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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8.27.]굿바이 레닌

봤다. 꽤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결국 봤다. 네오폴더 1CD 다운로드, 뭐 200원 좀 넘게 들더라.

심장발작으로 쓰려져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나보니 신봉하던 사회주의 국가는 무너져 있다. 아들의 단 한가지 목표는 어머니로 하여금 절대 위와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래서 그는 이제 이 땅 위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만들어나간다. 모카픽스 골드 커피라던가 하는 것들. 감독을 꿈꾸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옛 동독의 뉴스까지 재현하고, 아이들에게 돈을 주어 옛 동독의 파이오니어가 아직도 있는 것처럼 꾸민다.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그 자신과 어머니가 바랐지만 이 땅에는 존재한 적 없었던 것들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코카콜라가 동독의 음료수 공장의 선전을 시기해 동독 방송국의 취재를 방해한다던가, 수많은 서독 인파들이 동독으로 이주해오길 원한다던가 하는 것들은, 적어도 현실에선 없었던 일들이다. 하지만 그 어머니도, 아들도, 그러한 현실 앞에서 단지 손들어버릴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다. 배우자를 잃고 홀로 살아가기로 한 인간적인 어머니나, 선한 의지로 저 우주에 날아가길 꿈꿨던 한 꿈많은 아들이나 말이다.

이 영화는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 처음으로 자막을 받아적게 만든 영화이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게 몇 줄 인용해보자.

두번째 심장발작으로 앞날이 불투명해진 어머니께 보여드릴 마지막 쇼를 준비한 아들은 병실에서 어머니와, 가족들과 함께 뉴스를 튼다. 우스꽝스럽게 변장한 친구가 앵커로 나오는 뉴스, 옛 동독의 우주비행사 영웅이었던 지그문트가 새로 동독 지도자가 되어 연설한다(실제로는 가난한 택시운전사에 불과하지만).

"...사회주의는 장벽 안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며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넘어진 베를린 장벽을 넘어가며 환호하는 시민들을 비추며(이들은, 뉴스 안에서만큼은, 동독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환호에 찬 서독의 억압받던 인민들인 셈이다) 이어지는 앵커의 멘트.

"...수천 수만의 서독 인민들이 동독에 오기를 원하고 또한 머물기를 원할 겁니다. 자본주의 체계에서 생존 경쟁을 하기보다는 말입니다. 직장을 얻기 위해 애쓰지 않고, 살아가면서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되는 곳... 이들은 다른 세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비디오 카메라와 TV가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또한 새로운 세상이란 선한 의지요 분노요 희망임을 깨달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쇼 사흘 후에 어머니는 죽는다. 그녀의 뼛가루를, 어린 시절 우주 조종사를 꿈꾸며 날려보내곤 하던 모형로켓에 담아 폭죽과 함께 공중으로 날려보낸 후, 주인공의 독백은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다.

"...그녀가 남겨놓은 나라는 그녀가 신봉했던 나라이고, 내가 살아갈 나라이기도 하다. 비록 그것이 실존하는 나라는 아니라 할지라도, 내 기억 안에서 나와 어머니는 그 조국에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조국, 세상에 실재하지는 않아도, 그 어머니와 아들이 살았던 조국은 그들이 남긴 저 말들 속에 있다. 순식간에 서구의 문물로 옛것들이 사라져버리고, 30년 동안 모아놓은 노동의 댓가가 서독 은행에 의해 휴지조각이 되어버렸으며, 더이상 공화국 인민의 복리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게 된 옛 동독인들(아들, 어머니, 어머니의 늙은 옛 친구들, 지그문트)에게 남겨진 공허와 눈물이 원했던 것, 보상받고 싶어했던 것이 거기에 있다.

이 영화, 아버지라는 존재를 굳이 끝에 끌어들이지만 않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굿바이 레닌은 우리가 현실 사회주의권의 흘러간 역사, 그 20세기의 흔적에 흘려주는 마지막 눈물이다. 헬리콥터에 의해 옮겨지는 부서진 레닌상은 그 한세기의 상처를 의미한다. 레닌이 남겨놓은 역사의 흔적, 그 결말에 우리는 필요한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을 이 영화로써 남겼다. 이제 우리는 전진이다. 그러니까, 굿바이 레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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