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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그냥 살다가 그냥 느낀대로 그냥 생각난대로 그냥 낙서하듯이 끄적이다.

8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2/19
    호수공원
    ㅍㅅ
  2. 2005/12/15
    초보 아저씨
    ㅍㅅ
  3. 2005/12/08
    블로그
    ㅍㅅ
  4. 2005/12/07
    프라이드
    ㅍㅅ
  5. 2005/12/02
    친구 복영이와 민영이
    ㅍㅅ
  6. 2005/11/25
    주걱밥(?)
    ㅍㅅ
  7. 2005/11/24
    김장김치
    ㅍㅅ
  8. 2005/11/23
    가슴 아리더라도
    ㅍㅅ
  9. 2005/11/15
    대안 교육(?)
    ㅍㅅ
  10. 2005/11/08
    북녘의 표정과 풍경(1)
    ㅍㅅ

호수공원

일산에 사는 사람들에게 호수공원은 거대한 정원에 다름아니다.

설령 집이 10평대로 다소 좁더라도 호수공원이 있어서 좋았다.

부지런함 그리고 시간만 있다면...

언제라도 걸으며 산책하기, 달리기, 인라인타기, 자전거타기 등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거기다 추운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노는 재미는 더욱 쏠쏠하다.

 

어제는 아직 단단하게 얼지 않은 때문이라기 보다는 혹시모를 안전사고때문인지

공익요원까지 동원하여 호루라기를 불며 숨바꼭질을 하듯 얼음을 타는 사람들을

내쫓기 바쁘지만...워낙 위반자(?)가 많은지라 나중에는 단속이 시들해지고 만다.

아직 얼음판 위에는 드물게 썰매까지 등장했지만 아직은 얼음판 위를 즐겁게 걷거나

아이들을 손으로 끌어주거나 눈싸움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토요일 밤에 채원이와 자전거로 호수공원을 한바퀴 돈것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선택이었다.

갈 때는 뒷바람을 맞으며 갔기 때문에 몰랐는 데 나머지 반바퀴를 돌 때부터는

그야말로 칼바람과 사투를 해야했다.  바늘로 찌르듯 얼굴을 강타하는 맞바람을 맞으니

자전거는 잘 굴러가지 않고 잘못하면 얼어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추위에도 운동광들은 가뭄에 콩나듯하긴 하지만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있더군.

 

이 여파인지는 몰라도 어제밤부터 감기기운이 도는 게 아닌가?

감기를 물리치기 위한 방어전을 전개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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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아저씨

지하철을 탔는 데

요즘 날씨가 추워진 탓인지

권하는 제품들이 귀마개, 장갑, 모자 겸 목도리가 주종을 이룬다.

 

이제까지는

한 지하철에 똑같은 제품을 파는 행상이 5분 간격으로 나타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귀마개를 팔던 아저씨가 지나가고 나서

다시 똑같은 귀마개를 파는 아저씨가 나타난 게 아닌가?

 

먼저 오신 분은 갈색계통 마이를 입고 연로하신 분인데.

"우리 몸의 기순환으로 볼 때 귀를 따뜻하게 하는 게 매우 중요" 하다는...

몸에서 귀를 따뜻하게 하는 게 왜 중요한지를 중심으로 설명을 했다.

"시중에서 8,000원인데 천원짜리 딱 2장만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탄 칸에서는 아무도 사는 이가 없었다.

약간 실망스런 표정으로 아저씨는 커다란 박스를 끌고서 지하철을 내리셨다.

 

그런데 바로 또 한 아저씨가 우리 칸으로 걸어오는 게 아닌가?

따뜻한 검은색 세무잠바를 입으신 40대로 말끔해 보이는 아저씨.

이번에 어떤 제품일까 살펴보는 데....

좀전에 보았던 그 귀마개였다.

나는 순간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더군.

이 아저씨 혹시 귀마개의 가격을 좀전의 아저씨보다 더 부르면 어떡하나...하고

 

그런데 이 아저씨는.....

"추운 날씨에 매우 따뜻할뿐 아니라 패션 또한 죽인다..."

"시중에서는 5,000원인데 천원짜리....딱 2장을 받겠다"....휴~

아까와 같은 제품에 같은 가격이다.

이 아저씨가 우리 칸을 한 바퀴 휘 돌며 딱 하나를 팔고는

여유있게 다음 칸으로 갔다.

 

그런데

먼저 지나 간 초보로 보이는 아저씨의 표정이

왜 자꾸 떠오르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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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네이버나 다음이나 등에서 적당히 싸이질하면 될터인데

덜컥 진보넷에 블로그를 만든 것은

굳이 의도가 있다기 보다는

그냥 맘도...몇 기능들도 익숙하다는 주관적인 생각 아니었을까?

 

블로그 홈에 글들을 게시하지 않는 이유도

내 블로그는 내가 나에게 하는 독백의 장일뿐

더이상의 의미부여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게 내 맘 아니었을까?

그러나 진보넷이 좁다보니 새 블로그가 쉽게 노출되는 사고(?)도 있더라.

 

가능하다면 세상과 대면하고 고민하는 큰 글들보다는

그냥 그렇고 그런 일상들에 일희일비하는 작은 글들에

타자에 대한 반정립 또는 타자에 대한 날카로움을 갈고닦기 보다는

나에 대한 반정립과 날카로운 눈과 촉수를 갈고닦고 자극받을 수 있다면 그지 없겠지.

 

그러나 어이하랴.

우연이든... 의도가 담겼건

찾아든 나그네든... 오랜 벗이건

빙긋이 웃음으로 맞을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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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96년에 할부로 뽑은 프라이드를 줄곧 몰고 다녔는 데

2000년에 일산으로 이사 온 다음부터는

출퇴근용으로 프라이드를 사용하지 않으니

일주일에 잘해야 하루의 몇 시간을 쓸까말까하게 되었다.

 

주차장에 세워두는 날이 많지만

그렇다고 덜컥 폐차를 하기에는 아쉽고

새 모델의 차중 괜찮은 차가 보이면

솔직히 아주 가끔 할부로 충동구매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주차장에 모셔두면서 감각상각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면 단념하게된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아직 내 명의로 된 집도 땅도 없지만

유일하게 내 명의로 굴러다니는 동산 프라이드는

이미 백만원 이하로 보험산정가가 곤두박질쳤지만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큰 고장이 나지 않는 한 

몇년간은 더 애마로 주차장을 지킬 거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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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복영이와 민영이

김민기의 '친구'를 불러본지도 너무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동아리 선후배 10여명이 함께 송년회를 했다.

당시 함께 '친구'를 부르던 벗들...

이제 다들 40대에 접어 든 이들의 가슴에는 여전히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친구가 살아 일렁거리고 있었다.

 

키타를 치며 '친구'를 줄곧 불러주던 동아리 동기 정외과 '복영'이는

80년대 후반 어느 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구류와 구속을 겪으면서 계속 쫓기는 심리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어디론가로 계속 도망을 가는 중에 동사한 것이다.

자유롭지 못했던 나는 한 줌의 재로 흩뿌려진 복영이에게 찾아갈 수 없었다.

 

또 한 명 나의 사랑하는 85 후배는

아직도 정신적으로 80년대에 머물러 있고

이 대학 저 대학을 배회하고 다니며 80년대를 살아가고 있다.

송년회에도 온 이 후배는 80년대에 멈춘 사고체계로

아직 먼 허공을 응시하며 온 몸에 응고된 시대적 괴로움을 짊어지고 있었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밥 먹고 술 마시며

토론하고 동아리방에서 거리에서 나를 북돋아주던 동기와 선후배들 

그 중에서도 이 둘은 나의 가슴 속 불꽃을 지키는 수호천사들이다.

누군들 진한 추억과 큰 슬픔이 없겠는가마는

찬란한 추억과 가슴 저린 슬픔으로 살아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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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걱밥(?)


전기밥솥에서 밥을 푸는 데 묵직한 왕건이가 걸렸다.

허걱~ 밥 속에서 주걱이 나왔다.  -..-

아무리 정신없이 바쁘더라도 그렇지.....

아그들은 밥에서 플라스틱 삶은 냄새가 난다고한다 ...^^


그림의 소재와 익실스러운 풍경에 절로 웃음을 머금게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한뜸 한뜸 뜬 이는 누구일까?

이 작은 그림이 거실에 걸린 후 그림 앞을 지날 때면 살짝 웃음짓곤 한다.  ^^

10/31 평양순안공항을 떠나올 때 산 자수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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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김치

어제 퇴근하여 저녘을 먹은 후

외곽고속도로를 달려 부천에 있는 둘째 처형댁에 가서

김장김치 3통과 고구마 등등을 차로 실어왔다.

 

멀리 강화도에서 바다바람을 먹고 자란 배추로

강화의 작은 어머님댁에 가서 직접 담가 온 김장김치란다.

 

매번 쌀이며, 김치며, 밤이며...얻어만 먹고 사는

흙에서 멀어져 간 그야말로 소비자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년 봄이 오면 다시

아그들과 자투리 주말농장이라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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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리더라도

가끔

가슴 아리더라도...

 

누군가 보물덩이들 먹어치우고

똥 좀 싸고 도망가더라도

분노할 일은 아니지.

 

어느 날 식구처럼 뒹굴던 사람이

누구처럼 똥만 남기고 떠나더라도 

매달리지는 말게나.

 

그 똥들 모아 밑거름으로 삼고

먹거리 만들고 삶 만들면

그만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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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교육(?)

아이들이 커가면서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겠지만 교육문제에 이르면

중장기적이고 총체적인 대안이 없이 접근하게 되면

나무를 보지 못하고 숲만 보거나,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리라는 생각.

 

개인과 가족이 노력해야 할 몫과

가치체계와 교육체계와 보상체계, 분배구조 등의 국가적인 문제 등과

국가 및 공교육의 책임과 공교육에 대한 불신 그리고 사교육 열풍에 이르기까지...

얽히고 설킨 문제들을 누군가는 대안을 마련하고 풀어야 할텐데...

 

얼마 전 채원이의 대안학교 진학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나와 안해는 어쩌면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생각을 품고 사는 여전히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두 마리의 토끼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양성을 말함일텐데...아직은 공교육에서도 대안교육에서도 충족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적으로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고...또 공교육만으로도 대안교육만으로도 어렵고...늦은 밤까지 학원에 보내고도 싶지 않고...마냥 어중간하게 헤멜까봐 겁이 나더군.  

 

사회전체적으로 아이들의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가치체계와 이에 따른 분배구조 편입이 계속되고, 공교육 체계의 변화발전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근간을 공교육이 담당해 나가지 못한다면...집에서 대화하고 토론하고 돌봐주고 가르쳐줄 능력이 없는 이른바 대다수 사람들의 선택은 결국 사교육에 기대거나 대안교육으로 빠져나가게 되지 않을까...결국 대안교육과 공교육 상호간의  열린 대화없이는 우리 교육의 앞날은 어렵지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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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의 표정과 풍경

10/29 (토)

오전 7시에 인천공항에 모여, 수속을 밟은 후에

평양행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고 160여명이 출발.

'ㄷ'자로 돌아가는 직항로로 50분만에 평양순안공항에 내리다.

공항에서 곧바로 4대의 버스에 나눠타고 고속도로를 2시간 달려 묘향산에 도착하다.

 

<찎사 북쪽 교통보안원(경찰)>

<향산호텔>

 

지리산과 계룡산을 섞어서 빚어 놓은 듯 오묘하고 신비한 묘향산 아래

산을 형상화한 향산호텔에 도착하다.

향산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묘향산을 2시간 가량 오르고 보현사를 둘러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고 늦가을 산속의 차가운 기운에 도망치듯 호텔로 돌아오다.

 

호텔에서 저녘을 먹고 평양소주를 한 잔 하면서 뒷풀이를 하고 호텔안의 노래방에

가서 술을 마시다.  노래방에는 '휘파람'이나 '반갑습니다' 등 2~3곡을 빼면 아는

노래가 없으니 노래책에 나온 노래를 불러달라고 해서 감상하며 술을 마시며 밤이 깊어가다.

 

 

10/30 (일)

아침 7시부터 일어나 밥을 먹고

국제친선전람관을 관람하고 다시 2시간 이상 차를 달려 남포시를 지나 서해갑문에 가다.

<국제친선전람관에서 본 묘향산>

<8km에 이르는 서해갑문 풍경>

<서해갑문>

남포시를 지나 서해갑문으로 가는 길은

자연 그대로의 갈대밭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서해갑문에서 대동강과 서해 사이 8km를 막은 치수에 얽힌 이야기를 듣다.

 

<미남 북녘 안내원>

<단고기국과 평양소주>

 

남남북녀를 무색케하는 잘생긴 북녘동무...^^

다시 평양으로 버스를 타고 돌아와 원형식당에서 단고기와 평양소주로 점심을 먹다.

 

<앙증맞은 꼬마들의 멋진 공연>

<씨름놀이 공연>

 

점심 후 학생소년궁전에 들러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공연을 관람하다.

 

<고층 아파트에 불이 켜지고 있다>

<지나가는 전기 버스>

 

거리는 벌써 어두워졌고 근처 고층 아파트들에 불이 켜지기 시작하고

2대를 연이어 붙인 전기 버스들이 퇴근하는 사람들을 싣고 천천히 달리고

자전거들이 어둔 거리를 분주하게 달렸다.

 

이어 능라도 5.1경기장으로 가서 아리랑을 보다.

2만명의 카드섹션을 포함한 총 6만명, 연인원 10만명이 집단공연을 펼치는 아리랑은
일제시대로부터 시작하여 DPRK의 건설과정을 그리고
21세기의 비전을 형상화하는 종합예술이었다.
실제로 보지 않으면
그 규모와 짜임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하는 기운을 전하기는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리랑 뿐만 아니라 평양거리의 사람들의 표정들에서

묘향산으로 서해갑문으로 동명왕릉으로 가는 각각 2시간여의 시골풍경들에서
80년대에 성장이 멈추어 에너지도 먹을 것도 입을 것들도 모두 아직 부족해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고난의 행군을 끝내고 자신감을 점차 회복해 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양각도호텔에서 늦은 저녘을 먹고 긴긴 마지막 밤을 보내다.

 

 

 

10/31 (월)

평양 양각도호텔 38층에서 안개속에 잠든 평양시내를 깨우는 일출을 보다.

<양각도호텔에서 본 해뜨는 풍경>

<출근하는 평양시민 부부>

<고층 아파트>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 평양거리>

 

양각도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만수대창작단, 평양의 거리를 구경하다.

 

<대동강과 인민대학습당>

<주체사상탑 앞을 지나가는 자전거 탄 평양시민>

 

그리고 주체사상탑을 구경하고...

대동강과 인민대학습당을 배경으로 지나가는 이들의 사진을 찎다.

월요일에는 쉰다는 옥류관을 특별히 남측 손님들을 위해 열고...

북녘의 대표음식 평양온면으로 점심을 먹다.

 

<대동강>

계획도시로 설계된 평양은 건물마다의 독특함을 살리고 있었고, 경제난으로 공사를 중단했고 밤에는 불이 꺼져있는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류경호텔을 포함해, 그리고 옥류관에서 바라보이는 능라도와 대동강은 멋진 풍경이었다.

 

<동명왕릉>

<그림그리는 북녘 화가선생>

 

다시 2시간여 버스를 타고 평양 외곽에 있는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릉을 구경하다.

동명왕릉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동명왕릉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 동무의 솜씨는 대단했다.

200유로에 파는 그림을 주머니가 비어서 사지 못해 아쉬웠다.

 

동명왕릉을 가는 길에 대동강에 묶여있는 '프에블로호'를 볼 수 있었고

가을걷이 끝난 시골풍경을 볼 수 있었고...배추를 수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양공항>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북녘 시골 풍경>

 

평양 순안공항에서 아시아나 비행기를 타고

3일 동안 우리를 위해 안내를 맡은 북측 '민화협' 분들과 악수하며 헤어지다.

비행기를 타고 평양을 떠나오면서 내려다 본 먼 풍경은 익숙한 풍경처럼 보였다.

 

2박3일의 짧은 묘향산-서해갑문-평양여행만으로는

여전히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범주를 벗어나기는 힘들겠지만

북녘의 얼굴 속에 떠오른 기쁨과 슬픔의 표정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시작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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