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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우선, 대규모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도 우리가 호명해야 할 대중이 아니겠는가라는 말씀은 맞는 말씀일 것입니다. 이들은 대중 내의 일 분파임에 틀림 없습니다. 심지어 저는 이들을 '노동귀족'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들은 누구 말마따나 차라리 불쌍한 사람들이기도 하죠. 현재 자신들이 쥐고 있는 정규직으로서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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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분명 비난할 일이 아닙니다. 사실 밑에서도 잠시 이야기했었지만, 이번에 이수호 집행부가 '사회교섭 테이블에 들어가야 비정규직 보호법 통과를 막는다'라고 말한 것은 정확히 이러한 두려움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비정규직 보호법은 바로 정규직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칼자루이고(비정규직 활동가들이 작년에 우리당 점거하면서 이건 우리 일도 아니라고 말했던 거 기억하시죠?), 이 칼자루를 손에 쥔 채 정부는 민주노총에게 항복을 하고 노사정 합의 테이블로 들어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근도 잊지 않고 줍니다. 일단 합의 테이블로 들어오면 산별노조로의 전환 지원도 해주고 국가기구로 만들어 줄께.
어쨌든 .... 이들은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더 이상 노동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는 분파는 아닙니다. 대규모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의 싸이클은 끝났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노동운동 하면, 대규모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가슴벅찼던 골리앗 투쟁.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남성 정규직 대규모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대표적인 상으로 떠올랐던 것은 사실 87년을 전후로 해서였을 뿐입니다. 전태일 열사 생각나시죠? 전태일 열사와 함께 투쟁을 했던 곳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여공들이었습니다. 여공들이야말로 70년대 노동운동의 주역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산업구조가 경공업(섬유업계, 신발업계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경제개발계획에서 중공업 우선주의가 시작이 되면서 남성 대규모 정규직 노동자들이 부상을 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지금은 다시 그 대표적인 상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요? 그것은 언제나 계급투쟁을 먼저 시작하는 쪽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이기 때문입니다. 부르주아지는 착취 전략들(새로운 분업구조, 기계, 관리양식 등등)을 생산해 냄으로써 이러한 계급투쟁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바로 그러한 착취전략들에 따른 구체적인 노동자들의 양태가 생겨나게 됩니다.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은 그래서 언제나 이러한 자신에게 가해오는 부르주아지들의 특정한 계급투쟁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며, 그 특정한 착취전략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을 목표로 삼는 운동을하게 됩니다. 그렇게 투쟁을 통해 부르주아지들의 특정 해당시기의 착취전략으로부터 노동자들이 빠져나오면, 부르주아지는 가만히 보고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또 다른 착취전략을 개발함으로써 반격을 시작합니다.
98년 IMF 이후 정리해고 등을 통한 비정규직의 대량생산은 바로 이러한 부르주아지의 계급투쟁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부르주아지의 계급투쟁이 이제 어느정도 완성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대다수의 노동대중으로부터 상당한 정도로 고립되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대다수의 노동대중들에게 대안적인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혹자가, 민주노총 내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여전히 헤게모니를 쥐고 있기 때문에(사실 쥐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그간의 노동운동의 순환을 통해서 자신의 "시민권"을 따낸 자들이고, 따라서 '대항제도'가 아니라 '제도' 및 '권력'의 한복판으로 진입한 분파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근거해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사고에 불과하다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심지어 민주노총 대중들의 급진화를 목표로 삼는 일조차 민주노총 내부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민주노총의 외부에서, 새로운 급진적 분파들을 조직해 냄으로써 민주노총의 대표성을 대체할 수 있는 힘들을 형성시켜내야 합니다. 이것이 실패하는 한, 민주노총 그 자체의 혁신도 없습니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내부(소위 '현장')에서 뭔가 돌파구를 찾겠다는 사고는 하루 빨리 깨뜨려야할 사고입니다. 원칙적으로도 그렇고 실천적으로도 그렇습니다.
한국노총하고 민주노총하고 합쳐서 인구가 어느정도 됩니까? 200만 됩니까? 그 바깥에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질문은 단순합니다. 800만 비정규직을 민주노총 내로 끌고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800만 비정규직을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200만이 따라오게 만들 것인가? 답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현재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노동운동 내의 분파라는 점 때문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민주노총 내부로 한정합니다. 지금 미래를 바라보는 활동가들은 민주노총의 바깥으로 자신들을 던져야 합니다. 80년대 초에 활동가들이 현장에 투신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노동운동의 미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굉장히 위중한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말하자면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아메리카 헤게모니에 입각해 있던 세계자본주의의 순환이 끝났습니다. 다시 원시적 축적을 이루지 않는다면, 자본은 소생하지 못합니다. 이 원시적 축적은 엄청난, 극단적인 폭력을 동반합니다. 마르크스는 사회 외곽에 동질화된 채 집적되는 대중들 안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읽었지만, 지금 사회 외곽에 집적되는 대중들은 몰살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자본의 원시적 축적은 잉여 인구의 학살을 통해서 달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고강도/저강도 전쟁들이 보여주는 현실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 노동운동의 미망을 버리지 못하고, 그 노동운동의 결과물인 민주노총 내에서 무엇인가 돌파구를 찾기 위해 애씁니다. '사회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을 새롭게 어떻게 형성해 나갈 것인가가 아니라, 자기 근거 없고, 계급적 기반조차 불분명한 노동자들 '본연'의 '전투성'에 대한 환상에 젖어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전노투 게시판에 가서 사람들과 논쟁을 주고받으면서 이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분들은 지속적으로 문제가 단지 이수호 집행부에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진단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지금 당장 민주노총으로부터 일군의 사람들이 단순히 빠져나오는 문제는 아니지 않겠는가? 저는 이러한 문제제기에는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빠져나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시간과 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서가는 활동가라면, 바로 이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어떤 시간과 어떤 과정을 어떤 계획하에 조직해 낼 것인가? 레닌이 물었던 질문을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당'을 만들자는 말이 아닙니다. 무엇을 해야 대중들을 다시 급진화시키고 새로운 노동운동의 출발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를 활동가들이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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