능을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또는 희망을 위해서 오로지 쏟는 이들도 드믈지만 있다. 영무자처럼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이들을 어리석다고 여기기도 한다. 좋고 나쁨을 떠나 이러한 어리석음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게 단파 라디오 하나만 있었으면 나도 변절하지 않았을 거" 라는 세칭 조선의 천재 이광수의 초라한 변명을 보라. 이른바 전국적인 천재의 두뇌로도 따를 수 없는 것이 공자가 말한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지금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더욱이 희망을 만들어 나갈 핵심 조직인 민주노총이 희망을 만들어 나가기 보단 자기혁신을 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깎아가며, 견디면서 희망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조그만 위로의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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