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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 음모론 #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국민적 저항이 거세게 일고 있다. 거리에는 수만의 시민들이 촛불시위로 저항하고 있으며, 정치권에서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청문회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2mb 정부는 별로 크게 동요하는 눈치가 아니다. 단지 좀 귀찮다는, 성가시다는 눈치 이상의 제스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아우~, 배 째’라는 식의 태도는 어디서부터 나타난 것인가? 도대체 뭘 믿고 저런단 말인가?


2mb 정권과 딴나라 당은 시민들과 야당의 공세를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이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꿍꿍이 속일까? 저들의 전략과 전술은 무엇일까?

저들의 기본 전략은 진지전과 기동전을 겸비한 게릴라 전이다. 그들에게 진지는 지금 저항하고 있는 그 국민이다. 자본의 이익을 대표하는 이들은 국민의 생존을 좌지우지하면서 동의라는 형식을 통해 협박한다. 이러한 협박은 항시적인 이데올로기 교육, 세뇌를 통해 국민들의 머리에 박혀 있으며, 또한 이러한 협박을 깰 만한 어떤 다른 대안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협박이 늘 먹혀든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안다.

국민적 저항은 항상 게릴라 전의 특성인 기동전에 의해 무력화된다. 이 기동전은 국민의 또 다른 대표자로 나타나는, 또는 가능성이 있는 집단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방식은 국민적 저항의 선봉대, 즉 또 다른 대리자의 집단을 자신들의 진지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그런데 깊숙이 끌어들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도덕적, 이데올로기적인 비난을 하면서 살살 제도권(저들의 진지)으로 끌어들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 경우처럼 별 다른 대응(저항?) 없이 제도권까지 밀고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즉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시간을 벌면서, 즉 반격의 시간을 벌면서 반격을 개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격은 성동격서의 기동전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에 대응하는 것처럼 하면서 전혀 다른 곳, 즉 뒤통수를 치면서 상대방을 정신없게 만든다. 그러면서 선봉부대(그런데 이 선봉부대는 우습게도 사령부라 자임하는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다른 대표집단)와 주력부대(저항하는 국민 또는 시민 일반)를 완전히 끊어 놓는다.


이번에도 거의 이런 형태로 2mb 정권과 딴나라 당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국민적 저항을 잠재우려고 시도하려고 할 것이다. 아마도 두 번째 방법으로 말이다. 이들은 최대한 중국 올림픽이 시작할 즈음까지 별 다른 대응 없이 이 저항을 끌고 갈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적절한 기동 타격이 있을 것이다. 이 타격은 이미 정치적 집회를 하면 불법 집회로 간주하고 엄중 처벌할 것이라는 경찰이나 검찰 발표로 시작되었다. 모든 집회를 비정치화시키도록 하면서 일정 정도 저항의 예봉을 무디게 만든다. 이제 촛불집회는 5월 2일이나 3일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사기 드높은 집회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일단 청소년 학생들의 예봉을 어느 정도 꺾어 놓았다. 또한 광우병이 미국에서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한다는 빈소리 또한 그러할 것이다.

2mb 정권과 딴나라 당에게 5월은 아주 좋은 시기이다. 예전에는 투쟁의 선봉에 섰던 대학에선 체육대회와 축제가 벌어지는 기간이다. 또한 사회 일반에서 5월은 가족의 달이며, 어버이와 스승의 날이 끼어 있다. 거기다가 석가탄신일까지...

5월 중순까지는 이렇게 배 째라는 식으로 개기면서 지나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촛불집회는 촛불이 타들어가면서 사그라지듯 사그라질 것이다. 여기에다 이 촛불은 살짝 아주 약한 바람에도 꺼질 것이다. 이 약한 바람은 아마도 5.18을 전후해서 나올 것이다. 이 약한 바람은 국민적 저항을 대표하는 또 다른 대표 집단의 약점을 바탕으로 그들에게 일정 정도의 당근을 줄 수 있는 빅딜과 같은 것이 주어질 수 있거나 하는 식으로 이 대표집단을 국민적 저항으로부터 아주 분리시켜 버리는 것이다. 이럴 때 국민적 저항은 오합지졸이 될 것이다.

그러다가 5월 말이나 6월 초쯤 올림픽이 열릴 시점에 임시국회를 가동시켜 광우병 쇠소기 수입을 비롯한 한미 FTA 승인과 대운하 사업, 그리고 공공부문의 민영화 사업의 승인을 통과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런 음모를 가정한다면,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노동계급 진영 등의 좌파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런데 사실 이 시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 볼 힘이 좌파에게는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자본에 의한 비정규직화를 통한 자본의 파상적인 공세와 대선, 총선에 대응한 이후 거의 탈진 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좌파의 전투력은 거의 바닥을 드러낸 것 같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당(그것이 진보신당이건 계급정당이건 간에)이라는 허약한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일어서 보고자 하지만, 그것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설령 일어선다고 하더라도 전투력은커녕 걸을 힘조차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미 예견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진지가 없는 좌파가 갈 곳은 이순신처럼 망망대해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 광우병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서 또 다른 대표집단과 같은 국민적 저항 선두가 아니라 중심부에서 노동계급의 진지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5월 1일 노동절에 노동계급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선언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노동계급의 비정규직화 투쟁과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과 연결시켰다면 노동절 집회를 통한 투쟁의 열기는 5월 1일이 아니라 계속 이어져 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노동계급운동은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저항 진영에 자신의 진지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기초를 마련한 다음엔 노동자들이 밀집되어 거주하고 있는 공단 지역, 즉 울산과 마산, 창원, 광양과 광주, 전주, 안산 등의 지역에서 노조연맹을 중심으로 노동자 초․중고 자녀의 학교 등교 거부 투쟁을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이 자녀들을 지역의 대학생 언니, 형들과 같이 왜 우리는 이런 등교 거부를 해야 하는가를 학교 밖에서 같이 학습하고 놀 수 있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이와 동시에 쇠고기 반대 서명을 지역 시민과 학생들에게 받아내고 이들과 함께 투쟁하며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간다면 이것이 지역을 진지화시킬 수 있는 싹이 되지 않을까?

만에 하나 여기에 여하한의 공권력이 투입되거나 불법 논쟁이 벌어질 때에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총파업을 선언하고 시행하면서, 위에서 언급한 프로그램을 확대 적용하여 지역의 저항과 투쟁의 축제 자리로 만들어 간다면 이것이 정치 세력화이지 않을까?


이러한 투쟁들을 통해서 우리들만의 사교육(제도권 교육과 대비되는 비제도권 교육이라는 점에서)을 꾸준히 모든 지역에 전파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이 사교육은 위에서 했던 초,중고, 대학생들의 공동 학습을 정규 프로그램화시켜서 무료로 이루어지도록 하면 어떨까? 물론 이 재원은 노동조합의 단협과 임금 투쟁을 통해 얻어낸 재원의 일부로 충당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공간은 지역 노조 연맹 차원에서 사무실과 회의실을 겸한 건물을 임대하여 그 공간에서 진행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지역의 생활 영역과 노조의 활동 영역이 분리되지 않고 그리하여 노조의 투쟁, 더 나아가 노동계급의 투쟁의 진지를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럴 때 노동계급의 투쟁이라는 물고기는 물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계급정당이 조직될 수 있고 노동자 계급 정치 세력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좀더 차분하게 정리해야 하겠지만 지금 너무 배가 고프고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여기서 음모론의 제1막을 접고 다음을 기약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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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놔~~, 우짜란 말이고!

너거 증말 가을에 야구할라까나!

아~~들 밥 안멕인나!

아~~들이 뒷심이 읎노!

 

치킨한테 3연패가 머꼬!

 

와카노!

 

내일 잠실 갈라캤드마는 몬가겠따!

 

열받아가 술만 무을낀데 머하러 가노!

 

와~~~아! 골때리삐네!

 

내 오늘 맥주 한 캔 했다!

 

갈매기! 느그 그카믄 안 된데이!

 

갈라 동상!

니는 우째 외야를 안 가르고 공만 가르노!

 

우째 캐볼라캤는데...

인자 마 가까!

 

갈매기를 돌리도~~!!!

 

 

 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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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 니가 나쁜 어른이여, 알어?!

어제,

에스비에스 8시 뉴스에선가 어린이날을 맞아

이엠비가 유치원 아이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놓고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

<얘들아 너희들을 나쁜 어른들로부터 지켜줄게...>

 

이런! 거시기한!

야! 인간아!

누가 누굴 보고 나쁜 어른이래!

바로 니가 나쁜 어른 1호예요! 알간?!

 

증말 개념 안드로메다에 놓고 왔나부다...

 

에라이, 이런 거시기 XXX 같은 거시기야!

 

이것들이 쇠고기 재협상 없다구

아예 배째라로 나오네!

염병 배째 주마!

 

배 대, 이 웬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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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글치만 곰탱이 귀 빠진 날이기도 하다...

울 엄니께 어제 밤에 갔다가 오늘 왔다.

연보라색 여름 티 드렸다.

(요 티는 울 여친께서 마련해 주신 거다!! 감사감사감감사^^...)

 

근데 별루 기분이 영 아니올시다이다.

날은좋은데 기분은 꿀꿀이다.

 

왜 그런지 그 이유가 잘 안 잡힌다...

 

조용히 마음을 다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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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야, 갈매기야...

쌍둥이랑 친하게 지내렴...

그래야 가을에 같이 야구하지^^.

이길라면 별 세 개 달린 사자랑,

에스켄지 로스켄지 짝퉁 드래곤, 미련 곰팅이를 이겨야 한단다.

나머지는 적당히 하고... 

 

주타방을 쌍둥이로 잡으면 안 된다, 알겠지, 갈매기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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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노동절인데...

수업이 오전 오후 다 있다...

이거 오늘 수업해야 하나...?

수업 째고 노동절 집회에 가고 싶다.

어제는 전야제였다고 하는데,

거기도 못 가보고...

 

아~~~씨이... 수업 5시에 끝난다!!

미치겄다...

 

요 5~6년간 노동절에 계속 수업 걸리고 있다...

 

얘들아,

오늘 수업 안 하면 안 되겠니?

 

샘두 수업 안 하구 싶은 날이 있거덩...

 

마음은 굴뚝 같으나, 수업 들어가야지...

 

가서 커피 한잔 하면서 맘을 가라앉히고...

 

쿠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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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열심히 놀자!!!

오늘 <비판적 사고와 토론>이라는 수업이 있었다.

주제는 메트릭스에 관한 것이었고, 그에 따른 토론 주제는

현실 세계가 가상세계라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하여야만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만의 토론 결론은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며,

우리가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빨간약과 파란 약 중에 파란 약을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자기 자유의지대로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한 번도 자기의 자유의지대로 살아보지 못했다. 온통 강자의 의지대로 살아왔다.

이것은 동물세계의 약육강식의 원리대로 사는 것은 아닐까?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약육강식의 원리를 거스르며 사는 것이 아닐까?(요 부분은 홍실이 님의 이야기를 따온 것이다!^^)

어쨌거나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개겨 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여러분들은 온통 취직에 목매어서 산다. 그것 때문에 너무도 바쁘게 살고 있으며 많은 사교육비를

들이며 살고 있다.

이렇게 해서 정규직에 취직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수 있다.

일자리 10개 가운대 2개만 정규직이고, 8개만 비정규직이라면, 여러분들은 절친한 친구와

적대적 경쟁을 해야 하고 실제로 그 친구와는 멀어지게 된다.

여러분들이 대학에서 개기면 8개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럼 어떻게 개길 것인가?

 

어차피 공부해도 취직 못하는 게 다반사라면 공부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열심히 놀아라! 단 혼자는 놀지 말아라!

학교 축제를 왜 3일만 하나, 5월 한 달을 축제하자고 해 봐라.

그리고 동맹 휴업을 일주일만 하면 세상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졸업 학점 140학점을 70학점으로 줄여달라고 해 봐라.

그러고서 한달만 동맹 휴업하면서 재미있게 놀아봐라.

그럼 70학점 할 수 있다.

 

비정규직 없애고 정규직으로 만들어 달라고 해라, 모두 다!

안 그러면 졸업 안 한다고 하고서 동맹 휴업 1년 하면서 재미나게 축제하면서 놀아라!

그럼 비정규직 정규직으로 바뀐다.

세상이 바뀐다!

80년대 학생들은 세상 바꾸려고 짱돌과 화염병을 손에 들었지만,

여러분들은 신나게 놀면서 세상을 바꿔 봐라.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놀아라, 단 재미나게, 신나게!

노는 것도 공부다!>

 

이랬다.

너무 뻥구라를 펼쳤나...

하여간 대학생들이 공부 안 하고 놀면 세상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뻥구라 치면서 가져 보게 되었다.

 

학생이 선생의 스승이라는 말 실감한 수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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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되기와 계급투쟁.

아래의 글은 논문 중의 일부(첫머리)입니다.

혹시 관심 있어서 읽어보고 싶으신 분이 계시면

이메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잘 쓴 논문은 아니지만 열심히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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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되기와 계급투쟁 #


1. 오늘날 맑스주의에서 왜 ‘여성 되기’가 핵심적으로 중요한 문제인가.


오늘날 맑스주의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곤혹스럽게 다가온다. 특히나 역사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노동자계급 중심성은 한마디로 뜨거운 감자처럼 보인다. 이런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은 크게 두 가지의 문제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노동자계급(운동)의 보편성’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이 계급운동의 보편성에 대한 다른 모든 반자본 운동과의 연관성 문제이다. 이 문제들은 사실상 맑스주의 사적 유물론의 존폐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노동자계급(운동)의 보편성을 살펴보자. 노동자계급(운동)의 보편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노동자계급(운동)은 정말 보편적인가? 자본-임노동과의 관계에 있는 임노동자는 보편적 존재가 아니라 개별적 존재이다. 임노동자는 개별적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가지고 시장에서 자본과 상품관계를 맺는다. 그렇기 때문에 상품관계에서 상대적 가치형태에 서 있는 임노동자는 개별적 존재이지 보편적 존재가 아니다.(주1-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맑스주의에서 노동자 계급의 보편성을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에서 찾는다. 그런데 이러한 ‘보편성’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내에서의 생산수단 유무의 구조에 의해 사회공학적으로 단순하게 주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의 보편성을 통해서만 자신의 보편성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알튀세는 이러한 보편성을 지닌 주체를 ‘호명된 주체’로 불렀다. 이 보편성은 대단히 불완전하며 일면적이고, 알튀세에 따르면 허구적이다. 왜냐하면 알튀세에게 보편적 존재로서의 계급은 없기 때문이다. 추상적(분석적) 수준에서 보편적 존재로서의 노동자 계급은 가능할 수 있지만(그것도 불완전한 추상으로서 말이다), 현실적 수준에서 이 추상적 수중에 상응하는 보편적 존재로서의 노동자 계급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 이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사회적으로 먹혀들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이에 관해서 마이클 리보위츠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노동자들이 이질적인 인간들로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그들 각각의 생산에 고유한 조건들이 지닌 차이점(자본 자체가 만들어 내는 분열뿐만 아니라)들을 감안한다면, 노동자들을 분열된 존재로, 즉 서로 경쟁하는 임노동자들로 - 자본에 대항하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물질적 근거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요컨대 분석상 노동자 계급을 단일한 존재로 파악한다는 것은, 실제로 노동자 계급이 자신을 단일한 존재로 인식하거나, 또는 단일한 존재로 행동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또한 노동자 계급이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도 아니다).” 마이클 리보위츠, 『자본론을 넘어서』, 홍기빈 옮김, 백의, 1999, 255쪽. 이 문제는 다음에 자세하게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그런데도 맑스주의에서는 노동자계급(운동)의 보편성을 이야기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다.

맑스는 노동을 통해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이 생산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노동은 자본을 위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노동을 수행하는 임노동자로서의 노동자는 여전히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순수한 개별적인 개인으로서의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노동은 노동자 계급이 자기 자신을 생산하는 노동이 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자본)의 실체로서의 추상노동은 항상 노동자의 살아 있는 구체노동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 추상노동은 노동자의 임노동이다. 그리고 이 임노동을 뒷받침하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노동은 여성의 가사노동이다.(주2-여기서 가사노동을 본래부터 여성의 담당이냐고 이의제기할 수 있다. 정당한 이의제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여성’의 가사노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성별 분업이 일반적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해체되어야 할 것은 바로 자본주의 하에서의 이러한 성별 분업이다. 다른 한편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치=상품=화폐=자본>. 이것의 최고의 법률적 형태는 국가이다. 그런데 이 국가는 가부장적이며 남성 지배적인 국가이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임노동의 물적 토대는 바로 여성의 가사노동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서 여성의 노동, 특히 가사노동은 남성의 화폐(임금)라는 사물의 형태로 소외된다.) 가사노동은 노동자 계급의 기존의 노동력 재생산뿐만 아니라 새로운 노동력 생산의 기초이다. 새로운 노동력의 생산은 질적으로 새로운 “생산력”으로서의 새로운 “인간”(주3- 맑스가 말하는 생산력은 인간 자신이다. K. Marx, Grundrisse, MEW 42, S. 599)의 생산이다. 그러므로 가사노동은 대자적 노동자 계급 또는 주체로서의 노동자 계급을 생산해 내는 물질적 기초이다. 그리고 이러한 계급의 계급투쟁의 발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성별 분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가사노동이 개별적인 여성의 몫으로 남게 될 때, 노동자의 자기 생산은 가사노동의 착취 구조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생산된 노동자의 노동력은 다시금 자본의 착취 구조 속으로 편입된다. 이러한 것은 <가사노동(개별) = 노동자의 임금(사용가치)(보편) = 자본(보편)>의 등식으로 성립될 수 있으며, <가사노동(개별) --> 노동자의 임금(사용가치)(보편) --> 자본(보편)>이라는 일종의 먹이사슬 구조로 바뀌어 나타난다. 이런 구조 속에서 노동자 계급의 계급투쟁은 그 자체로 비민주적인 착취 구조를 자기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민주적인 착취 구조를 깨나가는 것이 바로 여성-되기라고 할 수 있다. 여성-되기의 출발점으로서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필요하다.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가사노동을 새롭게 재조직하여 여성을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성 자신이 개별화, 원자화된 존재로부터 보편적 존재로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끊임없이 형성시켜 나가면서 새로운 노동관계, 생산관계를 만듦으로써 성별 분업 체계를 깨는 것이다.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여성들의 자유로운 발전이 바로 생산력 발전의 토대이고, 이 생산력 발전이 ‘여성 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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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언니 <그때 그사람>

기왕 하는 김에 하나 더요.

심수봉 언니의 <그때 그사람>인데요.

78년 대학가요제 때 직접 피아노 치면서 부르던 모습입니다.

자작곡이라네요^^.

본명은 심민경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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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가수 조동진의 노래 <제비꽃>인데요,

우리 아이(학생)들한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퍼 왔습니다.

 

<제비꽃>

 

-조동진-

 

 

내가 처음 널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에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너는 많이 야위였고
이마엔 땀 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 있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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