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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26.]익스페리먼트

드디어 봤다.

기분 찝찝하다.

언제나 이런 충격적인 내용은 찝찝한 기분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영화는 실제 있었던 충격적인 심리학 실험을 충실히 재현했다. 몰개별화, 폭력, 피실험자와 연구자의 동시적인 돌연변이... 그 과정에서의 심리적 변화 역시 카메라의 시선과 수시로 바뀌는 시각 속에 잘 드러나고 있다. 영상 자체로 따져서 점수 A0랄까.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식의 신물나는 얘기를 또 꺼내고 싶진 않다. 인간이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들일 때 사용하는 방어기제 중 하나가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라던가. 심리적 연구결과를 보면서 심리적 함정에 빠지다니.... 재미있지 아니한가.



하지만 이 실험은 너무나도 지금의 사회와 흡사하다. 연구자들을 자본으로, 간수역 피실험자를 국가로, 죄수역 피실험자를 죄수로 치환해 보라. 자본의 룰에 따라 기획된 구조, 그 속에서 점차 자본의 통제력을 떠나 횡포를 자행하는 국가, 과거의 관습에 따른 저항을 시도하지만 곧 분쇄되고 분리되는 민중. 자본은 스스로 국가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그에 의존하며, 국가는 자본의 논리로 자신의 횡포를 정당화한다.

사회의 구조가 어떻게 인간을 형성시키는가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각 그룹 내에서 서로 다른 행동형태를 보여주는 개인들을 통해 사회의 서로 다른 계급분파들의 유형을 발견하는 것 역시 쏠쏠한 재미다. 지배블록 내 온정파, 자유주의적 자본, 민중 내 선동가, 파시스트 지도자...

특기할 점은, 이 영화의 모델이 된 스탠포드 실험의 경우 간수역 피실험자가 철저히 연구자들의 암묵적 관리감독 아래서 행동하는데 비해, 이 영화에선 간수역 피실험자들이 실험을 중지시키려는 연구자들을 공격한다. 이것은 스탠포드가 있는 미국과 나치 과거가 있는 독일의 차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철저히 자본의 암묵적 관리감독 하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이룩한 미국과, 그러지 못하고 파시즘 반동을 허용하고 만 독일의 차이. 그 차이는 스탠포드의 심리적으로 변이된 연구자들과, 영화 속의 지도자적 -파시스트적- 간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주인공과 얽혀들게 되는 여자를 끼워넣은 것은 감독의 과욕 혹은 실수인 듯. 별로 그러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을...사족이라 하겠다.

후우, 영화 자체도 암울하지만 더 암울해지는건, 그러한 구조가 사회 전체적으로도 나타날 뿐 아니라 좀 더 좁은 영역 곳곳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학교, 군대, 병원....

간만에 괜찮은, 하지만 불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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