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대한 영화, 라고 말하면 사치일 수밖에 없음을 알지만 '왕과 엑스트라-팔레스타인의 이미지를 찾아서'는 기억에 대한 영화다. 감독이 '잃어버린 아카이브'를 찾아가는 여정은 팔레스타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기억, 그것은 역사이고 자아이며 관계다.



한국정부와 중국정부가 각을 세우는 것을 보라. '기억'은 먼지쌓인 앨범 한켠에서 오래된 친구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학자들의 논쟁보다 격렬할 수밖에 없는 것이 '기억'을 획득하려는 정치다. '기억'은 권력이다. 팔레스타인은 온전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세계사교과서에 제대로 서술되어있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녀들의 역사를, 누군가 훌륭하게 기록해놓는다 하더라도 그/녀들의 '기억'을 그/녀들의 삶의 공간에서 물질화하지 못하는 한, 그/녀들은 '기억'을 '가질' 수 없다.

'기억'은 자아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아자 엘 하산에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기록하는 사람, 기억을 만드는 사람이기에 그녀의 여정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어떻게 기억을 만들 것인가, 가 그녀의 삶의 화두일 수밖에 없을 테니. 그녀가 찾아다니는 것은 '잃어버린 아카이브'지만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아카이브를 기억하는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절망하거나, 낙관하거나, 비웃거나 괴로워하는, 그리고 미쳐버린 사람들. 바로, 그녀가 품고 있는 수많은 그녀들.

'기억'은 거대서사이지만 '나'와 무관하지 않고 '나'이지만 경계가 없다. 기억은 관계다. 살아숨쉬는 사람들의, 그래서 수천년의 시간이 들어서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촘촘한 '관계'다. 기억에 목말라했던, 그래서 관계를 회의했던, 그리고 비참할 수밖에 없었던, 10월의 몇 날 들. 통째로 기억을 건져올렸다고 즐거워하던 누구의 마음이 이제서야 온전히 이해되는 것일까. 시월의 그 몇 날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여전히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을 런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왕과 엑스트라'를 만났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다큐로는 부족하다는 평은, 진실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다. 다큐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을 갈망하는 누군가와도 만날 수 있다. 폭격과 총성이 없어도, 전쟁의 참혹함을, 지배의 잔인함을 훨씬 가깝게 느낄 수 있다. 팔레스타인인이 아니더라도, '여성'이거나, 사랑을 잃고 우는 사람이거나, 혹은 무엇이 되어 느껴볼 수 있다. 그것이 이 다큐의 매력, 장점, 또는 훌륭함.

그러나.  

기억을 강탈당한 자, 기억을 만들지 못하는 자는 엑스트라가 된다. 차라리 기억을 지우는 자, 기억하지 않는 자, 그래서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만이 왕이 될 수 있다. 그것이 팔레스타인의 현실... 거기에 이르러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다만 그/녀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뿐. 

 

**인디다큐페스티벌 홈페이지의 '왕과 엑스트라-팔레스타인의 이미지를 찾아서' 소개

 

- 뎡야핑 님의 '왕과 엑스트라(영화)' 에 트랙백...

- 미니 님의 '지도의 정치, 기억의 정치' 에 트랙백...

- 레니 님의 '디스코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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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9 17:16 2004/11/0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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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레니 2004/11/11 01:1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음 제가 "기억"을 찾으려 한다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었군요. 영화를 볼 때에는 잃어버린 아카이브에 대한 감독의 집착이 의아하게 느껴졌었는데.
    글 잘 읽었습니다. :)

  2. 미류 2004/11/11 01:3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두 잘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무엇을 보거나 읽는다는 것이, 꼭 작가를 이해하는 것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이런 생각으로 제가 '기억'을 조작한 것일 수도 있죠. ^^;
    이 시간에 블로그에 있는 사람들이 꽤 되나봐요? 전 처음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