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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동지들에게 보낸 편지

 

*명동해방전선은 11월 19일 토요일, 약 5개월간의 활동을 마치고 해산했다. 해산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때 베를린에서도 몇 글자 보태었다. 비록 조직은 해산했지만, 이 글은 다음의 투쟁을 위해 공유하려 한다. 그리고 <명동해방전선 베를린임시특별연락부>는 향후 별 일 있을 때까지 <재건명동해방전선 베를린망명본부>로 이름을 바꿔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켜보고 있다" 

 

 

1 여러분의 쓸데없는 친구인 명동해방전선 베를린임시특별연락부 김강은 어쩌다 투쟁의 전선으로 부름받은 서울의 모든 동지들에게 불온한 입맞춤으로 인사합니다. 

2 이 은하를 통괄하는 정보통합사념체가 만든 대유기생명체 컨택트용 휴머노이드 인터페이스가 주는 껄끄러움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3 여러분 가운데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는 것을 트위터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해산 이야기도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습니다. 뭐, 페이스북 페이지 이름 바꾸면 되는 건데 귀찮네요... 해산하지 마세요... 

 

4 처음에 명동해방전선을 만들었던 날이 생각이 납니다. 칠월 둘째 날, 자정에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마리 안에 끌어 모아서 점거를 결의하고, 그날 조직을 만들고, 곧장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5 명동 삼구역 투쟁을 위해서 이 조직화는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6 실제로 유력한 사회주의 운동단체로부터 곧장 비판적인 반응이 왔습니다. "자족적이고, 명동 투쟁의 대의를 담지 못한다." 

7 이것은 처음에 준비단계에서 사용했던 이름인 "훼방전선"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지만 

8 그것이 겨냥하는 게 단지 그 이름만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문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자족적이었습니다. 그것이 이 드넓은 우주에서, 아니 한줌도 안 되는 이 투쟁판에서 그나마의 존재감도 없던 이들이 스스로를 세워 투쟁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자족'이라면 말입니다. 

9 '명동해방전선'이라는 기획을 머리에 떠올리고 초기에 두리반에서 함께 활동했던 몇 명과 이 기획을 발전시켜나가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물었습니다. 이건 할 수 있는 것일까.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일까. 현 시점에서 이것은 가능한 기회인가. 

10 근데 가능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어요. 그냥 한 번 해보고 싶다는데!>_<

 

11 지금도 진행중이겠지만, 그리고 여러 투쟁의 장으로 더욱 확장되었고, 그만큼 집중력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12 우리가 명동 삼구역 카페 마리에서 진행한 투쟁은 그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좋은 것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카페 마리는, 활동가들의 학교였습니다. 투쟁의 방법도, 함께 투쟁할 동지와, 많은 단위들과의 관계도 우리는 이 곳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13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족'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싸움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여기서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14 여기서 '우리'가 누구인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 우리가 그 모두를 대의하거나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 하에서 - 나는 그 '우리'를 이제는 식상해진 표현인 '몫 없는 이들'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15 이 자본주의에서 1%를 제외하면 보통 잉여로 밀려난다고 봐야 할텐데, 그 중에서도 현 시기 한국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투입한 자본에 비례하여 가장 잉여로 밀려나는 존재들이 여기서 '우리'라고 지칭하는 '몫 없는 이들'일 것입니다. 

16 이것은 단지 경제사회의 영역에 대한 설명만은 아닙니다. 

17 정치 캠페인에서 젊은 것들이란 민주개혁진보인지 뭔지 하는 집단에게 동원되는, 정확히는 동원되는 것처럼 잘 보이면 되는 존재입니다. 이를테면 민주당이 이십대를 찬양한다면, 그것은 이십대를 동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18 그것은 이십대의 미래를 걱정(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삼사십대를 투표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이십대의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이십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9 청소년은 말해서 무엇하리오! [오호라 그네들은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그들을 이 굴레ㄱ)에서 꺼내어 줄 수 있단 말인가? ㄱ) 어떤 사본에는 '노예생활'] 

20 진보정당의 캠페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십대나 청소년이 진보정당의 운동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21 이거 내가 해봐서 아는데, 솔직히 잘 못해요... 

22 경험이 없기도 하지만 활동의 프레임 자체가 아저씨들 거라서 젊은 사람들이 잘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도 하죠. 진보정당이나 사회단체에서 젊은 활동가들이나 지지자들은 계륵입니다. 버리자니 진보를 버리는 거고, 같이 하자니 뭐 하나 쓸모가 없고. 

23 [솔직히 맞다니까요? 우린 존나 쓸데 없어요. - 어떤 사본에는 생략] 이런 상황에서 세대론이 유행하면서 이십대나 청소년이 여러가지로 주목받고 있지만 주목 받는 그 만큼 우리의 삶은 더욱 잉여로 향할 뿐입니다. 

 

24 이런 상황에서 가장 바보같은 짓은 치고 나가는 짓입니다. 

25 아..아니.. 명동해방전선 자체가 이미 치고 나가는 건 맞는데, 사실 근본적으로 우리가 했던 일이 '자족적'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25 우리는 우리의 존재와 삶을 지키는 '방어'를 위해 최소한 해야 할 일을 했던 것 뿐입니다. 그게 공격으로 보이는 건 뇌의 착각입니다. 

26 우리가 지금의 안철수나, 나꼼수나, 진보대통합의 논의나, 반값 등록금 시위를 주도하는 한국대학생연합 등등처럼 뭔가를 공세적으로 치고 나가서 지금의 한국사회를 얼마간 바꿔보겠다고 한다면, 지금의 우리 역량에서 활동가들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한 달 이상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27 회의록 작성하고, 블로그 업뎃하고, 이게 말이죠.... 아주 그냥... 하기 싫엉....///_/// 

 

28 하지만 두리반의 경험이 그 시작이었고, 마리에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 과정이 보여주듯, 우리는 지금 우리의 삶을 '자족적'으로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29 동지들에게 '자족적'이라는 비난이나 하는 무리들에게 화 있을진저! 라기 보다는 니네 일이나 열심히 하시면 되고요... 

30 어느 시점에서는 분화되는 것도 필요하고, 함께 하는 동지들 안에서 좀 더 강고한 조직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31 하지만 지금 이 시점, 저들이 한국사회 전체를 새롭게 판을 짜려고 하는 시점에서 굳이 우리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보태기 위해 노력한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32 왜냐하면 무슨 판을 새로 짜든, 우리를 위한 나라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3 지금 필요한 건 진지입니다. 두리반 같은 곳, 마리 같은 곳. 현실의 어떤 장소여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제는 독자적으로 공간을 마련하는 점거투쟁이 요구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좀 더 넓게는, 지금의 우리에게 자족적일 수 있을뿐더러, 향후 계속해서 누군가를 전염시킬 수 있는, 우리 삶의 독특함을 드러낼 문화가 필요합니다. 

 

34 베를린에 와서 몇몇 대안공간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35 이곳엔 말하자면 두리반 같은 곳이 수십곳이 있습니다. 지난 십년간 좌파당과 사민당이 연정을 해 온 공식적인 사회민주주의의 도시 베를린 아래에는 그것과 대립하기도 하고, 그것을 지탱하기도 하는 무시 못할 세력으로서 각종 급진 세력들과 그들이 머무는 커뮤니티나 바, 인포샵, 클럽들이 있고, 이런 활동의 상당수는 장벽붕괴 이후 활발했던 빈집 점거를 통해 획득한 건물들을 통해 이뤄지고 있습니다. 

36 비난으로서 '자족적'이라는 평가는 아마 베를린이라면 유효할 거라 생각합니다. 때때로 점거운동이나 급진좌익 운동 자체가 하나의 화석화된 전통이나 스타일에 불과해 보이기도 합니다. 

37 하지만 이러한 넓은 급진좌익의 백그라운드는 위기의 순간에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이 지켜오던 삶을 한 순간에 밖으로 확장하게 될 가능성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38 서울에서 우리가 잉여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곳에는 오직 하나의 차원의 정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선거 등의 정치일정에 따라 저항하는 삶이 부침을 겪어야만 했던 역사를 중단해야 합니다. 저들이 민주 혹은 진보대통합의 이름으로 벌이는 실험은 사실 이천 이년의 실험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안철수조차도 그러합니다.] 

39 지금 필요한 건 그 동원의 정치에 동원되지 않고 '자족'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론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이것은 투표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40 형제 자매... 아, 아니 동지 여러분, 지 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팔십년대 이후, 혹은 우리에게는 구십칠년 아이엠에프 이후 진행되었던 역사의 종말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벤야민의 말을 빌려 말해보자면, 파시즘이 승산이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 적들이 역사의 '진보'의 이름으로 맞서기 때문입니다. 

41 우리가 그들의 싸움에 그저 동참할 때, 혹 때로 그 활동이 작은 승리를 거두더라도 그 승리의 열매는 안철수나 김어준, 혹은 우리가 잘 아는 노회한 정치인들에게 돌아가고, 우리는 그저 '발랄하고 분노한 이십대'로서 찬양받고 말 뿐입니다. [한겨레, 경향신문이 이러한 꿈을 계속 유포시키고 있습니다.] 

42 이른바 혁명적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의 행동도 미덥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기 싸움'을 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43 다시금 벤야민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적 인식의 주체는 투쟁하는, 억압받는 계급 자신"입니다. 이 계급은 객관적인 의미에서 '노동계급'이 아닙니다. 그것은 "해방의 과업을 과거에 때려눕혀진 자들의 세대들 이름으로 완수하는, 최후의 억압 받고 복수하는 계급"입니다. 

44 뭐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구요...  지금 억압받고 있는 우리가 이 빌어먹을 진보의 역사에 복수할 때, 지나간 모든 세대의 억눌려진, 버림받는, 잉여로 밀려난 사람들의 기억과 함께 우리는 구원 받을 것입니다. 

45 그날까지 우리가 해야 할일은 제대로 '자족'하는 것입니다. 진지를 구축하고, 우리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최대한 연대하는 것입니다. 

 

46 그러나 동지 여러분, 이 투쟁에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려 해선 안 됩니다.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너와 내가 계속 이 투쟁을 함께 싸워나갈 수 있는 만큼만 투쟁하면서 끝까지 동지들을 잃어버리지 맙시다. 

47 미혹하는 촛불시민이나 나꼼수의 거짓 예언을 경계하십시오. 

48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49 오직 굳은 결의...까지는 필요 없고, 끈질기게 지금의 삶과 동지들과의 관계를 유지하십시오. 매일 외신 기사들을 보고 있자니 마지막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50 보고 싶은 동지 여러분,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서로 게으르다 질책 말고, 소심한 사람들을 격려하며 약한 사람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사람을 인내로써 대하십시오. 

51 항상 노래하십시오. 

52 쉬지말고 개드립치십시오. 

53 모든 일에 쉬엄쉬엄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 아니... 김정ㅇ... 아, 아니... 여하간 이건 동지들을 향한 제 마음입니다. 

54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잘 붙드십시오. 특히 ㄴ)부농...[ㄴ)어떤 사본에는 '연애']

55 소수자에게 행하여 지는 폭력은 어떤 종류이든지 멀리하십시오. 

55 이 은하를 통괄하는 정보통합사념체가 만든 대유기생명체 컨택트용 휴머노이드 인터페이스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56 동지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도 관심 좀 써 주십시오. 

57 돈 생기면 베를린 놀러오십시오. 

 

58 불온한 입맞춤으로 서로에게 인사하십시오. 

59 나는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이 편지를 꼭 모든 동지들에게 읽어주십시오. 

60 여러분에게 김슷캇의 여러 기획들과, 가오리연의 피부와, 공기의 뭐라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려운데, 사람 잡아 끄는 매력이 항상 있을 것입니다. 데헷>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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