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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강의」를 읽고

신영복 선생이 펴낸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강의」를 읽었다. 나는 ‘내가 어떤 점에 유념하여 동양고전을 읽을까’를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고, 독후감 역시 그런 생각에 맞춰서 썼다.

 

책을 사놓은 지 오래되었는데, 왼 일인지 책을 끝까지 읽지 않고 그동안 방치해두었었다. 연수원 과제물로 독후감을 쓸 겸 다시 꺼내 읽으면서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동양 고전에 대해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하여 신영복 선생이 강의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사실 그동안 나는 동양 고전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신영복 선생의 깊은 사색이 묻어나는 책들을 좋아하면서도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것 같다.

 

한문공부를 하지 않겠다던 나의 옛 결심과 달리 한문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금에 와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의외로 슬슬 읽힌다. 신영복 선생 지적대로 ‘처지’에 따라 ‘보는 것’도 다른가 보다.

 

나는 한문공부를 하면서 동양의 고전을 공부하고 있지만, 내가 고전 속에서 뭔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나는 고전을 단지 한문을 익히는 수단으로만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왕 고전을 읽는 김에 거기에 묻어 있는 옛 사람들의 고뇌를 함께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영복 선생이 지적한대로 고전은 길게는 ‘5천년 동안 쌓여온 태산준령’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신영복 선생은 “서양의 사회 구성 원리가 ‘존재론(存在論)’임에 비하여 동양의 그것은 ‘관계론(關係論)’이다.” 라는 관점 동양 고전을 볼 것을 권하고 있다. 선생은 ‘인간’이란 개별체가 아니라 ‘인간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먼저 詩經, 書經, 楚辭를 소개한다. 시경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의 사실성에 있다고 한다. CF와 같은 상품미학이 진실이 아니고, 사이버세계는 허상이다. CF나 상품미학이나, 사이버세계는 요즘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문화이기도 하다. 본질적으로 허구의 세계에서 사실성과 진정성을 담은 시경의 시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선생은 시경 독법을 ‘우리들의 문화적 감성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일에서 시작할 것’을 권한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하기 보단 정서적 차원에서 접근’할 것을 아울러 권한다. 시경의 시에 응축되어 있는 당시인들의 아픔과 기쁨을 보아야 할 것 같다.

 

서경(書經)은 요임금, 순임금, 우왕, 탕왕, 문왕(또는 무왕)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중국에는 고대부터 역사를 기록하는 史官이 있었는데, 사관은 왕의 言行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왕의 언행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은 종교의 ‘지옥’ 설정보다 더 강력한 규제 장치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역사를 기록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은 「무일(無逸)」편을 소개하면서 서경을 소개한다. 무일편은 ‘군자는 무일(편안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 먼저 노동의 어려움을 알고 그 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는가를 알게 된다.’로 시작된다. 이 글은 주공이 조카 성왕(成王)을 경계하여 한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일사상(無逸思想)은 주나라 역사 경험의 총괄이라고 한다.

 

초사(楚辭)는 초나라의 시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굴원(屈原)과 그의 제자 송옥(宋玉)의 작품을 모아놓은 책이다.

 

초나라는 아시다시피 양자강 유역에 자리 잡은 나라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중국(中國)이라는 말은 황하유역만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초나라는 나라가 아무리 부강하였어도 변방임에 틀림없다.

 

황하유역이 강건한 남성성이 특징이라면 양자강 유역은 낭만적 여성성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은 낭만주의가 개인주의적이고, 도피 또는 복고적이라는 실천의 허약함 때문에 긍정성이 훼손되어왔지만, 오늘날과 같은 강고한 억압 구조 속에 숨겨진 물리적 구조를 드러내기 위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중국 현대역사를 바꾼 대장정(大長征)이 낭만주의와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 대통령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마오쩌뚱이 건넨 선물이 바로 이 「초사」라고 한다.

 

다음으로 소개하는 고전이 주역(周易)이다. 우리가 연수원에서 배울 필수과목 중의 하나다.

 

대게 주역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점(占)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점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으니 주역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던 것도 어쩜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선생은 주역을 관계론의 관점에서 볼 것을 권한다. 그러면서 주역에 담겨 있는 판단형식 또는 사고의 기본 틀을 중심으로 강의를 한다.

 

주역은 물론 점에 관한 책이다. 점에는 크게 상(相), 명(命), 점(占)으로 나누는데, 상과 명이 관상이나 사주팔자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엿보는 것에 비해 점은 ‘선택’과 ‘판단’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주역은 오랫동안 쳐온 점을 모아놓은 것에 공자학파가 해설을 달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해설이 철학적 해석이기 때문에 의미가 대단히 크다고 한다. 주역에는 자리(위, 位)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계(응, 應)라고 한다. 앞으로 주역을 공부할 때는 주역이 그 관계를 어떻게 철학적으로 해석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는 논어(論語)다.

논어는 다 알다시피 공자 또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말과 문답을 모아놓은 책이다. 주로 문답이 많으니 구성 자체가 인간관계이기도 하다.

 

신영복 선생은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연구물이 많이 나오는 등 논어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논의를 의식해서 ‘시제(時制)’에 유념하여 논어를 읽을 것을 권한다.

 

논어는 「학이(學而)」편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편은 첫 구절이 그 유명한 學而時習之不易悅乎로 시작된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로 일반적으로 해석한다. 선생은 여기서 습(習)을 ‘복습’이 아닌 ‘실천’으로, 시(時)를 ‘때때로’가 아닌 ‘적절한 시기’로 해석한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적절한 시기에 실천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느 정도 공부가 됐을 때 선생 강의를 한번 듣고 싶다. 선생이 소개한 부분 중 새삼 새롭게 이해된 부분을 인용하고자 한다. ‘영무자는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지혜로웠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다. 그 지혜로움은 따를 수 있지만 그 어리석음은 따를 수 없다.’

 

도가 있느냐 없느냐는 어려운 개념일 수도 있겠지만, 단순하게 말하면 잘 다스려지느냐 아니냐로 나눌 수 있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사람들의 지혜가 빛나지만, 나라가 망한다든지 했을 때는 우직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바보로 여겨지기도 한다. 비유하자면 독립이 영원히 되지 않을 것 같은 식민지 조선에서도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이 그렇게 여겨졌을 것이다. 영무자가 그러했듯이 이런 우직한 이들은 따라 하기 힘든 것이고, 그것을 알아준 공자와 그 문인들 역시 대단한 사람인 듯하다.

 

다음은 맹자(孟子)이다.

 

맹자는 공자가 돌아가시고 약 100년 뒤에 태어났다고 한다. 시대는 춘추시대가 끝나고 국가 간 경쟁과 전쟁이 더 치열해진 전국시대로 변해있었다. 맹자는 이러한 험한 시대에 인(仁)과 의(義)를 사회 구성 원리로 설파하였다고 한다.

 

맹자의 글은 매우 논리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서당에서 맹자로 문리(文理, 독해력)를 틔운다고 하니 열심히 공부해볼 일이다.

 

다음은 노자(老子)이다.

 

노자는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근본은 자연(自然)이다. 노자가 말하는 자연은 산천과 같은 자연이 아니라 천지인(天地人)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한다고 한다. 노자의 이러한 성격은 다른 제자백가의 사상이 인간 이성에 의한 세상에 대한 개입을 근거로 하는 것과 명백히 대비된다고 한다. 그러나 유가들도 수없는 해설서를 썼듯이 장자와 함께 중국 사상사에 엄청나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도(道)는 상당히 철학적인 개념으로 어렵기도 하다. 노자는 도(道)를 설명하면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하였다. 보이는 것 중에 도에 가장 가까운 것이 물이라는 것이다.

 

장자(莊子)는 6만 5천자나 되는 방대한 책이라고 한다. 노자와 마찬가지로 장자도 제도 개혁만으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에 삼고 있다고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있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이라고 한다.

 

묵자(墨子)는 뒤에 소개되는 순자, 한비자와 더불어 비주류사상이라고 한다. 반전, 평화, 평등사상을 주장하고 실천하였던 묵가(墨家)는 한때 유학과 마찬가지로 번성하였지만, 한(漢)나라가 유학을 국학으로 채택되면서 탄압받아 소멸하여 18세기 말에야 묵자주가 나오고,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와서야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묵자는 겸애(兼愛)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교리(交利)라는 상생 이론을 선언하였고, 이러한 이론을 지침으로 하여 연대라는 실천적 방식을 통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끝으로 성악설로 알려진 순자(荀子)와 법가의 시조 한비자(韓非子)를 소개하고 있다.

 

비주류 사상이지만 진(秦)나라에 의한 중국통일을 이룬 법가의 모체가 된 사상이라는 점에서 시대적 고민과 함께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물론 신영복 선생 특유의 깊은 사색을 함께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해보자. 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 2차 대전 전승 기념탑에 관한 얘기다. 신영복 선생은 이 탑을 보고 전승탑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 탑은 언덕 위에서 팔 벌리고 서 있는 어머니상이었다고 한다. 전승 기념탑 하면 해병대 병사들이 고지에 깃발을 꼽는 이미지가 각인 된 선생에게는 너무나도 낮선 것이었다고 한다. 안내자에게 탑에 대하여 묻자 안내자는 설명하였다고 한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아들이 죽지 않고 돌아온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돌아오는 아들을 맞으러 언덕에 서 있는 어머니의 상이야말로 그 어떠한 것보다 전승의 의미를 절절하게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고 말이다. 이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며 선생은 많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전쟁과 승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천박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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