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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2/26
    그럴지도 모르지
    은수
  2. 2006/02/21
    (3)
    은수
  3. 2006/02/20
    ..........
    은수
  4. 2006/02/19
    왜 이렇게
    은수
  5. 2006/02/19
    North Country
    은수
  6. 2006/02/18
    뮌헨
    은수
  7. 2006/02/18
    또 누군가를(1)
    은수
  8. 2006/02/15
    겨우 하나,(3)
    은수
  9. 2006/02/14
    왜 꼭 "어머님" 일까?
    은수
  10. 2006/02/02
    세계를 뒤흔든 열흘
    은수

그럴지도 모르지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겠지.

그런 끝도 없는 상상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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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 있는 사람에게 문제는 언제든지 나의 신경을 곤두세울 선인장의 가시다

품안에 있는 선인장은 조금만 운신을 잘못해도 예민하게 온몸을 찔러댄다 

가시 하나하나가 여전히 빤히 고개를 쳐들고 응시하고 있으니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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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것. 결코 잊을 수 없는 나의 아픈 과거. 그는 변하지 않았다.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나에게 상처를 준 시간만큼, 또다시 가해를 저질렀음을, 나는 오늘 다시 알게 되었다.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건 진짜일까? 막상 그 애가 저지른 짓을 듣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고통받았던 시간들이 단지 나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내가 지금 흘리는 눈물은 무슨 의미인걸까. 그래도 한때나마 달라질거라고 품었던 희망이 무너지는 건지. 아니면 인간이 변하지 않음을 느끼고 한탄하는 건지. 미칠 듯한 기분이다. 미칠 것 같다. 그 애로 인해 날려버린 내 대학생활과 내 인생을 미친듯이 부정하고 싶다. 미친듯이.....

 그리고 또 왜 나에게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 건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왜 자꾸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부정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건지. 왜 나에게만.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난 정말 죽고. 싶다.

 2년전과 지금은 달라진게 없다. 징그럽도록 똑같다. 상황은 사람들은 모두 내편이 아니다. 곱지 않은 시선과 감정 따위로 얼그러진 모든 것들이 똑같다. 똑같다. 정말이지 벗어나고 싶다. 왜 내 사생활이 그따위로 왜곡되고 짓밟혀야 하는지. 그럼에도 난 사과조차 받을 수 없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꿋꿋이 이어나갈 수가 없다. 나는 정말 없다. 더 이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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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힘만 빠진다. "유독 너에게만"이라고 했던 그 말이 맞아떨어진 것처럼 재수가 옴붙은 것처럼. 자꾸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고, 어쩔 수 없는 것마냥 힘이 빠지고 있다.

 근 한달을 고심해서 단 1분만에 집에다 메일을 보내버린 걸 보면 나는 참 성의없는 인간이다. 나의 성의없음 때문인지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아니기 때문인지 아버지가 분노하고 있지만. 설득할 힘도 대답할 힘도 나질 않는다. 될 대로 되라지. 날 더러 어쩌라는 거야.

 작은 시선조차도 민감하게 느껴진다. 넌 왜 날 보고 있지,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뭐 때문인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멍하니 땅만 쳐다보다가. 할 말도 의욕도 사라졌다. 열심히 해도 의미가 없다는게, 그 한마디가 나를 털썩 주저앉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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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Country

영어 자막에 보기 힘들었지만 어쨌든 집착하면서 다봤다. 한국 개봉날짜가 확정되지도 않아서 기다리긴 넘 궁금했다. 개봉하면 다시 한번 봐야겠다.

 

 몬스터의 주인공 샤를리즈 테론이 주연을 맡은 는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미국내 첫번째 소송이라고 전해지는 1984년도의 '젠슨 대 에벨레스 광산(Jenson vs. Eveleth Mines)' 케이스를 영화로 만든거라고 한다.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광산 노동자가 된 조시가 처음으로 겪는 관문은 소위 '밑' 검사이다. 그게 시작이었다. 광산에서의 일은 남성이 되길 요구했고,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주변 남성 노동자들로부터 매일같이 듣는 모욕적인 성희롱이었다. 입만 열면 나오는 여성비하적 욕설들. 그리고 그녀가 불만을 갖고 입을 열면 열수록 거세지는 보복들. 해고의 위협들...너무도 끔찍했다. 벽에 그려진 오랄 섹스 장면과 한 여성 노동자의 락커 안에 뿌려진 정액, 도시락 안에 들어있던 성기 모양의 물체......비난을 퍼붓는 남성노동자들. 그러나 그의 아들도, 그의 아버지도,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세상은 모두 그녀를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욱 끔찍했던 것은 소송과정이었다. 아들의 아빠가 누구인지, 숱한 남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왔지 않냐고 묻는 법정에서의 폭력적 상황들. 심지어 그녀가 고등학교 선생으로부터 강간당한 것조차 부인되며 '성적 관계'의 증거로 제출되는 상황이 정말 보기 힘들었다. 남성 동료들로부터 겪은 성희롱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문제가 계속 이야기 되고 있었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를 떠올리게 했다. 80년대 반성폭력 운동을 유발시켰던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강간을 당할뻔한 여성이 혀를 깨물어 논란이 된 '변월수 사건'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피해자의 성경험 여부와 피해자의 성격, 인간관계까지 들먹이며 성폭력을 부인하려는 그 상황 말이다. 아, <<피고인>>도 있다.

 

 아마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그런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는 성경험이 있어, 너는 성적으로 문란해, 니가 남자를 먼저 유혹한 거야, 니 옷차림이 문제야, 니가 조심하고 다녔어야지.......그러니 넌 성폭력 피해자가 아니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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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집에 틀어박혀 뮌헨을 봤다. 여러 사람들의 평대로 스필버그가 시온주의자에서 휴머니스트로 돌변한 느낌이 드는 뮌헨. "폭력은 폭력을, 피는 피를 부른다."는 내용이 이 영화의 핵심인듯하다. 그러나 중립이란 있을 수가 없다.  또한 뮌헨의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은 여전히 '가족주의'이다.

 스필버그로서는 용기를 낸 영화일지 몰라도. 적어도 이 문제나 스필버그 영화에 관점이 있는 사람이라면 만족시켜줄 영화는 아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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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는 것 같다.

 

나를 위해서

누군가를 괴롭히는 걸까.

 

그런 위치가 있다고

합리화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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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하나,

겨우 하나,

반쪽자리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난 정말 사회경험이 부족해서 문제다.

 

물건 값도 못깎고

광고전화도 붙들고만 있고

조그만 일에

전전긍긍.

 

하루종일 난리 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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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quot;어머님&quot; 일까?

오랜만에 일다에 들어가 기사를 몇 개 보다가

노동운동 코너에서 못보고 지나쳤던 한 기사를 보니

며칠 전 발끈 하던 일이 생각 나 퍼온다.

 

사건의 발단은 내가 모 매체에서 '청소 용역 아주머니'를 비롯해

여성노동자를 '아주머니'로 표현한 것을 무려 3번 본 것에서 출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수많은 매체와 유인물 속의 '아주머니' '어머님'

등등이 다시금 떠올랐던 것이다.

 

"우리 조합원 아줌마들이.." (모 시설관리 위원장의 말)

"5공장 아주머니들의 단식투쟁"(모 사내하청 유인물)

 

몇년전 학내에서 시설관리 투쟁을 할때마다

다른 학생단위에서는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공식적인 집회에서조차

꼭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정작 그들은 학내에서 여성주의적 실천을 선도적으로 한다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동지'라고 부르라는 우리의 제기를 우습게 봤겠지만

나는 '동지'라고 부르는 것이

누군가의 '어머니'나 결혼한 '아주머니'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깨걸고 투쟁할 사람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작은 단어 하나지만,

그 단어 속에는 온갖 반여성적 사회 관행, 그리고 편견들이 녹아있다.

 

덧/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모 글에서 본 글귀,

도대체 "비정규직 운동의 처녀지"가 뭐냐구 !!

 



왜 “어머님”일까
     
최저임금집회에 참가한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

혜영 기자
2005-07-04 22:09:46

<필자 혜영님은 전국여성노조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호칭은 나와 상대와의 관계를 드러낸다. 그래서 우리는 호칭을 선택적으로 사용한다. 특히 공식적인 자리에서 붙이는 호칭이나 잘 모르는 사람을 최대한 높이는 호칭 등은 더 까다롭게 선택된다. 자칫 실수라도 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무례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평소 고민하지 않던 호칭에 대해 머리를 굴리게 된 이유는 노동운동 및 집회에서 사용되는 호칭에 문제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노동형제” vs “어머님”

6월 말은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최저임금 관련 집회와 활동이 집중되는 시기다. 올해도 어김없이 6월 27일 밤에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한국노총 조합원을 비롯해서 많은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이 집회에 참가했다.

딱 최저임금액 만큼의 임금을 받고 일하는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 집회에 참가해서 자신들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당당하게 요구를 밝히는 그들은 멋졌다. 그들은 하루 일과(청소)를 마치고 밤 집회를 참석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그 자리에 왔다. 다음날 일을 하기 위해 새벽에 다시 일터로 가야 한다. 최저임금 당사자로서 정당한 일한 대가를 쟁취하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와 투쟁에 대한 열정에 대해 집회에 참가한 모든 이들이 공감했을 터다.

집회에서 사회자는 이 훌륭한 “우리의 어머님”들께 박수와 존경의 표시를 했다. 바로 “노동형제들의 어머님”들에게 말이다. 물론 이들의 연배가 적게는 40세, 많게는 60~70세에 이르니 사회자는 조심스러웠을 것이며 공경의 표시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즉, 사회자가 “어머님”이란 호칭을 함부로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여성노동자”도 “청소용역 노동자”도 아니고 “어머님”일까?

노동운동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아

많은 40~60대의 여성들은 누군가의 ‘어머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한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 다수도 누군가의 어머니다. 그러나 이들은 집회에 참석한 “그들의 어머님”이 아니다. 누군가의 ‘어머니’로서 그 자리에 참석한 것도 아니다. ‘어머니가 아닌’ 여성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집회에서 이들은 모두 “어머님”으로 통칭됐다.

노동자의 단결을 외치며 “노동형제”를 부르짖다가도 투쟁의 현장에서 일하며 여성으로서 권리를 외치는 여성들을 “어머님”이라 칭하는 태도. 이것이 노동운동의 현실이다. “노동형제” 들은 눈에는 아직도 일하는 여성, 자신의 권리를 찾아 투쟁하는 여성이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한편 “어머님”의 외침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노동형제들의 애틋한 감정이 담겨있는 듯하다. 평생 자신보다 가족들을 위해 헌신해 온 우리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는 존재다. 효도 받으며 그간 고된 생을 보상 받아야 할 어머니들이 험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시려올 것이다. 그래서 “어머님”에게 보내는 함성과 박수 속에 “노동형제”들의 애틋한 마음이 스며있다. 어머니를 외치며 달려가는 군인들의 모습을 그려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떠오르게 한다.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애쓰는 일하는 여성들은, “노동형제”들로 인해 애틋한 대상으로 변해버렸다.

투쟁의 현장에서도 일하는 여성의 모습보다는 가족관계 속에 투영되는 여성의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노동자 대 노동자의 연대는 다른 노동자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자신의 권리를 찾아 투쟁하는 일하는 여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니, 어떤 연대가 가능할까. 지금이라도 노동형제들은 바로 보길 바란다.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어머니”가 아니라 “일하는 여성”으로서 최저임금 집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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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열흘

 

 

 

  생일에(그러고보니 벌써 작년이다) 받은 책인데.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3장까지만 여러차례 시도하다가, 이번에서야 다 읽었다. 많은 잔상들이 머리에 남았다.

 

 인상 깊었던 장면을 기록해두려고 했는데, 너무 많아서 중도 포기다.....귀찮다.

 

- 혁명은 솟구치는 노동 대중의 자발적인 열기로부터 가능하다. 그것은 곧 그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정치, 정치적으로. 10월 혁명이 발생했던 당시의 러시아는 배우려는 갈망으로 폭발했다. 야윈 얼굴과 창백한 피부, 누더기가 된 옷을 걸친 병사가 존리드에게 '읽을 것'을 가져왔냐고 묻는 장면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 어디서라면 논쟁하고 집회하고. 지식인이 아니라, 가난한 노동자들이 사회 경제 이론 서적을 읽고 토론했던 것이다.

 

- <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가 무장봉기를 명령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봉기를 심각하게 고려한 것은 볼셰비키당 중앙위원회였다. 10일 밤에는 밤샘회의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당의 많은 지식인들과 지도자들, 그리고 페트로그라드 노동자와 수비대 대표들이 참석했다. 지식인들 중에는 오직 레닌과 트로츠키만이 봉기를 지지했다. 심지어 군대 대표들조차도 봉기에 반대했다. 투표 결과, 봉기를 감행하자는 주장은 일단 기각됐다!

  그 때 한 노동자가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떨고 있었다. 그는 거칠게 말했다.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를 대표해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우리는 봉기에 찬성합니다. 여러분은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소비에트가 파괴되는 것을 보고만 있겠다면, 우리와의 관계는 끝날 것입니다!" 몇몇 병사들이 그에 합세했다. 그래서 투표가 다시 이뤄졌고, 결국 무장봉기를 감행하자는 주장이 통과됐다. >

 

- 혁명의 규율. 혁명적 규율. 언젠가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군대조차도 설득과 자발적 규율로 이루어진 것이라 들었을때. 러시아 혁명에서 그것들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트로츠키가 통행증이 없어 스몰니 회관을 통과하지 못했던 부분이라던가, ^^ 동궁에 들어갔을 때 굶주린 병사들의 약탈이 발생하자 스스로를 통제하며 "혁명의 규율과 민중의 재산"을 외쳤던 부분. 볼셰비키에 대한 온갖 왜곡과 비난에도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존 리드는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동궁에 남아 있던 여성대대에 대한 강간과 살육에 대한 소문이 무성히 퍼졌을때, 실은 살육한 적이 없고 몇몇에 대한 강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대목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단 몇...)



- 케렌스키는 도망가고 의외로 볼셰비키는 쉽게 진입했지만. 반혁명은 그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케렌스키의 무장도발과 함께, 소위 조국과 혁명 구제위원회-그들은 노동자 농민, 병사들이 아니라 기자들과 학생, 지식인, 멘키 등등이었다-가 온갖 반발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혁명은 곧 전쟁이었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어갔다. "예상하던 모습으로, 지식인들이 기대하던 모습으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거칠고 강렬하게, 정해진 공식을 무시하고 감상주의를 비웃으며 찾아왔다. 적나라한 현실의 모습으로."

 제대로된 지휘관도 없는 오합지졸의 적군이, 백군을 물리친 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아닌 그들의 전투였고, 그들의 세상을 위한 전투"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기나긴 전쟁을 거쳐 혁명은 성공할 수 있었다.

 

- 크렘린에서 있는 장례식 장면은,,,말로 표현할 수 없는,,,그런 느낌이었다. 짜르의 무덤이 있는 크렘린에 짜르에 반대하고 자본주의에 반대한 민중들이 잠드는 장면. 저자인 존 리드 역시 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크렘린에 묻힌 사람이기도 하다. "이제 이 신앙심 깊던 러시아인들에게 자신들을 천국으로 보내 달라고 기도해줄 성직자가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들은 그 어떤 천국보다도 밝게 빛나는, 그것을 위한 죽음을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는 나라를 지상 위에 세우려 하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의 자발적 의지를 통해서 결국 혁명은 성공했고, 그것은 말그대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어떤 것인가를 생생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왜 볼셰비키만이, 끝까지 혁명적 세력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는지도 말이다. 농민대회 장면은 예전에 정권에 의해 삭제된 부분이라던데,,,역시 재미있었다.

 

-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한 일화.

 

 <  다음 날 페트로그라드에서 반볼셰비키 신문들이 '플레하노프 고열 상태!!'라는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차르코스예 셀로에 있던 플레하노프는 병상에 누워 있었는데, 적위병들이 그의 무기를 수색하고 그를 심문했다.

  그들은 "당신은 어느 계급에 속하는 가요?" 하고 그에게 물었다.

  "나는 혁명가요." 플레하노프가 대답했다. "40년 동안 자유를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해온 혁명가요!"

  "아무튼," 한 노동자가 말했다. "이제 당신은 자신을 부르주아지에게 팔아 넘겼잖소!"

  노동자들에게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선구자 플레하노프는 잊혀진 이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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