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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땅

이집트 종살이로부터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신이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먹고 입을 것이 만족스럽지 않은 40년의 광야 생활.
자기들을 이끌어 낸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기도 하고,
신을 배신하기도 한다.

 

신은 그들을 가르친다.
광야에서, 절망의 땅 광야에서
새 땅 가나안에 들어갈 자기 백성을 가르친다.

그 가르침을 기꺼이 견뎌낸 백성들은
거처없는 광야 생활 40년을 기쁨으로 이겨내고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땅, 가나안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다시 그 광야에 살고 있다.

 

자본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적은 무리의 사람들에게 이곳은,
자기들이 건설한 최고의 땅이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소외된채 그들의 땅을 떠받치고 있는 우리에게 이곳은
끝모를 절망의 땅, 광야다.

 

먹을 것이 위태롭다.
먹을 만한 짐승, 먹을 만한 과일을 만나지 못하면
오늘 하루 주린배를 움켜쥐어야 한다.

 

입을 것이 위태롭다.
새 옷을 지어 입을 수도 없고, 해진 옷을 꿰매 입을 수도 없다.

 

잠자리마저 위태롭다.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들판의 맹수들과
눈도 감지 못한채 동침해야 한다.

 

이 광야의 끝조차 우리는 모른다.

 

순간순간 희망을 가져보지만,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지루한 싸움은 우리를
다시 절망하게 한다.

순간순간 희망을 가져보지만,
우리 어깨 위에 왕국을 건설한 적은 무리는
그때마다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그렇게 절망의 땅 광야에서 우리는 죽고,
또 태어나고,
또 죽어간다.


 

그러나 광야는,
배움의 땅이다.

 

내 먹을 것을 위한 우리의 몸부림이 우리를
광야에 가둬두고 있다는 것을 배운다.

내 입을 것을 위한 우리의 다툼이 우리를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배운다.

내 잠자리를 위한 외로운 노동이 우리를
광야에서 영영 길 잃게 한다는 것을 배운다.

나 혼자 꿈꾸는 희망은 언제나
광야에서 맴돌다 흔적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배운다.

 

 

그래서 광야는 또,
희망의 땅이다.

 

배울 것 다 배우고 나면,
서로 기쁘게 손맞잡고,
배울 것 다 배우고 나면,
서로 기꺼이 어깨걸고,
배울 것 다 배우고 나면,
덩실덩실 춤추며 들어갈 새 땅,
우리들의 가나안에 맞닿아 있는 희망의 땅이다.

 

광야에서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절망의 땅에 남는다.
광야의 가르침을 겸손히 배우면 우리는
새로운 땅 가나안에 산다.


한 때 우리와 먹을 것을 나누던 가난한 이웃 한 분이
아무도 돌보지 않는 지하 셋방에서 홀로 돌아가셨다.

 

그분은 광야에서 외롭게 돌아가셨을까?
그분은 새로운 땅 가나안을 보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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