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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1/08
    아라파트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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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4/11/08
    지도의 정치, 기억의 정치
    미니
  3. 2004/11/08
    묵자를 읽읍시다 ^^(3)
    미니

아라파트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1. 병상에 누운 아라파트와 팔레스타인을 바라보는 시각

 

아라파트가 병상에 눕자마자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요 논점은 과연 아라파트 이후에 누가 권력을 잡을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한 국가의 운영 방향은 누가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핵심이 아니듯이 아라파트 이후의 권력 관계가 팔레스타인의 장래의 핵심 문제는 아닙니다.
아라파트 이후 문제를 권력 중심으로 보는 시각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팔레스타인 내부의 권력문제로 본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은 누가 권력을 쥐느냐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미국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입니다.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아라파트가 없던 시절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은 투쟁 했으며 아라파트가 사망하더라도 그들의 해방운동은 계속 될 것입니다.

아라파트 이후를 계기로 우리가 제기하고 행동해야 할 것은 누가 권력을 쥘 것이냐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어떻게 중지 시킬 것이며 팔레스타인 내부가 어떻게 민주적으로 단결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부시와 샤론

 

두 번째는 아라파트 사후 팔레스타인 내부 권력 투쟁을 계기로 중동지역에 혼란이 가속화 되는 것은 아니냐는 식의 시각입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문제의 핵심을 비켜 나갔습니다. 중동지역의 평화를 해치고 혼란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팔레스타인 아니라 이스라엘과 미국입니다.

만약 아라파트의 사후 중동 정세가 더욱 혼란해진다면 그것은 팔레스타인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미국 때문입니다. 특히 부시가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미국은 더욱 강력하게 테러를 응징하겠다고 나서고 있고, 이에 이스라엘과 샤론은 ‘옳다구나’ 박수를 치며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테러’라고 밀어붙이며 공격할 것입니다.

 

아라파트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떠나 어쨌든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반면에 이스라엘과 미국의 입장에서는 아라파트가 다른 정치세력에 비해 요리하기 쉬운 상대였습니다. 하지만 아라파트가 물러나게 되면 그들이 요리하기 어려운 세력들이 권력 참여를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이스라엘과 미국은 자신들이 요리하기 쉬운 세력을 권좌에 앉히려 하는 것과 함께 요리하기 어려운 세력에 대해서는 권력 가까이에 가지 못하도록 공격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선별적인 지원과 선별적인 제거를 위해 무력공격과 공작정치를 강화할 것이며 이것이 중동지역의 평화를 해치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2. 두가지 사건과 내부 개혁

 

이스라엘과 미국의 행동과 함께 중요한 것은 팔레스타인 내부를 어떻게 개혁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부패에 관한 얘기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예를 들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래 두가지 입니다.

① 시멘트 사건

 

 


서안지구에 건설중인 고립장벽


2004년 2월 끔찍한(?)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아니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는 새로운 일이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오히려 외부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지원하는 활동가들에게는 ‘어떻게 이런 일이’라고 할만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멘트 사건.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땅을 추가로 빼앗고, 그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서안지구에 짓고 있는 장벽과 이스라엘 점령촌 건설에 사용되는 시멘트를 팔레스타인 회사가 이집트에서 수입해서 이스라엘 회사에 넘겼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시멘트 회사를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총리인 아흐마드 쿠레이아(Ahmad Qureia)가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쿠레이아는 이미 소유권을 다른 가족에게 넘긴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② 무사 아라파트 사건

 

 


무사 아라파트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


2004년 7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인 야세르 아라파트가 자신의 조카인 무사 아라파트(Musa Arafat)를 팔레스타인 보안국장(Palestinian General Security Servie)에 임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수천 명의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이 집회를 열고 무사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부패의 상징이라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이 집회에는 아라파트가 중심으로 있는 정치조직 파테(Fateh)의 알 아크사 순교단(Al-Aqsa Martyrs' Brigades)까지 참여 했으며, 이 사건은 인티파다 이후 성장한 팔레스타인 내부의 새로운 해방운동 세력이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 외부에서 투쟁을 벌여온 세대에 대해 어떤 감정과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라파트는 파타와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을 결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수십 년간 요르단, 레바논, 튀니지 등지를 오가며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펼쳤고, 이스라엘과의 협상 진전에 따라 국내로 귀환하여 팔레스타인 현대사에서 최초로 선출된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와 그의 동료들이 수십 년간 죽을 고비를 넘기며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투쟁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도 않으며 그들의 투쟁에 존경을 표합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그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서도 개혁을 요구합니다. 비합리적인 권력의 선출과 독점, 부패, 투명하지 않는 재정 등은 극복해야 될 과제입니다. 이것은 자치정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팔레스타인 최대의 정치세력인 파테조차 자신의 지도부를 조직원들 스스로 선출하지 못하고 몇몇 권력자들만이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패한 정부가 평화협상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는-혹은 안하는-것은 당연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유지하고 휘둘러온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안에서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정부가 민중들의 입장에서 행동하고 협상할 것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의 결과가 그동안 진행되어 왔던 평화협상이 ‘평화’를 위한 협상이 아니라 ‘점령’을 지속하는 협상이 되도록 했던 것입니다.

 

 

3. 선거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로 두 동강난 팔레스타인. 두 지구 안은 더 많이 쪼개져 있는 상태

 

 

팔레스타인이 내부로부터 민주화 되기 위해서는 새로 선출될 대통령은 반드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현재로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며, 민주적인 선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전제 조건을 풀어야 합니다.

첫째 이스라엘이 선거를 보장해야 합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각 도시와 도시, 마을과 마을이 이스라엘 군인들에 의해 분리 ․ 고립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제대로 된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포함한 전역에서 ‘형식적으로’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은 딱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요리하기 쉬운 세력이 승리할 것이 확실시 될 때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면 이스라엘은 선거보다는 현재의 권력 핵심들끼리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방법을 선호하게 될 것이며 이를 위해 공작 정치를 펼칠 것입니다.

두 번째 현 지도부가 선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설사 자신들이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말입니다. 해방운동은 내부가 민주적이고 합리적일 때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내부가 민주적이지 못할 때 해방운동을 부패하고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점점 약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과 부패 문제로 역량을 약화시키지 말고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독립을 향해 힘을 모아야 합니다.

 

 

4. 하나이지 않은 팔레스타인 해방

 

팔레스타인이 해방된다는 것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 국가를 건설한다는 의미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민중들이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곧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앞으로 싸워야 할 대상이 이스라엘과 미국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패한 권력을 쥔 채 놓지 않으려는 권력자, 다른 민중들의 고난과 가난을 외면하는 거대 가문, 이윤을 위해서라면 장벽 건설에 쓰일 시멘트까지 팔아먹는 자본, 보수적인 이슬람 논리를 내세우며 여성들을 억압하는 남성들 이 모든 것들과 차근히 싸워서 민중 스스로 해방 되어야 합니다. 부정과 부패에 지배당한 채 팔레스타인이 독립을 하게 된다면 민중들의 입장에서는 민족이 해방된 기쁨과 함께 지배자가 유대인에서 아랍인으로 바뀌는 현실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해방

 

따라서 아라파트의 퇴장을 계기로 우리가 지원하고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냐 뿐만 아니라 이것을 계기로 이스라엘과 미국이 어떤 노략질을 할지 감시하고 저항해야 하며, 권력의 변화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문제의 뿌리에 좀 더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사회전반을 어떻게 민주화하고 개혁할 것이냐에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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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의 정치, 기억의 정치

인간해방을 위한 기억  


시선


투기꾼에게는 땅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이고, 농사꾼에게는 농사지을 땅으로 보입니다.
침략당해 사라진 고구려를 두고 중국과 한국이 서로 자신의 역사라고 얘기합니다.
지하도가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차를 빨리 가게 해 주는 좋은 제도일지 모르나 몸 불편한 사람에게는 참으로 넘기 힘든 벽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하나의 사실을 두고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조선과 일본 사이



조선을 KOREA가 아니라 JAPAN이라고 표시한 이 지도가 1930년대 일제 식민지 시절 만들어진 세계지도의 일부라고 하면 여러분은 이 지도가 옳다고 생각하십니?
만약 지금이 1930년대라면 조선인들은 틀렸다고 할 것이고, 일본인들은 맞는다고 하겠지요.

쿠르드와 쿠르디스탄





쿠르드인들은 3, 4천만이나 되는 인구를 가지고도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해 아직도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 살면서 독립을 위해 투쟁하거나 이민족이라는 이유로 억압당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세계지도 어디에도 쿠르드라는 이름은 없습니다.
특히 터키에서는 민족말살정책의 영향으로 쿠르드어조차 공개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쿠르드인들은 ‘쿠르디스탄’이란 이름의 땅을 자신들이 세울 국가의 영토라고 생각합니다.
쿠르디스탄은 단지 쿠르드인들의 상상일 뿐일까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첫 번째 지도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에서 만든 지도이고, 두 번째 지도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만든 지도입니다.





같은 땅을 두고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PALESTINE이라고 표시하고 이스라엘 측에서는 ISRAEL이라고 표시합니다.
물론 많은 지도에서는 이땅을 이스라엘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왜일까요?
이스라엘이 점령했고 지금까지 강자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가 이스라엘의 입장을 중심으로 그려진 결과는 어떨까요?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이 땅이 ‘이스라엘’이라고 인식되고, 팔레스타인의 독립요구가 '이스라엘 땅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이 될 겁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측에서 만든 지도로 세계를 보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은 비록 이스라엘의 식민지가 되어 있지만, 앞으로 팔레스타인이 독립을 하게 되면 ‘팔레스타인이 제 땅을 되찾았구나’라고 되지 않을까요?
조선의 독립이 일본 땅의 일부에 국가를 세우는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쿠르디스탄에서, 티벳에서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민중들이 식민통치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강자와 지배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지도와 기억을 약자와 피지배자들의 지도와 기억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누군가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기억을 우리가 잊어버리는 순간 정말 그들은 사라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기억을 위한 투쟁, 인간해방을 위한 또하나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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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를 읽읍시다 ^^

한겨레에 묵자를 추천하는 글이 있길래 옮겨 봅니다.

 

다른 책도 좋을테고 제가 읽었던 " 묵자 - 천하에 남이란 없다 " /기세춘/초당

이 책도 좋지 싶습니다.

이라트 전쟁때 인간방패를 생각했던 사람이 혹시 묵자를 읽었던 건 아닐까요? ^^

 

프레시안에 신영복 선생이 연재 했던 고전 관련 글중에 묵자 관련 글도 좋습니다.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menu/pressman_other.asp?pressman=신영복&pressman1=&pressman2=

 

 

 

[한겨레 글]

겸애·노동 중시한 사회적 실천가 묵자


묵자: 중국의 ‘작은 예수’ ‘큰 마르크스’

묵자(墨子·기원전 479~381?)는 중국사상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사상가이다. 근대의 양계초(梁啓超)는 그를 가리켜 ‘작은 예수’요 ‘큰 마르크스’라 하였다. 윤리적 측면에서는 예수에 조금 못미치지만, 경제사상과 사회적 실천의 측면에서는 마르크스를 능가한다고 본 것이다. 이제 그 사상의 특색을 몇 가지 열거해 보자.

 

(1) 평등박애론(兼愛).

묵자는 사회의 근본 모순을 ‘차별성’이라 보았다. 우리는 누구나 한 가족처럼 차별 없이 두루 사랑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다른 사람 또한 우리를 사랑할 것이며, 남을 이롭게 하면 남이 또한 우리를 이롭게 할 것이다(兼相愛 交相利).” 이것이 묵자의 근본 주장이다.

 

(2) 민중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는 “백성들에게는 세 가지 근심이 있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먹지 못하고, 추워 떠는 사람이 옷을 얻지 못하고, 피곤한 사람이 휴식을 얻지 못하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의 가치를 중시했기 때문에, 그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은 ‘도적’이었다. 도적은 남의 노동 성과를 거저 훔치려 하기 때문이다.

 

(3) 반전평화론(非攻).

개인 차원에서 도적을 미워했다면, 묵자가 사회 차원에서 가장 비판한 것은 ‘침략전쟁’이었다. 전국시대에는 제후들이 패자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묵자가 보기에는, 전쟁은 수많은 민중을 죽음에 몰아넣고 엄청난 사회적 재화를 소모하는 죄악일 뿐이다. “한 사람을 죽였을 때 살인죄가 된다면, 수백명을 전쟁에서 죽인 사람은 그 죄가 살인죄의 수백배에 달한다”고 묵자는 주장한다.

 

(4) 사회적 실천. 묵자는 단순한 사상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실천가였다.

그를 비판하던 맹자도 “묵자는 이마에서 발끝까지 닳아 없어지도록 천하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했다”고 말한다. 오늘날 전해 오는 그의 저술 <묵자>의 주요 편명은 사회실천의 구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문장은 결코 화려하지 않지만 매우 논리적이며, 그가 다룬 문제들은 극히 실용적이고 서민적인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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