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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아빠되다. 하조대에서 통일전망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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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간의 도보행을 마치고 발이 풀리지 않아 푹 쉬었다. 그러면서 차로 내가 지나온 길을 지나봤다. 참 많이도 걸었다. 그런데 차로는 4박 5일만에 완주를 끝냈다. 약간은 허무했다.

 

그러던 중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조카놈들이 내가 지나온 길을 보고 그 길을 걷고 싶다고... 박세호 중학교 1학년, 세준 초등학교 4학년. 참고로 어려운 것 모르고 자라서 많이 힘들거라고... 그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이놈들에게 해준 것 하나 없어 이번에 세상사는 것 한번 제대로 느껴보자고 흔쾌히 승낙을 했다.

코스는 고민 고민 끝에 통일전망대에서 역으로 환산해서 잡기로 했다. 처음에는 하루 25km정도를 잡으려 했는데 첨 걷는 애들에게 무리라는 중론으로 인해 20km로 줄여 3박 4일 약 80km의 코스를 잡았다. 이 역시 무리라 했지만 그냥 강행하기로 했다.

 

7월 28일 (20.7km) 새벽 3시 김밥하나 먹이고 하조대로 출발한다. 9시 하조대에 도착한다. 다행히 주차비가 무료란다. 4일치의 식량과 텐트, 침낭을 나누어 30L, 40L, 80L 배낭을 매고 씩씩하게 출발한다. 이번에도 내 배낭은 머리위로 불쑥 솟았다.

35도 가까이 되는 뜨거운 날씨에 아스팔트의 지열에 땀은 비오듯 한다. 이놈들 매어준 머리띠는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 물을 짜내야 할 정도다. 그런 와중에도 2시간정도 씩씩하게 걷는다. 그러더니 역시 양양공항을 우회하는 도로부터는 슬슬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도저히 이 상태로 쵸코바 하나 먹이고 길을 가는 건 무리다. 마침 막국수집이 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막국수 한그릇 먹고 나니 힘이 절로 난다.

 

설악산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양양 남대천에 이르러서는 죽겠다는 소리가 나온다. 바로 앞에 낙산사가 있는데도 그냥 지나치잔다. 허허... 그래 그 고통 안다. 알아. 일단 목표를 완주로 잡고 구경은 나중으로 미루자.

저녁 6시 오늘의 목적지 물치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정말이지 힘들게 왔다. 텐트를 치고 모기장이 쳐진 방갈로 2만원에 빌려 저녁식사를 한다. 꿀맛같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애들에게 기본적인 도보행의 수칙들을 숙지시킨다. 그리고 고통속에 이룬 성취의 기쁨을 위해 힘들더라도 꼭 완주할 것을 다짐받는다. 근데 이놈의 해수욕장이 바로 길 옆이라서 그런지 밤새 차소리와 취객들의 폭죽소리에 잠을 못이루게 한다.

 

 

둘째날인 29일(25.6km) 새벽 6시에 눈이 절로 뜨인다. 아침해가 뜨는 동해바다이니 벌써 훤하다. 처음먹어보는 냉동건조 비빔밥에 신기해 하며 열심히 먹는다. 오늘도 35도가 넘는 불볕더위란다. 죽었다.

오늘은 돈이 좀 들더라도 탈진을 예방하기 위해 물이 아닌 이온음료로 물통을 가득 채운다. 맘씨좋은 슈퍼아저씨 애들 챙기라며 구운소금을 챙겨주신다. 이놈들 난생처음 소금을 생으로 먹어가며 뜨거운 하루를 시작한다.

 

연신 헉헉 대는 세준이가 거의 죽을 지경이다. 덜컥 겁이난다. 귀한 자식 데려다 몸상하면 큰일인데, 더욱이 며칠전 도보행을 하던 여대생이 죽었다던데... 1시간 걷고 10분 쉬던 패턴을 30분 걷고 10분 쉬는 것으로 바꾼다. 그래도 장난아니다. 그나마 세호는 형이라고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기특한 놈.

 

활력은 엉뚱한데서 나온다. 다 죽어 가던 애들이 속초 초입에서 뱀을 보고는 난리다. 하기야 난생처음 뱀을 그리 가까이서 봤으니 당연하겠지. 다행히 풀뱀이라 위험하지는 않다.

 

뱀에 힘을 받고 속초로 들어선다. 북한 실향민이 모여산다는 아바이 마을을 지나며 특미라는 순대를 먹는다. 아바이순대와 오징어 순대. 참 맛있다. 그런데 세준이가 더위를 먹었나 영 먹는게 시원치 않다. 그래도 어쩌냐 갈길을 가야지. 동네 명물인 갯배를 타고 다시 갈길을 간다. 이놈의 더위는 수그러들지를 않는다. 큰일이다. 더욱이 세준이가 사타구니가 쓸리기 시작했다. 온통 베이비파우더 범벅을 만들어 가며 강행군이다.

 

청간정, 청학정 그 아름다운 정자도 1km정도를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친다. 그래 완주가 목표다. 가자. 힘들긴 힘든가 보다. 거의 초주검이다. 내 종아리는 소금으로 뒤범벅이다. 목표지점에서 약 2km전인 삼포해수욕장에 짐을 푼다. 도저히 갈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세호와 내가 발에 물집이 잡혔다. 바늘로 수술(?)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 한다. 둘을 텐트에서 재우고 해먹에 몸을 뉘인다. 동해라서 그런지 제법 쌀쌀하다.

 

 

30일 (20.8km) 해수욕장의 느긋함을 깨고 또다시 도보행을 시작한다. 세준이 눈에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가득하다. 그런데 하늘이 온통 먹구름이다. 누나에게 연락을 해보니 오늘 맑단다. 이거 기상청 영 믿음이 안간다. 그래도 걷기에는 딱 좋은 날씨다. 송지호 철새도래지를 지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슬비라서 무리는 안된다. 간성읍을 코앞에 두고 빗줄기가 세어진다. 음.... 일단 좀 기다려 보는데 누그러질 태세가 아니다. 우비를 입고 행군이다. 그런데 빗속을 걷다보면 비맞는 것보다 차들이 지나가면서 뿌려대는 파편이 더 힘들다. 다행히 앞에서 내가 서행을 유도하면 서행해주고, 덤프의 경우 옆차선으로 피해가는 등 배려를 해준다. 그런데 이놈의 시내버스들... 안중에 없다. 그냥 100km 가까운 속도로 쌩쌩 지나친다. 정말 너무한다.

 

간성읍. 맛나게 먹었던 항아리 자짱면집에서 영양보충을 한다.

오늘의 일정은 반암해수욕장이었는데, 비속에서 텐트를 치고 잔다는게 영 개운치 않다. 애들과 상의를 해본다. 좀 힘들더라도 거진읍까지 가서 난생처음 여관이라는데서 자보자고 꼬신다. 사실 내가 비를 맞아 찝찝해서 더 강조를 한다. 세호는 해먹에서 자보고 싶어 텐트를 주장했지만 삼촌말에 복종을 한다.

 

좀 무리를 한다고 하지만 애들에게는 많이 힘든가 보다. 세호 녀석이 비몽사몽 차가 오는 것도 못보고 찻길쪽으로 쏠린다. 아찔하다. 좀 따끔할 정도로 혼냈다. 위험천만이니 어쩔수 없다. 마지막 밤. 거진의 목욕탕에서 푹 찜질도 하고 시원한 에어컨 속에 단잠을 청한다. 그런데 에어컨 리모컨 배터리가 다 되어 22도 설정속에 셋이 침대에서 꼭 껴안고 자야 했다.

 

 

 

31일 (12km)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12-14km정도 남아있어 쉬엄 쉬엄간다. 매형과 누나가 통일전망대로 마중을 나오기로 해서 그 시간대도 맞춰가기만 하면 된다. 서울에서 출발하면서 벌써 길이 막힌다고 2시에 만나기로 했던 것을 늦추기로 한다. 그런데도 이녀석들 행로 바로 옆의 이승만,김일성별장, 해양박물관 들어가자니 차라리 쉰다고 길바닥에 주저앉는다. 깔끔떨던 녀석들이 이제는 풀썩 풀썩 아무데나 주저 앉는다. 이승만 별장앞에서 해먹을 치고 번갈아가며 쉬기도 하고 강원도 명물 옥수수로 점심을 때우며 느긋한 도보를 한다.

 

그래도 힘들긴 힘든 법. 3-4일째가 가장 힘들다. 통일전망대 신고소를 2km 앞두고 내 장난에 세준이가 골을 내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어찌 보았는지 매형의 차가 옆을 지나가자 더욱 심해진다. 그러다 보니 앞의 차를 보지 않고 간다. 마지막으로 따끔하게 주의를 주고 마지막 길을 간다. 100m앞 누나와 막내 세민이가 오색테이프로 종점을 알려준다. 이녀석들 어디서 힘이 나는지 뛰어간다. 허허.

 

기특하다. 79.1km. 난생 처음 해본 도보행. 정말이지 중간중간 포기해야 되나 많이 고민했다. 이 녀석들도 포기하고 싶었을 거다. 그렇지만 그 힘든 시련을 거치니 마지막 뛰어갈 힘이 나는 거겠지. 아마 많은 것을 느꼈을 거다. 그 느낌들 꼭 기억했으면 한다. 모든 것은 첫걸음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이번 도보행을 하면서 들은 두가지 말들.

“아빠가 참 대단하다. 애들 인내심 키워주려 그 고생을 하다니...” Vs “아빠가 너무한거 아냐? 애들 다 죽이겠네”

어떤게 되었던 아빠가 되었다. 울어야 할지... 그래도 좋다. 완주를 했으니. 그동안 못했던 삼촌 노릇 한방에 만회했다.

 

 

 

전국의 엄마, 아빠들! 애들 애지중지 어려움 없이 키우지 말고 올 여름 도보행 한번 시켜보소. 정말 애들한테는 잊지못할 추억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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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13:21 2008/08/0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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