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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10/09

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9/27
    기능(2)
    공돌
  2. 2010/09/27
    이소선_추석_횡재
    공돌
  3. 2010/09/26
    튀김
    공돌
  4. 2010/09/07
    30대
    공돌
  5. 2010/09/01
    진-김논쟁(1)
    공돌

기능

새로 바뀐 여기가 당최 적응이 되지 않아 쓰거나 스크랩할 글들을 옮겨두기가 귀찮아 진다.

 

더보기는 어떻게 하는 건가, 모르겠다. 현재 페이지를 벗어나면 원점이다.

 

붙여 넣기도 잘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사용자의 컴퓨터가 후져서 그럴 수도 있다.

 

사진을 올려두는 것도 익숙하지가 않아 짤방 올리는 것도 포기다. ㅠㅠ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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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_추석_횡재

퇴원 이후 제법 건강이 좋아지신 거 같았다. 말씀도 곧잘 하시고, 쑤어 드린 놓은 호박죽과 쇠고기죽도 몇 숟갈 자셨다. 이미 이광택 교수님께서 오셔서 어머니와 3-4시간을 보내신 터라 조금 늦게 도착한 우리들은 교수님과 짧은 시간을 보내고 이광택 교수님을 배웅하기에 바빴다.  

 

예전에는 어머니께서 오래전 얘기를 꺼내 놓으시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 지금은, 딱 지금 일만 얘기하신다. 그러다 불현듯 돈 얘기가 나왔고, 갑자기 생각난 만해상 받은 일이 생각나, 금으로 된 메달 어디에 있냐 물으니 무릎을 치고 그게 어디에 있었지, 하고 찾으셨다.

 

지금 싯가로는 제법 나가는 물건이 되었겠다, 싶어 어머니도 추석 선물이라며 마냥 즐거워 하셨다. 최근까지 자식네들이 퇴원 이후 간병인을 붙여준 걸, 꽤나 미안하게 생각한 한 터라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물건을 기억에서 찾아냈으니 이 보다 더 횡재가 어디있겠는가.

 

요즘은 부쩍 모란공원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본인 자리를 찾으시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겁지만, 한 편으로는 쓸데 없는 얘기라 얘기 조차 꺼내지 못하게 하는 우리들이 그저 갑갑할 때가 있다. 이 대로만 10년만 사셨으면 좋겠다. 여전히 정신은 맑고, 기개는 충만하시다. 자주 찾아뵙는게 능사일테다.

  

 

* 예전에 찍어놓은 사진 몇 장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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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쓰시는 수첩과 감방에서, 그리고 가끔씩 열어보시는 성경책.

 

* 만해상 받을 때 부상으로 받은 메달 아래 이빨 자국은 본인 것임을 알려둔다. 확인해 보라 하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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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

공부라는 게 네 놈이 좋아서 그러든 말든, 신중하게 골라잡든 말든, 별로 신경쓰지 않겠다만은, 공부가 무슨 고기덩어리도 아니고서야 당장의 색깔을 쫒고, 나중의 무게를 달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거다. 무슨 공부든간에 나는 그 어떤 공부가 해가 되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하였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무슨 공부를 할 지는 네 절박함이 결정해 주겠지만은, 그 절박함에도 질질 끌려다니다 보면 주어진 시간마저 소진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행여 공부가 주는 '해'라고 오인하는 이들이 있다. 공부를 하는 과정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야 하나, 공부를 막상 '시작'할 때는 튀김과 같이 빠르게 튀겨내 보아야 한다. 

 

그래야 그 바삭함을 음미하며 다시 자신을 기름에 담글 '용기'와 '재미'를 가질 수 있다. 이것 저것 다 따지다 보면 이미 튀김은 다 타버리고 재만 남는다. 결단은 신속하되, 결단 이후의 과정은 단단하고 천천히 할 필요가 있다. 그것도 결국에는 주어진 절대 시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정확하게 습득하는가의 문제다. 대부분의 공부의 절대 소요시간은 2년을 최저 시간으로 잡아야 할테다. 그리고 튀김 옷 묻히기도 전에 이미 자신이 할 공부의 양과 능력을 넘어서 덕을 보겠다면 그냥 포기하는 편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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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선거 때마다 찾아오는 40대 기수분들. 이번 지방선거 때도 다르지 않았다. 40대가 기수가 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영남에서 한 기수가 서울로 올라왔고, '양파'총리라는 오명을, 아니 별명을 얻고선 낙마하기에 이른다. 40대 기수론의 핵심은 세대교체로 압축된다.

 

'늙은 정치'의 낡은 프레임을 깨고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신민당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 주창했던 얘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바로 40대 기수론이다. 그 때는 박정희가 있었고, 그에 대항한 젊은 정치인의 등장이 돌풍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박정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모가지를 분질러 놓고, 빨갱이라는 희발유에 지역감정이라는 산불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 때 그랬다.

 

40대의 인물론이 아니라 그 당시 들고나왔던 공약은 여전히 현재분사형이다.  인물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세대를 대표하는 핵심의제가 무엇인가,는 빠져 있는 40대 기수론이 지금의 모습일 뿐이다. 그런 40대 기수론에 '반기'를 들 세대가 바로 30대다. 그러나 지금 30대는 무엇을 하고 있나. 아니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20대는 학점으로, 취업으로 숨통이 조여만 가면서도 한 쪽에서는 40대가 이미 걷어간 바리케이트를 세우랍시고 짱돌까지 들라 주문받고 있다. 고달프기 짝이 없다.

 

그러나 30대 일부는 이미 바리케이트 축성의무에서 벗어나 짱돌 거수의무에서도 해방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에게 유일한 문제는 결혼, 육아, 집...이런 것들이다. 취업, 결혼이라는 통과의례를 벗어난 우리들 중 일부는 우리가 포함되어 있는 씨족공동체의 책임이나 부담에서 다소 유예되어 인적 생산과 물적 생산에 매진할 것을 스스로 선택받게 이른다. 그러나 30대라는 존재가 이러한 존재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의 모든 핵심적 의제로 등장하는 취업, 육아, 교육, 의료 등은 30대인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들이 아닌가. 그러나 왜 직장에서, 주말에, 가족에게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그런 일상적 문제를 사회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하지 못하고 있을까. 과연 한국사회에서 30대는 뭔가. 허린가? 허리라도 되는가? 허벅진가? 무릎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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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김논쟁

진중권.

 

"내가 좌파 바바리맨을 싫어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21세기에 여전히 긍정적 유토피아 문학을 하는 그 지적 게으름도 맘에 안 들지만, 대중 앞에 옷 홀딱 벗고 빨간 자지, 노란 자지 심판하는 행태는 내 성 취향을 심히 거스른다. 현실은 무섭게 돌아가는데, 거기에 결합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제 자지 색깔의 원색성을 근거로 남들에게 ‘자유주의자’니, ‘프티 부르주아’니 딱지나 붙이는 것은 그냥 중세적 악습일 뿐이다. ‘종교재판’(inquisition)의 어원은 라틴어 1인칭 ‘내가 묻노라’(inquisitio), 즉 남의 신앙적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었다."

 

김규항.

 

"게다가 나는 체제 안에서 어린이 잡지를 발행하며 활동하고 있으니 반드시 사민주의와 대별되는 의미에서 사회주의 노선을 가져야 하는 상태에 있는 건 아니다. 그런 내가 굳이 진보정당에 입당하지 않고 사민주의 세력보다 사회주의 세력에 좀더 가까운 입지를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주의 세력의 성장이 사민주의 실현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택광.

http://wallflower.egloos.com/3408075

 

김규항씨는 처음에는 지방선거 패인에 대해 얘기하려 했나보다. 그런데, 제 이념을 묻는 논쟁으로 번지고 있도다. 진중권이 밟혔기 때문이다. 아니 밟은 거지. 그러니 진중권씨가 발끈한 거고. 물론 제 이념적 출신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고 할지 모르겠으나 이 논쟁이 그것의 중요함을 깨워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규항씨가 공적 담론을 조성하려 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으나, 그것도 동의할 수 없다. 김규항의 블로그에 이상한 나라의 진중권 시리즈를 보아도 그렇다. 읽어보면 볼 수록 원래 가졌던 설득력이 점점 떨어지다, 특유의 자뻑론에 빠지고 있다. 김규항 그 양반이 비장하다거나 사람 마음을 불편케 하는 글을 써서 싫어할 수 없다는 세간의 평가는 차지하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그 양반의 불편함은 오로지 '자뻑' 때문이다. 게다가 고상한 척 하면서도 결국 동네방네 기웃대며 논리적으로 기댈 곳을 찾아다니니,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요기의 댓글을 보라. 진중권을 씹어주는 고마움에 절절 맨다.

 

진중권씨는 대중 매체에다 꼴 사나운 실명비판에 '빨간 자지' 운운하며, 논쟁의 상대방을 원색적으로 긁어 놓고 있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 대상이 '말이 통하지 않는' 극우 보수에 대해 사용하던 명랑 혹은 시니컬한 대응을 김규항씨에게도 동일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김규항씨도 진중권씨의 언행이 반공적인, 매우 강력한 반공주의 효과를 갖는다고 반박하는 거 아니겠나(물론 진중권의 반공주의 효과에 대해 실증한 것은 없지만).

 

나아가 진중권씨는 지젝에서 벤냐민까지 언급하며 수사(?)적이고 현학(?)적으로 김규항 까기를 시도한다. 진중권의 글은 한 마디로 잡당글에 가깝다. 자유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하든가, 자유주의자도 진보신당에 있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든가, 도리어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낡은 이념이라고 새로운 대체제를 제안하든가, 그 모든 것들이 진보신당의 큰(?) 그릇에 다 담을 수 있음을 입증하든가, 이번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분명히 논증하든가 하면 될 것이지, 지리멸렬하게 논쟁의 핵심을 갉어먹는 것들에 목메고 있는지 모르겠다. 진중권씨의 글이 감점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쓰잘데기 없는 건 빼고 본질만 얘기해도 되지 않나. 그런데 진중권씨는 논쟁을 유희의 대상으로 생각할 뿐, 논쟁을 통해 논쟁의 방외에 있는 이들에게 진지함을 던져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둘 다 자신의 이념이나 스탠스만 강조한 나머지, 논쟁글들의 수사가 마치 복어가 몸을 부풀리듯 볼썽사납게 된 것은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양비론이든 뭐든 간에, 이런 글을 남기는 이유도 저들의 논쟁을 보면서 하염없이 힘이 빠지는 내가 견디기 힘들어서이다. 누구는 강단에서 쫒겨나 붉은 돼지타고 하늘을 가르겠다고 하시고, 누구는 사회주의 어떠네 이러면서 좌파 밴드만들 궁리나 하고 있고.

 

뱀발: 김규항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상한 나라의 진중권이 시리즈로 연속해서 올리고 있으니 참조하시길.

 

근데 김규항씨의 주장이 '사민주의 실현의 기반이기 때문에 사회주의에 가까운 입지를 가진다'는 말은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원한관계는 없으나 저 말 속에 자신이 사민주의를 위해 무슨 사회주의 총대를 메고 있다는 것도 아니고. 저 말은 뒤집으면 '극우 보수주의가 중도 보수주의 실현의 기반'이라고 차용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 같다. 게다가, 김규항씨 글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글들은 읽으면 읽을 수록 유치하기 짝이 없다. 어느 고등학생의 편지를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뒤받침하는 그 이면에는 자신이 꼭 유명인이고, 사회적으로 명망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 처럼 말이다.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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