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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봐, 피투성이가 되었어.

트랙팩님의 [성폭력 생존자에 관한 지지와 연대] 에 관련된 글.

 

 

0. 오랜만에

 

블로그에 오랜만에(?) 글을 쓴다.

사실 눈팅을 계속 하던 차였다.

그냥 지나치려고도 했었다.

그런데 차마 그럴수가 없었다.

 

 



1. 여자

 

나는 여자다. 나는 여자다. 나는 여자다.

그래,

나는 여자다.

 

그러나 내가 여성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은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생물학적으로만 여자라 인식했을 뿐 나는 스스로를 여성이라 인식하지 못했다.

아니, 인식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할지 모른다.

 

남성과는 무언가 다른 대우--꼭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차별받고 있다는 느낌을 수도 없이 "느껴왔지만",

그것이 나 개인의 '느낌'이 아니라 '현실'임을 "인식하게 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었다.

내가 비로소 여성이라는 인식.

내가 여성이기에 받아 왔던, 내가 여성이기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로" 내가 당했던 수많은 상황들.

그것은 참담했고 패배적이었으며, 그러기에 다른 한편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2.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너에게 그런 상처를 안겨줄 의도는 아니었어.

 

그러나 나는 상처를 입었다. 그것은 결과였다.

그가--그들이 그럴 의도를 가졌던 가지지 않았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의 상처는 그들이 내뱉는 말 한 마디로 치유될 수 있는,

그렇게 허허 웃으며 넘겨낼 수 있는,

그런 것 따위가 절.대. 아니었다.

차라리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눈물을 흘리는 편이 훨씬 더 인간적이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 그 주둥아리를 닥치기 바래. 아가리를 찢어버리기 전에.

 

 

3. 재생, 재생, 무한반복, 재생.

 

겨우 초등학교 1학년 짜리 아이를 두고 치맛속을 더듬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동네 속셈학원 선생의 탈을 쓴 변태새끼의 쳐죽일 작태는 둘째치더라도.

여고시절 학교 안에서 떠도는 무수한, 미스테리한 사건의 진상을 따지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남학생이 판치는 캠퍼스 안에서 여학생으로 살아남기 버거워 스스로 남성화를 자처하는 여성들을 일상으로 목격하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성추행의 경험이 얼마나 피해자를 외부와 단절시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활보하는 가해자가 심심찮게 발견되는지는 둘째치더라도.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튕긴다는 자의적 해석으로 끝끝내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루고야 마는" 이상한 뇌구조의 정신병자들이 지천에 깔렸음은 둘째치더라도.

 

항상 여성은 왜, 당하는 거지?

왜 나는 그런 상처를 기억하고 있는 거지?

왜 우리는 그런 상처에 아파해야 하는 거지?  

무한반복되는 상처의 기억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옆에, 나와 내 주변에서 항상 일어나는 조용한 사건들이다.

그러나 사건은 언제나 미해결. 공소시효 만료. 꽝꽝꽝.

그리고 다시 반복.

 

 

4. 나는 그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는 나고, 나는 그녀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게 고개를 치켜세우고 눈빛을 칼날같이 벼리는지,

마음으로 느껴진다.

그녀가 받은 상처, 그 상처의 고통을 모두 이해할 것 같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나 또한 그러한 상처들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나는 그녀를 감히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다.

 

무한반복되는 여성 개인들의 상처가 더 이상 자신의 것으로만 머무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그녀가 내딘 한걸음은 그래서 더없이 소중하다.

상처받은 모든 여성에게, 나에게, 우리에게, 소중하다.

 

그녀의 선택과 결정을 지지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지지를 표할지 고민은 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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