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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도 가지가지

1. 완전 악질 1 - 자본가 개새끼들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다.

일하는 곳은 12시간 맞교대다. 뭐, 이건 다른 사업장도 거의 비슷하니 그러려니 하자.

한달 내내 쉬는 날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2주 주야교대 때는 완전 초죽음이다.

교대 주에는 무조건 16시간~19시간을 내리 일해야 한다.

한달 내내 풀가동시키는 기계에 내 몸도, 나의 동료의 몸도 이미 기계가 되어 버렸다.

기계는 기름칠이라도 한다지만, 우리는 기름칠할 건덕지도 없다.  

 

얼마전, 앉은뱅이병에 걸린 화성의 태국노동자 소식에 회사는 난리법석이었다.

왜냐하면 추가로 앉은뱅이병에 걸렸다고 확인된 중국인 여성노동자 3인이 내가 다니는 곳의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노말헥산 뿐 아니라 갖가지 위해약품들을 손에 달고 사는 작업자들에게 지급되는 것이라곤 그 흔한 마스크도 없었다.

노동부에서, 엠비시에서, 검찰에서 불시에 들이닥친다는 소식에 작업장 한 구석에 들입다 쌓아놓은 약품들을 숨기느라 바빴고, 지급하지도 않았던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닥달이었다.

 

한동안 소란스럽던 회사가 잠잠해지자, 이제는 '낭비와의 전쟁'을 위시로 6시그마 시스템을 정착하겠다며 출근시간을 한시간여 앞당긴다.

전체 작업자를 6-7명의 팀체계로 나누고, 최소의 낭비성과를 올리는 팀에게 포상을 준다는 명목으로 각 팀별 경쟁을 부추긴다.

팀내에서도 제일 적극적인 사람과 제일 소극적인 사람을 매일 뽑아 '상부'에 보고하도록 하여 팀내 경쟁도 불붙이고 있다.

 

거의 하루가 멀다하고 '사장님'과 관리자들의 훈시가 이어진다.

원자재 값의 상승, 원달러 환율의 하락(원청에서 지급되던 돈이 이제는 달러로 바뀐다고 한다), 각종 낭비요소의 증가 등으로 회사의 자금사정이 점점 나빠진다고 한다. 니미.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낭비요소를 제거해야 하고, 불량률도 낮추어야 한다. 씨팔.

그러지 못하는 작업자와 팀은 회사에서 쓸모없는 부품이 되어 버려 결국 축출대상이 되어 버린다.

일하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쌓이는데, 완전 울트라 캡숑 전천후 작업자가 되어야 한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하여 그만둔 작업자들도 꽤 된다.

 

에이. 열받아.

그래서 예전에 노조결성의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이주노동자들이 퇴직금 지급문제로 집단행동을 한 적이 있었다고 했고, 다른 한번은 회사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몇이 모여 노조결성을 도모하다 발각되어 모두 쫓겨났다고도 했다.

내가 입사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또 한번 회사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있었는데, 라인 작업자중 한 사람이 회사 홈페이지에 회사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쓴 것이 화근이었다.

그 다음날 각 공장의 작업자들을 한데 모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협박 아닌 협박-싸이버 수사대에 다 의뢰해 놓았다; 불만의 내용을 볼 때 그 사람은 금방 손에 꼽힌다; 자진해서 불만을 공개적으로 게시한 이유를 설명하면 이 선에서 눈감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등등-을 해대었다.

몇번의 노조결성이나 집단행동의 시도가 묵사발된 것을 본 상태에서 그런 협박을 들은 전체 작업자들은-나도 물론 그랬다. ㅡ.ㅜ- 완전, 쫄았다.

 

지금 하고 있는 회사의 모든 조치들이 정말 짜증 그 자체다.

회사가 살아야 여러분이 산다는, 위대하신 자본가님들의 절대명제는 여기서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다.

무엇이 되었든 쌓여있는 불만을 최고 형태로 드러내는 건, 사직서 한장 날리며 욕 한번 날려주는 게 끝인 이 곳.

조직되지 못한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그렇게 기계처럼, 노예처럼 살아간다.

눈에 훤히 보이게 목줄을 죄어오지는 않는다.

노말헥산처럼 그렇게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자신 마저도 모르게 야금야금 노동자들의 살을 파먹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들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릇은 아니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

 

 

2. 완전 악질 2 - 민주노총 나리들

 

요즘엔 회사에서 돌아오면 씻고 바로 뻗기가 일쑤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은 물론이고 뉴스보기도 힘들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며칠전 민노 임시대대 소식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암울하다, 암울하다, 매번 투쟁이 그렇게 개박살나면서 절절히 느꼈다지만, 이수호 집행부의 작태를 보니 정말 암울 그 자체였다.

 

한 여성 노동자가 대의원 '나리들' 앞에서 절절히도 호소했던 그 말, 나는 대의원도 아니다; 나는 그 흔한 노조도 없는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다; 70만 조합원의 대표들인 대의원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러나 조직되지 못한 사업장의 1400만, 아니 1300만 노동자들은 지금 민주노총의 결정에 따라 목숨이 결정된다; 지금 나는 표결을 부결시키러 단상에 올라온 것이 아니다; 이건 표결로 결저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왜 그걸 모르는가; 사회적 교섭안이 통과되면 어떤 결과가 이어질 지 왜 모르는가; 얼마나 더 당해야 알겠는가.

나는 어떤 말들보다 그 말이 가장 절절히 다가왔다.

그런데 그 말이 절절했던 건 아마도 나의 무능력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다.

민주노총에서 사회적 교섭안이 부결된다면, 그리고 총파업 투쟁이 민노대대에서 결의된다면 만사가 해결될지도 모르는 그 기대감, 참으로 무기력한 기대감때문에 나는 그 말이 절절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여성노동자도 그럴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동지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단상을 점거한 동지들의 그 절절한 심정을 왜 모르겠는가.

나 같아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단상에 함께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우리는 거기까지였다.

무엇을 할 것이고,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그리고 그 실천계획이 우리에게는 부족하다.

아니,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솔질할 수도 있겠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사회적 교섭안이 가결되면 민주노총은 한국노총보다도 못한 조직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어느 대의원의 발언, 그러나 당일의 모습을 보면 이미 민주노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악질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래도 동지일 거라, 어쨌든 함께 가야 할 '자'들이라 생각했던 사람은 너무 많았다.

상층에 기대할 것은 없다.

새로운 시작은 윗대가리에게 기대할 수 없음이 명백히 판명되었다.

새로이 일구어야 한다면 가장 아래에서부터 일구어야 함이 더욱 명확히 확인되었다.

 

 

3. 나는, 그리고 우리는

 

한 달여를 우울모드속에서 허우적댔다.

내가 갈 길이,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명확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위의 난장판들이 나를 더욱 힘빠지게도 했고,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쉬이 찾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바꾸어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지 않는다면 아무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걸 더욱 뚜렷이 알아가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이 원하는 것이리라 믿고 있다.

 

어느 동지의 말처럼, 노동자계급의 소수파는 '그들'이 될 것이다.

역사는 지금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는 지금 내가, 우리가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서술될 것이다.

 

구정이라 모처럼 쉬는 오늘,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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