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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3/03/16
    손 내미는 사람 신현정
    젊은바다
  2. 2012/06/30
    최선은 늘 가능합니다
    젊은바다
  3. 2012/06/24
    평가와 성찰
    젊은바다
  4. 2012/06/20
    간절함
    젊은바다
  5. 2012/06/19
    투쟁하는 노동자
    젊은바다
  6. 2012/06/14
    통하였느냐;
    젊은바다
  7. 2012/04/19
    강희철 열사 - 열사예배 120415
    젊은바다
  8. 2012/04/19
    권희정 열사 - 열사예배 120415
    젊은바다
  9. 2012/04/19
    진철원 열사 - 열사예배 120415(1)
    젊은바다
  10. 2012/04/01
    허세욱 열사 - 열사예배 120401
    젊은바다

손 내미는 사람 신현정

‎2013년 3월 15일....
신현정추모콘서트 잘마쳤습니다.
콘서트를 아름답게 만들어준 선후배동료 여러분...
오셔서 함께 마음 나눠주신 모든 분들...
참 고맙습니다.

 

손 내미는 사람 신현정

 

현정이는 

수줍게 손 잡아달라고 말했습니다.

 

좋은 일이 있는 날은 반짝이는 눈으로

슬프거나 화나는 일이 있는 날은 촉촉한 눈으로

그렇게 손 잡아달라고 말했습니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화 내달라고

그렇게 손 내밀었습니다.

 

위로하고 지지하기 위해 그 손 잡았습니다.

 

그렇게 손을 잡고

밤이 새도록 울고 웃고 노래하고 춤췄습니다.

 

참 신기하지요.

 

그렇게 날이 밝아오면

정작 위로받고 지지받아 새로운 힘이 솟는 것은 저였습니다.

제가 그 손 잡아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더 따뜻하게, 더 꼭 손잡아주고 있는 것은 현정이었습니다.

 

현정이는 그렇게 위로해 달라고 다가와 손을 내밀고는

저를 위로하고 제 손을 어루만져주었습니다.

현정이는 그렇게 지지해 달라고 다가와 손을 내밀고는

저를 지지하고 제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현정아, 내가 더 따뜻하게 잡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현정아, 내가 더 꼭 잡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현정아, 내 손 따뜻하게 어루만져줘서 고마워.

  현정아, 내 손 꼭 잡아줘서 고마워.’

 

현정이가 잡은 손 살며시 놓고 우리 마음으로 들어왔습니다.

 

이제 현정이처럼 손 내미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손 내밀어 누군가 제 손 잡으면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꼭 잡아주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현정이처럼.....

 

지난 43년.

현정이가 수줍게 내민 손 따뜻하게 꼭 잡고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노래하고 춤춰주신 여러분,

여러분이 손 잡아주셔서 현정이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2013. 3. 15 신현정 추모콘서트

정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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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은 늘 가능합니다

최선은 주어진 상황에서 이상향이나 절대선을 향해가는

가장 좋은 길, 가장 새로운 길을 의미할 뿐

이상향이나 절대선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렵더래도 갈 만하니 길이 생기는 겁니다.

어떤 힘든 상황이라도 그것을 뚫고 나갈 길이 있으니 주어지는 것입니다.

 

차악이니 차선이니 말하는 것은

현재를 즐기고 현재가 최선인 자들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려는 검은 음모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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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와 성찰

주민운동 교재에서 주민조직화 단계를 10개로 나누어 이야기 하면서

평가와 성찰을 굳이 각각 하나의 단계로 나누어 놓고 있습니다.

 

하고자 한 일이 계획대로 잘 되었는지를 따지는 게 평가입니다.

 

그 일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과제가 남았는지를 살피는 게 성찰입니다.

 

우리는 평가는 열심히 하지만 성찰은 대충 넘깁니다.

성찰이 없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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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

천안에서 저녁에 하는 풀뿌리 학교 마치고 막차로 잠실 왔습니다.

이제 다시 남양주 들어가는 버스에 실렸습니다.

 

오늘은 '간절함'이 마음에 왔습니다.

 

간절하지 않으면 뛰어들지 않습니다.

간절하지 않으면 끝까지 하지 않습니다.

간절하지 않으면 다시 하지 않습니다.

간절하지 않으면 지치고 힘들어 합니다.

간절하지 않으면 딴 마음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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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하는 노동자

노동자들이 투쟁합니다.

노동자들이 연대합니다.

 

노동자들은 혼자서 잘살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잘살기 위해 투쟁합니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를 세우기 위해 투쟁합니다.

 

바보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난 연대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를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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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하였느냐;

내가 말하고 싶은 것

내가 말하기 편한 언어

내가 말하기 좋은 방법.

 

그걸 고집하지 않으니

관계가 생기고

관계가 생기니

말하지 않아도 뜻이 흐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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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철 열사 - 열사예배 120415

강희철 열사
(1962년~2003년)   당시 41세 사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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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2월 19일 인천 출생
1989년 인천민주청년회 노동분과
1990년 인천민주노동청년회 조직국장
1991년 노동자 문화마당 ‘일터’기획실장
1993년 통일을 여는 민주노동자회 조직위원장, 노동자 통일대 ‘백두’활동
1995년 한국노동운동협의회 조직강화특위 수도권 대표
1996년 평화와 참여로 가는 시민문화센터 사무처장
1998년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본부장
1999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인천연합 조직위원
2000년~2002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조직위원장
2003년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정치위원장
2003년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중앙집행위원회 회의도중 뇌출혈로 입원
2003년 4월 13일 41세 나이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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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62년에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지역에서 청년 노동자들의 의식화와 조직화를 위해 젊음을 다 바쳤다. 또한 ’00년부터는 전국연합 조직위원장, 정치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평생을 조국의 통일과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의 길에 바쳐왔다.
’03년 전국연합 중앙집행위원회 회의 도중 뇌출혈로 입원한 동지는 미국에게 빼앗긴 주권회복과 진보정치 승리를 위한 그 길에서 동지와 함께 해온 수많은 동지들의 눈물 섞인 방문과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42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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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열사 - 열사예배 120415

권희정  열사
(1973년~1996년)   당시 23세 학생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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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5월 서울 출생
1992년 3월 성신여대 사범대 국민윤리교육과 입학
              제 14대 대선공정선거 감시단 활동
1993년 불교학생회 회장, 시사토론 소모임 ‘물결’ 결성
1995년 사범대 학술부장 활동
1996년 2월 총학생회 정책국장 활동
1996년 4월 7일 ‘합리적 등록금 책정을 위한 재단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단식 및 총장실 점거 농성 중 과로와 단식 후유증으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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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성신여대에 입학한 후 불교학생회 회장, 총학생회 활동을 하며 그 누구 못지않게 열정적인 활동을 해왔다. 동지가 총학생회 정책국장으로 활동하던 ’96년 성신여대 총학생회는 ‘예결산안 공개’, ‘등록금 소위원회 재개’ 등을 요구하며, 학원자주화투쟁을 시작하였다. 이에 학교 측이 학생들의 요구는 외면한 채 학생들에게 위협을 가하자 그 당시 총학생회 정책국장이었던 동지는 총학생회장과 함께 학원자주화투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각오로 학교 측이 즉각 협상에 나올 것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하였다. 동지는 단식 도중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진 상태에서 감기까지 걸려 가슴이 답답하다는 등의 통증을 호소하였으며, 급기야 4월 7일 새벽 1시경 고대 안암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밤 11시 30분경 갑작스런 심근염으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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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원 열사 - 열사예배 120415

진철원  열사
(1976년~1996년)   당시 20세 학생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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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월 4일 서울 출생
1995년 2월 대원고등학교 졸업
1995년 3월 경원대학교 도시계획학과 입학, 민족사 연구회 ‘한얼’ 활동 시작
1995년 8월 잠시 동아리 활동 중단
1995년 12월 장현구 선배의 사인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투쟁이 전개되고 있을 때 다시 활동 시작
1996년 4월 6일 밤 9시 30분 경 총여학생회실에서 분신하여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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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95년 대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원대학교 도시계획학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동아리 민족사 연구회 ‘한얼’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경원대는 ’91년 최원영 재단이 새롭게 들어서면서 고질적인 사학비리와 ’95년 108명 제적 등 무리한 학생 징계, 고발로 사회적 물의를 빚어왔는데, ’95년 12월 4일 분신 운명한 고 장현구 동지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이 4달째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경원 7천학우들은 울분에 차 있었고 동지는 주변선배와 동기들이 고생하는 것을 많이 안타까워했다. ’96년 4월 6일 동아리 회원들과 그간 진행되어온 장현구 열사 투쟁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헤어진 후 고교선배(고 장현구 동지)의 분신사망과 동아리, 학과의 선배들이 제적, 고발 등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괴로워하다가 최원영 재단의 살인적 학원운영에 항거, 총여학생회실에서 분신,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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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 열사 - 열사예배 120401

허세욱 열사

1953~2007) 당시 5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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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5월 9일 경기도 안성 출생
1994년   봉천6동 철거반대투쟁
1995년~ 관악주민연대 창립회원으로 가입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독운수분회 조합원(대의원)
1999년~ 참여연대 회원
2000년~ (사) 관악사회복지 회원
                 민주노동당 입당
2004년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
2006년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 대의원
2007년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대의원
2007년 4월 1일 한미 FTA협상을 반대하며 분신
2007년 4월 15일 오전 11시 23분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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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 봉천동 달동네 막걸리 장사, 꽃배달, 택시기사로 쉰 네 해의 생을 끝맺기까지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공부하고, 고된 노동과 박봉의 일상을 실천의 장으로 삼았던 아름다운 노동자였다. 동지의 실천은 철거반대투쟁에서 노동운동, 시민운동, 진보정당운동, 평화통일운동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왔으며, 동지들 앞에선 겸손하고, 투쟁의 장에선 최전선을 지켰던 우리시대 민중의 표상이다. 효순이 미선이를 죽인 미군 처벌을 위한 촛불을 하루도 빠짐없이 들고, 12시간 고된 택시노동을 끝내고 귀가하는 길, 집집마다 유인물을 뿌렸던 동지의 실천은 우리의 활동을 돌아보게 한다.
동지는 유서에 '단 한 번도 자신을 버린 적 없다','모두가 비정규직이니까 모금하지 말라'.'나를 태운 재를 전국의 미군기지에 뿌려 내 혼으로라도 미군들을 괴롭히겠다'고 하여 자신과, 이 땅 민중과, 이 겨레를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을 토로했다.
2007년 4월 1일, 동지는 한미 FTA 폐지하라','굴욕 졸속 반민주적 협상을 중지하라','숭고한 민중을 우롱하지 마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한미FTA협상 중단"을 외치며 분신했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보름 동안의 투병 끝에 운명했고, '민족민주노동열사 허세욱 동지 장례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장례를 마친 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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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15일 허세욱 열사 5주기 추모식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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