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P2P 논쟁을 보면서 뜬금없이 드는 생각..끄적임

지난달 6월 말, 미국 대법원이 그록스터라는 P2P 소프트웨어 배포업체가 저작권 침해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그록스터는 냅스터와는 달리 소프트웨어를 배포할 뿐 자사의 서버를 이용자들의 파일교환에 제공하는 것이 아니어서 저작권침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하급심 법원의 입장이었는데, 미국 대법원이 이를 완전히 뒤집어 버린 것이다.

 

이 판결은 우리나라에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음반산업협회에게는 경사이고,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소리바다쪽에게는 악재다. 법조계에서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고 정보통신업계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러한 엇갈린 반응들 가운데 그 판결에 대한 우려의 핵심은 정보통신기술의 혁신이 저작권의 지나친 보호로 인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EFF도 비슷한 평가를 했다. 우리나라 법조계에서도 유사한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여기는 뭔가 비어있다. 그게 무엇일까....

 

 

 



 

 

 

미국의 거대자본의 이해를 위한 것임을 폭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관련된 글을 쓸 때마다 거의 매번 '이 지독한 지적재산권 질서 뒤에는 미국의 거대자본이 있으니 우리가 그들의 질서에 굴복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민족주의적 정서를 약간 건들여 주다면 지적재산권 비판 논리로서는 꽤나 설득력있는 이야기도 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자본의 국적을 문제삼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우리 국가경쟁력이 도움되지 않는 일을 할 수야 있겠는가"라는 뉘앙스는 기본적으로 경쟁력 논리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 논리는 또다른 경쟁력 논리 앞에서 쉽게 무너지게 마련이다. 한류열풍 한마디면 그냥 끝난다.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돈벌이 좀 되는 가수나 드라마 몇편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나라는 수출만 되면 다른 것들은 죄다 무시하는 버릇이 있지 않은가) 우리는 문화산업 강국이거나 될 수 있으니 우리도 미국의 질서에 편승하는 편이 더 좋다는 논리가 어느새 국회의원들을 사로잡고 있다.

 

음반사등 저작권, 저작인접권 단체들은 국회의원들에게 상당한 로비를 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로비 상대는 국회 상임위원회 중 저작권법을 다루는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이다. 또한 문화관광부도 압박하고 있다. 정부나 국회는 무엇이 장기적으로 우리 인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문화양산의 길인가라는 질문을 하기에 앞서 한류열풍이라는 카드 앞에서 다리에 힘이 풀린다. 황우석 교수의 운좋은 실험이 성공하자 국가전체가 들썩거리고 관련 연구비가 황우석 교수팀에게만 몰려 능력있는 많은 연구자들은 손가락만 빨게 되는 불균형한 상황과도 참 흡사하다. 뭐하나 된다 싶으면 그게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냥 올인해 버리는 우리 사회의 습성이 저작권과 관련된 문화정책에서도 여실이 드러난다.

 

점점 저작권법이 저작권자나 저작인접권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고 또 권리 침해에 대한 행정부의 단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면서 또다시 다른 경쟁력 논리가 나오니 그게 다름아닌 IT강국 코리아의 정보통신산업의 경쟁력논리이다.

 

'저작권자 보호하자고 P2P 업체나 포털 업체를 때려 잡으면 그나마 세계 1위라는 인터넷 강국인 코리아가 어찌되겠냐' 라는 또하나의 경쟁력 논리이다.

장기적인 문화발전의 방향이나 인민들이 고루 문화를 향유하고 새로운 창작의 기회를 가질 권리 따위를 이야기 할 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보듯 하다가도 IT 강국 이야기를 어쩌구 하면 사람들은 한번쯤 귀 기울인다.

 

인터넷의 음악시장으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P2P나 포털을 때려잡기보다는 협력해야 한다는 말도 대중들의 귀에 산뜻하다.

 

경쟁력 논리는 또다른 경쟁력 논리로 극복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건 극복이 아니다. 저작권의 포화를 잠시 비켜갈 수는 있을지 모르나, 결국 경쟁력 논리간에 맞선 싸움의 결론은 새로운 경쟁력 창출에만 초점이 맞춰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결론은 결국 인터넷 이용자들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와 상관없이

얼마나 훌륭한 시장으로 인터넷을 거듭나게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업체이든 음반사든 돈 많이 버는 것이 목표일 뿐이다.  이들이 협력해서 돈 버는 방법이 있고 이것이 으르렁 대며 싸우는 비용보다는 협력하고 약간 양보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이들은 이용자들의 뒤통수에서 돈 버는 모의를 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음반사들 대표로 꾸려진 '젊은제작자모임'에서는 소리바다 운영자를 처벌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았고 인터넷 업체들은 라이센싱을 해 줄 음반사들 눈치를 보고 있다. 이 사이에서 이용자들의 권리를 고려하는 쪽은 없다.

음반사는 겉으로는 이용자들에게만 저작권 침해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인터넷 업체 스스로도 책임을 져라 라고 말하고 인터넷 업체들은 인터넷 문화를 이야기 하고 있으나 결국 다 속보이는 말들이다.

 

나는 그간 인터넷 업체들과 협력을 모색해 보는 것이 인터넷에서 저작권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에 필요하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들은 당장의 이해관계인이었고, 우리와 표면적인 입장은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에게 바랄 것과 그래서는 안될 것, 그리고 이러한 경쟁력 논리들 사이에서 어떤 틈새를 파고 들어야 하는지 새롭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