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도

내 나이 20살

한국으로 떠날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에 나 그리고 나의 부모님이 서로 멍하며 보고 있다.

두 눈에 눈물로 가득한 엄마의 얼굴이 내가 20년 동안 봤던

엄마의 모습들 중 가장 힘들어 보였다.

내 두 손을 꽉 잡고 너무나 걱정하고 나에게 너무나 미안해하고 있다.

남자는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는 인식을 지키려 노력하시는 아버지의 모습도 참 힘들어 보인다. 나에게 “미안하다, 아버지 대신 가족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너를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라고 이야기 하셨다. 20년 동안 부모님 곁에서 아무걱정 없이 살아 올 수 있었던 내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감사 드려야 하는데...

비행기에 올라가야 할 시간이 되자 엄마는 온 몸을 떨면서 울고 아버지도 울기 시작했다. 가족을 떠나 혼자서 세상을 덤벼야 할 나도 걱정과 슬픔을 견디지 못해 울었다.

우리 모두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꿈과 희망을 위해 서로의 눈물을 외면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내 가족, 내 고향, 내 친구들, 내 그리움 모두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서로 볼 수 있는 시간이 오자 엄마가 나에게 마지막 한 미디를 하셨다.

“네가 우리에게 무엇 보다 중요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건강히 들어와 줘”

“꼭 건강히 들어 와줘

들어 와 줘야 해....”

........................................................

지난 2003년도

정부가 한국에서 4년 이상 체류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강제추방 하겠다고 발표했다.

많은 미등록노동자들이 걱정 속에 빠져 잠은 못자고 일하고 있어도 일이 손에 잡지 않고

있다.

대대적 강제 추방이라....

우리가 무엇을 잘 못 했기에..

우리가

IMF 외환위기 때 한국 경제 회복을 위해 월급 반만 받고 사장님과 함께 라면을 먹으면서 한국경제 살리기에 함께 했던 것들...

2002 월드컵 때 좋아하는 유럽 팀들을 외면해 한국 팀에게 “대~한~민~국”이라고 목 터질 정도 응원했던 추억들...

아플 때나 기쁠 때나 함께 했던 우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니어서 강제 추방으로 인연을 끊으려고 하는 것인가?

“.......?”

강제 단속 시작했다.

단속 시작과 함께 이주노동자들이 자살한 소식이 하나들씩 일어났다.

더 이상 공포에 버티지 못해 전동차 앞으로 뛰어 내렸던 이주노동자 “비꾸”

400만원의 브로커 비용을 들며 한국에 입국했는데 단속 때문에 일을 못하게 되어 심한 정신적 압박을 받아 결국 죽음을 선택한 이주노동자 “브로흔”..

목매어 죽는...

바다로 뛰어 내리는...

단속이 무서워 아픈데도 병원을 못가서 결국에 숨지는...

추운 겨울 속 얼어 죽은 ....

보호소 화재로 ....

한국이 이주노동자들에게 희망의 땅이 죽음의 땅으로 되어가고..

더 이상 희망을 위해 희생자들 없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나는 “친구여 잘 가시오”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우리의 친구여 동지여 편안하게 가시오

저 세상 끝에서 보아라 너를 위해 우리 기도해

오~ 잘가

오~ 너를 위해 우리 기도해

우리 친구여~ 동지여~ 얼마나 힘들었나

더 이상 이런 죽음 없게 널 위해 기도 하네

우리 함께 기도 하네”

(다국적 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의 노래)

나의 노래를 들으신 분들 모두가 눈물 흘리면서 그들에게 안타까움을 전했다.

나의 노래를 불렸던 보컬 미누도 결국에 강제 추방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누는 자살한 이주노동자들처럼 몸과 마음 모두 다 한국을 떠났지 않고 한국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한국에서 남겨서 네팔로 떠났다. 고마울 줄 알고 사랑을 할 줄 아는 평범한 인간다운 모습을 끝까지 보여 줬던 것이다.

나마스때....

........................................................

2003년도부터 진행 해온 강제 단속이 이제 2010년도가 되니 7년이 됐다.

한사람의 인생을 바꾸려면 4년이면 충분하다는 말이 있어서 7년이 너무 긴 시간이다.

하지만 2003년도부터 18만 명이 되는 미등록 노동자 수가 아직도 그 정도 남았으니 한국 사회가 미등록 노동자들 없이 안 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7년 동안 강제추방만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잘 못 된 건가?

미국에도 한국인 미등록노동자가 25만 명이나 있다하던데...

7년이 충분한 시간이다.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 보다 어떻게 하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주말에 친구들 모임에 가면 미등록, 고용허가제 등 여러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미등록 친구들은 강제단속 때문에 고통스럽고 고용허가제 친구들은 과도한 일과 하늘같은 사장을 모셔야 하는 일상에 지치고 있다. 다들 공동적으로 받고 있는 것이 사업 내 욕설, 폭행에 대한 스트레스다.

참자!!

우리의 희망을 위해...

우리의 가족을 위해...

함께 사는 것에 행복해야만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될 것이다.

........................................................

지난 16일에 고용허가제 네팔 이주노동자 레미가 자살했다.

자신의 몸과 맞지 않는 일을 계속하게 되어 몸이 점점 약해지고..

한국 입국 때 필요한 비용을 위해 빌려온 빚을 갚지 않고 네팔로 들어가지도 못 하고..

결국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

나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소식을 들을 때 마다 내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눈물 흘리면서

울고 있던 부모님들 생각이 많이 나다.

네팔인 레미도 그리고 한국으로 들어 온 모든 이주노동자들도 나와 똑 같이 공항에서 눈물 흘리면서 잘 갔다 오겠다고 가족들 에게 약속을 했었을 거야.

그들의 가족들도 그들에게 건강해야해, 잘 다녀와야 한다고 얘기 했을 거야.

마지막 시간 까지 반복해서 라도...

“모두에게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소중한 가족이 있고

아름다운 희망이 있는 것처럼

한국에 들어 와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도 .....”

난 더 이상 “친구여 잘 가시오”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아...

                                                                                     모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26 22:33 2010/01/26 22:33
Tag //

 

미얀마 독재정권 국가평화위원회 (SPDC) 위원장 딴쉐이는 지난 2009 군의 기념행사, 퇴역 총회, 전국SPDC총회, 2010 독립기념일 등에 정부는 올해 2010년에 자유롭고 동등 하는 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여러 밝혔다.

 

국제 여러 나라 대표들과 만남에도 SPDC 총리 떼인세인-장군과 녜안윈-외교부장관 등이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자유롭고 동등 하는 선거를 2010내에 실시할 것이라고 똑같이 여러 약속했다.

 

 

그러나 미얀마 정부가 2008년도에 만든 헌법 내용 민주 기준에 맞지 않은 내용들을 함께 수정한다면 선거 참여하는 것에 생각해주겠다는 민족민주동맹(NLD) 넓은 의미를 가진 좋은 제안을 정부는 아무 답을 해주지 않고 외면했다.

 

또한 이제 선거를 실시할 2010년도가 되는데도 정부는 아직도 자유롭고 동등 하는 선거를 위해 필요 하는 자유 발언, 자유 언론, 선거에 참여할 당을 자유롭게 결성과 지역 선거운동 활동 등을 허락 해주지 않고 또한 선거관련 , 규칙 필요한 정보 제공, 발표도 해주지 않고 있다.

 

 

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신 오히려 지난달에 흐라흐라윈 이라는 여기자에게 국제 단체 연계, 해외 미디어와 연계 때문에 징역 20 형을 내렸다. 다른 기자들도 정부의 심한 감시를 당하고 있다. 인터넷, 위성TV 보는 국민들에게도 여러 제재를 가하고 있다.

 

 

정치 수감자 모두 석방, 자유롭게 결성과 선거운동을 대신 NLD당원들, 활동하는 승려들, 주민들과 학생들을 계속 끌어 잡아가 감옥에서 잔혹한 고문을 하고 있다.

 

 

주민들을 탄압하는 조직들을 없애주지 않고 오히려 이들에게 폭행 하는 교육을 강화해서 가르쳐주고 있다. 소수민족 무장단체들과 해외 민주세력들에게도 정부와 함께 있는 방향을 찾는 대신 이들에게 여러 방식으로 탄압을 계속 하고 있다.

 

 

미얀마 독재 지도자 딴쉐부터 선거를 실시 하겠다는 약속한 시기가 가까이 올수록 정부의 탄압이 더욱더 심해지고 있다.

 

 

정부는 반대 세력들에게 더욱더 심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지만 한편에는 정부와 잡는 , 조직, 단체, 정치인들에게는 자유롭게 활동하게 허락 해주고 있다.

 

이렇게 행동이 달리 독재 지도자 딴쉐와 그의 부하들에게 무엇이 자유롭고 무엇이 동등 하며 어떻게 해서 모두가 참여하는 선거가 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소모뚜(버마행동 총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26 14:53 2010/01/26 14:53
Tag //

얼마전 신문 인터뷰 때 기자분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소모뚜씨, 한국에서 눈을 처음 보셨죠?

버마에서 못 보는 눈을 보게 되어 기분이 어떴습니까?^^"

 

"..."

"음..눈 자체가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눈이 내리면 여인들이 예쁜 추억을 만들을 수 있고

아이들이 눈싸움을 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고"

"하지만 저에게는 눈이 아름답게 보이는것 보다

한 때는 오히러 적으로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내 대답에 놀란 기자분이

"네?

눈이 어떻게 소모뚜씨에게 적이 되였었나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버마에서 못 보는 눈을 보면서 생활을 할거 라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컸었죠.^^

하지만 그 기대감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보게된 눈과 함께 살아졌어요."

 

"이유는

제가 전에 일했던 공장이 박스공장이였어요..

종이로 크고 작고 다양한 박스상자들을 만드는 거죠."

 

"그런데 공장이 너무 작지만

주문을 많이 받아서  작업전 종이들(원단),작업한 박스들 등을

공장안에다 싸놓은 자리가 부족해서

밖에서 나무 빠렛트를 깔아서 싸놓아요."

 

"종이라서 일반 물건들과 달리 물에 젖으면

안되니까 비가 올 때 눈이 올 때

비닐으로 덮으느라  난리죠."

 

"일이 항상 밤 늦게 끝났고 공장 숙소에는 저혼자 살기 때문에

새벽에 갑자기 비나 눈이나 올 때 밖에 싸놓은

물건들을 비닐으로 혼자 나가서 덮어야했어요."

 

"공장 근처 사는 사장님하고 공장장님이 오실 때는 이미

제가 절반 정도 일을 끝냈었죠.

밤 늦게 까지 일해서 피곤한데도 새벽에 오는 비와 눈을 외면 하고

안나갈 수도 없기에 해결방법을 찾았죠..."

일이 밤 늦게 며시에 끝났든 상관없이

공장에 있는 모든 분들 퇴근하기 전에 꼭 붙잡아서

밖에 싸놓은 물건들을 비닐으로 덮은 일을 했었죠.

그래서 항상 일이 끝나면 밖에있는 물건들 덮은 일을 하기 때문에

최소 30분은 잔업 수단 못받고 물건 덮은 일을 해 왔죠.

 

그것 뿐만 아니라 공장이 위치한 곳은 언덕이라서

눈이 오면 다음날에 길이 너무 미끄러워져 일하다가 넘어지고

 

공장안에 물건이 꽉 차서 지나갈 길이 없어서

작업한 물건을 들고 공장 밖으로 나가서

눈 속에서 걸어가서

공장뒤 창고로 이동해야 하고

 

바닥이 눈 때문에 너무 미끄러워

지게차가 못가서 물건들을 일일이 손으로 날려야하고

 

또 미끄러워서 물건을 실으러 온 큰차가 못들어와

물건들을 작은 차에다가 싣고 도로로 나가서 다시 큰차에다가

실어 줘야하는

그런 고통들은

눈와 함께 오는 동반자 이기 때문에

저는 눈만오면 짜증이 저절로 나와요ㅜㅠ

 

"눈이 아름답죠..하지만 저에게 그 아름다움이

잔인한 미소 같아서

저는 눈이 오면 싫었어요"

(눈이 오면 고생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04 20:56 2010/01/04 20:56
Tag //

 

인권과 함께 하는 다문화사회
소모뚜 
필자는 한국에 15년 동안 이주민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한국 내 이주민의 인권을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 나가고 있다. 그 동안 수많은 이주노동자들과 결혼 이주여성들을 만나 그들이 한국 사회에 전하는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한국의 다문화사회의 미래를 고민 해 왔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 속 에서 자본을 통해 희망을 실천하려고 수많은 이들은 더 잘 사는 나라로 이주해 이주노동자로서 살게 된다. 약 1억 7천만 명이 되는 이주자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꿈을 위해 살아가고 있고 그들의 존재로 인해 지구는 세계화, 다문화 세계로 자연스럽게 변해가고 있다.
 한국은 1988년 올림픽 개최로 세계에 알려졌고 그로 인한 경제 발전에 따라 생겨난 3D업(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 일자리들이 이주노동자들을 보이지 않은 손으로 초대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 속 한국의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외국인노동자들의 대거 유입과 결혼 이민자들, 그 이외에 유학생 등 국내 외국인 인구는 현재 약110만 명 (한국 총 인구의 약 2%)에 이르러 한국은 빠르게 다문화사회로 향하여 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내에서 동남아계 이주외국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체로 범죄자, 불법체류자, 여성 관련 범죄자, 위험한 존재, 테러리스트(특히 이슬람 문화권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각), 불쌍한 사람들(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주 결혼 여성들, 임금 체불되고 공장에서 일만 하는 사람들, 한국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사람들)로 비춰진다. 반면에 서구권 외국인들은 멋지고 예쁘며 잘사는 나라에서 온 동경의 대상으로 비춰진다.
이주노동자들의 자원봉사, 재해 구조 활동, 학교에 가서 자기 나라의 문화를 알리는 문화 이해교육 활동, 한국의 근로 기준법, 산업안전 보건법 등 노동법을 배우며 이주민들을 교육시키고 노동권리 문제를 상담해주는 활동과 여러 문화 활동을 통해 한국인과 이주민 사이 다리 역할을 하는 활동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미등록 노동자들의 약점을 악용해 임금체불, 폭행, 욕설, 산재보상금 무지급,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 등의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도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와 의사소통의 문제로 인해 사업장내에서 인종차별적 언어폭력, 폭행 등을 당하고 있다. 현재 이주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한국에서 일 할 수 있는 고용허가제는 고용주가 권력을 가지는 제도라서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노예 취급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다문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에 우선적으로 해결 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인권을 존중 하는 사회를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 보다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에 미리 예방 될 수 있어야한다. 의사 수가 많아지는 것 보다 환자 수를 줄여 가는 것이 건강한 사회라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이주민들은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주로 각 나라 공동체 활동으로 서로를 보호해주고 문화 활동으로 사회에 기여하며 미디어 활동으로 그 부당함을 한국 사회에 알리고 이주민들의 인권, 노동권리 쟁취를 희망하고 있다.
다문화 사회는 타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부터 시작해 서로 다른 점을 존중해주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봐 주는 것이 필요하고 이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 활동들에 관심을 보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에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의 자발적 활동은 미약하고 지속적으로 하기에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다문화사회를 희망하는 과정에 이들의 활동은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행복해야만 다문화사회가 가능할 것이다.
요즘 한국인이랑 결혼하는 이주여성을 상당수가 남편의 시부모님과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으로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처음부터 사랑으로 시작 된 결혼이 아닌 경제적 목적으로 시작된 결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 많은 결혼 이주여성들은 한국에 들어온 후 본인들의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사회에 참여하고 싶어 하고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한다. 본인들이 선택한 길이지만 늘 눈물 글썽이며 걸어가는 이들과 다문화사회의 길을 함께 간다면 눈물 젖은 다문화 사회밖에 될 수 없을 것 같다. 이주민들에게 조금만 어 가슴을 열어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고 이들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국 국민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기회들이 많이 필요하겠다.
(이 글은 필자가 성공회 대학교 신문에서 실린 글 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12/14 17:29 2009/12/14 17:29
Tag //

 

 

세계이주민의날 한국대회 기념 이주민발언대 - 난민



 안녕하세요. 저는 세계이주민의 날 한국대회 기념 이주민발언대에서 난민을 대표해 발언을 하고자 하는 버마행동한국의 총무 소모뚜 입니다. 이주민의 날을 맞아 한국에서 이주민으로, 또 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목소리를 직접 한국 사회에 전하고자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저희 버마행동한국은, 군부독재 통치 하에 있는 우리들의 나라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한국에서 생활하던 이주노동자들이 뜻과 힘을 모아 만든 정치단체입니다. 버마행동한국의 13명이 난민신청을 하였고, 그 중 저를 포함한 8명이 현재 법무부의 난민인정불허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 중에 있습니다.

 저는 저희들이 법무부에 난민신청을 했던 2004년 이후 5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국에서 난민으로 또 난민신청자로 살면서 느꼈던 ‘난민’에 관한 생각들, 한국사회와 정부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드리고자 합니다.

 


- 난민신청자의 경우


 먼저 아직 한국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정치적ㆍ인종적ㆍ종교적 활동 등을 이유로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어 난민 신청을 하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버마행동한국의 회원들 또한 오랜 시간 난민신청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2004년 법무부에 난민신청을 한 뒤, 2008년 가을까지 법무부로부터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습니다. 난민신청을 하는 과정에 적절한 통역이나 법정 대리인에 대한 지원이 없고 법무부 직원들의 태도는 대부분 고압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난민신청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 일부터가 당사자들에게는 어려움의 시작입니다.

 한편 정부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으면 최소한의 사회보장이나 합법적으로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지만, 저희의 경우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원은 물론, 합법적인 취업이 불가능하다보니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회사에서 면접을 볼 경우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적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난민신청자임을 밝히더라도 사업주가 법무부 난민실로 연락을 해 문의할 경우 당연히 합법적으로 일할 수 없는 신분이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때문에 난민신청자들은 신청 이후 결과가 나오기까지 생계수단에 대한 아무런 보장 없이 불안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지원책도 없었던 한국 정부가 올해 들어 난민신청 후 1년이 지난 후에는 취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도로 마련된 내용조차 난민 인정 신청 후 1년간의 생계문제나 취업활동이 불가능한 신청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려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난민신청자의 경우, 오랜 시간 기다리는 동안 한국에서 난민으로나마 최소한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 정도를 가질 수 있으니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법무부로부터 불허 통보를 받는 대다수의 난민신청자들은 더욱 막막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난민인정 불허 결정을 받은 경우


 법무부 출입국 난민실에 난민 신청을 하면 신청 이유에 대한 성의 없는 인터뷰를 한 번 하고 4,5년 후에 불쑥 난민 인정 혹은 불허를 통보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난민제도입니다. 인정이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불허를 했을 경우 신청 이후로 몇 년간 신청자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와 불허 통보를 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난민행정입니다. 이는 난민 인정 신청 이후 수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신청자의 정치적 활동이 얼마나 활발했고 본국 상황은 얼마나 변화했는지 등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4,5년 전의 대략적인 인터뷰 내용을 기준으로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법무부에서 2차까지 난민 인정을 불허할 경우 많은 신청자들이 선택하는 것은 소송입니다. 법무부 난민 심사위원들이 최종 결정을 하기 전에 당사자에 대한 직접 인터뷰나 추가 자료 요청도 없이, 난민신청자들을 그저 어떻게든 한국에서 살아보려는 외국인 정도로만 취급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법무부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재판을 통해 최종적인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가 더 많아졌습니다. 최근에는 법무부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가 재판을 통해 승소해 난민으로 인정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것은 법무부의 난민 절차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재판부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난민 인정을 원하는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고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받을 수 있는 박해에 대해 충분한 고려를 하지 않는 결정도 내려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일하거나 비슷한 활동에 대해 전혀 다른 판결이 내려지는 등 난민 인정에 대한 재판부의 명확한 기준이나 일관성이 없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때문에 당연히 난민으로 인정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소송에서마저 패해 막막한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제가 속한 버마행동한국도 현재 난민 인정 재판 중입니다. 버마행동한국의 1심 소송 결과만 보더라도, 재판부는 한국의 상황과 잣대만을 기준으로 삼아 8명 전원을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예를 들면, 버마에서 생활할 때 본인 명의의 여권을 만들어 출국했다는 사실만으로 재판부는 이것이 바로 버마로 귀국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증거라고 판단하는 식입니다. 더구나 무려 6년 이상 꾸준히 버마민주화를 위해 매진해 온 우리들의 활동을, 단지 난민 인정을 위한 고의적인 노출을 노린 것이라는 등의 인신공격성 언급마저 있었습니다. 한편 버마 태국 국경지대의 무장단체 활동 등을 이유로 난민 인정 신청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스스로 증거를 입증하지 않으면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난민협약에 비준한 지 벌써 15년이 지났고 UNHCR의 이사국이기도 한 한국이  이러한 결정들을 내리는 것은 매우 편협하고도 비인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난민인정불허 결정을 받은 사람들에게 주는 인도적 체류 허가라는 것도 있습니다. 난민으로 인정은 할 수 없지만 본국의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한국에서의 체류를 허가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체류를 허가할 뿐, 그 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과거의 미등록 체류에 대한 벌금으로 수 백 만원을 납부할 경우에만 외국인등록증을 발급해주는 등, ‘인도적’ 체류 허가라는 이름이 무색한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난민신청자들은 아무런 생계지원책 없이 불안하게 스스로 생활을 꾸려가는 사람들입니다. 한국 정부가 이들에 대해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다면, 체류를 허가한 국가의 정부로서 최소한의 관심과 배려를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 난민인정자의 경우


 법무부의 결정이나 소송의 승소 결과로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 2009년 상반기까지 총 116명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장기체류허가를 받을 수 있고 외국인등록증과 건강보험증 그리고 해외출국을 할 수 있는 여행증명서 등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버마 민주화활동가들 중에도 소송 등을 통해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난민’이 되었다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기쁨의 축하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난민 인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이제 겨우 체류의 안정을 얻은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의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당분간’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난민인정자들에 대한 적절한 취업 지원이나 쉼터 제공 등 사회보장을 위한 여러 대책이 미흡한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 정부는 난민인정자의 가족결합을 지원하고 난민 협약 상에 명시된 난민의 권리 실현을 위해서도 마땅한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UN이 정한 세계이주민의 날을 맞아, 이주노동자로 또 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목소리를 한국 사회에 전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UN사무총장을 배출한 한국 정부가 UN난민협약이 보장하는 난민의 권리 실현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함께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와 난민들이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의 요구


- 형식적이고 무성의한 난민인정 절차를 개선하라!

- 난민신청자에 대한 취업지원과 최소한의 사회보장책을 마련하라!

- UN난민협약이 정한 난민의 권리를 보장하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12/09 14:47 2009/12/09 14:47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