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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준우승보다 중요한 것, 투수 인권

  • 등록일
    2009/03/25 19:14
  • 수정일
    2010/09/13 12:33

아, 이 얼마만의 여유인가.

지난 한달 넘도록 진상규명 등으로 본의아니게 본업도 외면하게 됐는데,

본업 복귀와 최저임금 투쟁계획안 완성을 기념해 포스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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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로 떠들썩했던 모양이다.

특히 호투를 거듭했던 봉중근과 류현진, 득점기회 때마다 적절한 타격으로 클러치 능력을 자랑하며 대회 홈런-타점 수위를 차지한 김태균 등을 두고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당장 메이저리그에 투입돼도 손색 없는 기량이라는 말도 나오고, 어느 어느 구단의 스카우터가 높은 관심을 보였다는 말도 심심찮다.

그렇다면 봉중근과 류현진은 과연 이번 대회에서 어느 정도의 투구를 보인 걸까.

 

하드볼타임즈(http://www.hardballtimes.com)의 조쉬 칼크(Josh Kalk) 씨가 3월24일자로 이 두 투수에 대한 글을 공개했다. 간략히 내용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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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중근이란 이름은 아마도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봉은 팔 부상 전까지 아틀란타 브레이브스와 신신내티 레즈에서 뛰었으며, 부상 뒤인 2005년 레즈에서 방출됐다. 2006년 한국으로 복귀한 봉은 2008년 매우 훌륭한 시즌을 보냈다. 봉의 나이는 29세로 이제 전성기는 지났다고 봐야 하지만, 그 구위는 거의 전성기 시절 못지 않게 회복된 것으로 보인다.

 

 

봉은 우타자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횡적 움직임이 좋은 평균시속 92마일의 직구를 던진다. 대표적인 오프 스피드(Off Speed) 투구는 체인지업(본인은 스플리터라고 부를지 몰라도, 체인지업으로 봐야 한다)인데, 그림에서와 같이 움직임이 세로로 넒게 퍼져있다. 봉의 이런 체인지업 투구가 본인의 의도에 따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만일 (대표적인 제구력 투수인) 그렉 매덕스가 이런 모양의 투구를 보인다면,투구시 공의 회전을 조절할 수 있는 훌륭한 제구력으로 볼 수 있겠지만, 봉의 경우 메이저리그 시절 제구력의 난조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의도된 투구'는 아닐 것이다.

 

봉의 체인지업은 직구와 약 14마일의 속도차를 보이는데, 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만한 속도 차이다. 흥미롭게도 봉은 이 체인지업을 좌타자 상대 때 즐겨던졌는데, 톰 글레빈을 제외한 메이저리그의 어떤 좌투수에게서도 이런 선택을 찾아보기 힘들다. 봉의 커브는 11시에서 5시 방향으로 떨어지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공 끝의 움직임은 매우 좋다. 커브만큼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만한 구질이다.

 

봉의 직구는 훌륭하며, 체인지업과 함께 사용될 경우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봉이 다시 메이저리그로 복귀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나, 만일 기회가 있다면 선발이 아닌 중간계투(Long Reliever)로 뛸 순 있을 것이다.

 

류현진은 21살의 좌완 선발투수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 토미 존 수술(대표적인 투수 부상인 팔꿈치 수술)을 받았으며, 한국 프로야구를 평정한 뒤인 2008년 다시 팔 부상에 시달렸다. 류는 지난 몇년간 한국 프로야구에서 혹사당했으며, 베이징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도 계속해서 출전해 왔다. 류의 구위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류는 약 5인치의 횡적 움직임과 11인치의 종적 움직임을 을 보이는 평균구속 91.7마일대의 직구를 구사하는데, 이는 메이저리그 평균에 근접하다. 류는 직구를 즐겨 던지진 않지만, 이번 WBC 대회에서는 전체 투구 50%가량의 직구 점유율을 보였다. 류는 매우 훌륭한 써클 체인지업을 구사하는데, 위 그림에서와 같이 우타자를 상대로 떨어지며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에서 알 수 있다. 직구와 체인지업의 구속차이는 메이저리그 평균에 가깝다. 류는 이 체인지업을 주로 우타자 상대 때 구사한다.

 

슬라이더와 커브 역시 매우 좋은 구위를 지녔다. 슬라이더의 경우 횡적 움직임이 많진 않지만, 종적 움직임이 좋아 낙차가 크다. 커브 역시 낙차가 매우 좋으며, 직구와 15마일 가량 속도 차이가 난다. 이는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있는 커브보다 훨씬 훌륭하다.

 

류는 메이저리그 평균의 구위를 지녔다. 지도를 잘 받는다면, 훌륭한 메이저리그 선수로 자리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마 안타깝게도 류가 그런 기회를 가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상전력과 지난 몇년 간의 과도한 혹사 때문이다. 21살에 이미 토미 존 수술을 받은 투수에 대해 확신을 갖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류는 이미 한국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따라서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힘든 경쟁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 진출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며, 만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 메이저리그 입성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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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기에도, 봉중근과 류현진은 아주 좋은 투수들이다. 특히 류현진의 경우 위의 글에서도 볼 수 있지만 야구전문가로부터 매우 호평을 받고 있으며, 21살이란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노련한 경기운영을 보였다. 문제는 실력이 아니라 '내구성'이다.

 

박찬호가 LA 다저스에 입단할 때 "한국에서 빅3에 들지 못했던 투수기 때문에 내구도 손상이 적어 가능했다"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로, 야구에서 특히 투수에게 건강은 무엇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중요한 요소다. 투수의 어깨는 분필과 같아서, 쓰면 쓸수록 닳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의 야구현실은 젊은 투수의 내구성을 고려할 만큼 관대하지 못하다. 전국대회 4강 안에 들어야 나를 포함한 친구들의 대학입학이 가능한 현실에서, 자신의 어깨를 아끼는 일은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몰린다. 사실상 비정규직 처지에 있는 고교 야구감독들은 때론 야구부 유지를 위해, 때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아들 같은 선수들을 혹사시키지 않을 수 없는 선택에 시달린다. 이게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한국 야구의 현실이다.

 

 

이번 WBC 대회에서도 드러났듯이, 한국 야구대표팀의 실력과 경기 수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했다. 그러나 그 나라의 야구 수준을 가름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는 뎁쓰(Depth), 즉 선수층의 깊이다. 한국 프로야구 정규리그에 이번 대표팀 같은 팀이 하나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참으로 재미 없는 시즌이 이어질 게다. 4강에서 탈락한 미국의 경우, 미국 대표팀 수준의 대표팀을 몇개 만들 수 있는 것이 미국 프로야구의 조건이다. 여기에 차이가 있다.

 

어려서부터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선수가 있으면, 혹사에 혹사를 거듭한 뒤 씁쓸히 사라져야 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그리고 그런 '천재'의 도움 없이는 학부모나 재단의 반대로 야구단 유지가 불가능한 학원체육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투수의 인권을 성적 지상주의가 계속해서 압도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류현진이 받은 평가는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계속될 것이다.

 

관련된 글 : 인권위의 '투수혹사 금지권고'를 지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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