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어른되면 돈 많이 벌어 어려운 사람 도울거예요”

‘피자가 먹고 싶다면 너무 비싸서 부추와 호박을 넣고 빈대떡을 부쳐 주시는 우리 할머니 덕분에 나는 ‘비만’을 모른다! 할머니는 일 년에 한 번 내 생일날 피자를 사주신다. 내가 돈 벌면 피자 많이 사먹어야지. 그래서 살 좀 쪄봐야지. ^^’ (민수의 일기 중)

민수(가명·14·대전 서구)는 자칭 타칭 ‘날씬한 꽃미남’이다. 여느 아이들처럼 넘치게 먹지 못해 체격이 왜소해서 생긴 별명이지만 그 별명을 웃음으로 넘길 줄 아는 너그러운 ‘꽃미남’이다.

민수의 어머니는 가정불화와 생활고로 세살 때 집을 나갔다. 술로 세월을 보내던 민수 아버지는 무면허 음주운전을 하다 큰 교통사고를 냈다. 마음을 잡고 시작한 사업은 사기를 당해 큰 빚을 졌고, 채권자를 피해 수년째 피해 다니던 중 연락이 끊겼다.

네 살 때부터 민수는 할머니의 손에 길러졌다. 퇴행성관절염을 앓는 할머니는 근로능력이 없지만 미혼인 민수의 막내삼촌이 부양자로 등록돼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외식 한번 해본 적이 없어요. 어린이날에 치킨 한 조각, 생일에 피자 한판 시켜주는 것이 전부죠. 그래도 민수 키우면서 뭐가 먹고 싶다거나 갖고 싶다는 푸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기특하고 대견한데 괜히 눈물이 나요.”

불편한 몸과 민수 때문에 바깥 활동을 하지 않았던 할머니는 국민기초생활수급자가 무엇인지, 조손가정 지원금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생활비는 가끔 막내아들이 가져다주는 10만-20만원이 전부였다.

“우울증이 와서 신경정신과에 입원한 적도 있었어요. 죽으려고도 해봤는데 민수 때문에….”

벼랑 끝에도 희망은 있었다. 작년 8월 민수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월 20만원의 생계비와 쌀을 지원받게 됐고 한국복지재단 대전지역본부로부터 후원금도 받을 수 있게 됐다.

“도움을 주는 분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지 몰라요. 부자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민수만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주면 더 소원이 없어요.”

민수와 같이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어 국가지원금을 받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대전에만 2만2000여 세대, 4만6000여 명이 넘는다. 지원금이 없으면 생계 유지를 할 수 없는 세대 중 수급기준에 의해 지정되며 독거노인, 모·부자가정,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등도 포함된다.

한국복지재단 대전지역본부 최명옥 본부장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겼다지만 절대빈곤층과 상대적 빈곤층은 늘고 가정까지 벼랑끝에 몰려 가난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며 “민수가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봉아름 기자>

 

출처 : 대전일보 2007.10.2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