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수능 일주일 전

 

수능이 일주일 남았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라면 엄연히

지금은 블로그질 따위 할 시간조차 없을 만큼 눈코뜰 새 없이 바빠야 정상이겠지만,

아직 수시 발표가 나지 않았기 때문일까,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열중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 즈음 되면 정말 대입의 비인간성을 철저히 느끼게 된다.

주위 사람들 중 가장 여유롭던 친구들조차 하나 둘 날카로워지고,

하나같이 눈 밑이 퀭한 채 유령처럼 교복을 걸치고 교정을 떠돌아다닌다.

음... 심지어 너무 심하게 여유로워서 "너 인생 막장치냐-_-"라는 소리를 듣는 나조차

피곤해 보인다는 소리, 날카롭다는 소리를 듣는 요즘이니까.

 

공부하기 싫고, 얼마 전 사 놓고 펼쳐 보지도 못한 '리진'에 자꾸만 손이 간다.

사실 그것이 전혀 부정적인 행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자책해야 하고,

흥미를 느끼지도 못하는 수학 모의고사 문제집 안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해 들어가야만 한다.

 

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토나온다.

-_-

 

적성이고 뭐고 다 필요없다, 사실.

특기자 전형이며 수시 전형이 아무리 많이 생겨나도,

결국엔 수치로 획일화된 붕어빵틀로 찍어낸 사람을 원하고 있다.

대입의 아이러니란 뭔가 알 수 없다.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음.... 결국 하나로 귀결되긴 한다.

모든 것을 다 잘 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정도?

아니면 외국 유학을 갔다 와서 영어를 끝내주게 잘하던지 말이다.

부유층이 아니라면....음, 모든 것을 다 잘 하세요! 기계가 되세요! 와하하!

뭐 이런 기분을 들게끔 한달까?

 

글을 엄청나게 잘 써서 김소월문학상을 수상한 친구도

논술 때문에 대학에서 떨어지곤 한다.

왜냐하면, 논술은 글 쓰는 재주와 사고력보다는

체계적으로 '정답'을 써 내는 '분석력'(개뿔의!)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결국 학원이랄까.

정말 엄청나게 공부를 잘 하고, 온갖 상을 휩쓸었으며,

토플 점수도 높아서, '이야 ~ '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친구도

특목고 간 죄로 내신이 안 나와서 대학에 떨어지기도 한다. 친구 왈, 노무현 때문이랜다.

뭔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 친구의 절망 앞에 차마 정치적인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반면 누군가는 내신 좋고 모든 것을 성실히 했지만

고등학교 평판이 안 좋아서 대학에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외국 유학 갔다 온 어떤 날라리 XX는

그냥 Y대 국제학부에 입학했다. 음, 팔자 좋다.

 

이 모양이다, 이런 꼬라지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러니 모든 것을 잘 해야 하는.

그야말로 '죽음의 트라이앵글'

그 속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달려가는 우리 고등학생들, 80만 명의 아해들.

 

하아.

이런 대입 전쟁 속에서

(요즘엔 초등학교 6학년 내 동생 다니는 학원에도 서울대반 있더라!)

레즈비언 친구의 성 정체성도 개방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시민의식과 인성을 함양한다는 것은

정말 뜬구름 잡는, 이상적인 소리가 아닐까.

뭐랄까

대학 가고 싶어서 울고 싶어졌고

이렇게 수동적으로, 기계적으로, 비인간적으로 자라나

갑자기 성인이 되고 사회에 던져질 아이들에게

무슨 시민의식 따위를 바라겠나, 라는 생각에

앞으로의 세상이 더 암울해서 또 울고 싶어졌다.

 

수능이 일주일 남았다.

 

그 일주일 동안 전국 고등학생들 눈 밑의 다크써클은 더욱 짙어질 테고

수능날에는 어김없이 추위가 찾아올 테다

이 틈을 틈타 장사꾼들은 어김없이 떡이며 엿을 과대포장해서

어처구니없는 가격에 팔아먹을 테고

그 상술에 어쩔 수 없이 넘어가는 수많은 학부모와 수험생의 친구들이 있다

고등학생들의 어깨는 점점 내려앉을 테고

자세는 점점 구부정해질 테고

그리고 그렇게 수능이 끝나면

아이들은 수험표를 들고 여기저기로 흩어져

이제껏 쌓아왔던 스트레스를 배설하고 다닐 것이다.

수험표 할인을 내건 미용실에서 퍼머를 하고 옷을 사 입고

어쨌든 어른들의 상술 속에서 그렇게 놀아나다가

대학생이 되어 아무것도 모른 채 사회에 툭, 내던져질 것이다

 

수능이, 대입이 인생의 끝이 아닌데

그 이후에도 알 수 없는 미래는 가득하건만

지금 우리는

마치 대학만이 인생의 마지막인 양

막다른 골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뭐 이래저래 암울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