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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말해야할까

돕헤드님의 [민중은 여성이다] 에 관련된 글.

당신의 고양이님의 [여기까지 읽고 나서] 에 관련된 글.

 

 

 

실은 마음이 쭉-불편했다.

navi가 '잘못'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부터.

나비 당고 돕헤드의 글을 읽고 덧글을 읽고

마음은 점점 더 답답하게 조여온다.

 

 

아-, 이건 아닌데, 내 글은 어떤 의미였나.

어디에서부터 말해야할까.

아주 많이 썼던 말들 중의 하나였던 '여성주의적이다' '반여성적이다'와 같은 말들에 대해, 

어느 순간부터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것은 여성주의적이고, 저러한 것은 반여성적이며 성폭력이다, 라는 규정이

점점 더 체크리스트가 들어있는 매뉴얼처럼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폭력이라는 걸 설명할 때마다

"이건 성폭력이야? 이렇게 하면? 남자가 하면 그렇고 여자가 하면 아니고? 넌 기분나빠? 난 아닌데"

말도 안되는 예시를 끝없이 들어가며 닥달해대는 이들의 속내를 알기에 짜증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특정' 경험의 한 '단면'이 모든 성폭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건 아닌가 두려웠다.

연우의 글에 나온 것처럼  "내 경험을 우선시하고 강요하는 것이" 될까봐 말이다.

내 경험과 네 경험은 다를 수있고, 그게 자연스럽다.

모 힙합가수의 콘서트 장에서 그남들이 우스갯소리로 "땀 많이흘렸어요? 아래까지 다 젖었나?"

했을때 난 그 자리에서 희롱당한 것 같아 기분 더러워졌지만

함께 있던 내 친구는 완전 좋다고 소리지르면서 방방 뛰어댔다.

그 애가 '여성주의적'이지 않아서, 혹은 '여성주의 의식'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꼴통페미'여서, 너무 많이 '예민하고' '민감해서'가 아니라

우린 어릴때부터 다른 경험과 환경 속에서, 다르게 자라왔기 때문에

다르게 느끼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모든 '여자들'에게 억압적이라는 그 '보편성'에 기대어서만이, 그래서 '反여성적'이라는 말을 써야만이

그나마 나의 불편함을 얘기할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다.

그 맥락을 모르는 바 아니다. 아니 너무도 절실하게 이해한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대로 있었다.

그렇게 하지않으면 그 불편함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

마치 성폭력,을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는 것마냥 생각하는 그 과정에서

또 누군가의 '다른' 경험들은, 목소리들은 삭제되었으니까.

 

제일 처음 돕헤드의 '사과문'과 반성,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나는 왜 자신의 글에 대한 설명이 없을까,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가 자전거에 클리토리스라 이름 붙인 이유와 맥락이 정말로 궁금했다.

그는 창피하다고 했다. 하지만, 왜? 왜?

그는 반성한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을? 대체 무엇을?

그런 이야기들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피해'에 대해 '사과한다'고만 말했다.

그래서 나는 궁금했고, 동시에 불편했다.

거한이 말했다시피

아무도 그에게 '가해자'라고 하거나, '우리 모두에게 사과하라'고 하거나

'활동중지를 하라' '블로그를 떠나라'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더 심각한 가해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

정확하게 말해서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성에 타격을 입을까 두려워' 그렇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편하다는 말이 나오자 동시에 그렇게 끝내버리는건,

제일 처음 문제제기 한 사람에게도, 그 글을 보았던 사람들에게도,

같은 글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했던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돕헤드 자신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른 많은 이들도 그랬지만, 나 역시도 그런 식의 종결을 바라지 않았기에 글을 썼다.

정말로 무언가 얘기를 한 연후에, '반성'이라는 단어를 써도 늦지는 않을거라고 

그래서 그런 글을 썼다.

그런데 내 글이 이 일을 수수방관하며 지켜보다가 훈수나 두는 것처럼 비춰졌을까

아니면 처음에 문제제기한 이들을 탓한 것처럼 읽혀진건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던 와중에 돕헤드가 새로 쓴 글, '민중은 여성이다'라는 글을 읽었다.

솔직히, 아주 솔직히, 실망스러웠고,화도 난다.

나, 혹은 다른 이들이 궁금했던 건,

"돕헤드는 어떤 정치적 지향을 가진 사람인가?"가 아니다.

내가 돕헤드가 '그가 어떤 사람인가?'가 궁금하다고 썼던건

그가 어떠한 생각 속에서, 어떠한 맥락 속에서 그와 같은 행동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서였다.

그가 생물학적으로 남자, 라는 것만으로 글을 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의문들에 대해, 불편함을 제기한 이들에 대해, 자신의 글에 대해 침묵한채

자신의 세계관이 어떠하고, 자신의 정치적 지향성이 어떠한가만을 길게 쓰고 있었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사람의 언행을 곧 페미니즘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이 '페미니스트'라고 해도 때때로 그/녀는 누군가에게 불쾌감이 되고 성폭력이 될 수 있다.

중요한건 -주의자,-이스트는 그래서는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는, 그럴리 없다는,

그 완전무결한 관념부터 벗어던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화가나 버렸다. 자전거에 비유하는 그 대목에서.

돕헤드가 만약 정말로 남성집단이라는 괴물, 남성성이라는 동일체로 보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싶었다면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생각을 했고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를 말했어야 되지 않나.

자신의 욕망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소유하려는 다른 남성들의 욕망과 어떻게 다른지,

여성인 내가 만약 내 자전거에 그런 이름을 붙이고 자위 혹은 여자애인과의 섹스를 상상하는 욕망과는 어떻게 같을 수(아니면 다를 수) 있는지 말해야 하는게 아닌가?

그러나 돕헤드는

"나는 민중이고, 여성이며 이 차별과 억압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주체입니다"라고

선언하듯 말하고 있었다.

왜 돕헤드는 민중을 게이가 아닌, 장애인이 아닌, 흑인이 아닌, 비정규직이 아닌 여성이라 생각했을까.

그가 생각하는 민중이, 그가 생각하는 여성(성)이 무엇이길래. 여성이라는 젠더는 어찌하여 획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차를 모는 운전자들을 개별 주체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왜, 어찌하여 민중은, 여성이라고 명명했던 것일까?

나는 자전거 운전자라는 약자, 소수자, 억압받는 자들의 영상들이 '여성'이라는 단일한 집단으로 투영되는 것이 싫다.

그래서 나는 민중은 여성이어서는 안된다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여성,이 그렇게 투명한 주체로 존재하는 건,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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