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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귀향(volver)


 

 드디어 여러 사람의 추천으로 '귀향'을 봤다. 황금 시간대에도 여유있는 좌석 덕에.

 

 영화는 '모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독도 그렇게 말했다니. 3대에 걸쳐 중요한 컨셉이 어머니의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영화의 여러 부분에서 '여성들의 연대'를 느끼고, 그것을 강조하고 싶다.

 

 주인공 페넬로페 크루즈(라이문다)의 딸은 부계혈통적 의미에서는 그의 자매이기도 하다. 라이문다의 아버지와 바람을 핀 아구스티나의 관계에선 누가 피해자라고 가해자라고 할 수도 없다. (아마도 이게 한국 드라마였다면 머리를 쥐어뜯고 한바탕 난리법석이 났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여성들은 어려울 때 나타나 서로를 도와준다. 아구스티나는 라이문다의 이모를 돕고, 또 라이문다의 어머니는 아픈 아구스티나를 돌본다. 라이문다는 남편을 죽인 딸을 끌어안지만, 딸은 라이문다의 눈물을 다시 닦아주고 그녀를 어머니에게 다시 돌려보낼 수 있는 매개가 된다. 라이문다의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친밀하고 따뜻한 여성들의 '관계'들로 영화는 엮여져있다. 이 영화의 여성들은 일방적 희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감독(알모도바르)이 갖고 있는 퀴어 감수성은 확실히 영화를 만드는데 엄청난 역할을 미치는 것 같다. 게다가 코믹 감각도 있다. 아무튼 이 영화가 남성 판타지 속의 '위대한 모성'으로만 읽힌다면 그건 참 아쉬운 일이다. 확실히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게 읽힐 가능성이 많겠지만.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의 스토리 구조가 내 느낌엔 통속적일 정도로 단순하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여성성과는 대립적으로, 이 영화의 남성들은 무능력하고 성욕에 눈이 멀었으며 관계를 파괴하는 폭력성을 드러낸다. 감독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대립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폭력적 남성성을 대비시킴으로서 반대로 그 속에서 여성성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궁금하다.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어머니(유령이든 아니든)와 라이문다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충분히 예상가능한 이야기였지 않았나? 아구스티나 어머니의 실종과 관련된 미스테리도. (나만 그랬나?) 그래서 이야기가 마치 저 포옹장면을 위한 것처럼 짜여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딸과 어머니가 그렇게 오해 속에서 떨어져있을 일은 없었을텐데. 이런 느낌을 주고자 하는 것 같다. (내가 너무 삐딱한가?)

 

 마지막으로 이 감독이 여성과 모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과는 별개로 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 그가 귀환하고자 하는 곳 그 곳이 어머니의 품이라면 그도 남성 판타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닐런지? (정말 내가 삐딱한가??) 영화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보는 관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볼때 정치적일 수도 있다. 이런 삐딱함은 내가 이 감독의 전작 '그녀에게'를 보고 느낀 남성의 시선, 그 불편함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감독과 그가 만들었던 영화가 궁금하다. 시간 날 때 좀 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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