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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1/08
    켁~~~
    투덜 투덜
  2. 2006/10/17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3)
    투덜 투덜
  3. 2006/10/17
    일상의 찬미(발견) - 세편의 영화, 만화(2)
    투덜 투덜
  4. 2006/10/17
    정말 훈훈한 기사구놔(2)
    투덜 투덜
  5. 2006/10/10
    숙제
    투덜 투덜
  6. 2006/10/02
    나의 적과 나의 힘(1)
    투덜 투덜
  7. 2006/09/19
    아프다
    투덜 투덜
  8. 2006/09/07
    운동과 작은누이
    투덜 투덜
  9. 2006/08/26
    정태춘에 이어지는 기억(2)
    투덜 투덜
  10. 2006/08/23
    책들 흔적남기기
    투덜 투덜

켁~~~

억지로 위에 음식을 투척을 하니

속에서 지랄한다

 

 

 

 

 

'규정속도를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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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인자는 몬참거따.

더 있다가는 성격파탄자될꺼가터 (지금도 까칠한 성격이지만)

지겹고 짜증나고 화나고 무기력하고

점점 안하무인, 안일함, 무성의, 씨니컬해지는 나

 

느그들이랑 이제 고만 놀란다.

느그들이랑 내가 잘 놀아줬는지는 몰것다.

느그들이 나랑 잘 놀아줬는지도 몰것다.

느그들에 대한 원망도 없다.

느글들에게 미련도 없다.

느그들이 나한테 잘못한건지, 내가 느그들한테 잘못한건지, 쌍방과실인지 몰것다.

아니 그닥 관심없다

 

다만 때가 된거다.

남은 것은 느그들과 '빠빠이'를 준비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할 뿐

 

 

 

여기서 이승환의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의 가사를 곱씹어보자.

 

자 이제부터 우리들의 이별에도 준비가 필요하지
....
있을 때 잘해주기 떠난 뒤에 미련이 남지 않게
00에게 감사하기 어쨌거나 사랑했던 기억으로

....
구차하게 굴지 말기 어쨌거나 사랑했던 기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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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찬미(발견) - 세편의 영화, 만화

추석연휴를 맞이해 서울에 상경해 잼난 영화를 보려했다.

(소수영화는 영화관에서 볼 수 없는 지방인의 비애란...)

일단 꼬친게 '귀향'과 인디포럼에서 하는 '브라질 영화제'였는데

'귀향'은 두차례 방문했으나 표가 없어 허탕, '브라질 영화제'는 이미 끝나버렸다.

 

그래서 본 것이 '라디오 스타'와 '댈러웨이 부인'이었다.

'이틀 연속 본 영화 두편 다 분위기가 비슷했다.

 

일상에 대한 애정, 별거없는 삶에 대한 찬미 - 이 정도랄까

 

'라이오 스타'는 한물간 스타와 그의 매니저의 추루한 삶에서 약간의 성공을 겪지만,

그 둘의 관계지속을 통해 고루한 삶을 위로한다.

'댈러웨이 부인'은 자신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파티여는 것이 다인 상류층부인의

내적변화를 통해 삶에 대한 긍정성의 발견을 찬미한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던 나에게 따뜻한 두 편의 영화는 많은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두편을 다른 시기에 봤으면 모르는데, 이틀 연짱 보다보니 '일상의 찬미'라는 것이

현재에 그냥 자빠지게 하는 것같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해버렸다.

(그런데다 도발하는 영화인 '귀향'을 보고싶던 생각이 이런 생각을 더 부추겨버렸다.)

 

곤데 요 찜찜함을 날려 준 한편의 만화를 추석연휴 끝나고 만나게 되었다.

유시진의 '그린빌에서 만나요'

 

 

한 고등학생의 성장기이자 환타지만화다.

 

주인공은 자폐적이며 사람과의 관계 맺는 것을 즐기지 않지만,

주변과 마찰을 피할 정도의 유두리는 가지며 살아가는 소년이다.

그 소년이 오묘한 분위기에 두명의 남매를 만나면서, 친구들의 관계를 다시 만들어가고

아이에서 성년을 맞이하는 성장하는 굳건한(?) 소년의 모습으로 만화는 끝이 난다.

 

이 만화도 두편의 영화처럼 큰 사건없이 소소한 일상을 재해석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리고 동일하게 고루한 삶을 찬미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두 영화가 마음(자세)의 변화나 기존 관계의 유지를 통해 일상을 발견한다면

이 만화는 자신을 서서히 변화(발전)시키고, 기존의 관계 재정립을 통해 일상 발견을 한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갑자기 사교적인 사람으로 변하는 것같은 뽕맞은 결말은 아니다)

 

개인적인 취향이 성장기물을 좋아라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주체의 변화를 통한 일상에 대한 찬미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내용과 꼭 맞아떨어지는 섬세한 묘사와 표현,

세필화같은 내적변화의 서술이 매력적인 만화였다.

 

그리고 인간관계 맺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고

'쿨'함으로 위장한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 많지 않은 나의 성격과

비슷한 주인공의 변화를 보면서 감정이입이 아주 깊게 되어 본 만화였다. 

 

철저하고 섬세한 자기성장이지만, 괴롭거나 무겁지 않은 성장통

별볼일 없는 일상에 대한 찬미이자 일상의 재발견

내가 원하는 필요로 하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운동권들은 언제가부터 일상의 정치, 자기혁신을 통한 운동의 변혁을 외치고 있지만

(개인적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운동권이 아닌 자들을 못 따라가는 것만 같다.

아직까지는 일상성의 정치를 내면적으로 실천적으로 구현하기에는 내공이 부족하다.

 

 

ps

간만에 '유시진'의 완간 단행본!

'유시진' 아라뷰 아라뷰 아라뷰 아라뷰 아라뷰

급구매하기를 너무 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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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훈훈한 기사구놔

 '반전 주의자' 델가도의 첫 PS 맹활약

 

[민기자닷컴 2006-10-17 07:10] 

 


정확히 13년이 걸렸습니다. 1993년 10월1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대타로 빅리그에 데뷔한 이래 1711게임을 뛰면서 407홈런, 1287타점을 올린 후에야 그에게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뛸 기회가 왔습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 루키’인 카를로스 후안 델가도(34)는 연일 맹타를 휘두르면서 뉴욕 메츠의 월드시리즈(WS) 진출의 꿈을 이루기 위한 선봉에 서 있습니다.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간) 메츠와 LA 다저스 간에 벌어진 NLDS 1차전에서 델가도는 홈런 1개를 포함 5타수4안타 2타점의 맹활으로 6-5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빅리그 역사상 포스트 시즌 데뷔전에서 4안타를 친 5번째 선수가 됐습니다.


(중략)


델가도는 자신의 생애 첫 포스트 시즌에서 정말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7게임 성적은 29타수 12안타로 4할1푼4리에 4홈런 11타점. 이 기세라면 메츠의 포스트 시즌 타격 기록을 모두 갈아 치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포스트시즌 시리즈에서 9타점, 한 경기 5타점, 3홈런 등은 이미 메츠 팀 타이 기록입니다. 메츠는 카디널스와 적어도 두 게임을 더 치러야합니다.


(중략)


델가도의 파괴력이야 이미 정평이 나 있지요. 지난 1996년 블루제이스의 풀타임 1루수로 활약하며 25홈런을 기록했던 델가도는 다음 해 정확히 30개의 홈런을 때렸습니다. 그 이후 올 시즌까지 10년 연속으로 30개 이상의 홈런을 쳤습니다. 10년 연속 30+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역사상 4명뿐입니다.


지난 8월에는 부시스타디움에서 제프 위버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터뜨렸습니다. 자신의 생애 통산 400번째 홈런을 만루포로 장식한 것은 델가도가 처음입니다.


그리고 지난 2003년 9월 빅리그 사상 15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한 경기에서 4홈런을 터뜨린 선수가 바로 델가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델가도에게 늘 관심이 가는 것은 야구 실력뿐 아니라 그의 야구외적인 활동과 신념, 인간으로서의 자긍심과 베풀고 사는 삶의 실천력 때문입니다.


지난 2004년 델가도는 많은 미국인들의 공적이 된 적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영웅 로베트로 클레멘테(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야구 영웅으로 1972년 겨울 지진 난민들을 도우러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를 깊이 존경하며 자란 델가도는 인권운동과 평화주의자이며 사회 봉사활동을 자신의 의무로 생각하는 선수입니다.


911 참사가 터지고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며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던 당시 델가도는 빅리그 경기 중 7회초가 끝나면 장내에 ‘갓 블레스 아메리카’가 울려 퍼질 때 모든 관중들과 선수들처럼 기립해서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델가도는 덕아웃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2004년 7월 토론토 스타지에서 이 사실이 기사화됐는데, 델가도는 인터뷰에서 “911 참사는 정말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도 끔찍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가족들과 사랑하는 이들을 전쟁에서 잃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말 슬프다. 나는 이라크전이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전쟁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 후에 다른 인터뷰들이 이어졌지만 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한동안 원정 경기 때마다 성난 미국 관중들의 야유를 받아야 했습니다.(푸에르토리코는 미국령이기 때문에 델라도도 미국 시민입니다.)


양키스타디움에서 가장 격렬한 야유를 받은 직후 델가도는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는)나의 믿음은 변함이 없으며,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2005년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된 후에도 7회 중간에 덕아웃에서 홀로 침묵하던 델가도는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된 올 시즌부터는 7회 중간에 다른 동료들과 함께 도열하고 있습니다.


트레이드 이전에 그 문제에 대해 메츠 구단에서 강력하게 델가도에게 요구를 했지요. 911 참사가 일어났던 도시 뉴욕, 그리고 정말 극성스런 언론과 팬들이 버티는 그곳에서 델가도가 계속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더라면 트레이드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일면 아쉬운 점도 있지만, 델가도의 의지가 충분히 세상에 전달됐다는 생각도 합니다.


델가도가 공개적으로 사회적인 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00년대 초반 푸에르토리코의 비에케스 폭격장 반대시위였습니다. 미 공군의 폭격장 사용으로 인해 인근 주민들과 생태계의 큰 피해가 속출하자 반대 시위가 이어졌고, 델가도는 2003년 폭격장이 폐쇄될 때까지 시위에 적극 참여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엑스트라 베이시스(Extra Bases)’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고향 인근의 불우 아동들을 돕는 기금 모금 등으로 벌이고 있는 델가도는 지역 병원을 찾아 어린이 환자들에게 장난감을 선물하고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야구가 자신에게 가져다준 부와 명예를 갖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 한다는 소중한 의무감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평화와 전쟁 반대 등을 위해서는 당당히 자신의 신념을 밝히고 굽히지 않는 용기를 지닌 델가도는 참 부러운 스포츠 영웅입니다.


참고도 델가도가 클레멘테를 얼마나 존경하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도 소개합니다. 올해 초 WBC가 열린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프에르토리코 팀에서 뛰겠다고 밝혔던 델가도는 자신의 국가대표팀 유니폼 번호가 21번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WBC 조직위에서는 가장 인기가 좋은 선수와 배번을 정하면서 델라도에게 바로 그의 영웅 클레멘테가 현역 시절 달았던 번호를 배정했습니다.


그러나 델가도는 21번은 오직 클레멘테에게만 속해야 한다면 변경을 요구했고, 결국 주최측은 25번으로 새로 유니폼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다리를 다쳐 WBC에 뛰지는 못했지만 델가도라는 인물에 대해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입니다.


사실 델가도는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1993년 시즌 막판에 빅리그에 승격된 델가도는 포수와 대타로 딱 두번 경기에 뛰었습니다. 성적은 2타석 1타수 무안타 1볼넷.(델가도는 원래 포수였다가 1루수로 전향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블루제이스가 WS 챔피언에 오르면서 델가도에게도 반지가 주어졌습니다. 본인은 경기에 뛰지도,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들어가지도 못했던 어쩌면 가슴 아픈 우승 반지였습니다.


현재 카디널스와 접전을 벌이고 있고, 또 NL 챔피언에 오른다 해도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막강한 AL 챔피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꺾어야만 델가도는 대망의 WS 챔피언에 오를 수 있습니다.분명히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델가도 없이 메츠는 그 길을 뚫고 나갈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같은 푸에르토리코의 스타 카를로스 벨트란과 함께 메츠를 이끌어가고 있는 4번 타자 델가도. 만약 메츠가 WS에 오른다면 델가도와 타이거스 ‘총알 투수’들과의 대결만으로도 큰 흥미를 불러올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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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추석연휴 잘 놀아느다

이제 하나씩 할일들이 기다리고 으쓰니

 

 

 

문선연습과 체력단련

 

생활조정

 

절주 및 절연

 

사기만하고 못 읽은 책들 읽기

 

구하기만하고 못 본 영상물들 보기

 

글쓰기

 

 

 

하공... 마느다

질리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하느거니다

투덜거리기만 하기에는 시간은 너무 빨리 가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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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적과 나의 힘

질투는 나의 적

애정은 나의 힘

 

시기는 나의 적

공감은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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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가슴에 울림을 주던 동지들의 투쟁이 굴곡당하는 모습이 너무 아프다

난 무엇을 했던가

 

 

개같은 정파놀음과

현실론과

대중의 힘과 아픔을 파먹는 (이빨만까는) 원칙론에 의해

굴곡 당하는

동지들의 투쟁에 가슴 아프다

난 무엇을 했던가

난 무엇을 했어야 했던가

 

작년 열사의 죽음앞에

올해 봄 공권력의 죽음을 향한 행진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투쟁에

난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운동'꿘'이 아니라

맨몸에서 느끼는 분노에서

현실에서 당하는 착취에

맞선 동지들 앞에서

난 도대체 뭐였는가

 

난 또 빚이 늘어가고

그들에게

나중에 잘 할께

라는 자세로 대충의 부채탕감으로 넘어갈 것인가

 

울고

울지도 말고

울고

울지도 말고

울고

울지도 말고

 

하나라도 해야 해

안그러면 숨이 끊긴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살려면

살려면

살려면

 

숨쉬자

혼자가 아니라

함께 숨쉬자

 

이제 목 끝이다

 

비굴하지 말자

나에게

동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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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과 작은누이

 

  

내가 운동을 시작한지 별로 안 되었을 때 처음으로 사수대를 결의하게 되었다.

운동을 시작한 짧은 기간 동안 경찰들과 몸싸움은 있었지만,

대로변에서 지대로 싸울 것이 예상되는 판에서는 처음이었다.

내 가슴은 전후좌우 100미터로 요동치고.


첫 임무는 안테나였다.

어떤 지정장소에 있으면서 경찰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다.

경찰은 내가 서있던 길과 다른 방향으로 왔고

투쟁대오와 격렬하게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 멀리서나마 보였다.


투쟁대오는 방향을 꺾고 내가 있는 곳과 점차 멀어져갔다.

지금 같으면 손전화기로 후딱 연락을 해서 어찌 하겠지만,

당시는 그 문명의 이기는 소수의 자본가만이 가질 수 있을 때였다.

안테나의 필요성은 소멸되었다고 판단,

멀어진 대오와 거리를 좁히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본대오에 간신히 합류했고, 대략의 소통을 한 후

2차 격돌이 예상되는 지점에 결합하기 위해 본대오를 나섰다.

다시 심장이 쿵쾅쿵쾅거렸다.

마음을 다잡으며 안면에 마스크를 쓰려는 순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는 무엇인가가 뒤통수에 레이져를 쏘는 기분이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레이져의 출처가 나의 친누이라는 것을 알았다.

둘 다 3초간 얼음이 되어 버렸다.

3초가 지나 해동이 되자 난 마스크를 쓰며 앞으로 나섰고

나의 작은누이는 대여섯명을 선동하면서 선전전을 다시 시작했다.


작은누이를 투쟁장소에서 만났다는 알싸한 충격으로

경찰과의 대치상태는 머리에 크게 입력이 되지 않았다.

그 여파로 한숨을 크게 쉬다

발 앞에 떨어진 최루탄 가스를 깁게 빨아드렸고,

결국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반기절 상태로 본대오로 질질 끌려나오고 말았다.


그 이후 작은누이가 운동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난

집에 들어와 작은누이 방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방에서 무수히 돌아다니는 씨뻘건 책들과 문서

그리고 무슨무슨 선대본, 무슨무슨 실천단같은 T들이 다량 검색됐다.


아이고, 이 인간이


후에 안 사실이었지만, 작은누이는 여러 집회에서 이미 날 보았다고 한다.

작은누이는 자기 캠에서 대오지도를 하는 역할을 맞고 있어

내가 있는 대오가 옆으로 올 때면

‘천천히 갑시다’ 혹은 ‘거리가 멀어집니다. 빨리갑시다’이러면서

나와 마주치지 않게 했다고 한다.

이 사악한 것!


작은 누이가 속해 있는 캠과 내가 속해 있는 캠은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쁘락션을 거는 관계였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공동활동도 많이 하고

접촉의 면을 넓히던 시기였다.

나는 운동을 막 시작하던 때였기에 상세하게 모르고 있었지만,

작은누이의 경우 그 내용을 상세히 알고 있을 위치였다.

하이고, 내가 움직이는 걸 보면서

지 혼자 얼마나 킬킬 거렸을 지 안 봐도 비데오다.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이 인간이 대략 재수없다.


그 이후 작은누이와는 집보다는 집회에서 만나는 시간이 많아졌고

이래저래 둘이서 할 얘기꺼리도 많아졌다.


그리고 상부상조를 했다.


과외를 충분히 할 수 있는 학벌인 작은누이는

“어이, 요번에 선거나가는 데 결의금이 필요해”라는 식의 얘기를 하면

풍부한 자금력으로 나에게 보조하고는 했다.


작은누이는 늦은 귀가와 외박으로 인한 집의 탄압이 골칫거리였는데

나의 방만한 삶을 부모님께 설명하며

작은누이에게만 강요하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느냐며

부모님을 설득(이라기 보다는 윽박)했다.


그리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위험한 집회같은 경우는 서로 격려하며

친남매이자 동지의 길을 걸었다.


이런 둘 사이에 불문율이 있었다.

정파적인 문제는 토론하지 않았고

서로의 문서를 훔쳐보지 않으며

각자의 민감한 개인적이며 정치적 문제는 알아도 모른 척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작은누이는 졸업을 앞두게 되었고

학생운동 이후가 큰 문제로 부딪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불문율에 따라 묻지 않았다.


작은누이는 결국 한국노총 산하의 연구소에 취직을 했다.

작은누이가 속해있던 그룹은 소규모 조직으로

학생운동 이후의 전망을 함께 건설할만한 조직의 상태가 아니었다.

해당 주체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작은누이는 그렇게까지 돌파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어중간한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그 어중간한 결정은 반년만에 사직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고,

곧 일반적인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길을 걷게 했다.

그리고 난 곧 군대에 가서 작은누이의 자세한 행보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전역 이후도 작은누이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작은누이에게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없었다.

그녀에게 운동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살아있는지

아니면 단절되었는지, 혹은 원망하는지 아는 것이 두려웠고

그 동안 둘의 정치적 대화는 단절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군대가기 전까지는 그녀가 속해있던 그룹과

최소한 선은 남아있던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남아있는 그 선만큼 그녀의 표정이

어두웠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난 약간의 방황의 시기를 넘겨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곧 정식적으로 한 정치단체의 소속이 되었다.

그리고 그 얘기를 작은누이에게 했다.

그 이야기는 나의 삶에 대한 고백이기도 했지만,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소’라는 질문이기도 했다.


‘많은 고민을 했었겠네. 열심히 하고 이젠 너의 삶을 돌아보렴’

그녀의 짧은 대답으로 더 이상 그녀가 운동과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있음을(혹은 단절 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작은누이는 다시 공부를 하고 있고

난 그냥 살아남아있다.


작은누이를 운동과 멀어진 한 사람으로 바라볼 때

그 사람은 작은누이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녀뿐 아니라 전망의 문제와 조직의 문제로

운동판을 떠난(밀려난) 사람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내 작은누이는 내 조직의 동지이기도 했고,

다른 조직이지만 함께 운동을 했었던 어떤 동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몫을 고스란히 개인이 져야 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운동하는 자들의 기억에서 버림당한 그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은누이를 생각할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살아남아서 나에게 비판을 가해야 하는 것 아냐?

살아남아서 그 무능한 조직들에게 욕을 해야 하지 않아?

살아남아서 치졸한 운동판을 공격해야 하는 거 아냐?

살아남아서 나와 했던 이야기를 지켰으면 안 돼?

살아남아서 나와 대화할 수 없는 거야?


그래도 작은누이가 고맙다.

이제는 아파하지 않아서

이제는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만들어가서

이제는 웃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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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에 이어지는 기억

학생운동을 시작하면서 많은 노래를 배우고 듣고 불렀다.

그러나 그솎에서 나의 마음을 때리는 것은 없었다.

그저 필요에 의해서(불르기좋은), 가사가 좋아서 수준에서 호불호가 있었을뿐이었다.

 

그러다 전철연 열사추모 집회에서 흘러나온 노래

'더이상 죽이지마라'

 

가슴 아래까지 울리는 선율, 목소리, 가사, 호흡...

 

그 날의 집회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그 날 어떤 연사가 나왔는지 ,어떤 투쟁을 진행했는지

기억나는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집회전 그 노래가 흘러나올 때

앰프의 위치, 날씨, 냄새, 풍경들은 선명하기만 하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 노래가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부른 것인지

물어보았다.

 

노래부르기 보다는 듣기를 좋아하는데

민중가요와 만남은 듣기보다는 필요에 의한 경험이 대부분이었을 때

정태춘의 노래는 충격 이상이었다.

 

그리고 복원되는 기억

음반사전 검열에 대해 대중음악계의 반발이 거셀 때였는데

검열을 받지않고 무단으로 앨범을 낸 사람의 인터뷰가 텔레비젼에 나왔고

유명한 가수가 그런 행동을 하기를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근데 웬 이름도 모르는 아저씨가 나와 대박 실망했는데

그이가 바로 정태춘이었다.

 

풋~ 그사람이 그사람이었다니

 

 

그리고 집에서 그이의 앨범을 안치완, 조국과 청춘, 꽃다지 앨범과 함께 발견했다.

분명 큰누이가 사다노은 앨범이었던 것이다.

 

큰누이는 대학초년까지는 통일운동을 하던 이였다.

큰누이는 전형적인 앨리트의 행보를 걸었기 때문에

큰누이가 하는 행동에 부모님의 일체의 의심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큰누이가 하는 이야기나 가져오는 책, 단체복, 테입은

대학생이면 으래 거쳐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큰누이가 운동을 관둘 때즈음이 한총련이 불법화 될 때였는데도 말이다.

(큰누이가 96년에 연세대를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던 모습은

우리집에서 대학생이면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고민의 단계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반짝이 옷을 입은 나훈아와 이미자, 조용필 옆에

자연스럽게 정태춘과 안치완, 조국과 청춘, 꽃다지가 있었다.

 

정태춘의 앨범을 자주 들을 수 없었다.

그냥 편하게 들을 수 없는 무게의 앨범이었고

한번 들을 때마다 휴유증이 큰 앨범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군대를 전역하고 처음으로 정태춘의 노래부르는 모습을 보았다.

운동을 추억하는 짜증나던 내용의 문화제였다.

 

거기서 정태춘은 조용한 목소리로

목이 부어서 오늘 제대로 노래를 부를 수 없다

요즘 작은 곳에서 노래를 불러서 이런 큰 문화제는 적응이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전교조 만들어질 때 감정을 살려서 만든 노래였는데

그의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울림으로 더욱 쨍해버렸다.

내귀에서 주변의 모든 소음이 사라졌고

그의 목소리와 기타소리만 흘렀고 그렇게 기억되고 있다.

당시 건조해지기만 하던 나의 마음에 자극을 주었던 것으로도 기억되고 있다.

 

 

오늘 우연히 정태춘의 노래를 듣게 되었고

그의 앨범을 인터넷을 통해 반복해서 듣고 있다.

 

'더 이상 죽이지마라'

 

노래가 나온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유효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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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 흔적남기기

레볼루션 넘버 삼

아~ 죽는 줄 알았다.

그냥 읽게 된다.

패기와 낭만, 기질이 있어 좋아

데디 플라이 데디도 단숨에 읽었다.

지대로 저항하기, 내맘대로 저항하기, 나에게 저항하기  명쾌함

따져보니 30대에 쓴 거던데, 이런 감성 죽여주네  

스피드 대기중

고 대기중

연애소설 대기중

넘 잼난거아냐

 

곰브리치의 세계사

지혜로운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

당신의 역사관은 동의하지 않지만

지혜로운 당신의 현명함에 동화됩니다

서양인이 바라보는 동야에 대한 시선으로 보느 동양사도 재미있고

군바리 때 읽은 서양미술사가 진국이지만

가볍게 읽고 이써용

2권도 사야하낭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순간에 대한 스침의 세밀화

쉬면서 읽고 이써요

편해서 좋고, 감성적이라 좋아요

 

넥스트

말로만 듣던 필립 케이 딕

역시나

대단하쉼다

영화화된 단편 모음집이라 입문용으로 딱이군

입문에서 그칠지 아닐지는 나의 상태와 완독하고 나서 감정에 따라 가변적

 

그러고 보니 참 책 안 읽었었네

열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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