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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사고, 사고 로이로제 그리고 프라이버시


프라이버시 활동가로 살아가다 보면, "사고 노이로제"에 걸리게 됩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대형 사고가 나면 불안에 떨기 시작합니다. 사고가 두려워서? 그게 아닙니다. 대형 사고에 항상 뒤따르는 예의 "안전의 논리"가 두려운 겁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또 어떤 시스템들이 도입되어 사람들에게 감시의 눈을 들이대고 인간 존엄성에 공격을 가할 것인지가 두려운 겁니다.

 

잘 알려지지 않고 지나갔지만, 대구 지하철 사고 이후 안전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 달 초 서울지하철공사가 종합화상정보시스템이란 걸 도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체 객차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겁니다. 한 번 따져보죠. CC-TV가 있었으면 대구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까요?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Privacy International) 대표 사이먼 데이비스(Simon Davies)는 CC-TV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습니다. "CC-TV의 범죄 예방 효과는 극히 불확실하다. 술이나 마약에 취해 비이성적으로 저질러지는 범죄는 CC-TV가 있어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 때, CC-TV가 할 수 있는 일은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를 추적하는 것일 뿐이다. 반대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라면, CC-TV가 설치된 장소를 피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결국 CC-TV로 막을 수 있는 범죄는 소매치기나 좀도둑같은 소수의 기회주의적 범죄들 뿐이다."

 

그런 의문이 가능할 겁니다. 대구 참사 같은 대형 사고 앞에서 CC-TV로 인한 사생활 침해를 이야기하는 건 너무 배부른 소리가 아니냐고요. 어쨌든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되는 거라면 다소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그래서 프라이버시 활동가는 종종 극단적 개인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 취급을 받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권력을 거부하고 분권과 자치·연대의 정신을 존중하는 무정부주의자로 취급받는 것은 프라이버시 활동가에게는 사실 더없는 영광입니다)

 

그렇다면, 이타적인 당신을 위해 사이먼 데이비스가 지적하는 CC-TV의 다른 문제점 하나를 들어보죠. "흔히들 CC-TV는 기계이므로 편견없이 공정한 감시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CC-TV 카메라의 초점은 '특이한 사람'들에 맞추어지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특이한 사람'들의 범죄만이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이는 사회적 편견을 더욱 강화시키고, 실질적인 차별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지하철 참사의 용의자가 정신지체 장애인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나온 후 지금까지도 정신지체 장애인들에 대한 근거없는 공격이 계속됩니다. 그가 실제로는 중풍 환자였으며, 정신지체 장애인의 범죄율이 일반인의 범죄율에 비해 턱없이 낮은 0.2%에 불과하다는 사실들이 보도되었음에도 말입니다.

 

참사 이후 각 전철역에는 전경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승객들 중 부랑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어김없이 검문을 합니다. 불심 검문이란 결코 강제될 수 없는 국가 폭력이며 개인에게는 더없는 인격 침해라는 사실은 이 순간 가볍게 무시됩니다.

인터넷 대란이 발생하자 정보통신부는 로그 기록을 조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겠다고 나섰습니다. 로그 기록이 가장 엄격하게 보호되어야 할 통신비밀 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이 순간 아무래도 좋습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아랍계 인종에 대한 무차별 검거와 인종 차별이 자행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같은 미국 시민이 아니라 잠재적인 적일 뿐이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자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한 셈입니다. 프라이버시 활동가들의 "사고 노이로제"는 이같은 "안보 노이로제"의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안보"라도 보장되었나요? 그래서 인터넷은 쌩쌩 잘 돌아가나요? 그래서 지하철은 안전해졌나요? 그래서 미국은 평화로워졌나요? 허점투성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놓고 1년에 72번이나 패치를 받을 것을 강요하는 MS의 후안무치함은 그대로인데도. 승객의 목숨을 화물이나 다름없이 취급하는 이윤의 논리도, 한 개인이 끔찍한 범죄를 계획하게 만든 절망적인 경제적 불평등 구조도 그대로인데도. 수많은 민간인의 목숨에는 아랑곳없이 이라크 침략을 강행하는 미국의 안보논리에 세계 시민들의 분노가 날로 높아만 가는데도.

 

그러니, 결국 문제는 몇몇 낙오자나 문제아의 존재가 아니라, 위험 사회를 향해 날로 치닫는 우리의 삶의 방식이며, 해답은 누군가를 적대시하는 안전의 논리가 아니라, 서로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처럼 아끼고 존중하는 시민들 사이의 연대의식의 회복입니다. 이것이 프라이버시 활동가들의 "사고 노이로제"의 진실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는데 정보통신부가 인터넷 실명제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는 뉴스를 전해들었습니다. 인터넷의 각종 유언비어나 명예 훼손을 방치할 수 없다고 합니다. 명예 훼손. 물론 중요한 프라이버시 문제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서 왜 나의 프라이버시 권리가 위협받아야 하는지요? 그것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 소수자의 인권과 사회문화적 다양성의 기초가 되는 기본권인 익명의 권리가 말입니다. 잘못한 일이 없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않냐고요? 되묻고 싶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잘못한 일이 없다면 왜 유언비어나 명예훼손 따위를 두려워합니까? 나에게 바르게 살라고 강요하지 말고 당신이 한 점 부끄럼없이 살면 될 것 아닙니까? 법을 제정할 힘을 가진 당신이!!

 

그래서 많은 경우 프라이버시 문제는 뜯어보면 권력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서준식 선생님이 얼마 전 펴낸 책 머리말에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기본적으로 폭력의 논리가 관철되어 있으며 … 이성이 폭력적 구조의 벽에 부딪치는 지점부터는 어쩔 수 없이 '입'이 아닌 '근육'이 현실의 어둠을 뚫고 가야" 합니다.

 

주간 문화사회 제31호(2003년 0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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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빛 인생>이란 영화를 기억하시는지요?

90년대 초반에 나온 영화 중에 <장미빛 인생>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지요? 영화계 386의 기수였던 김홍준 감독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었습니다. 사고를 친 깡패와 시국사건에 연루된 노동운동가,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쓴 무협지 내용이 공안기관의 비위를 건드려 도망다니는 청년. 이 세 사람이 가리봉동의 뒷골목으로 숨어들면서 벌어지는, ‘80년대’라는 시절의 밑바닥 삶들이 끈적거리면서도 애틋하게 그려진,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런 영화였습니다.

<만화방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게시판을 만들어놓고서는 왠 영화 타령이냐고요? 센스 있으신 분들은 눈치채셨을 겁니다. 그랬습니다. 그 세 사람이 숨어든 곳이 바로 만화방이었습니다. 낡은 건물 어두컴컴한 계단을 벽면을 장식한 만화 포스터 속 여자들이 드러낸 긴 다리에 시선을 빼앗기면서 내려가면 나타나던 그 만화방. 사면 벽을 빽빽이 메운 낡은 대본소 만화들의 퀴퀴한 냄새와 한 쪽 구석에 틀어놓은 에로비디오의 신음소리로 가득찬 그 만화방. 메인스트림과는 결코 인연이 없을 것만 같은 한심한 청춘들이 담배 빡빡 피워대며, 혹은 라면으로 끼니 때우며 하루를 버티는 바로 그 만화방. 보여줘라 만화방.

 

 
(썰렁하네요.. 적합한 장면을 못 찾아서..--;;)
 
아직도 많은 분들이 만화방에 대해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계실 겁니다. 부산에서는 마약 사건 보도가 나올 때마다 무대로 등장하는 곳이 만화방이기도 했었죠. 때문에,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조차도 만화방에 안 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대학 1~2학년 때까지만 해도 단골 만화방이 대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이런 만화방에 갈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많은 경우 낡은 건물 지하실이 깨꿋한 건물 3층으로, 낡은 제본소 만화가 일본으로부터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깔끔한 출판 만화로, TV 속 에로비디오가 대형 화면의 뮤직비디오로 바뀌었습니다. 안락한 소파와 쾌적한 공기청정기에 에어콘까지 완비해둔 것은 물론, 금연도 모자라 여성전용 만화방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금연인 만화방은 절대 안 갑니다만... 여성전용 만화방은 가고는 싶으나 못 가고요...)

며칠 전 옆 자리에 앉은 선배(아래 01누리 방 주인입니다)와 이수역 옆 오래된 시장 골목을 지나가는 데, 선배가 그러더군요. 이런 골목을 보면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을 것 같다고. 제가 가끔씩 버스 터미널이나 역 근처에서 이런 만화방들을 만날 때마다 설레이는 이유도 그런 까닭일 겁니다. 저야 뭐, 어릴 때 점심 시간이면 밥만 싸온 도시락 들고 만화방 가서 컵라면에 밥 말아먹으며 만화보던 기억, 그러다 점심시간 끝나서 선생님한테 혼나던 기억, 성인만화 보다 동네 형들에게 걸려서 돈 뜯기던 기억처럼 사소한 기억들뿐입니다만, 여전히 TV 속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듯이, 정리해고 사실 가족에 숨긴 채 출근 시간 넥타이 매고 집을 나선 후 다른 직장 알아보며 길거리 헤메다 지치면 찾아와 짜장면 먹는 젊은 가장, 소파를 침대삼아 잠들었다 주인 아저씨에게 걸려 쫓겨나는 가출한 중학생 같이 밑바닥 삶들이랑 가장 잘 어울리는 곳, 왕따들, 사회 부적응자들에게도 쉴 자리 하나 내어주는 곳은 역시 만화방이니까요. 김홍준 감독이 하필 만화방을 무대로 삼았던 것 역시 그래서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직도 만화방에 가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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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돌아보는 법

주변을 돌아보는 법,

30년 넘게 배워도 배워지지 않는다.

 

누군가 어떤 이유로 아파하고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혹시 그런 사실 건너듣더라도, 막상 당사자들이 부정하면,

잘못 알았겠거니 한다. 그들의 부정이, 사실 얼마나 아프고 힘든 부정이었을까.

 

내가 아픈 건,

그들이 아프고 힘들다는 사실 때문인지,

아님, 그들이 아프고 힘들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는 얘기해도 내게는 얘기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인지.

 

- 그만두는 누군가가 있다.

  그가 그만둘 정도로 아프고 힘들어하는 동안 함께 아파하고 마음써온 다른 누군가가 있다.

 

- 형편이 어려운 누군가가 있다.

  그 사실을 아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

 

내가 그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는 게, 더 아프다고 힘든 나는,

영원히 주변을 돌아보는 법은 배우지 못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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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년 6월 15일, 마그나카르타 탄생

 

세계 최초의 헌법이라 불리는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가 1215년 6월 15일 존 왕에 의해 서명되어졌다.

 

모든 사회계약이 그렇듯이 마그나 카르타는 귀족계급의 이익을 철저히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재판받을 권리, 과세에 대한 의회의 동의권 등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들을 도입하고 있다. 그같은 귀족 계급의 지도력이 800년에 달하는 오랜 기간 마그나 카르타가 생명력을 유지하게끔 한 힘일 게다.

 

내년 혹은 내후년, 결국 개헌 정국은 열릴 수밖에 없다. 정치판에서는 중임제니 내각제니 하는 권력 놀음에만 매달리겠지만, 정작 싸움은 전경련/삼성경제연구소 대 시민사회다. 119조 2항을 삭제함으로써 삼성공화국을 완성할 것인가, 아니면 21세기의 절대군주에게 새로운 마그나 카르타를 들이밀 수 있을 것인가?



대헌장 MAGNA CARTA

 

신의 은총에 의해 잉글랜드의 국왕 아일랜드의 군주, 노르망디 및 아퀴테인공 앙주 백작인 존은 여러 대주교, 주교, 교구장, 백작, 남작, 판관, 엽림관, 주장, 현령, 관리 및 모든 대관과 아울러 충성된 백성들에게 인사를 드린다. 삼가 신의 계시를 받들어 짐과 짐의 모든 선조 및 자손의 영혼구제를 위하고 신의 영광과 신성한 교회의 번영을 위하며 또 짐의 왕국의 개혁을 위하여 존경하는 여러 사부 즉 캔터베리 대승정, 전잉글랜드 수좌 대승정, 신성한 로마교회 추기경 스티븐, 더블린대주교, 헨리, 런던주교 윌리엄, 윈체스터주교 피터, 배르 및 그래서타운베리주교 조스린, 링컨주교 휴, 워세스터주교 월터, 코벤트리주교 윌리엄, 로체스터주교 베네딕트, 우리 주 교황의 부사제이며 교황청의 일원인 팬덜프사, 잉글랜드의 템플 기사단장 에이메릭형 및 여러 귀한 신분을 가진 분들, 즉 펜브루크백작 윌리엄 마샬, 솔스베리백작 윌리엄, 워렌백작 윌리엄, 안델백작 윌리엄, 스코틀랜드 성주 제로웨이의 알렌, 제럴드의 아들 워렌, 하버드의 아들 피터, 포아튜의 집사 바의 휴버트, 네뷜의 휴, 하바드의 아들 마휴, 토머스 바제트, 애링바제트, 오뷔니의 필립, 롭스리의 로비트, 존 마셜, 휴의 아들 존 및 기타 짐의 충성된 인민의 충언에 의하여,


제 1조 잉글랜드 교회의 자유와 그가 이미 지니고 있는 권리의 완전한 보유와 그리고 그가 향유하는 자유의 불가침을 먼저 신 앞에 밝히고, 짐과 짐의 영구의 후계자들을 위하여 이를 이 헌장에 의하여 확인한다. 짐은 이 헌장이 계속 준수되기를 바란다. 따라서 짐은 짐과 배론 남작과의 사이에 분규가 발생하기 전에, 또한 잉글랜드교회에서 중요하고도 필수불가결한 선거의 자유가 순수한 자의에 기초하여 성립됨을 이 헌장에 의하여 이를 확인하는 바, 이것은 교황 인노센트 3세의 비준을 얻은 것이다. 짐은 이 헌장을 준수할 것이며 짐의 영속적인 후계자들을 위하여 왕국의 모든 자유민은 짐과 짐의 후계자에 의하여 이들 자유를 보장받게 될 것이다.


제 2조 만약 준사적인 역무를 조건으로 하여 짐으로부터 직접 작위를 받은 짐의 백작이나 남작 또는 그 밖의 자가 사망한 경우 그의 사망 당시의 상속인이 성년에 이르러 상속료를 지불해야 할 의무가 발생했을 때, 그 상속인이 종래의 상속료를 지불하면 상속 재산을 취득한 것으로 한다. 이전의 상속료라고 함은 백작 1인 또는 그 이상의 상속인은 백작에게 소속된 모든 남작의 영지에 대하여 100파운드, 기사의 1인 또는 2인 이상의 상속인은 모든 기사의 영지에 대하여 최고 100실링이며 봉지의 종래 습관에 따라 그보다 소액의 지불의무를 가진 자른 적게 지불해도 된다.


제 3조 그러나 전술한 상속인이 성년에 미달하여 후견을 받다가 성년이 되면 상속료와 탄 원금을 지불하지 않고도 상속재산을 취득하게 된다.

제 4조 미성년 상속인의 토지 후견인은 사람이나 물건을 파괴하거나 황폐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적당량의 생산물과 관세 및 역무를 요구할 수 있다. 만일 짐이 위와같은 미성년자의 토지 후견을 그 토지의 생산물과 관련하여 짐에게 책임을 져야 할 주장 또는 기타인에게 위탁한 경우 그가 후견해야 할 토지를 파괴하거나 황폐시키면 그로부터 배상을 받으며 아울러 그 토지는 그 봉지 내의 적법하고도 총명한 자 2인에게 위탁시키고 그 2인의 짐이나 짐이 지정하는 자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한다. 또한 짐이 상기와 같은 토지를 제3자에게 증여하거나 매각하였을 경우에도 그가 토지를 파괴하거나 황폐시키면 그 자는 후견권을 상실함과 동시에 그 봉지 내의 적법하고도 총명한자 2인에게 후견을 이전시키고 2인은 전항과 같이 짐에 대해 책임을 진다.

제 5조 후견인이 토지의 후견권을 가지고 있는 한 가옥, 사냥터, 양어장, 물레방앗간 및 기타 토지의 부속물은 그 토지 자체의 수익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또 상속인이 성년에 달했을 때는 경작기의 시의와 산출물이 허용하는 적절한 한도 내에서 쟁기를 비롯한 경작용구와 함께 모든 토지를 상속인에게 반환해야 한다.

제 6조 상속인은 멸시적인 강압을 받음이 없이 혼인할 수 있으나 혼인이 성립되기 전에 그 상속인의 혈연 근친자에게 통고하여야 한다.


제 7조 과부는 그 남편이 사망한 직후 전기한 방해를 받음이 없이 그의 지참금과 상속재산을 취득할 수 있다. 또한 과부는 자기의 재산(남편의 유산중 분할지분)과 지참금 및 남편의 사망 당시에 부부가 소유했던 상속재산에 대해서는 별도의 세금을 부담하지 아니한다. 과부는 남편 사망 후 40일간 남편의 집에 체류해야 하며 그 기간 중에 과부의 재산이 자신에게 양도되어야 한다.

제 8조 과부가 남편 없이 생활하기를 원하는 한 혼인이 강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짐으로부터 수봉된 경우에는 짐의 동의 없이 혼인하지 않을 것과 다른 영주로부터 수봉한 경우에는 그 영주의 동의 없이 혼인하지 않을 것을 보증해야 한다.

제 9조 짐과 짐의 대관은 채무자의 동산이 채무변제에 충분한 경우에 한하여, 채무를 이유로 토지나 그 산출물을 압류하지 않는다. 또한 주채무자가 채무를 변제할 수 있는 한 보증인의 재산을 유치하지 않는다. 주채무자가 변제에 충당할 재산이 없어 변제할 수 없을 때는 보증인이 그 채무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보증인이 원한다면 채무자에 대신한 채무변제에 대해 보상을 받을 때까지 채무자의 토지와 그 생산물을 보유할 수 있다. 그러나 주채무자가 당해 보증인에 대해 면책됨을 증명할 경우는 예외로 한다.

제 10조 어떤 자가 다소를 불문하고 유태인에게 채무를 지고 변제하지 못한 채 사망한 경우에는 그의 상속인이 성년이 될 때까지 그가 누구의 수봉을 받았던가를 불문하고 채무에 이자를 계산하지 않는다. 만약 그 채권이 짐에게 들어온 경우에는 짐은 증서에 기재된 원본 이외의 것을 받지 않는다.

제 11조 어떤 자가 유태인에게 채무를 부담하고 사망한 경우 그의 처는 자신과 과부 재산을 취득하며 당해 채무에 대해서는 변제의무가 없다. 또한 사망자의 아들이 미성년일 때는 사망자의 소유 정도에 따라 필수품이 공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잔여분에서 영주에 대한 역무 제공을 제외하고는 채무가 변제되어야 한다. 유태인이 아닌 자에 대한 채무에 대해서도 이와 같다.

제 12조 짐의 왕국에서는 왕국의 일반 평의회에 의하지 않고는 모든 부역면제세 또는 상납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짐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한 경우 및 짐의 장남을 기사가 되도록 하기 위한 경우와 짐의 장녀를 처음으로 혼인시키기 위한 경우에는 타당한 범위에서 부과할 수 있다. 런던시의 상납금에 대해서도 같다.

제 13조 또한 런던시는 모든 고전적인 자유를 향유하며 육로 및 해로를 불문하고 관세를 면제한다. 아울러 짐은 기타 모든 시·읍·면 및 항구가 자유권을 가지고, 관세를 면제할 것을 허용한다.

제 14조 위의 세 가지 경우 이외의 상납금 부과와 부역면제세에 관련하여 왕국의 일반평의회를 개최코자 할 때는 짐이 서명한 개별의 칙서로써 대승정, 승원장, 백작 및 대남작들을 소집한다. 이와 함께 짐에게서 직접 수봉된 자들은 주장과 대관이 총괄적으로 소집한다. 일반평의회는 최소한 40일 경과 후의 일정 일에 일정 장소에서 소집된다. 그리고 짐은 모든 소집칙서에 그 이유를 명시한다. 이렇게 하여 일반평의회가 소집된 경우 전원이 참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회의는 출석자의 협의에 따라 지정일에 진행된다.

제 15조 짐은 앞으로 어느 누구에도 자유인으로부터 상납금을 징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그의 장남을 기사로 만들기 위하여 또는 자녀를 처음으로 혼인시키고자 할 대에는 상당한 범위 안에서 그를 허용한다.

제 16조 어느 누구도 기사의 작위나 기타의 자유로운 작위의 보유에 대하여 그에 수반되는 적절한 정도 이상의 역무를 강요받지 않는다.

제 17조 민사소송은 짐의 궁정에 따라 이동됨이 없이 일정한 장소에서 개정된다.

제 18조 침탈부동산점유회복소송, 상속부동산점유회복소송 및 승직추천권회복소송에 관한 심리는 다음과 같은 방법에 의해 각 주재판소에서 행한다. 즉 짐, 또는 짐이 왕국 밖에 있을 때는 짐의 최고재판관이, 각 주에 2인의 재판관을 연 4회 파견하고, 그들은 그 주에서 선출된 4인의 기사와 더불어 지정일, 지정장소에서 배심재판을 받아야 한다.

제 19조 배심재판을 지정일에 개정할 수 없을 때는 당일 주재판소에 재정한 자 중에서 사건 규모에 따라 재판의 진행에 필요한 일정수의 기사와 자유보유자가 잔류해야 한다.

제 20조 자유인이 경범죄를 범한 때에는 그 죄의 경미함을 고려하여 벌금을 부과하고, 중범죄를 범한 때에는 그 죄의 막중함을 고려하여 벌금이 과해진다. 생계유지에 필요한 재산은 벌금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상의 모든 것은 그들이 자진하여 신체와 재산을 짐의 연민에 맡긴 경우에만 적용된다. 아울러 전술한 벌금은 선량한 이웃의 선서 없이는 부과할 수 없다.
제 21조 백작과 남작은 그들의 동료에 의하고 또한 위법행위의 정도에 따르지 않고는 벌금에 부과되지 않는다.

제 22조 승려의 세속적 소유재산에 벌금을 과할 경우는 제21조와 같은 방법에 의하며 교회의 재산에 대해서는 본조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제 23조 기존의 법적 의무에 의거하지 않는 한 어떠한 촌락과 개인도 교량의 건설에 강제부역을 제공하지 아니한다.

제 24조 주장, 성주, 시체검사관 기타의 짐의 대관은 왕좌재판을 개정할 수 없다.

제 25조 모든 주와 백호촌과 군은 전례와 같은 지대만을 부과할 수 있으며 이를 증액할 수 없다. 그러나 짐의 직할장원은 예외로 한다.

제 26조 짐으로부터 봉토를 받은 자가 사망한 경우 주장이나 짐의 대관은 사망자가 짐에게 부담하고 있던 채무에 대한 짐의 최고특허장을 제시하고 법정지정인의 입회하에 채무액의 한도내에서 그 속봉에 속하는 동산을 압류하고 그 목록을 작성할 수 있다. 채무의 완전 변제시까지는 어떠한 물건도 이동시킬 수 없다. 잉여물이 있을 때에는 사망자의 유언을 실행하기 위해 그것을 유언집행자에게 위탁해야 한다. 한편 사망자가 짐에 대해 채무가 없다는 사실이 판명된 경우에는, 그 동산은 사망자의 처와 아들에게 배당될 합리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고인에게 귀속한다.

제 27조 자유인이 유언없이 사망했을 경우, 그의 동산은 교회의 감시하에 사망자의 근친과 친구에게 분배된다. 단, 사망자가 타인에게 진 채무는 예외로 한다.

제 28조 성주, 기타의 대관은 즉시 현금을 지불하거나 또는 매도자의 의사에 따른 지불유예를 받지 않고는 어느 누구의 곡물이나 동산도 취득할 수 없다.

제 29조 기사가 몸을 바쳐 성을 경호할 의사가 있는 경우나 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 자신이 못하고 적당한 타인에게 대행시킬 의사가 있는 경우에는 그 기사에게 성의 경호대금을 강요할 수 없다. 또한 짐이 그 기사를 원정에 소집하거나 파견했을 때는 당해 원정 기간 중 성에 대한 경호 의무가 면제된다.

제 30조 주장, 기타의 대관은 자유인의 말 또는 마차를 당해 자유인의 의사에 반해서 징발할 수 없다.

제 31조 짐이나 짐의 대관은 성이나 기타 짐을 위한 용도로 타인의 재목을 소유자의 의사에 반하여 징발할 수 없다.

제 32조 짐은 중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자의 토지를 1년 1일 이상 유치하지 않으며 그 이후는 당해 지주에게 반환한다.

제 33조 데임스, 메드웨이 및 모든 잉글랜드 지역의 어망은 제거한다. 그러나 해안에 있는 것은 예외로 한다.

제 34조 '프레치페'라는 영장은 앞으로 토지의 소유에 관한 자유인의 장원재판소에서의 재판청구권을 상실케 할 목적으로 발급될 수 없다.

제 35조 짐의 전국토를 통해 포도주, 맥주 및 곡물에는 '런던쿼터'라는 단일 척도가 사용되어야 하며, 역색포, 조포 및 루세트와 기타 직물에는 단일쪽으로서의 직물 야드 단위가 적용되어야 한다. 형량에 관해서도 같다.

제 36조 생명 및 수족에 관한 영장(유한과 증오에 관한 영장, 구금이유심사 영장)의 발급을 위하여는 앞으로 어떠한 물건도 주고받는 일이 없고, 이 영장은 무료로 발급되며 또한 발급이 거부되지 않는다.

제 37조 짐으로부터 유료자유보유, 농업봉사보유 또는 자치읍 토지보유의 형태로 토지를 소유하거나 타인으로부터 기사역무를 대가로 토지를 보유하는 자가 있는 경우, 당해 보유를 근거로 하여 짐은 그 상속인에 대한 후견권이나 타인의 소유에 속하는 토지에 대한 후견권을 갖지 않는다. 당해 유료자유보유, 농업봉사보유, 또는 자치읍 토지보유가 기사의 역무제공 의무를 동시에 부담하고 있지 않을 때는 후견권을 갖지 않는다. 짐은 소도, 시 기타의 물품을 공납하는 봉사로 짐으로부터 소봉사(Parva sergenteria petty sergenty)를 보유하고 있는 자의 상속인에 대하여도 그를 근거로 한 후견권을 갖지 않으며 기사 역무의 제공으로 보유하는 토지에 대해서도 그를 근거로 한 후견권을 갖지 않는다.

제 38조 앞으로 대관은 사건에 관한 신빙할 만한 증인이 없이 진술만을 근거로 재판한 수 없다. 

제 39조 자유인은 동료들(동등한 사람들, equals)의 적법한 판결에 의하거나 법의 정당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금되지 아니하며 재산과 법익을 박탈당하지 아니하고 추방되지 아니하며 또한 기타의 방법으로 침해되지 아니한다. 짐은 이에 뜻을 두지 아니하며 이를 명하지도 아니한다.

제 40조 짐은 어느 누구에게도 권리 또는 재판을 팔지 않을 것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이를 거부 또는 지연시키지 아니한다.

제 41조 모든 상인은 판매를 위하여 악질 과세 아닌 종래의 정당한 관세에 의하여 안전하게 전 잉글랜드를 출입하고 체재할 수 있으며 육로 및 수로를 불문하고 국내에서 이동할 수 있다. 단, 전시에 우리와 전쟁상태에 있는 나라 사람은 예외로 한다. 만약 그러한 자가 전쟁개시 때에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경우에는 그 당시 우리 나라와 전쟁 상태에 있는 나라에서 우리 나라 상인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짐과 짐의 재판관이 알 때까지 신체와 재산에 손해를 끼침이 없이 그를 억류한다. 우리 나라 사람이 타국에서 안전하며 우리 나라에서도 타국인은 안전하다.

제 42조 왕국의 공동이익을 위해 전시중의 최단기간 이외에는 앞으로 모든 사람이 짐에 대하여 충성을 지키는 한 육로 및 수로를 불문하고 우리 나라를 출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단, 왕국의 법률에 따라 구금된자, 법익을 박탈당한 자, 짐의 적대국에서 온 자는 제외되며 이에는 적대국과 거래하는 상인도 포함된다.

제 43조 짐의 수중에 있으며 한편으로 남작령인 몰수령(예컨대 워링포드, 노팅검, 블로뉴, 랭커스터 명예령)에서 토지를 소유한 자가 사망한 경우 그의 상속인은 당해 남작령이 남작의 수중에 있으며 남작에게 지불해야 할 금액 이상의 상속료를 내지 않으며 그 외의 역무를 짐에게 제공하지도 않는다. 짐은 남작이 그를 보유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 남작령을 소유한다.

제 44조 사냥터 밖에 있는 자는 앞으로 일반소환장에 의해 짐의 사냥터 관리관 앞에 출정되는 일이 없다. 단, 엽림사건으로 재판에 회부된 자나 엽림사건으로 억류되어 있는 1인 또는 그 이상의 보증인은 제외된다. 

제 45조 짐은 왕국의 법에 능통하고 아우러 그를 잘 준봉할 의사가 있는 자가 아니면 판관, 성주, 주장 또는 대관으로 임명하지 않는다.

제 46조 수도원을 창설한 남작으로서 그 승려에 관한 잉글랜드 국왕의 특허장을 가진 자, 또는 예전부터 그 수도원을 보유한 자는 승려직 중 공석이 생긴 경우 당연히 그에 대한 후견권이 있다.

제 47조 짐의 시대에 새로이 지정된 모든 사냥터는 즉시 그 지정을 해체한다. 짐의 시대에 매사냥지구로 지정된 하안에 대해서도 같다.

제 48조 엽림과 수렵지, 엽림관과 수렵지관, 주장과 그 부하직원, 하안과 그 관리인들과 관련된 악관습은 각주의 정직한 사람들에 의해서 선출된 12인의 그 주 기사에 의하여 선서 후 심사되고, 심사종료 후 40일이내에 다시금 복구되는 일이 없도록 제거되어야 한다. 단, 짐이 잉글랜드에 있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 짐의 법관에 통보한 후 행하여야 한다.

제 49조 짐은 평화와 충실한 근무의 담보로 잉글랜드의 인으로부터 짐에게 인도되었던 인질과 증언 문서를 모두 즉시 반환한다.

제 50조 아테의 제랄드 일족, 즉 시고네의 제랄드, 샨소의 피터기 및 앤드류, 필립과 마크의 형제 및 그의 생질 제프리, 그리고 그들의 모든 자손들은 앞으로 잉글랜드 내에서는 대관직을 가질 수 없게끔 완전히 대관직에서 추방한다.

제 51조 짐은 말과 무기를 가지고 와서 왕국에 해를 끼친 외국의 기사, 석궁의 사수, 하수인 및 용병을 평화가 회복된 뒤에는 왕국에서 추방한다.

제 52조 짐은 그 동료의 적법한 판결이 없이 토지, 성, 자유, 또는 권리가 짐에 의하여 탈취된 경우에는 이를 즉시 그 자에게 반환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분쟁이 발생될 경우에는 다음에 정하는 평화보증의 항에 기술된 25인의 백작재판의 판결로 이를 해결한다.

제 53조 짐의 부왕 헨리 2세나 짐의 형 리처드 1세에 의해서 지정된 사냥림에 대한 지정해제 여부의 재판, 또는 기사역무의 제공으로 보유하는 토지를 근거로 짐이 종래 타인의 토지에 대해 가지고 있던 후견권에 관한 재판 또는 타인의 토지에 창설된 승원으로서 지주가 그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관한 재판의 경우에는 짐이 전조와 같은 방법으로 이를 유예한다.

제 54조 어느 누구도 여자의 고소로 체포, 구금되지 아니한다. 단, 그 고소가 그 아내의 남편에 관할 것일 때는 예외로 한다.

제 55조 짐을 위하여 부당히 그리고 정당한 법의 절차에 반하여 부과된 모든 벌금과 부당히 그리고 정당한 법의 절차에 반하여 부과된 모든 특별벌금은 완전히 이를 면제하거나 아니면 후술하는 평화의 보증에 관한 항에 기재되어 있는 25인의 남작 또는 그의 과반수에 상기 캔터배리 대주교 스티븐이 출석할 수 있을 때는 스티븐과 그가 이 목적으로 소집하기 바라는 인원을 합하여 열린 재판에서 결정한다. 그러나 스티븐이 출석 불능일 때라도 재판은 계속하여 진행된다. 만약 전기 25인 중 1인 또는 수인이 직접 당해 분쟁의 당사자인 경우에는 그 재판에 한하여 제척되고 전기인 중의 잔여자에 의하여 타인이 보충되며 그는 당해 재판을 위해서만 선출되고 선서를 해야 한다.

제 56조 짐이 웨일즈 인 동료의 적법한 판결 없이 토지, 자유, 기타의 것을 약탈한 경우에는 그것이 잉글랜드 지역 내이거나 웨일즈 지역이거나를 불문하고 즉시 반환한다. 그러나 만일 그에 관한 분쟁이 있을 때는 그들 동료의 판결에 의하여 이를 결정한다. 이때 잉글랜드의 토지의 보유에 대하여는 잉글랜드 법에 따르고 웨일즈의 토지의 보유에 대하여는 웨일즈 법에 따르며 경계지의 토지의 보유에 대하여는 경계지의 법에 따라 경계지에서 결정한다. 웨일즈 인도 짐과 짐의 신민과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제 57조 그러나 짐의 부왕 헨리 2세나 짐의 형 리처드 1세가 웨일즈 인으로부터 그들 동료의 적법한 판결 없이 탈취된 토지, 성, 자유 또는 권리로서 현재 짐이 보유하고 있는 것 또는 짐이 담보의 책임을 지고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십자군의 통상기간까지 짐이 반환을 유예한다. 단, 짐이 십자군에 참가하기 이전부터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것과 그 이전에 짐의 명령으로 심리된 것은 제외한다. 그러나 짐이 귀환할 때, 또는 짐이 해외원정을 중지했을 때는 즉시 웨일즈의 법과 상기 지역의 구별에 따라 그들에게 완전한 재판을 행한다.

제 58조 짐은 뤠린의 아들과 웨일즈로부터의 모든 인질 및 평화의 보증으로서 짐에게 교부된 증거문서를 즉시 반환한다.

제 59조 스코틀랜의 왕 알렉산더에 대하여는, 짐이 잉글랜드의 다른 남작에게 대우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의 자매 인질의 반환, 왕의 자유 권리에 관하여 결정을 한다. 단, 그의 부친 스코틀랜의 전왕 윌리엄(사자왕)으로부터 짐이 받는 증거문서에 따라 별도의 조치를 필요로 할 때는 예외로 한다. 그러나 상기 결정은 짐의 재판소에서 그들 동료의 판결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제 60조 짐이 짐의 왕국내에서 짐의 신민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준수해야 할 일로 허용한 상기의 여러 관습과 자유는 승속을 불문하고 짐의 왕국내에 있는 자는 누구나 그와 그의 밑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준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제 61조 짐은 신을 위하고, 또한 짐의 왕국을 개혁하고 짐과 짐의 남작 사이에 발생한 분쟁을 더욱 완화시키기 위하여 상기의 모든 사항을 인정한 것이므로 짐은 이 모든 것이 영구히 침해됨 없이 완전하게 향유되기를 바라면서 남작에 대하여 다음의 보증제도를 확립하고 이를 승인한다. 즉 남작들은 그들이 바라는 바에 따라서 평화와 이 특허장으로서 짐이 남작들에게 허용하고 확인한 여러 자유를 전력을 다하여 준수하고 또한 준수시킬 의무를 지닌 25인의 남작을 선출한다. 만일 짐이나 짐의 판관, 대관 또는 관리 중의 어떤 자가 누군가에 대해 불법을 범하거나 평화의 조항과 보증을 유린하여 상기 25인의 남작 중 4인의 남작에게 그 불법이 제시된 경우에는 그 4인의 남작이 짐에게 짐이 왕국밖에 있을 때는 짐의 판관에게 그 위반을 적시하고 그 위반이 지체없이 개선되도록 요구한다. 짐이 왕국 밖에 있을 때에는 짐의 판관에게 위반 사실이 지적되고 그로부터 40일 내에 짐이나 짐의 판관이 그를 개선하지 않을 경우에는 상기한 4인의 남작이 25인의 남작 중 잔여인에게 그 사건을 회부한다. 이 25인의 남작은 전국의 평민과 함게 성, 토지, 재산의 압류 기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이 적당하다고 판단하는 개선이 이루어질 때까지 짐에게 책임을 묻고 강압을 가할 수 있다. 단, 짐과 짐의 왕비 및 짐의 아들의 신체는 그러한 강압수단의 대상에서 제외한다. 그리고 위반사실이 개선되면 짐과의 종전관계는 회복되어야 한다. 또한 원하는 자는 누구나 위의 일을 실행하기 위해 25인의 남작들의 명령에 따라 그들과 함께 가능한 한 짐에게 강압을 가한다는 뜻을 선서할 수 있다. 짐은 그러한 선서를 원하는 자에 대해 공개적이고도 자유로운 의사로 그를 허가하며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선서하는 일을 금하지 아니한다. 한편 자신의 발의로 25인과 더불어 짐에게 강압을 가하는 것을 선서하고자 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짐의 명령을 따라 전기한 선서를 강제할 수 없다. 25인의 남작 중 사망자나 왕국을 떠난 자 또는 기타 사유로 전기한 여러 사항을 실행할 수 없는 자가 발생했을 때는 25인의 잔여인이 그들의 판단에 따라 새로운 자를 선출하고 그 선출된 자는 다른 사람과 같은 방법으로 선서한다. 25인의 남작에게 실행이 위임된 모든 사항과 관련하여 어떤 사항에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 또는 몇사람이 소집에 응하지 않고 출석하지 않거나 혹은 출석할 수 없을 경우 출석한 다수인이 결정하거나 명령한 것은 25인 전부가 그에 의견이 일치된 것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확정적이다. 전기 25인은 전술한 모든 사항을 충실하게 준수할 것이며 가능한 한 타인에게도 준수시킬 것을 선서해야 한다. 짐 또한 짐 스스로나 혹인 타인을 통해서거나 전술한 여러 가지 특권과 자유를 취소하지 않을 것이며 그 효과를 감소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그 자체가 무효이며, 짐 스스로가 타인을 통해서거나 결코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

제 62조 또한 분쟁이 있은 후 짐은 승속을 불문하고 짐과 신민 사이에 발생했던 일체의 악의, 분노를 모두 철회하고 사면한다. 그밖에 짐의 치세 제16년의 부활제로부터 평화가 회복될 때까지에 있었던 분쟁을 원인으로 한 모든 위법행위에 대해서도 짐은 승속을 불문하고 모든 자에 대해서 소추를 중지할 것이며 특히 짐에 관한 위법행위는 완전히 사면한다. 더욱이 그에 대한 보증 및 전술한 여러 가지 양해 사항과 관련하여, 캔터베리 대주교 스티븐 더블린 대주교 헨리를 비롯한 전기한 여러 주교 및 펜덜프 사의 개봉증거장을 작성하게끔 했다.

제 63조 이와 같이 짐은 잉글랜드의 교회가 자유임과 함께 우리나라의 모든 백성이 전기한 자유 권리 및 양해 사항들이 그들 자신과 후손을 위해 짐과 짐이 후계자로부터 모든 사항, 모든 장소에서 올바르고도 평화롭게, 자유롭고도 평온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영구히 보유 유지할 것을 희망하며 또한 확실하게 언약한다. 더욱이 짐과 남작측은 전술한 모든 것을 성의있게 또한 악의없이 준수한다는 뜻을 선서했다. 위의 사람들과 기타 다수인을 증인으로, 윈저와 스테인즈 사이에 있는 러니미드(Runnymede)라고 불리는 초원에서, 짐의 치세 제17년 6월 15일 짐의 손으로 이 장전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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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의 생각 머리말

2003년 어느 게시판에 올려둔 거 찾아옵니다. 운동가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이 글 읽으면서 늘 생각합니다.

서준식의 생각 머리말 2003-03-17

 

너무 당연한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책을 쓸 때는 서문을 잘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새삼 했습니다. 홍세화, 강준만, 박노자, 진중권 등등의 칼럼 모음집을 왠만하면 사지 않는 제가, 이 책을 사게 된 건 오직 서문 때문이었으니까요. 요즘, 딱딱한 책들 읽으면서 눈물 지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 많겠지만, 한 자 한 자 손으로 (아니, 키보드로) 배껴 어딘가에 담아두고 싶어서 이 곳에 올립니다. 방장님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머리말

운동가의 글쓰기를 생각하며

이 책은 사실상 내가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는 산문집이다.
나는 그 흔한 '평론가'도 아니고 '칼럼니스트'도 '자유기고가'도 아니다. 1988년 감옥에서 나온 후로 나는 인권운동밖에 모르고 세상을 살아왔고 나에게 '인권운동가' 말고는 다른 직함이 없었다. 운동가가 자신의 산문들을 모아 출판하는 일을 좀처럼 보기 힘든 우리 사회에서 나는 이렇게 책을 냄으로써 자칫 운동가가 아닌 '글쟁이'로 오해받지나 않을까 마음이 불편하다.

어렸을 때 나는 거의 만능에 가까운 스포츠맨이었다. 일찍부터 땀흘리며 근육을 단련하는 일의 고통 속에 행복을 발견했던 나는 당연히 글쓰기나 책읽기와는 무관한 소년시절을 보냈다. 어느새 나는 확실히 단련된 근육이 우리에게 비겁해지지 않으려는 우직함이나 남을 속이지 않으려는 소박함을 선사해준다는 신앙과도 같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가냘픈 팔과 하얀 손으로 글쓰는 자들을 '문약(文弱)'으로 단정하면서 본능적으로 경멸하곤 했다. 일본에서 문필활동을 하는 아우 서경식은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수상한 자신의 책에서 당시의 나를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한편 워낙 운동능력이 뛰어났던 그는 아닌 밤중에 느닷없이 나약한 나를 단련시키겠다며 왕복 4~5킬로는 족히 되는 오무로의 닌나지까지 달리기를 강요하곤 했다. 나로서는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성질나면 곧바로 손이 올라가는 성격이었는지라 반항할 엄두도 못내고 울며 겨자 먹기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어린 시절의 나는 그를 은근히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子どもの淚> 日本小學館文庫. 72쪽)

그러나 나이를 먹음에 따라 근육 단련은 이 세상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짓'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그리고 점점 뼈아프게 실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경영하시던 영세한 가내공장 직공들은 거의가 내일에 대한 희망도 인생설계도 없는 떠돌이들이었다. 그들은 월급을 받으면 그것을 며칠 사이에 술과 오입질에 탕진해버렸고 월초의 일손 부족은 늘 악몽처럼 아버지를 괴롭혔다. 뼈가 다 굵은 아들들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애절한 눈길을 외면하지 못했던 나는 언제나 알아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었지만 형이나 아우는 잽싸게 도망치기가 일쑤였다.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한나절을 보낸 나에게 아버지는 정말 고마워하시고 따뜻한 치하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진짜 기대는, 고된 육체노동을 묵묵히 견딘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망쳐 버린 아들들에게 있다는 것을 어슴푸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근육'이 '입'이나 '잔머리'에 열등감을 느껴야 하는 사회, '근육'을 단련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고 주변으로 내몰리는 사회에 대한 회의를 떨쳐내지 못한 채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말부터 근육 단련 대신 지성 쌓기를 시도했다. 왠지 올바른 길을 포기하고 나 자신의 믿음을 배신한 것만 같았던 그 때의 쓴맛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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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 숭배자였던 내가 글쓰기와 친해지게 된 것은 17년의 감옥 생활을 통해서였다.
국가권력의 비열한 사상전향공작 앞에서 비겁해지지 말아야 하고 굴복하지 말하야 한다는 명제는 당시 나에게 거의 인생목표와도 같은 것이었다.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 그곳에서 감행했던 나의 모든 인내와 거부의 몸짓은 십중팔구 단련된 '근육'의 힘에서 나온 것이었을 터이다. 수개월 동안 독서 금지조치를 당해도 책을 보여달라는 아쉬운 소리를 끝까지 참았던 나를 당시 광주교도소 전향공작 전담반 요원들은 "성격이 비뚤어진 외고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장기간의 독서 금지와 편지 쓰기 금지, 그 후에 거의 일상화되었던 차입 도서의 마구잡이 불허와 서신 불허는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나의 목마름을 극한까지 몰고 갔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쇠창살과 시멘트 담 안에 갇혀 실의의 날들을 보냈던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거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우리들 시대에 바치는 나의 고난의 의미를 확인했고,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내부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편지를 쓰면서 절망적인 고독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었다. 편지를 쓰는 일은 나의 논쟁행위였으며 고해성사였으며 절절한 기도였으며 또한 즐거운 놀이였다. 곱은 손에 호호 입김을 불면서, 혹은 봉함엽서 위에 뚝뚝 떨어지는 땀을 손바닥으로 자꾸만 훔치면서 나는 열심히 편지를 썼다. 절망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살아남기 위하여...(<서준식 옥중서한> 야간비행. 20쪽)

그 결과 1988년에 감옥에서 나온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바로 '글쓰기'였다. 감옥에서 겪은 많은 것들, 특히 사상전향에 관한 모든 문제를 남김없이 하나의 대하소설 속에 형상화시켜 보고 싶은 욕심이 나에게 있었다. 출옥직후부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밀려서, 혹은 의리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발을 들여다놓은 인권운동의 바쁜 일상속에서도 나는 한참동안 글쓰기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2년 어느 봄날, 나는 문득 운동과 글쓰기가 양립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아무리 눈을 씻고 나의 주변을 봐도 뛰어난 운동가이자 제대로 된 문필가는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김지하나 조영래 같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둘 중 하나를 선택행야 했다. 한 달 가량 고민한 끝에 나는 얼마간의 아쉬움을 품은 채 운동가의 길을 택했다.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 이후 전망을 잃은 운동판에서 '운동가'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었고 운동을 떠난 상당수 사람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자유기고가'라는 직함을 달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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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남짓 인권운동에 파묻혀 살아온 나는 이따금 이런 저런 매체에 글을 기고하기는 했어도 언제나 나의 본분은 인권운동이라고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시대에 부끄럽지 않은 인권운동가로 남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글쓰기'라는 외도에 빠져들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따라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대체로 한 가지뿐이었다. 즉 난관에 부딪친 나의 인권운동을 살리기 위하여, 혹은 꺼져 가는 우리 운동에 힘을 불어넣기 위하여... 물론 쓰고 싶은 여러 가지 주제는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쓰고 싶지 않은 주제를 가지고 모니터 앞에서 끙끙거려야 했고 때로는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놓고도 '운동적 고려' 때문에 무참히 도려내기도 해야 했다. 때로는 '전술적으로' 내키지 않는 엄살도 떨어야 했으며 때로는 필화(筆禍)에 대한 두려움으로 한밤중에 글을 쓰다 말고 '신변을 정리'한 적도 있었다. 나의 글쓰기는 그저 '글쓰기'가 아니라 엄격하게 나의 인권운동의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곧 나의 인권운동이었다. 이것을 고집스럽게 강조하는 까닭은 실제로 내가 운동가로서 운동의 절박한 필요에 따라 글을 써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근육'이 '입'이나 '잔머리'에 열등감을 느껴야 하는 그릇된 세태를 용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운동가(더 정확하게는 '활동가')나 노동자에 비해 일반적으로 지식인, 그리고 그 하나의 형태로 인정되는 '글쟁이'들이 부당하게 높은 대접을 받는 병든 사회이다. 험한 밥을 먹고 몸을 소진시켜가면서 간신히 '근육'으로 이 사회의 최악의 상황을 막아내고 있는 운동가가 글줄이나 하는 지식인이나 글쟁이 앞에서 한결같이 주눅들어야 하는 것이 비뚤어진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운동가 인구의 보충은 바라기 어려울 뿐 아니라 기존의 운동가 마저 덜 험한 밥과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기 위해 운동판을 떠나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한 4~5년 동안 눈 딱 감고 사법시험 공부나 작가수업에 열중한 후 시험에 합격하거나 '등단'할 수 있으면 그들은 하루아침에 그 4~5년 동안을 배고픔과 핍박을 견디며 이 사회의 암흑과 싸워 온 운동가들보다 월등한 사회적 대접을 받을 수가 있다.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그리하여 성공적으로 신분상승을 이룬 그들의 존재는 지적으로 성공할 가망이 없는 '열등인간'만이 운동판에 남는다는 그릇된 편견을 사회에 만연시키는 데 다시 일조를 하면서 운동가들을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고 간다. 나는 젊은 인권운동가들의 선배로서 이런 세태에 앞장서서 저항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글쟁이'로 인정받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글을 쓰더라도 어디까지나 인권운동으로서의 글쓰기로 일관하고 싶다.

분명 우리가 사는 시대는 글이 과잉하고 행동이 과소한 시대이다. 범람하는 가지각색의 매체들을 꽉 메우는 글, 글, 글... 우리 사회의 글에 대한, 혹은 글쓰는 자에 대한 동경은 말 그대로 비정상적이다. 상업적인 이유로 계속 부추겨지는 이런 세태 속에서 글쟁이들은 당연히 오만하다. 그들의 글에서 행동하지 않는 자의 부끄러움, 고난받지 않는 자의 죄책감, 악한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자의 슬픔 같은 것을 읽을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들의 글을 무심코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십중팔구 '근육'을 경멸하고 '입'을 숭상하게 되어 있다. 물론 그들이 현란하게 펼치는 주장 속에 경청할 만한 이야기가 적지 않게 담겨 있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온갖 레토릭과 해박한 지식으로 포장되어 있는 글의 알맹이는 의외로 단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그들이 굳이 글을 쓰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이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대충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세상을 건강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들이 글로써 주장하는 바를 몰라서가 아니라 행동이 과소하기 때문인 것이다.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글쟁이들은 가끔 이런 주장을 한다. "글쓰기도 운동의 한 형태다. 우리도 운동가다." 그들의 이런 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해주고 싶지 않다. 그것을 고스란히 인정해버린다면 누가 고달픈 운동판에 남아 있으려 할 것인가? 나의 생각으로는 운동가(혹은 활동가)가 운동을 하는데 절박하게 필요해서 쓴 글은 운동의 일부이지만 글쟁이의 글은 그저 글일 따름이다. 기껏해야 좋은 글일 따름이다. 좋은 글을 쓰고 호평을 받으면 그것으로 행복해 해야 한다. '근육'으로 하는 행동 없이 운동가의 명예까지도 깡그리 차지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아닌가? 고문과 가혹행위의 공포가 가득한 감옥에 몸을 둔 운동가는 말할 것도 없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운동을 조직하고 다니면서도 차비를 걱정해야 하는 운동가, 항상 감옥에 갈 준비를 해놓고 집회에 나가야 하는 운동가, 국회의사당을 멀리 바라보면서 자신이 조직한 고작 2~30명의 시위대와 함께 '악법 철폐!'를 외치다 닭장차에 실려 가는 실의에서 언제나 다시 일어서야 하는 운동가... 글쟁이가 자신의 글쓰기와 그들의 삶이 운동이라는 점에서 '같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만의 극치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글의 가치에 대한 믿음이 지나칠 때 그것은 미신이 된다. 즉 글이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은 위험한 미신일 수 있다. 그것은 따지고 보면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이나 글쟁이들이 만들어내는 미신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기본적으로 폭력의 원리가 관철되어 있으며 글로써 사회가 변할 만큼 이 사회는 아직 신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 '땅 위에 그어놓은 금 안에서만 놀아라!' 이것이 이 사회의 '룰'이며 그 금을 넘어가면 반드시 피를 보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진보적' 글쟁이들의 글이란 '금 안에서만 노는' 글이다. 이성이 폭력적 구조의 벽에 부딪치는 지점부터는 어쩔 수 없이 '입'이 아닌 '근육'이 현실의 어둠을 뚫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을 망각하는 모든 글쓰기는 미망(迷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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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데는 많은 지식이 필요 없다는 것은 나의 오래된 믿음이다. 나는 체계적인 공부를 한 사람도 아니고 많은 지식을 쌓은 사람도 아니고 치밀한 논리를 갖춘 사람도 아니다. 따라서 이 책에는 현실에 대한 운동가의 감수성과 험한 현실 속에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운동가의 고통과 운동에 대한 희망에 관한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나의 글은 운동가의 글로서만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 이상의 가치를 바라는 것은 분명 분수에 맞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 번 권유가 있었음에도 책을 낼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은 일상의 활동이 바쁜 까닭도 있었지만 이런 나의 글들이 왠지 초라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근육'이 '입'이나 '잔머리'에 열등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2001년 8월에 인권운동사랑방 대표를 사임하고 운동 일선에서 물러나게 됨으로써 약간의 시간 여유가 생겼다. 적어도 일상의 활동이 바빠서 책을 못 낸다는 핑계는 써먹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인권운동 10년의 결산을 할 필요도 나름대로 느꼈다. 그리하여 결국 농담처럼 오가던 책을 낸다는 이야기가 진담이 되고 현실화되어 여기까지 와버렸다.
과거에 모아두었던 원고들을 검토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사과박스를 뒤졌을 때 나는 '참 쓰기도 많이 썼다'는 감개를 금할 수가 없었다. 칼럼은 물론이고 성명서, 진정서, 보고서, 토론 기록, 강연 원고에다 논문 흉내를 낸 것까지... 나는 내가 과거에 쓴 글들을 정리하면서 세상에 상품으로 내놓을 이런 책 따위에 실을 글들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인 활동의 결과물인 글들이, 운동가의 땀과 눈물 어린 고된 활동의 결과물인 글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물론 나는 그런 글들을 이 책에 싣지 않는다. 실어봤자 '재미'있는 글에 길들여진 독자들에게 '상품'으로 다가가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활동가의 글들은 단지 상품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재미'없다는 이유로 햇빛을 보지 못한다. 이는 사회가 경박하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나는 나의 후배 활동가들이 만들어낸 그 훌륭한 운동의 결과물들 대신 나의 잡문들이 책으로 출판된다는 것을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 책이 나의 후배 활동가들이 진보주의와 인권운동의 문제에 대해 생각을 심화시키는 디딤돌이 되기를 원한다. 그들이 이 사악한 사회에서 일상의 삶에 지쳐 쓰러지고 싶을 때 이 책을 보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곧 나의 모든 글을 읽을 수 있게 될 내 딸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03년 1월 30일
명륜동 작업실에서
서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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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1928년 6월 14일

 

77년 전 오늘 그가 출생했다.

 

60년대 저항문화 중 자본에 약탈당하지 않은 마지막 상징이라던 그도, 그의 이미지가 90년대 후반 자본에게 봉사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한 광고업자는 “우리는 그의 이념 따윈 필요없다. 그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얼굴만이 관심의 대상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식상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볼리비아에서 사형당하기 직전 체포되었을 때의 저 모습까지도 자본이 약탈할 수 있을까? (아님 저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려는 나의 시도가, 자본이 거들떠보지도 않을 만큼 너무나도 낡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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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1954년 6월 13일

<뿌리 혹은 거친 땅> 금속에 유채 30.5×49.9cm 1943

 

소아마비. 철기둥이 몸을 관통하는 교통사고. 한 번의 유산과 두 번의 임신 중절. 여덟 번의 척추 수술과 발목 절단 수술. 동생 크리스티나 칼로를 포함하여 거듭되는 디에고 리베라의 끝없는 여성편력.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 된 미국의 과테말라 개입에 반대하는 시위를 포함하여 일생을 참여해온 혁명 운동. 트로츠키와의 연애. 그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 피어난 위대한 작품들.

 

일생을 거듭된 고통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자신을 긍정해낸 삶.

혁명의 러시아와 신문명의 미국의 시대에 멕시코의 대지를 발견해낸 삶.

오늘은 멕시코 혁명이 낳은, 혁명보다도 더욱 위대하고 정열적인 삶을 살다간 프리다 칼로의 51주기이다.

 

여성이라는 그녀의 성별 때문일까? 그녀에 대해서는 늘 그녀의 고통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늘 그녀의 삶을 이야기할 용기를 감히 내지 못한다. 그냥 신현림의 시를 몇 번이고 되새겨볼 뿐이다.



신현림,「프리다 칼로, 두 개의 그림」

 

'내가 어떻게 태어났을까'

나는 상상한다 프리다가 되어본다

 

하늘에서 흙더미가 쏟아진다 몸을 뚫고 화물차가 지나간다 멈춰 거울처럼 부서지는 몸 멈춰 뼈란 뼈 죄다 미쳐 날뛰는 고통 아가야 울어라 너는 신비스런 늪인데 그렇게 열망한 선물인데 갈매기처럼 하얀 옷을 감고 어디로 날아가니 성모상 목에 꽂힌 칼을 뽑아줘 아이를 잡아줘 더이상 잃을 게 없다 너를 만져보고 싶다 네 숨결, 네 살, 피리소리 같은 네 울음이 얼마나 파란지 아가야 죽은 내 아가야

 

프리다, 전차사고 이후 너는 29년간 외과수술을 받았다

서른 두 번이나

네 목을 끌고 달리는 오토바이 같은 시간들

 

그림을 그리며 울던 시간들 속에서

네 남편 디에고를 닮은 사내아이를 갖고 싶었지

손풍금 같은 아이를 낳으면 디에고를 붙들리라 믿었어

보헤미안 기질의 디에고는 아기엔 관심이 없고

너는 세 번이나 유산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 일이란

여자에겐 최고의 아름다운 사건?이다

여자의 존재 가치는 여기에 있다고 어떤 사내는 말한다

분노하면서 완강히 부인도 못하면서

여자의 존재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단지 아이 없는 집이란 얼마나 추운지 알 뿐인데

프리다가 온갖 종류의 인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인내하는 강인한 사람의 가치를 표현했음을

솔직한 프리다가 얼마나 용감했나 기쁘게 느낄 뿐인데

프리다, 네 죽은 아이들을 깨워 망아지처럼 뛰게 하고 싶구나

거대한 어항으로 흘러간 네 아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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