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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학교를 아십니까?

 

[공교육 정상화… 지금 학교에선] (6) 방과후 학교

[서울신문 2006-01-13 09:00]

[서울신문]


‘방과후 학교를 아십니까.’

올해부터 학교별로 본격적으로 실시되는 방과후 학교가 교육 현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학부모들의 고민은 사교육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것. 방과후 학교는 학교 담장을 허물고 학교에서 방과후 시간을 활용, 다양한 교육활동이 이뤄지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방과후 학교를 시범운영하는 학교를 방문, 그 가능성을 점검했다.


서울 면동초등학교

“목련꽃을 웃음에 비유한 연은 어디지?” 학생들은 선생님의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어 여기 저기서 답이 터져 나왔다.“그렇지. 그럼, 아래에 있는 문제를 한 번 풀어볼까.” 학생들은 자신이 푼 문제가 맞았는지 친구들과 맞춰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지난 4일 서울 중랑구 면목1동 면동초등학교 한 교실. 겨울방학 중에 교실을 찾은 주인공들은 이 학교 4학년 학생 10여명.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설된 국어 수업 시간이다.

옆 교실에서는 저학년 학생들이 교육만화를 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또다른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조립한 로봇을 작동해보며 신기해했다. 방학 중인 학교는 학기 중인 학교처럼 아이들의 활기로 넘쳐나고 있었다. 모두 방학 동안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 학교 학생들이다.

이곳의 자랑거리는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다양한 프로그램이다. 교과과목을 배울 수 있는 ‘필수’와 10여가지 프로그램 가운데 두 개를 선택해 배우는 ‘자유선택’, 다채로운 ‘보육’ 프로그램을 원하는 대로 골라들을 수 있다.

특히 보육 프로그램은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가장 인기가 많다. 필수와 자유선택 외 시간에 학생들을 맡아주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는 맞벌이 부부를 위해 오후 늦게까지 보육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방학 중에는 오후 1시10분까지만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다치지 않도록 바닥에 부드러운 고무를 깔고, 난방 시설까지 마련해 학생들이 마음대로 뛰고 구를 수 있다.

‘필수’는 국어와 영어, 수학 등 주요 교과를 중심으로 3단계의 수준별 수업이 이뤄진다. 학부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선행학습을 하지만 수준에 따라 배우는 내용은 모두 다르다.‘자유 선택’은 암산과 그리기, 종이접기, 과학탐구, 컴퓨터, 로봇창의교실, 요가, 바둑, 피아노, 축구, 영어뮤지컬, 무용, 영어기초, 독서논술, 테디베어 등 10여개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보육’은 교육만화방, 그림놀이방, 종이접기방, 인터넷카페방, 건축놀이방, 민속놀이방, 보드게임방, 퍼즐놀이방, 인형소꿉놀이방 등 20여개 프로그램별로 방이 마련돼 있다.


학생들은 세 가지 프로그램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세 프로그램에 모두 참여할 경우 고학년은 3개월에 27만원, 저학년은 24만원만 내면 된다. 수강료는 모두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협의를 거쳐 결정하고, 프로그램 종류는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프로그램은 학교가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프로그램이 방대한 만큼 교사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방학 중에는 ‘필수’에 참여하는 교사 20명 외에 60여명이 돌아가며 보육을 도맡는다. 교사들이 가르칠 수 없는 프로그램은 외부 강사들의 몫이다.

학부모와 퇴직교원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어머니 보조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미영(41)씨는 “엄마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아이들이 편하게 생각한다.”면서 “형과 누나 등과 어울리면서 함께 노는 방법을 배우는 점이 가장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이곳 교감으로 정년퇴직한 윤대웅(63)씨는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총괄 관리한다. 교통비 정도의 최소한의 월급을 받는 그는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봉사의 기회라는 생각에서 자원했는데 아이들 크는 것을 보는 게 재미있고 보람된다.”며 웃어보였다.


서울 송정중학교

“우와-.”“어떻게 한 거예요?” 지난 5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송정중학교의 한 교실. 겨울방학을 맞은 빈 교실은 낯선 초등학생들의 탄성으로 시끌벅적했다.“자, 선생님을 잘 봐. 줄을 잡을 때 이렇게 하고, 이런 식으로 잡아 당기면 감쪽같지?” 학생들은 ‘아하, 그렇구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다양한 길이의 줄을 똑같은 길이로 바꾸는 로프 마술이다.

이날 수업은 이 학교가 방학 동안 운영하고 있는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마술반이다. 학생들은 주변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로 방학을 맞아 이곳에서 다양한 특기적성 수업을 받고 있다. 현재 이곳의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송정·공항·개화·발산·송화 초등학교와 송정·공항·방화·덕원·명덕여중 등 중학교를 합쳐 모두 10여개교 학생들이다. 방학 전에 미리 학교별로 신청서를 냈다.

프로그램은 교과학습반과 특기·적성반으로 나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각 학년별로 반을 구성하고, 학부모들의 의견을 반영해 중1 및 고1대비반을 별도로 마련했다. 모두 8개 종합반이다. 학생들은 학부모들의 요구에 따라 영어회화·문법, 논리수학, 독서토론, 수학, 논술, 영어 등 7개 과목을 학년별로 선택해 배운다. 특히 종합반과 단과반으로 구분, 모든 과목을 들을 수도 있고, 원하는 과목만 골라 들을 수도 있다. 수업은 월·수·금요일 각 3시간씩 매주 9시간이다.

장학금 제도도 도입했다. 학부모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종합반은 전체 학생의 10%에 한해 수강료를 전액 면제해주고,20%에 한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수강료의 50%를 감면해준다.


특기·적성반은 마술·요가·워드·일본어·재즈댄스·중국어·한자자격증·힙합반 8개 반이 마련돼 있다. 매주 화·목요일 각 2시간씩 매주 4시간, 최대 두 과목을 신청할 수 있다.

수강료는 교과학습반의 경우 한 달에 12만∼17만 2500원, 특기·적성반은 2만∼3만원이다. 반별 정원은 15∼20명으로 최소화했다. 강사는 주로 외부에서 참여한다. 이곳 교사는 수학과 재즈댄스 등 3명뿐이다. 대신 주변 초·중·고에서 희망하는 교사가 참여한다. 영어회화는 학부모들이 원어민을 원해 외부업체에 맡겼다.

방과후 학교를 시행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관심도 늘었다. 강서구청은 지난해 말 학생과 주민들을 위해 운동장에 가로등과 후문 앞 안전 울타리를 설치해주는 등 학교를 적극 지원했다. 주민들이 학교 운동장을 활용해 여가를 즐기는 등 학교 시설이 학생들은 물론 주민들의 편의시설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방과후 학교란?

방과후 학교는 교육부가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일선 학교에서 방과 후에 실시하고 있는 수준별 보충수업과 특기적성교육, 방과후 교실(보육) 프로그램을 하나로 합쳤다.

가장 큰 특징은 초·중·고 학생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골라 주변 학교를 옮겨 다니면서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원하는 과목이 현재 다니는 학교에 개설되지 않으면 해당 과목이 개설돼 있는 가까운 학교에 가서 배울 수 있다. 방과 후에 학교 담장이 사라지는 셈이다.

프로그램은 학교 이외에 비영리법인·단체도 운영할 수 있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예산과 시설을 지원할 수 있다. 프로그램은 학교별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되 기독교 여자청년회(YWCA)나 사회복지관, 학교재단, 시민단체 등 비영리법인이나 단체에 맡겨 운영하거나 지금처럼 학교에서 자체 운영할 수 있다.

프로그램 과목이나 강사, 수강료, 시간 등은 학교별 학운위가 비영리법인·단체와 협의를 거쳐 자율 결정한다. 정규 수업이 끝난 이후의 교육 활동이 전면 외부에 개방되는 ‘개방형’ 시스템이다. 강사는 현직 교사는 물론 학교별 결정에 따라 학원 강사도 참여할 수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전국 48개 초·중·고를 대상으로 시범운영을 마치고 올해부터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실시하도록 했다.


성공적 정착 방안은?

올해부터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학교별로 본격 실시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는 마련됐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연구·개선되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당장 급한 문제는 예산이다. 현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는 모두 교육부나 교육청 차원에서 시범운영하고 있는 연구학교들이다. 이 학교들에는 연간 2000만원이 지원된다.

그러나 연구학교가 아닌 곳은 막대한 초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송정중 박상기 교감은 “연구학교 지원비가 없으면 사실상 운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면동초등학교 신선희 교사도 “선생님들의 열정만으로는 방과후 학교가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프로그램이 정착되기까지는 체계적인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한 곳에서 가르치는 것도 학교 현장에서는 부담이 되고 있다. 송정중에서 한자자격증반을 맡고 있는 이혜경 교사는 “반을 나누기 어려워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함께 가르치다 보니 효율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송정중 박 교감은 “아직 어린 초등학생들의 경우 반을 찾아가거나 귀가하는 것까지 학교에서 일일이 챙겨야 하다 보니 직접 가르치는 일보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이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면서 “업무 효율성을 위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분리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교과수업에 대한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학원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 학부모 문모씨는 “학부모들이 특기적성 수업 강사의 질은 대단히 만족스러워하는 반면, 교과수업에 대해서는 수강료가 싼 점을 제외하면 학원에 비해 여전히 못미더워하는 것 같다.”면서 “학원처럼 보다 체계적인 지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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