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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스탠포드 감옥 실험 이야기

스탠포드 감옥 실험 (1)


지난 주말, 한 스포츠신문 뉴스란에 어떤 여자의 사진이 12장이나 올라있었습니다. 제목은 ‘12번의 감옥행 변천사’ 아마 이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왼쪽 상단, 10대 후반쯤 되는 앳된 소녀의 모습이 12번의 감옥행동안 퀭한 눈동자에 부스스한 얼굴, 한 줌의 마약을 삼킨 듯한 몽롱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네요 한 가정의 축복 속에 소중한 생명으로 세상빛을 보았을 그녀인데, 어느새 이렇게 변해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녀를 이렇게 만들어간 원인이 무엇인지, 이러한 변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지, 다시 범죄에 손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직업 교육이나 기타 프로그램은 없었는지 등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명문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였던 Zimbardo 교수도 이와 비슷한 의문을 이미 30 여 년 전부터 시작한 모양입니다. 특히 그는 교도소라는 사회적 격리 장치가 범죄자들의 재활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지, 그러한 환경이 인간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을 갖고 그 유명한 ‘스탠포드 감옥 실험’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지난 칼럼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부터 2회 동안은, 이 실험의 전반적인 계획과 여러 실험 절차들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실험의 시작


1971년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과의 Zimbardo 교수는 ‘교도소의 생활이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광고를 지역 신문지에 내고 지원자를 모았습니다. 광고 후 70여명의 지원자가 연락을 해왔고, 이후 간단한 정신과적 면접과 성격 검사를 실시해서 심리적인 문제가 있거나 병력이 있는 사람은 제외시켰습니다. 그리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 이전에 범죄나 마약과 관련한 전과가 있는 사람들도 제외시켰죠. 이런 심사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24명의 실험 참가자가 결정되었고, 실험에 참가하는 대가로 하루에 15불 정도의 금액을 받기로 했습니다.

우선, 선발된 24명에 대한 기본 프로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이 실험 참가자로 선발될 때 앞서 말씀드린 검사나 면접외에도, 참가자들간 이질성을 최소화하고 가능한한 일반인, 보통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인 수준이나 지능, 건강 조건도 비교적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퍼센티지를 차지하는 계층으로 구성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동질적인 구성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눈 후 한 집단은 교도관의 역할을, 다른 한 집단은 죄수의 역할을 맡기려고 했습니다. 결국, 죄수냐 혹은 교도관이냐 하는 집단의 분류는 임의적인 것이었지, 결코 두 집단간의 유의미한 차이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실험이 진행될수록 이 두 집단은 정말로 놀라운 모습으로 다르게 변화해간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차차 말씀드리죠.

Zimbardo 교수는 교도소 환경과 가장 유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실제로 이전에 장기 복역수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적이 있는 사람을 섭외해 필요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과 건물의 한 쪽 복도 끝을 막아, 감옥 셋트를 만들었습니다. 실험이 시작되면 복도는 죄수(실제 죄수가 아닌 죄수 역할을 하기로 한 참가자들)가 거닐거나 식사, 운동들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됩니다. 그리고 화장실은 죄수들이 수감되는 방에서 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야만 하는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참가자들은 이곳이 진짜 감옥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해서 눈을 가린 채 이곳으로 데려오게 되죠. 그래서 그곳이 스탠포드 대학내 임시로 만든 감옥이라는 생각을 못하게 한 것이죠. 그리고 이 복도는 빛이 들어오는 창문이나 시계를 놓지 못하게 해서, 여기가 어딘지,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소품들도 모두 감옥과 동일하게 만들었습니다. 3개가 있던 감방의 반대쪽에는 매우 작아 혼자만 들어갈 수 있는 어둡고 작은 공간을 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실험장소인 교도소가 다 만들어진 후에, 참가자들은 이미 협조가 요청된 경찰의 인도로 실험실로 옮겨지게 됩니다. 물론 죄수역을 맡은 참가자들에게는 실험실이 급조된 교도소가 아닌 아닌 스탠포드 주립 교도소라는 안내를 하고, 이를 위해 눈을 가린 채 데리고 옵니다.



심리적 장치 (1) - 살충제 그리고 유니폼


죄수들이 처음으로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감옥으로 안내되어진 후였고 이들을 맞는 사람들은 교도관(교도관 역할을 하기로 했던 참가자들)들이었습니다. 죄수들은 교도소로 인도되자마자 마치 실제인 것처럼 체계적으로 조사되었고 신체 검사를 위해 옷을 모두 벗고 나체인 채로 교도관 앞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일반 죄수들에게 하는 것처럼 이나 기타 해충을 잡기 위한 살충제(잘 아시죠? DDT같은 그런 약)가 온몸에 뿌려집니다.

이 과정은 죄수들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모멸감을 많이 느끼게 하는 행위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고 마치 해로운 무엇인양 온 몸에 살충제를 뒤집어 써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사실 이 과정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해충을 없애기 위해서라는 현실적인 목적이외에 죄수들을 다루기 쉽도록 만들 수 있는 효과적인 통제 수단이기도 합니다. 즉, 죄수들은 일반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멸스런 대우를 반복해서 받게됨으로써 스스로를 매우 지위가 낮고 무기력하며, 점차 그런 대우를 받아도 싼 가치없는 인간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럴수록 이들을 통제하고 가혹하게 대하는 교도관들은 전지 전능의 힘을 가진, 그리고 자신들에게 그렇게 대해도 되는 권한을 가진 인물로 인식되게 됩니다.

결국, 죄수들은 교도관의 권위에 복종하고 따르게 되며, 이성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처우에도 그대로 따르게 됩니다. 반항할 힘을 잃게 되는 거죠. 인간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것은 무력이나 다른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닌 바로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터득한 후 고안된 장치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장치는 사실 교도소에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일제 시대때 일본인들이 식민지였던 우리 나라를 통치하는 주요 수단으로 사용했던 정책이 바로 이것이었고, 새로 전학 온 아이에 대한 텃새 역시 결국엔,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온전히 굴복시키고 복종시키고자 했던 보이지 않는 심리적 장치라고 할 수 있죠.


죄수들을 복종시키게 하는 또 하나의 장치는 이들을 모두 똑같은 외양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똑같은 머리 모양과 똑같은 옷, 그리고 이름대신 번호로 불려지게 하는 것이죠. 이 실험에서도 그러한 유니폼을 입었는데 모양은 마치 임신복처럼 밑이 트인 원피스 형이었습니다. 모두가 이 옷을 입게 했고, 속옷은 입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머리에는 똑같은 모양의 모자를 쓰게 했으며, 신발은 슬리퍼로 통일해서 신도록 했습니다.



왜 유니폼인가?


우리는 종종 모두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생활하는 집단을 보게 됩니다. 대기업이나 군대, 학교등이 대표적이죠. 그리고 여기에서처럼 교도소도 똑같은 유니폼, 죄수복을 입게 합니다. 왜 그렇게 할까요. 우선, 이들의 개별성을 없애기 위함이겠죠. 그리고 워낙 많은 수의 사람들을 관리해야 하니까, 다른 집단과 구분되게 그 집단만의 유일한 외양을 갖게 해서 보다 통제가 쉽도록 만드는 이유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외에도 유니폼은 우리의 심리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죠. 대기업이나 군대, 학교, 그리고 교도소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모두 철저히 위계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라는 것이죠. 회사는 부하직원과 상사, 그리고 군대는 당연하고 학교는 학생과 교사, 그리고 교도소는 죄수와 교도관 그런 식의 절대적인 위계가 존재하는 사회라는 점입니다. 절대적인 위계, 권위와 그에 대한 복종이 갖추어져야만 굴러갈 수 있는 조직이라는 점이죠. 그럼 권위와 유니폼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유니폼이란 한 마디로 개인에 대한 개성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개별성이 최소화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여러 심리학 실험에서 이 주제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었습니다. 연구 결과, 개별성을 갖지 못한 사람은 여럿이 아닌 혼자서 공적 장소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거나 주장하는 경향이 매우 적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다시 말해, 개별성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특히 권위자들이죠) 앞에 나서서 자신을 표현하거나 주장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소극적인 자세를 지니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결국, 권위자의 지시나 명령에 대해 아무런 저항이나 주장을 하지 않고 그대로 따르게 될 확률도 높다는 거죠. 유니폼은 결국 복종을 이끌어내는 또다른 심리적 장치이며, 약자의 입장에 서게 하는 심리적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실험 얘기로 돌아와서, 다른 일반 감옥에서는 잘 하지 않는 장치로 이들의 발에 족쇄를 채워놓았습니다. 이는 환경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인식을 끊임없이 들게 하기 위해서 마련한 장치였죠. 아침에 일어나도 여전히 족쇄가 발목에 채워져 있다면, 아! 시계가 없으니 아침인지도 모르겠죠. 그렇다면 정말 참가자들은 ‘여전히 나는 감옥에 있고 이 곳에서 달아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겠죠.



심리적 장치 (2) - 교도관의 유니폼과 선글래스


한편, 교도관 역할을 맡았던 참가자들도 교도관으로 변하기 위한 절차를 밟았는데, 이들도 모두 동일한 복장을 합니다. 카키색의 상하의에 목에는 호루라기를 메고 있고 경찰봉을 들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교도관의 상징처럼 아주 까만 선글레스를 쓰게 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유니폼은 앞서 죄수들과는 다소 다른 심리적 장치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즉, 죄수들이 속옷도 입지 않은 채 밑이 트인 엉성해보이는 복장을 하고 있는데 반해, 교도관들은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복장, 그리고 권위를 표현하는 경찰 뺏지 등을 차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도 죄수들과 마찬가지로 유니폼으로 인한 몰개성화가 이루어지지만 이는 오히려 약자라기 보다는 강자, 권위자로서의 몰개성화를 일어나게 하는 장치가 됩니다. 즉, 그 옷을 입음으로써 약자의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권위로 대변되는 일련의 파워를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죄수들을 무시하거나 가해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바로 이 복장 때문에 아무런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들이 착용한 선글래스는 그런 권위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상징물입니다.

진한 선글래스의 특징은 바로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다는 차단성입니다. 이는 교도관들만이 쓰게 되어 있죠. 즉 죄수들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관찰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교도관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여지게 됩니다. 정보의 사각지대가 바로 교도관의 시선이라, 죄수들은 늘 긴장할 수 밖에 없지요.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작은 장치가 사실은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니 놀랍죠? 이것이 바로 심리적 장치의 효과입니다.

교도관으로 참여한 참가자들은 교도관의 역할에 대해 사전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고, 연구에서도 이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법적으로 타당한 선에서, 그리고 죄수들을 존경하는 선에서 감옥의 규칙을 만들 수 있다고 얘기만을 들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서서히 교도소 안의 규칙을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셋팅을 만들고 교도관과 죄수들의 역할 설정을 하면서 교도소의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실험 이틀째의 날을 맞게 되는데, 그날 밤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교도소, 정확히는 실험실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스탠포드 감옥 실험 (2)


지난 칼럼에서 스탠포드 대학내에 어떻게 감옥 시설이 마련되었는지, 그리고 죄수와 교도관이라는 신분을 만들어내는 여러 심리적 장치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칼럼은 스탠포드 심리학 실험의 마지막 이야기로, 실험 이튿날부터 조기 중단된 6일까지의 숨가쁜 상황이 전개됩니다.



실험 이틀째


이날 아침 예상치 못한 죄수들의 집단 행동이 발생했습니다. 아침이 밝자 죄수들은 모자를 벗어버리고, 죄수복에 달려 있던 숫자를 잡아뜯는가 하면 감방 안에서 문을 향해 침대로 바리케이드를 친 채 방어 태세를 갖추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도관들에게 욕설과 비난을 하고조롱하기까지 했죠. 첫날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지나갔던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행동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여기는 감옥이 아닌 실험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더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이 폭동에 대한 교도관들의 행동이었습니다.

앞서 여러 번 강조했던 점이 있죠? 실험에 참가하기 전 이들은 교도관이나 죄수나 모두 지극히 평범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0대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감옥이니 교도관이니 하는 것에 대해 전혀 사전 지식이 없던 이들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수와 교도관이라는 구분은 그저 임의적인 구분에 불과한 것들이었죠. 그런데, 둘째 날 죄수 역의 참가자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교도관 역할의 참가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사태를 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실험 전에는 단 한번도 교도소에 다녀오거나 교도관을 만난 적도 없던 사람들이 말입니다.



물리적인 진압


교도관들은 일단 소화기를 가져와 죄수들을 향해 뿌려대기 시작했습니다. 순간적으로 피부의 온도를 낮추는 하얀 분말의 소화액이 발포되자 죄수들은 문에서 떨어져 밀려날 수 밖에 없었고, 교도관들은 이틈을 타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 죄수들을 진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도관들은 죄수들의 옷을 모두 벗기고, 감방 안에 있던 생필품들, 침대와 담요 등을 모두 밖으로 끄집어 낸 후 알몸인 상태로 죄수들을 감방 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폭동을 주도했던 죄수들을 모아 독방에 집어넣었죠. 죄수들에게 가하는 체벌로는, 한 명씩 불러내어 push-up을 시키고 나머지 죄수들을 모두 벽을 바라보고 서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push- up 정도는 체육 시간에도 하는 거고 건강 삼아 혼자서도 곧잘 하는 거라, 이게 체벌일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당시에 연구자들도 그러한 생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곧 연구자들은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했죠.



체벌일까 싶었던 바로 그 push-up, 한 사람이 이를 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벽을 향해 서 있어야만 하는 바로 이러한 체벌이, 실제 교도소, 그것도 그 악명 높았던 나찌의 수용소에서 존재했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한끝의 차이도 보이지 않고 스탠포드 감옥에서의 체벌과 나찌 수용소에서의 체벌이 똑같은 모양새를 띠고 있었습니다. 차이라면, 나찌의 수용소에서는 우리가 전쟁 전범이라고 하는, 극악무도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독일군 장교들이 유태인에게 그러한 체벌을 가했던 데 반해, 스탠포드 감옥(대학)에서는 이틀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평범하고 순진했던 청년들이 똑같은 청년들에게 체벌을 가하고 있다는 점뿐이었죠. 놀라웠던 점은 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교도관의 임무나 전반적인 업무 스케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싶었던 참가자들은 어느새 기존 교도소에서 행해지는 교도관의 업무 스케쥴을 정확히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자발적으로 3명의 교도관들이 나서서 야간에 당직을 서기로 했고, 3교대로 9명의 교도관들이 번갈아 가며 한시도 놓치지 않고 죄수들을 감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너무도 지능적인 심리적 진압 방법까지 동원하면서 말이죠.



심리적 진압


우선,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어떤 집단이 있다고 하죠. 이들이 힘을 뭉치면 위협이 될 수 있을 만큼의 머릿수를 가진 집단이라고 가정할 때, 우리가 그 집단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첫째, 상대 집단을 제압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지니는 것입니다. 사람수로, 강한 무기로 상대 집단의 힘을 제압하는 것이죠. 그런데, 인원도 그리 많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무기도 신통치 않다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까요?

맞습니다. 생각하신 그대로, 바로 심리적 전술입니다. 앞에 칼럼에서 교도관의 선글래스 얘기를 한 적이 있죠? 그 작은 장치 하나가 죄수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주요 수단이라고. 인간의 심리를 제압하는 것이 바로 인간을 제압하는 방법입니다. 스탠포드 감옥내의 교도관들도 바로 이런 심리적 장치가 죄수들을 통제하기 위한 주요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도의 심리적 장치를 마련하게 됩니다.

우선, 기존 세 개의 감방 중에서 하나를 일종의 특실 개념으로 개조했습니다. 이 방에서는 옷도 입을 수 있고 침대도 사용할 수 있으며 이도 닦을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다른 죄수들과는 달리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 방에는 폭동에 가담한 정도가 가장 적은 세명의 죄수들이 들어오게 해서 그곳에서 생활하게 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한 감방에, 벌거벗겨진 채 식사도 제공받지 못하는 상황, 물론 세수를 하거나 이를 닦을 수도 없는 상황에 있게 했죠. 이미 이것만으로도, 폭동에 가담하는가에 대해 심한 갈등을 갖게 합니다. 아마도 다음 폭동에는 주도적으로 나설 수 없겠죠. 그러나 심리적 장치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를 반나절, 교도관들은 소위 모범수였던 세 명을 상황이 제일 나쁜 감방에 넣고, 폭동을 일으켰던 문제 죄수들을 제일 좋은 특실에 넣었습니다.

자, 여기서 문제입니다. 교도관들은 왜 이런 조치를 취했을까요. 앞서, 폭동에 가담한 정도가 가장 약한 사람들이 좋은 감방에 들어갔을 때는 일종의 보상처럼 해석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즉, 교도관들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하지 않을수록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잠시 후 상황은 뒤바뀌어서, 폭동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좋은 감방으로 들어가고 소위 모범수였던 사람들은 다시 험한 감방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아니, 교도관에게 잘 해도 험한 감방으로 들어가야 하고, 못해도 들어가야 하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해답은....바로 혼란입니다. 즉, 방금 여러분들이 가졌던 그 의문점처럼 죄수들 역시 앞일을 예측하지 못한 채 혼란에 빠진 거죠. 앞으로의 일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여기에는 중요한 심리적 과정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 여기에서 교도관들이 죄수들에게 박탈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우선은 옷입니다. 그리고 음식, 그리고 잠자리입니다. 즉 의식주, 인간의 생존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이를 얻고 얻지 못함이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해 관계가 높은 것이라고 볼 수 있죠. 두 번째로 폭동에 가담한 정도가 낮은 사람들이 좋은 환경으로 갔다가, 다시 나쁜 환경으로 옮겨지게 된 상황의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좋은 환경은 일종의 긍정적인 보상입니다. 보상이란 단순히 말하자면, 그 보상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뭔가 이쁜 짓, 다시 말해 그 사람의 맘에 드는 행동을 했을 때 받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도관들이 제공하는 좋은 환경에 폭동에 가담한 정도가 적은 사람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얼마 지나지 않아 폭동을 주도한 사람들을 그곳으로 보냈을까요.

다시 묻겠습니다. 여러분이라면,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맞습니다. ‘뭔가 내가 모르지만, 교도관과 저들 사이에 은밀한 거래나 그 무언가가 있을거야’.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어느 모로 보나, 나보다 못한 것 같고, 실력도 없어보이는 데 승진은 일순위인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쉽게 이런 생각합니다. ‘뭔가 다른 쪽으로 손을 썼겠지. 치사하긴’이라고. 바로, 폭동을 주도했던 죄수들에 대해 나머지 죄수들은 일종의 불신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을 더 이상은 믿지 못하죠. 교도관들이 노린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즉, 집단 안에 이들이 한데 뭉칠 수 없도록 만드는 불신을 싹트게 한 것이죠. 결국, 교도관들의 전략에 의해 폭동을 주도했던 일부 죄수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머지 죄수들을 배반하고 편한 환경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신념을 나머지 죄수들은 갖게 됩니다. 앞서, 의식주와 같이 이해 관계가 높은 대상이 결과와 관련된다면 이러한 불신은 더욱더 공고하게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심리적 장치, 바로 폭동을 주도했던 죄수들에게 가해진 심리적 장치입니다. 물론 이들도 앞서 설명에서처럼 다른 죄수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되버리고 고립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들만이 겪게되는 무서운 심리적 장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것이죠. 흔히들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가져오게 될 결과를 예측하고, 대비합니다. 우리가 15분 후에 도착할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나, 직장 상사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을 때 돌아올 수 있는 반응을 예상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예측입니다. 이런 예측이 불가능하다면, 사람들은 큰 혼란을 겪고, 초조, 불안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불안증이라고 얘기하는 정신과적 증상의 가장 큰 심리적 원인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런 예측 불가능성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모르니 늘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죠. 폭동을 주도했던 죄수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심한 처벌이 올 것을 기대합니다. 실제로, 감옥에서 초반에는 그런 처벌이 가해졌죠. 처벌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예측했던 것이기에 불안은 그다지 높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곧 편한 감방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옷이 주어지고 침대에서 자고, 분명 몸은 편해집니다. 그러나 이들이 진정 심리적인 안정을 얻었을까요.

아닙니다. 사람이 가장 불안할 때는 자신의 기대에서 벗어난 상황에 접했을 때입니다. 이들은 왜 자신들이 그러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도 예측할 수 없게 되죠. 그렇게 되면, 결국 이들은 불안하고 초조하고 도저히 안정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계속 그 생각에 매달리면서 모든 심적 에너지를 써버리게 되죠. 결국 그들은 이제 폭동을 일으킬 만한 에너지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진압의 결과


폭동과 그에 대한 진압을 계기로 교도소의 상황은 급변하게 됩니다. 죄수들은 그들 사이에 팽배해진 불신으로,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는 반면, 교도관들은 몰라볼 정도로 강한 결속력을 가지게 됩니다. 교도관들은 죄수들이 실제로 문제가 많으며, 반드시 다스려져야 하는 망나니처럼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탄압을 보다 강화하기 시작했죠. 심지어 죄수들이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막아, 허락을 받아야지만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감방안에 양동이를 하나 주고 거기에 대소변을 보게 했죠. 그러나 곧 감방은 오줌 냄새와 변냄새로 가득차게 되고, 2일만에 환경은 최악으로 치달아 가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실험이 시작된 지 36시간만에 죄수 역의 참가자는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심한 정서 장애 및 혼란스런 사고와 감정을 경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울거나 웃고, 분노감에 차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등 문제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사람의 처우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를 면담했지만, 좀처럼 가라앉지 못한 채 다른 죄수들에게 “아무도 여길 떠날 수 없어. 이걸 멈출 수는 없다구”라고 외치고 다녔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정말 미쳐가는 것 같았죠. 결국, 연구자들은 실험 중간에 그를 풀어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풀어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나간 후 감옥 안에는 묘한 루머가 돌기 시작했죠. 그가 풀려난 것이 아닌 탈주였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다른 죄수들도 탈주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이 얘기는 교도관들에게도 그리고 연구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연구자들의 돌연변이


연구자들은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전략 회의를 가지고, 죄수들의 안전을 위해 이들을 살필 장치를 하고 탈옥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냈습니다. 또한 그러한 루머가 돌던 방안에 정보를 미리 알려줄 수 있는 밀고자를 두기로 결정하고 이를 시행하기도 했죠. 이전에 비해 더 많은 교도관을 두고 죄수들을 감시하고 이들을 함께 묶고, 머리에 자루를 씌어 두기도 했죠. 그리고 어떻게든 탈주가 일어나지 않도록 감시하고 보안책을 강구하는 데 더 열심이었습니다. 자, 이 연구자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이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실험 중에 연구자의 동기 하나가 실험실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돌변한 상황을 놀래서 바라보고는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뭘 실험하고 있는 거지?”라고요. 그 순간 연구자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정말이지 크게 놀라게 됩니다. 즉, 그 며칠 사이에, 연구자들은 어느새 연구자, 심리학자가 아니라 또 다른 교도관, 감독자의 역할을 하면서 죄수들을 감시하고 있었던 거죠. 연구자들조차도 당시에 다른 교도관들처럼 죄수들이 반드시 도망을 칠 것이며 해를 끼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들이 인식을 하기도 전에 말이죠. 실험에 대해 Zimbardo 교수의 얘기를 빌면, 당시 실험에 참여하지 않은 동료가 실험 과정을 지켜보며,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도덕적으로 어떻게 이런 실험을 계속 진행하느냐?”라고 항의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리고 그 자신도 실험의 도덕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미 연구자들도 더 이상 연구자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관찰자의 위치가 아닌 거대한 심리적 장치안으로 빨려들어와 있었던 셈이죠. 마치 교도관이나 죄수들처럼.

실험 5일째로 접어들면서 일부 교도관이 죄수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했고, 교묘한 방식으로 이들을 고문하고 체벌하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죄수들은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고, 급기야 그들의 부모들이 찾아와 이들을 빼내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는 포고를 하기도 했다는군요. 심한 정신과적 증상을 보이는 죄수들이 속출하기 시작하는 등 상태가 악화 일로를 걷게 되자, 결국 실험은 6일만에 중단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실험의 결과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학계에 보고되면서 큰 충격을 일으키게 됩니다.
실험이 일으킨 가장 큰 파장은 진정한 휴머니즘이란 없다는 것, 누구나 상황에 의해서 악인이 될 수도 선인이 될 수도 있다는 뼈아픈 인식을 가져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는 대학 때, 처음 이 실험에 대한 얘기를 듣고, 학자 혹은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는 실험 상황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현실과 관련지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현재 교도소라고 하는 사회적 격리 장치가 죄수들의 인권을 보호하거나 그들의 재활과 갱생을 위한 긍정적인 장치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죄수들을 통제하기 위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환멸스럽고 고통스러운 조치로, 그곳에서 진정 갱생과 재활이 이루어 질 수 있을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일 겁니다.




"나는 최근(출감한지 37개월)에야 교도소 독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감옥 안에서 난 늘 침묵해야 했다. 옆 감방 사람에게 속삭이기라도 할라치면 곧 교도관의 곤봉과 매가 등과 어깨로 쏟아지곤 했다. 그리고 내 몸에 이나 다른 벌레들이 있다고 벌거벗긴 채 뿌려지는 살충제. 그리고 맨 바닥에서 이불도 침대도 없이 알몸으로 자야했고 맨 손으로 화장실 변기를 닦아야 했던 시간들. 나는 도둑이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도둑이라도 절도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감옥 안에서 결코 재활이나 갱생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출감할 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건 유일하게 나를 때린 사람, 나를 마치 개처럼 취급한 그 사람을 죽일 생각이었다. 나는 내가 그런 잔혹함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정상적인 도덕성을 되찾았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너무나 잔혹했다.“


- 미국에서 실제 교도소 생활을 했던 어느 죄수의 고백

.....‘스탠포드 감옥 실험’ 이야기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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