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여름도 다 가고 한가위 명절로 온통 시끌벅적합니다. 추석 때 많은 분들이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동양화 감상’ 좀 하셨을테지요. 고스톱 규칙 중에 고도리라는 게 있습니다. ‘새 다섯 마리’라는 뜻이라지요?
법에 따라 소음성 난청으로 직업병을 인정받기 위한 기준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냥 읽어보면 참 어려운 말 같지만, 실은 고도리 석 장을 모으는 것과 비슷하지요. 이번 호에서는 직업성 소음성 난청의 진단 및 보상 기준에 대해 고도리를 모으는 기분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감각신경성 난청이어야 하며, 중이질환, 약물중독, 급성전염병, 열성질환, 매독, 메니엘씨 증후군, 재해성 폭발음장해, 두부외상 등에 의한 난청, 가족성난청 그리고 순수한 노인성 난청에 의한 청력손실은 아니어야 한다. 린네씨 검사결과 양성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만성 소음에 의해 생긴 난청’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음성 난청이란 시끄러운 소리가 조금씩 청각 세포를 파괴해서 생기는 병이니만큼(8월호 노동자 건강상식 참조) 다른 원인에 의한 난청은 아니어야 한다는 거죠.
“순음어음 청력정밀검사상 4,000㎐의 고음영역에서 50㏈ 이상의 청력손실이 인정되고, 기도오디오메타, 골도오디오메타 측정검사에 의하여 500㎐(a), 1,000㎐(b), 2,000㎐(c)에 대한 청력 손실정도를 측정하여 (a+b+c)/3 산식에 의하여 산출한 순음어음영역 평균 청력손실이 30㏈ 이상이어야 한다.”
말이 참 어렵지요? 한마디로 이 항목은 청력검사 상 기준을 소개한 겁니다. ‘dB(데시벨)’이란 소리의 크기를 말합니다. 청력 검사를 하면 아주 낮은 dB부터 소리를 점점 키워가면서 우리가 몇 dB부터 들을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데, 이것을 ‘청력 역치’라고 합니다. 청력 역치가 낮으면 낮을수록 작은 소리도 잘 듣는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옛날에는 10dB의 소리도 들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60dB이 되어야 비로소 들을 수 있다면 ‘50dB의 청력 손실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소음성 난청은 4천 Hz(헤르쯔)의 고음에서 청력이 푹 떨어지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그래서 소음성 난청이 있으면 어린아이나 여성의 높은 목소리가 잘 안들리죠) 청력 검사에서 50dB이상 청력이 떨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양한 높낮이의 음에 대한 평균 청력이 30데시벨 이상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아무리 청력이 나쁘더라도 예전의 청력을 모른다면 도대체 얼마나 나빠졌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이 기준에 맞추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고도리를 손에 들고 있더라도 마땅한 짝이 없으면 내버려야 하는 것처럼 얄궂은 기준이지요.
셋째.
“소음작업의 직력이 인정되어야 한다.”
소음 작업을 했느냐는 것이 소음성 난청으로 직업병을 인정받기 위한 마지막 기준입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8시간 시간 가중평균 80dB 이상의 소음'이 발생하는 사업장에서 작업환경측정시 소음을 측정해야 하며, ‘연속음으로 85dB(A) 이상의 소음에 폭로되는 옥내 사업장'에서는 소음성 난청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을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조항들은 말 그대로 ‘이런 사업장은 작업환경측정과 건강진단을 반드시 하라'는 강제 조항일 뿐, 한 노동자가 직업성 소음성 난청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절대로 아닙니다. 80dB 이하의 사업장에서도 소음성 난청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 사업장이 소음 측정이나 특수건강진단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소음성 난청으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중요한 것은 내가 소음 작업을 했느냐 안 했느냐 입니다.
이제 드디어 고도리 석장을 모두 모았습니다. 그런데 ꡒ나 고도리 했다!ꡓ고 신나게 외치기에는 어딘가 씁쓸합니다. 몇 시간째 고스톱을 하면서 잃은 돈이 얼만데, 이제 와서 고도리 한번 했다고 좋아질 것도 없듯이, 가까스로 소음성 난청에 대해 직업병 판정을 받는다 해도 한번 잃어버린 청력은 되돌아오질 않으니까요. 고도리 석장을 모아서 이겼다 해도, 그건 최소한의 보상일 뿐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사업장에서 소음을 몰아낼 수 있도록 노동자 스스로 요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고도리 못했다고 속상할 일도 없겠지요?
나도 혹시 난청? - 난청 자가진단법
전화 통화할 때 상대방 목소리를 알아듣기 어렵다.
TV 소리를 너무 크게 하고 본다고 잔소리를 듣곤 한다.
시끄러운 곳에서는 소리를 알아듣기 힘들다.
남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대답을 하곤 한다.
여자 목소리나 어린아이의 목소리는 알아듣기 힘들다.
말귀를 못알아 듣는다고 남들이 나에게 신경질을 낸다.
남들이 나보고 목청이 너무 크다고 한다.
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2003년 10월 / 통권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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