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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읽을만한 책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매달 웹진을 통해 "이 달의 읽을만한 책"을 분야별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진보넷 블로거들께 알릴 겸 선정한 책을 소개합니다. 블로거들의 독서에 도움이 되길...

 

 



욕조가 놓인 방
추천월 : 2006년 10월
저 / 역자 : 이승우
출판사 : 작가정신
2006.09.15 / 122쪽 / 7,000원
이 책은 연애소설일까? 이 질문은 사실 조금 우습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단초는 작가 자신이 마련한 것이다. 그는 약간 갈팡질팡한다. 그는 독자들에게 “당신은 연애소설을 읽으려고 한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했다가, 사실은 이 책을 “‘연애소설’로 읽어주길 바(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가, 또 금세 사실은 그렇게 “얇은 소설”은 아니라고 발뺌한다. 작가는 “연애는 가벼운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싸우면서 소설을 써나가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의 그런 두려움이 근거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90년대 이래 우리 문학은 가벼운 연애담으로 충만했으므로. 그리고 이승우는 그의 상표로 여겨져 왔던 ‘진지함’의 꼬리표를 떼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은 신비한 경험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작가의 분신인 주인공은 그 경험을 순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혹시라도 그 경험이 작가 자신의 것으로 오해될까봐 두려워하듯이 주인공 남성을 “당신”으로 부른다. 그는 이런저런 논리적 핑계들을 만들고, 그 안에서 비로소 겨우 편안해한다. 달리 말하면 변하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 이유들의 울타리 안으로 도망친다. 그는 사랑을 체험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해체하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설명하고 합리화하느라 바쁘다.
찾아온 사랑의 경험이 압도적이었다는 사실은, 사건의 순서 안에서 뒤로 가야 할 사건을 맨 앞에 배치하고 있다는 사실로 이미 확연하게 드러난다. 작가는 주인공의 합리화하는 행동과 전혀 다른 형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 경험의 심리적 강밀성은 작가가 그 경험을 거의 똑같은 문장으로 되풀이하여 진술하고 있는, 문학적으로 매우 위험해 보이는 형식을 도입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의식적 자아는 그 형식을 명령한 내면의 명령을 두려워한다.
이 책은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려고 하는 남자의 이야기, 그것이 가져오는 주체의 근본적 해체의 경험 앞에서 두려워하면서 한발씩 내어딛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주체 연습의 한복판에 도달한 것이다. 그것은 현기증처럼 느껴진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의미심장하다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듯한…….
추천위원 : 김정란(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세계 최고 문화 유산 3 - 난생처음 떠나는 아프리카&중동
추천월 : 2006년 10월
저 / 역자 : 허용선
출판사 : 채우리
2006.08.10 / 304쪽 / 15,000원
추석 무렵처럼 긴 연휴가 왔을 때 차례지내고 성묘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무얼 할까? 아마도 여행을 가거나 영화를 보거나 각기 다양한 계획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어른과 아이가 함께 책을 보면 어떨까?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면 으레 동화책이나 동시집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른 선택도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럴 때를 위하여 준비된 책 같다.
이 책은 ‘사진과 지도로 만나는 세계최고 문화유산’ 시리즈 중 제3탄으로,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을 다루고 있다. 이 시리즈는 사진작가이자 여행칼럼니스트로 활동중인 저자가 지난 20여 년 동안 100여 개 국가를 여행하며 직접 체험하고 조사 ․ 기록한 지구촌 문화여행기인 바, 이 책은 아프리카와 중동의 15개국을 25개 주제로 나누어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아우르고 있다.
하나의 예로 현 시리아의 오아시스에 건설된 로마시대의 전설적 고대도시 팔미라를 보자. 그 유적지에서 발굴된 거대한 건축물들을 사진으로 제시하고 또 그곳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변천과정을 쉽고 간단명료하게 서술해서 팔미라라는 낯선 도시가 금세 친숙하게 다가오도록 꾸며져 있다. 사진과 지도, 그림지도도 곁들여 국기, 인구, 수도, 언어, 화폐단위 등 다양한 학습정보도 담고 있어서 어린이는 물론, 이쪽 지역에 생소한 어른들에게도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연휴의 어느 하루 아이와 함께 우리에게 아직은 낯선 미지의 세계,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으로 사진과 그림으로 여행해보는 것도 재미있고 유익한 경험이 될 것 같다.
추천위원 : 정옥자(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철학, 삶을 만나다
추천월 : 2006년 10월
저 / 역자 : 강신주
출판사 : 이학사
2006.09.28 / 312쪽 / 12,000원
지은이는 일상의 크고 작은 경험 속에서 철학적 사색으로 이어지는 실마리를 찾고 있다. 평범한 삶의 소박한 문제 속에서 철학적 개념을 체득하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환영받을 책이다. 쉬운 문장으로 쓰고 구체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이 저작의 원칙인 것처럼 보이지만, 경박한 에세이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 새로운 스타일의 철학 입문서는 사랑이나 가족 같은 친근한 주제는 물론 국가나 자본주의 같은 묵직한 주제까지 단순하지만 깊이를 거느린 문체로 다루고 있다. 특정한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동서고금의 사상을 자유롭게 끌어들인다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지은이는 철학사를 바라보는 폭넓은 시야 속에서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가고 있다. 청소년과 대학 초년생에게 권하고 싶다.
추천위원 : 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추천월 : 2006년 10월
저 / 역자 : 박태균
출판사 : 창비
2006.08.30 / 438쪽 / 17,000원
이 책은 시의적절한 중요한 정치학적 저술이다. 우선 시의성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를 포함한 한미관계의 재정립을 놓고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이같은 정세와 관련해, 이 책은 한미관계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데 중요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책 제목이 보여주듯이 미국을 단순한 우방과 혈맹으로 보는 일부 보수적 시각과 단순히 탐욕에 찌든 제국으로 보는 일부 진보적 시각이 모두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비밀해제된 미국의 대외 관계 문서들을 꼼꼼하게 분석한, 1945년 8.15 해방으로부터 80년 5.18 광주민중항쟁까지의 한미관계사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증명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뛰어난 매력이다. 특히 해방정국, 한국전쟁, 5.16 쿠데타, 한일국교정상화, 월남파병, 5.18 등 1945년부터 1980년 사이의 한국정치의 중요한 사건들의 비화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한미관계사를 미국의 외교정책에 어떻게 한국이 관철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일방통행식 분석을 벗어나 이같은 미국의 정책에 대응한 한국의 정책적 대응에도 충분한 시선을 보냄으로써 한미관계에 대한 쌍방적이고 동태적 분석을 선물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외교문서들을 꼼꼼하게 분석한, 매우 실증적인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평이한 문체로 쓰여져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도 부담이 없고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 책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모든 국민이 읽어야 할 중요한 국민외교교과서이다.
추천위원 :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주 특별한 경영 수업
추천월 : 2006년 10월
저 / 역자 : 예종석
출판사 : 웅진씽크빅
2006.09.15 / 308쪽 / 13,000원
‘아주 특별한 경영수업’, 이 책의 저자는 제목만큼이나 ‘특별한’ 방식으로 주제에 접근한다. 학자로서는 드물게 현장에 대한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교수들의 저작은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사변적이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현실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어, 냉혹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책은 다르다. 필자의 변처럼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경영을 추구해온 노력의 산물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공한다.
책을 펼치면 경영현장에서 얻은 산지식과 경영자들로부터 직접 체득한 지혜가 넘쳐난다. 성공한 경영자들은 물론 실패한 경영자들로부터 얻은 교훈까지 망라하고 있다. 그 체험적 사례와 제언들은 피부에 와 닿을 듯 생생하다. 리더가 갖추어야할 요소들도 빠짐없이 챙겼다. 비전 만들기나 경영자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같은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신규사업계획과 경쟁전략, 나아가서 취미생활과 좋은 매너 등을 알려준다. 즐거운 일터 만들기나 후계자 승계 문제, 소수정예인력 만들기와 기업의 사회공헌 등 경영학 교과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시사적 주제들까지 섭렵한다. 경영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러나 ‘교만’을 질타하고 ‘겸양’과 ‘공부하는 자세’를 강조하는 대목은 비수처럼 우리의 가슴을 파고든다.
사실 사내 직원들은 최고경영자들에게 비판이나 직언을 하기 어렵다. 자문을 구할 곳도 마땅치 않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 난관에 부딪쳤을 때 조언자의 역할을 훌륭히 해낼 수 있는 것이다. 한번 읽고 서가에 꽂아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공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수시로 참고할 만한 책이다. 현대는 모든 종류의 조직운영에 경영마인드를 도입해야 되는 세상이다. 당신이 설사 기업 경영자가 아니더라도, 조직의 리더라면 일독을 권한다. 경영자 지망생이라면 필독서로 추천하겠다. 이 책은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하다.
추천위원 : 정운찬(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남자의 미래
추천월 : 2006년 10월
저 / 역자 : 매리언 살츠먼 외/ 이현주
출판사 : 김영사
2006.08.30 / 262쪽 / 10,900원
섹스는 시대를 막론한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 화두로서, 고급 성 담론에서 저속한 음담패설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고 다양하다. 가부장제의 유풍이 엄존하던 10여 년 전만해도 성 이야기의 실질적 주체는 남성이요 여성을 그 객체여서, 주로 남성들만이 여성을 말하고, 논하고, 논하여 왔다. 하지만 성의 동등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 정착되어가는 최근에 이르러서는 성 이야기가 남녀 모두 스스럼없이 동참할 수 있는 통성적 행위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심각한 이야기는 주로 부당한 성적 억압의 희생자였던 여성들이 주도하여온 반면, 외설적 이야기는 남성 세계 내에 맴돈 성 담론의 분절화 현상이 노골화되고 있다.
트렌드 분석, 광고 연구 및 미디어 분야에서 일하는 젊은 학자들의 공동 저작인 『남성의 미래』은 이같은 성 담론의 분단 상황을 일깨우고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는 흥미로운 책자라고 여겨진다. 이들은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서술해내는” 각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유전적 차이, 성적 편견, 가족 해체 등 골머리 아픈 소재 아닌 것이 없건만, 그들은 특유한 화법으로 오늘날 남녀 사이에 내재한 다양한 문제점을 아기자기하게 분석하고 풀이해 나아간다.
“여성화 시대의 남성다움”을 색출해 보자는 동기에서 출발한 이 소담한 책은 남성과 여성, 나아가 세상의 모든 암컷과 수컷이 차등적으로 구분되는 과정을 천성론, 진화론 및 사회화론에 비추어 논의하면서, “남자는 우등하고 여자는 열등하다”는 고전적 명제의 뒤집기를 시도한다. 그리고는 남성의 위치와 여성의 위치가 뒤바뀔지도 모를 포스트페미니즘 시대에 과연 남성에게 미래가 있을 것인가를 되묻는다.
남성의 몸치장 행위인 메트로섹슈앨리티나 감상적 ․ 감성적 남성 패턴을 뜻하는 이모 보이(Emo Boy) 등, 인터넷 은어사전에서나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첨단 용어들을 적절히 구사하는 이 책에서 남성 독자들은 썰물처럼 밀려나가지 않을 생존의 지혜, 여성 독자들은 선택적 성 생활을 행복하게 이끌 예지를 발견함으로써 새로운 상생적 세계관을 탐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추천위원 : 김문조(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이휘소 평전
추천월 : 2006년 10월
저 / 역자 : 강주상
출판사 : 럭스미디어
2006.08.23 / 276쪽 / 9,800원
‘스타 과학자’를 애타게 찾아 헤매고 있는 우리가 정작 진짜 스타가 될 만한 우리 과학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단순히 아무것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소설과 영화를 동원해서 기막힌 음모론의 주역으로 왜곡시키기까지 했다. 세계 물리학의 역사에서 ‘벤자민 W. 리’로 알려진 이휘소 박사가 바로 그런 과학자였다. 안타깝게도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42세의 나이로 짧은 인생을 마무리했던 이휘소 박사는 우리 한국이 낳은 가장 뛰어난 이론물리학자였다.
이휘소 박사의 짧은 인생은 여느 천재의 경우에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이휘소 박사의 천재성은 해방과 전쟁, 그리고 낯선 이국 생활에서도 언제나 강렬한 빛을 내고 있었다. 특히 미국의 대학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생을 제도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발굴해서 재능을 극대화시키는 유연함은 놀라운 수준이다. 제도를 앞세워 학생들의 재능을 하향 평준화시키고 있는 우리 교육 당국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그런 교육 환경이 결국 이휘소 박사가 첨단 이론물리학 분야인 양자전자기학 분야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만든 이론을 정리하게 했고,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를 확인하는 방법을 제안할 수 있도록 만든 원동력이었다. 이휘소 박사의 업적은 네 사람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만약 불운의 사고만 없었더라면 이휘소 박사가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였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추천위원 : 이덕환(서강대 화학과 교수)


열정적 고전 읽기 - 예술1
추천월 : 2006년 10월
저 / 역자 : 조중걸
출판사 : 웅진씽크빅
2006.09.15 / 302쪽 / 12,000원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과 그렇지 못한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가. 저자는 질 낮은 저작의 성격을 ‘한가함’이라는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당대의 삶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의미를 구하는 유일한 길은 고전에서만 찾아질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고전읽기는 언제나 고통스러운 수고를 동반한다. 작품이 태어난 전후맥락과 당대의 공기를 함께 호흡해야만 그 의미와 생명력이 전달되기 때문이다. ‘열정적 고전읽기’라는 제언은 바로 그 같은 맥락 따라 읽기를 의미한다. 각 장은 저자의 도입글, 영어원문, 원문 번역문, 강의식 해설로 구성되며 전체 시리즈는 총 10권의 방대한 양으로 구성된다.
이 책 예술편은 아널드 베네트, 에른스트 카시러, 곰브리치, 버나드 마이어스, 로버트 페인, 윌리엄 플레밍의 명저에서 인용되었다. 고전의 새로운 정의, 미학 연구의 흐름, 예술 발생의 동기, 고대 예술에서 그리스 예술까지, 피렌체와 르네상스, 바로크 예술의 탄생 배경 등이 그 내용이다.
유행서적이 독서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풍토에서 그나마 고전을 읽어볼 기회는 수험생의 논술고사 대비 시점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 책 역시 논술의 용도를 명기하고 있다. 하지만 논술고사가 파편적 독서를 조장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책의 주요 용도는 원저를 찾아 읽게 만드는 가이드북으로서 그 효용을 찾아야 할 것이다.
파리 3대학과 예일대에서 예술사를 전공한 저자의 지적 편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책이 고전물에 대한 독서가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데 기여하기를 소망해 본다.
추천위원 : 김갑수 (문화평론가)


포도밭 편지
추천월 : 2006년 10월
저 / 역자 : 류기봉 글/ 김현호 사진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2006.08.28 / 230쪽 / 9,800원
류기봉 시인은 못생겼다. 양복이 어울릴 것 같지도 않고,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편안해 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장현리 포도밭에서 그는 빛난다. 거기서 그는 사랑을 아는 건강한 남자고 생명을 낳는 생명시인이다. 『포도밭 편지』는 포도농사를 짓는 농부시인 류기봉이 대지에서 꽃피운 ‘그것은 인생, 그것은 사랑’ 이야기다.


"나무도 바람이 난다고 하면 믿겠는가? 포도나무는 달맞이꽃과는 플라토닉 사랑을, 민들레와는 에로스적인 사랑을 나눈다. 달맞이꽃과 플라토닉 사랑을 나눌 때에는 달이 반드시 끼어 있다. 달이 그들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포도밭 위로 달이 떴다. 달맞이꽃이 마침내 노란 입술을 내밀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뻗던 포도나무는 동작을 멈추고 양분을 가지 끝으로 모은다. 이 모습은 대단히 감각적이다. 달맞이꽃은 동족으로 이동한다. 달에게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기가 모여 있는 포도나무의 서쪽가지 끝으로 몰려가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건강한 생명의 노래가 들리고 건강의 인생의 행복이 보인다. 포도밭에서 류기봉은 정말 잘생겼다. 아마도 도시가 그를 못생겼다 하는 것은 대지가 그를 사랑해서 자연을 느낄 수 없는 곳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
추천위원 : 이주향(수원대 교양학부 교수)
 


절뚝이의 염소
추천월 : 2006년 10월
저 / 역자 : 나가사카 캔노스케 글/ 김호민 그림/ 양미화
출판사 : 문학동네
2006.08.21 / 20쪽 / 9,000원
이 작품은 중일전쟁을 배경으로 일본의 가난한 어린이들의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마을 이름은 ‘맑은 물 골’이지만, 다른 마을 아이들은 ‘돼지 마을’이라고 부르는 곳, 즉 돼지 도살장이 있는 마을에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가난한 아이들이라고 해서 꼭 어두운 내용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뛰놀고 또 자란다. 스스로를 해적이라고 상상하며 더러운 연못에 배를 띄우며 노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이들의 해적놀이를 보고, 평소에는 돼지 마을에 얼씬도 하지 않던 다른 동네 아이들도 해적이 되어 노는 것을 보면, 이들이 지닌 건강성을 알 수 있다.
저자는 가난한 아이들 중에서도 더욱 형편이 어려운 ‘절뚝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다리를 저는 히코타를 아이들은 절뚝이라고 부른다. 절뚝이네는 아버지가 없고, 전무네 집 돼지들을 키우는 일을 한다. 절뚝이는 옆집에 사는 조선인 김상과 친한데, 절뚝이의 염소는 김상이 군인으로 지원해가면서 절뚝이에게 주고 간 것이다. 김상은 선원이 되고 싶었지만, 덩치가 좋고 일을 잘하기 때문에 도살장 전무의 눈에 들어 도살장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꿈을 잃어버린 김상은 술을 먹고 싸움질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떳떳한 일본인이 되기 위해 군대에 지원한다. 그러나 김상은 탈영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김상을 탈출시키는 일을 절뚝이는 하게 된다.
이 작품은 아동문학 작품 속에서는 드물게 계급문제, 민족문제, 전쟁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식이 생경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생생하게 표현되고 있다. 음식찌꺼기를 얻기 위해 돼지처럼 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던 절뚝이가 염소를 건드리는 아이들에게는 단호하게 대처하는 장면이 나온다. 절뚝이에게 염소는 그것을 주고 간 김상이기도 하고,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절뚝이와 김상은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지만 바람보다도 더 빨리 일어나는’ 풀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추천위원 : 엄혜숙/이상교(아동 도서 연구가/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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