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11월의 읽을만한 책: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판독 불능의 책
추천월 : 2006년 11월
저 / 역자 : 류수안
출판사 : 문학아카데미
2006.10.01 / 318쪽 / 10,000원
저자 류수안은 빛을 거슬러간다. 어둠의 근원에서, 존재가 태어나기 전의 어떤 근원적 비밀 앞에서, 그녀는 천천히 언어를 끌어낸다. 그 언어는 직관적 수준에서는 명확하고 감각적이기마저 하지만, 이성적 수준에서는 모호하다. 그런 점에서 『판독 불능의 책』은 잘 붙여진 제목이다. 그 언어가 책으로 묶여질 때, 그것은 일단은 “판독 불능”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고대의 탐색자들이다. 그들은 고대적 언어를 찾아간다. 류수안은 깊고 웅장한 상상력으로 그 언어의 파편을 기록한다. 이런 언어가 아직도 가능하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장르적 측면에서도 이 작품은 매우 흥미롭다. 시인 이경림이 눈부신 상상력을 그 안에 담아냈었고, 일반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박태균이 놀랍게 성공시켰던, 아직 명확하게 이름붙여지지 않은 장르. 프랑스에서는 이브 본느프와와 크리스티앙 보뱅 등이 ‘시적 이야기(récit poétique)’라는 형태로 안착시킨 장르. 우리나라에서는 ‘엽편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고 있지만, 이 장르를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합해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어떤 매우 특별하고 근원적인, 소설 이전의 ‘이야기’, 어떤 점에서는 소설의 일상성을 그 근본부터 뒤집는 매우 본격적인 시적 사유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류수안은 시의 죽음이 논의되는 시대에 거꾸로 매우 근원적인 방향의 시적인 글쓰기를 시도한다.
이런 언어는 격려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이 인간이 내다버린 인간의 근원적 고귀함에 대한 믿음을 탐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의 편집은 매우 불만족스럽다. 내가 편집자였다면, 이 책을 두 세 권 분량으로 편집했을 것이다. 너무 규모가 큰 상상력을 책 한 권에 억지로 우겨담았다는 생각이 든다.
추천위원 : 김정란(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추천월 : 2006년 11월
저 / 역자 : 한영우
출판사 : 열화당
2006.10.16 / 294쪽 / 18,000원
책의 부제 ‘창덕궁과 창경궁으로 떠나는 역사 기행’이 말해주듯이 창덕궁과 창경원 두 왕궁에 대한 안내서이다. 두 왕궁이 동쪽에 나란히 붙어있으므로 ‘동궐’이라는 이름으로 묶었다. 창덕궁은 조선시대 경복궁에 버금가는 왕궁이었다. 임진왜란에 경복궁이 불타 19세기 중반에야 대원군에 의하여 재건되었으므로 창덕궁이 조선후기의 정궁 역할을 하였다.
경복궁이 왕자의 난으로 조선 초에 이미 피로 물들었고 풍수적으로 불길하다는 소문 때문에 전기에도 왕들은 창덕궁을 선호하였다. 창덕궁은 수목이 우거진 넓고 아름다운 후원(비원)을 갖고 있어 생활공간으로 안성맞춤이었고 그 이궁(離宮)이라 할 창경궁에 대비를 비롯한 궁중여인들이 주로 살고 있었으므로 왕들도 자연히 이 궁에 많이 머물렀다. 서울의 5대 궁 중에서 가장 잘 보전되어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동안 궁궐사는 건축사를 하는 이들에 의하여 연구되어 건축양식에 대해서는 많이 밝혀졌지만, 그 속에서 산 사람들의 이야기나 일어난 사건과 연계시켜 밝히지 않아서 공허한 연구가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점에 착목하여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에서 출발하여 발길이 닿는 순서에 따라 각 전각들을 설명하면서 거기에 살던 사람에게 언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다. 곁들인 많은 양의 사진들도 그 현장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일반 대중을 위하여 쓴 책이지만 저자가 5년 전에 쓴 『창덕궁과 창경궁』이라는 전문적이고 중후한 책을 저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실증도 탄탄하다. 끝에 19세기 초에 총천연색으로 화려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진 ‘동궐도’를 부록으로 넣어 그림을 감상하면서 궁궐을 답사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추천위원 : 정옥자(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철학, 예술을 읽다
추천월 : 2006년 11월
저 / 역자 : 철학아카데미
출판사 : 동녘
2006.10.10 / 360쪽 / 18,000원
종교의 권위가 후퇴한 근대의 세속문명 속에서 철학은 과학과 무엇인가를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길을 열어왔지만 언어를 초과하는 어떤 절대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이 문제일 때는 결국 예술이 도달한 높이와 마주했다. 예술의 감성적 표현이 포괄하는 범위를 개념적으로 다시 포착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철학은 비로소 개념 운용능력의 극한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철학은 철학의 하위 장르라기보다 철학이 새로운 감수성 안에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거쳐왔던 위기의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철학이 세속적 교양에 호소하기 위해, 또는 미래로 가는 좁은 문(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최대한 뾰족해지는 지점이 예술철학이다.
이 책은 철학의 대중화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했던 철학아카데미의 강사들이 함께 펴낸 예술철학 입문서이다. 이 분야에 대한 수요가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실정만 생각해도 환영할 만한 이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예술을 규정하고 정의하는 요소들(자연, 인간, 역사, 대중문화, 과학, 매체 등)을 다루고, 2부는 현대 예술의 다양한 장르들(회화, 음악, 무용, 문학, 연극, 건축, 사진, 영화 등)에서 제기되는 철학적 물음들을 다룬다. 현대성을 추구하면서도 대중성을 겨냥하는 저자들의 언어가 신선하고 날카롭다. 국내 예술철학 입문서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새로운 전범의 저작으로 평가하고 싶다.
추천위원 : 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


전쟁과 평화로 배우는 국제 정치 이야기
추천월 : 2006년 11월
저 / 역자 : 김준형 글 / 신동민 일러스트
출판사 : 책세상
2006.09.30 / 214쪽 / 13,000원
한국의 출판문화의 특징 중의 하나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쉬운 교양서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사회과학과 같이 딱딱한 학술적인 주제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학자들이나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 학술서가 아니라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소화하여 눈높이를 맞추어준 사회과학 해설서나 대중교양서는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이 점에서 김준형 박사의 『전쟁과 평화로 배우는 국제 정치 이야기』는 두 손 들어 환영해 마지않아야 할 대중교양서의 선구적인 전범이다. 딱딱하고 골치 아픈 국제 정치 이야기를 ‘전쟁’과 ‘평화’라는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탁월하게 설명해나간 뛰어난 저작이다. 특히 ‘스타워즈’, ‘공동경비구역 JSA’, ‘매트릭스’ 등 독자들에게 친숙한 영화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구체적으로 국제 정치를 바라보는 대표적인 세 시각인 현실주의, 자유주의, 구조주의를 풍부한 예증과 비유를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비교해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근대국가의 탄생으로부터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이어지는 현대 국제 정치와 전쟁, 평화의 역사를 잘 요약해 소개한다.
이밖에도 최근의 세계화가 과연 일부에서 이야기하듯이 국가의 소멸로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국가가 오히려 되돌아올 것인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쉽게 풀어 설명해주고 있다. 격동하는 현재와 미래 세계에 대한 이 책의 교양 강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9.11 테러와 국제테러리즘, 이슬람 근본주의를 둘러싼 문명충돌론, 부시의 무한전쟁 등 미국의 제국화 경향 등에 대해서도 쉬우면서도 주체적인 해설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핵전쟁의 문제와 북한 핵문제, 나아가 냉전의 섬인 한반도의 국제 정치 동학까지 좋은 가이드를 제공해주고 있다.
추천위원 :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경제학 포털
추천월 : 2006년 11월
저 / 역자 : 김기원
출판사 : 필맥
2006.09.30 / 416쪽 / 13,000원
외환위기 이후 경제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부쩍 커졌다. 이를 반영해 일반인 대상의 경제학 서적들이 꽤 선을 보였다. 그 가운데 특히 돋보이는 게 바로 이 책이다. 어렵고 딱딱하다는 인상의 경제학을 쉽고 재미있게 풀이했으며, 동시에 정연한 체계를 갖추고 있고, 번역서가 아니고 한국인 냄새가 물씬 풍겨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 이론을 정리한 다음 개인의 인생경로, 기업과 금융, 한국경제와 세계경제에 이르기까지 삶에 밀착한 경제현실을 두루 다루고 있는 ‘포털’이다.
글을 풀어나가는 솜씨 또한 탄복할 만하다. 복잡한 수식이나 그래프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흥부와 놀부’와 같은 친근한 비유를 통해 독자에게 접근한다. 그래서 경제학 책으로는 드물게 술술 읽힌다. 그러면서도 시장과 가격, 국민경제와 같은 경제이론의 기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나아가 입시전쟁, 결혼과 같은 일상의 삶을 경제학의 시각으로 요리하는 부분은 사람들의 무릎을 치게 할 것이다.
또한 재벌 개혁에 실천적으로 참여했던 저자답게 ‘효율성과 공정성의 균형발전’이라는 나름의 관점에 입각해 우리 사회의 여러 쟁점에 도전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좌파와 우파, 성매매, 성장과 분배, 재벌과 외국자본, 남북경제협력, 세계화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벌어지는 논란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풍부하게 제공한다. 저자의 관점에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겠지만 독자들이 자기 나름의 사고를 정립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추천위원 : 정운찬(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오류의 시대
추천월 : 2006년 11월
저 / 역자 : 조지 소로스/ 전병준 외
출판사 : 네모북스
2006.10.16 / 296쪽 / 13,000원
헝가리 태생의 유태인, 무일푼에서 자수성가한 신화적 억만장자, 소로스 펀드사를 이끄는 세계 금융가의 큰손, 세계 각처의 인권활동을 지원하는 열린사회 재단의 창시자 등으로 악마와 천사의 모습을 오락가락하는 인물로 알려진 조지 소로스의 시대적 진단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옹호하되 시장 근본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을 “오류의 시대”로 폄하하는 소로스의 특이한 행보는 그가 비판적 실증철학자 칼 포퍼의 충직한 지도학생이었다는 점으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현대적 고전으로 꼽히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포퍼는 영구불변한 완전 지식을 부정하면서, 궁극적 진실의 오류가능성(fallibility)을 문제삼는 민주적 열린사회가 건강한 사회임을 역설한 바 있다. 소로스는 ‘반증가능성’을 ‘오류’라는 일상적 개념으로 환치시켜 불확실성이 날로 가중되는 현대적 삶의 모습을 진단하고 그 해법을 추구한다.
다소 난해한 1부에서는 수정된 포퍼 사상에 기초한 현실 인식의 틀을 정초한 후, 2부에서는 주로 테러와의 전쟁 이후 자아도취적 상태에 매몰되어 세계 질서에 혼돈을 가중시키는 부시 정권의 반문명적 리더십을 질타한다. 자기패배에 이르는 위와 같은 그릇된 관념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개방적 공동체주의로서, 아직은 숙성치 못한 이러한 입장은 적어도 각박한 현대적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한 소박한 열망의 일환으로 평가할 수는 있으리라 본다.
추천위원 : 김문조(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친절한 과학사
추천월 : 2006년 11월
저 / 역자 : 박성래
출판사 : 문예춘추사
2006.10.04 / 232쪽 / 9,800원
오늘날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는 이유도 알고 있고,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도 밝혀냈다.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아냈고, 바람이 불고, 비가오고, 화산이 폭발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우주의 구조와 역사와 미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까지는 짐작하게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의 정체와 진화의 역사에 대해서도,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정체와 운명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다른 짐승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던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지난 1만여 년 동안에 이룩한 놀라운 성과다.
실제로 과학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고, 우리의 삶을 안전하고, 건강하고, 풍요롭고, 편리하고, 평등하게 만들어주었다. 과학의 그런 엄청난 혜택을 누리면서 살고 있는 우리가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준 것이 바로 과학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문제는 과학을 배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과학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까지 알아야 하는 과학 지식은 너무 딱딱하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정상에 오르면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고는 하지만 그곳까지의 길은 너무나도 멀고도 험하다는 뜻이다. 여기 원로 과학사학자 박성래 선생이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의 인간화가 바로 그것이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과학 지식에 매달리는 대신 그런 과학 지식을 밝혀낸 과학자의 생생한 삶을 통해 역사책을 읽듯이 과학을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추천위원 : 이덕환(서강대 화학과 교수)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추천월 : 2006년 11월
저 / 역자 : 무라카미 하루키 / 윤성원
출판사 : 문학사상사
2006.10.10 / 334쪽 / 9,500원
그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음악평론서가 없었다는 것은 매우 뜻밖의 일이다. 작가가 되기 전 음악카페의 운영자로 살면서 열광적인 음악마니아였다거나, 소설 속에 쉼 없이 음악적 소재가 등장한다는 사실 때문에 이미 여러 권의 음악서적이 출간됐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하루키 최초의 음악평론집이다. 2003년에서 2005년까지의 잡지 연재물을 모은 것이니 매우 최근의 저서이기도 하다. 총 11장의 내용은 재즈에서 클래식, 팝, 록 등을 아우르며 장르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따라서 체계와 특정한 지향성을 갖기보다는 하루키 눈에 포착된 유의미한 음악가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소설가 하루키의 작품세계에 대해서는 평가의 양극단이 갈려있는 형편이지만 적어도 그의 음악적 식견에 대해서는 토를 달기 힘들다. 그만큼 그가 개진해나가는 음악론은 폭넓은 식견과 직접 체험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기존의 통념을 뛰어넘는 자기 목소리를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이 하루키 저술물의 진정한 본령일지도 모른다. 단, 그의 음악 이해가 의외로 매우 ‘고전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루키도 이젠 구세대에 속한다는 사실이 광범위한 하루키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전해질 것 같다.
추천위원 : 김갑수(문화평론가)


사막에 숲이 있다
추천월 : 2006년 11월
저 / 역자 : 이미애
출판사 : 서해문집
2006.10.10 / 200쪽 / 8,500원
몇 해 전, 나무를 심는 여자 왕가리 마타이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나무를 심고 나무 심는 운동을 했던 그녀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건 시대정신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준 중요한 증거다. 환경 혹은 생태가, 나무와 숲이 평화의 조건이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숲과 숲에 의존해 있는 생명들이 평화의 조건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의존해 있는 생태적 조건이 위기라는 뜻이 아닐까? 지금 이 세상에서는 하루에 136종의 생물종이 멸종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사막에 숲이 있다』는 사막에 20년간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든 여자, 인위쩐 이야기이다. 그녀는 스무 살 되던 해, 아버지에 의해 마오우쑤 사막으로 시집을 왔다. 그곳은 나무도, 우물도, 새도 없는 죽음의 땅이었다. 길도 없는 사막에서 헤매더라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신랑의 순한 눈망울이 발목을 잡았다. 그녀는 나무를 심기로 했다. 친척들이 준 양 한 마리를 팔아 나무 600그루를 사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버려졌던 땅에 숲이 생기고, 우물이 생기고, 길이 생기고, 새가 날아들었다. 사람들도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무를 심는 일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지만 모든 생명들에게 가장 본질적인 도움이 되는 일이다. 땅이 살아나고, 새가 살아나고, 물이 살아나고, 사람이 살아난다. 나무의 힘이었고 묵묵히 나무를 심은 사람이 만들어낸 평화였다.
추천위원 : 이주향(수원대 교양학부 교수)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추천월 : 2006년 11월
저 / 역자 : 사북초등학교 64명 어린이
출판사 : 보리
2006.09.01 / 160쪽 / 8,500원
동시인이 쓴 동시집은 흔하게 본다. 어른이 쓴 동시와 어린이가 쓴 어린이시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어른이 쓴 시는 논리가 정연하고 연과 행의 가름이 깔끔한 편이라면, 그에 비해 어린이가 쓴 어린이의 시는 '날것'에 가깝다. 날것은 덜 다듬어졌지만 아주 가까이 다가와 살갑다.
흐르는 개울물도 검은 빛을 띠고 흐른다는 탄광마을.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는 탄광촌에서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쓴 어린이시를 한데 모아 묶은 동시집이다. 그리하여 살가운 느낌이 더하다. 지은이인 임길택 선생은 1952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나 1997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주로 산간벽지와 농촌 마을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가르쳤다. 이 책은 고 임길택 선생이 산촌이나 농촌이 아닌 탄광촌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쓴 시를 묶어놓은 데 의의가 크다.
탄광마을 어린이들은 사고로 부모를 잃었거나 그야말로 콩알만한 작은 월급을 쪼개 사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나, 그들의 사고는 깊은 막장 안에서 캐내는 석탄처럼 검기만 하지는 않다. 도회지의 넉넉하게 사는 어린이들과 다를 것이 없으며, 오히려 사고의 깊이는 훨씬 더 깊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따뜻하게 사는 일인지를 터득하고 있다. 탄광촌 어린이들의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마음이 시로 쓰여져 어린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
동시집에 곁들여진 그림은 공들인 판화 작업으로 탄광촌 어린이들이 쓴 시에 걸맞게 소박하며 흥미롭게 표현되어 있어, 그림을 따로 보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다.
추천위원 : 엄혜숙/이상교(아동 도서 연구가/아동문학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